원장 칼럼 2012/04/05 13:29

성수요일, "한 몸을 이룹니다" 말씀 나눔.

마가(마르코)복음 12:1-11

 

 

예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일구어서, 울타리를 치고, 포도즙을 짜는 확을 파고, 망대를 세웠다. 그리고 그것을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멀리 떠났다. 때가 되어서, 주인은 농부들에게서 포도원 소출의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종을 잡아서 때리고, 빈 손으로 돌려보냈다. 주인이 다시 다른 종을 농부들에게 보냈다. 그랬더니 그들은 그 종의 머리를 때리고, 그를 능욕하였다. 주인이 또 다른 종을 농부들에게 보냈더니, 그들은 그 종을 죽였다. 그래서 또 다른 종을 많이 보냈는데,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였다. 이제 그 주인에게는 단 한 사람, 곧 사랑하는 아들이 남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 아들을 그들에게 보내며 말하기를 '그들이 내 아들이야 존중하겠지' 하였다. 그러나 그 농부들은 서로 말하였다. '이 사람은 상속자다. 그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유산은 우리의 차지가 될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를 잡아서 죽이고, 포도원 바깥에다가 내던졌다. 그러니,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그는 와서 농부들을 죽이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이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런 말씀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집을 짓는 사람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일이요, 우리 눈에는 놀랍게 보인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일구어서, 울타리를 치고, 포도즙을 짜는 확을 파고, 망대를 세웠다. 그리고 그것을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멀리 떠났다. 때가 되어서, 주인은 농부들에게서 포도원 소출의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종을 잡아서 때리고, 빈 손으로 돌려보냈다. 주인이 다시 다른 종을 농부들에게 보냈다. 그랬더니 그들은 그 종의 머리를 때리고, 그를 능욕하였다. 주인이 또 다른 종을 농부들에게 보냈더니, 그들은 그 종을 죽였다. 그래서 또 다른 종을 많이 보냈는데,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였다. 이제 그 주인에게는 단 한 사람, 곧 사랑하는 아들이 남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 아들을 그들에게 보내며 말하기를 '그들이 내 아들이야 존중하겠지' 하였다. 그러나 그 농부들은 서로 말하였다. '이 사람은 상속자다. 그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유산은 우리의 차지가 될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를 잡아서 죽이고, 포도원 바깥에다가 내던졌다. 그러니,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그는 와서 농부들을 죽이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이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런 말씀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집을 짓는 사람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일이요, 우리 눈에는 놀랍게 보인다.'"
 

 

 

1. 이번 주는 사순절의 마지막 한 주간, 특별히 예수의 고난을 기억하며 묵상하는 고난주간 입니다. 이 한 주간동안 예수는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성전에서 장사하던 이들과 싸우고, 예루살렘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을 선언하고, 마지막 만찬을 나누고, 체포되고, 십자가에 처형당했습니다. 이 주간 예수는 아주 계획적이고 빠르고 정치적으로 움직인 것 같습니다. 이 주간의 행적을 통해 우리는 예수가 평생 무엇과 싸우려 했는지, 또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어 했는지를 집약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을 통해 유대지역을 다스리던 이들이 잘못하고 있다고 여겼고, 자신의 행동을 통해 그 잘못을 폭로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로 인해 생명을 위협당했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이러한 모습에서 구약성서에 나오는 예언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2. 예언자, 혹은 선지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맡은 사람" 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국가가 하느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있다고 판단될 때마다 용감하게 일어나 율법의 근본정신인 "평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상기시키려 했고, 그로 인해 고난을 받고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가 말씀하신 "종들"은 그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3. 예수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이제 예루살렘의 상태가 최악의 상황에 도달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통치자들과, 그들과 연루된 상류층 시민들은 지금껏 자신들에게 불편한 말 하는 이들을 제거해 왔습니다. 그들은 정의를 두려워하고 약자에 대한 공감을 비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성전은 권력과 결탁된 자본에 잠식당해 버렸고, 사마리아인과 갈릴리 인들에 대한 혐오감은 극에 달했고, 그들의 경제는 농민과 어민들에 대한 착취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평화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평화는 강대국 로마의 군사적 지원 없이는 유지될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는 성전을 허물어 버리라고, 원수로 여겼던 갈릴리인들과 사마리아 인들을 사랑하라고, 고아와 과부들의 재산을 빼앗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오늘 비유도 그 가르침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멸망이 당신들을 삼켜버릴 것이다'. 이 말을 하는 예수는 얼마나 슬펐을까요? 예루살렘의 미래에 닥칠 재앙, 살육과 파괴의 현장을 머릿속에 그리던 예수의 표정은 마냥 웃는 얼굴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4. 우리의 현실을 생각해 봅시다. 어제, 강정마을 송강호 형제의 구속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송강호 형제는 한때 교회 전도사로 일했고, 세계 곳곳에 하느님의 평화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두 발로 뛰었던 사람입니다. 그가 경찰의 무리한 진압에 의해 이가 나가고 살이 뜯기는 고통을 당했고, 이제 죄인으로 분류되어 구속된다고 합니다. 이곳 현장에서도 대화를 원하며 비폭력으로 농성하던 사람이 건축시행사, 용역, 경찰로부터 물리적 폭력을 당했고 구청의 무관심으로 인해 마음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강정과 북아현에서 우리는 이 시대를 향한 하느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여기에, 자기 몸을 고통에 내어줌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증언하는 예언자들이 있고, 그들을 통해 가진 자들의 죄악이 폭로됩니다. 우리가 그 일의 증인입니다. 예수는 그 죄악의 끝에 멸망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폭력이 차오르고 차올라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이들을 죽이게 될 때에, 그들의 운명 역시 끝나게 될 것이라고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더 강한 군사력을 불러와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으려 하던 이들은 자신들이 사고 판 무기에 의해 죽을 것이고,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가난한 이들의 생명을 짓밟는 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자비 없는 세상에서 서로를 죽이며 살  것입니다.
 
5. 우리는 오늘 여기에서 성찬을 나누려 합니다. 성찬은 예수를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식입니다. 우리는 이 식탁에서 예수를 기억합니다. 그는 사회의 변두리로 밀려난 이들과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이 식탁은 그 예수의 식탁입니다. 그는 또한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을 위한 양식으로 준다고 말 했습니다. 이 식탁은 그 예수의 식탁입니다. 그는 우리를 향해 "서로 사랑하라" 라고 가르치신 분이십니다. 이 식탁은 바로 그 예수의 식탁입니다. 이 식탁에서 우리는 세상의 모든 고통받는 이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세상이 죽음을 향해 돌진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서로 사랑함으로써 세상을 치유하고, 나아가 온 세상이 회개하여 생명을 얻도록 합시다. 이 고난주간 동안에, 예수의 마음을 더 많이 묵상하고, 그것을 우리 마음에 새깁시다.
 
5. 우리는 오늘 여기에서 성찬을 나누려 합니다. 성찬은 예수를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식입니다. 우리는 이 식탁에서 예수를 기억합니다. 그는 사회의 변두리로 밀려난 이들과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이 식탁은 그 예수의 식탁입니다. 그는 또한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을 위한 양식으로 준다고 말 했습니다. 이 식탁은 그 예수의 식탁입니다. 그는 우리를 향해 "서로 사랑하라" 라고 가르치신 분이십니다. 이 식탁은 바로 그 예수의 식탁입니다. 이 식탁에서 우리는 세상의 모든 고통받는 이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세상이 죽음을 향해 돌진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서로 사랑함으로써 세상을 치유하고, 나아가 온 세상이 회개하여 생명을 얻도록 합시다. 이 고난주간 동안에, 예수의 마음을 더 많이 묵상하고, 그것을 우리 마음에 새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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