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순간 2009/04/08 22:09

신문엔 날마다 꽃잔치인데

                                            길


                                                                   - 박영근


장지문 앞 댓돌 위에서 먹고무신 한 켤레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동지도 지났는데 시커먼 그을음뿐
흙부뚜막엔 불 땐 흔적 한 점 없고,
이제 가마솥에서는 물이 끓지 않는다

뒷산을 지키던 누렁개도 나뭇짐을 타고 피어나던 나팔꽃도 없다

산그림자는 자꾸만 내려와 어두운 곳으로 잔설을 치우고
나는 그 장지문을 열기가 두렵다

거기 먼저 와
나를 보고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저 눈 벌판도 덮지 못한
내가 끌고 온 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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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엔 날마다 꽃잔치인데 현실은 삭막하다. 아이 손을 잡고 근처 공원 바람이라도 쐬고 싶은데 통 시간을 낼 수 없다. 온종일 노동으로 지친 몸은 주말 공부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숙제며 발표 준비로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말도 쉴 수 없는데, 피로감에 덜컥 겁이 난다. 이런이런- 하고 싶은 일은 많지만, 정작 할 수 있는 일은 적은 걸. 나머지는 내 과한 욕심이었을까. 올해는 너무 바쁘지 않게, 아이와 함께 삶의 순간순간들을 즐기면서 살고 싶었는데 내 선택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분간은 어쩔 수 없는 걸. 힘들게 직장을 구했고 적지만 열심히 돈을 벌어야 생존할 수 있다. 게다가 후배에게 엄청난 돈을 빌렸다. 몇년째 대출금 이자를 감당하기 버거워 이참에 집을 팔고 이사할까 고민 해봤지만 마땅한 전세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농담 비슷하게 건넨 말을 빌미로 돈을 빌려 일단 은행 대출금을 갚았고 이제 매달 원금만 조금씩 갚으면 된다. 근데 기분이 묘하다. 왠지 삶을 저당잡힌 기분 - '돈을 꼭 벌면서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 말이다. 그동안 난 무책임하게도 돈을 버는 것에서 늘 조금씩 자유로왔다. 사실 능력도 안 됐고 의지도 부족했다. 조금 일하고 많이 놀고 싶은, 계획적인 경제 생활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던 내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달라져야 한다. '집' 때문에 말이다. 대체 이깟 집이 뭐라고. 하지만 필요하다. 돈 모아서 여행이나 가면 좋을텐데~ㅋ 아쉽다..

 

험난한 인생길 어디쯤

나를 기다리는 사람 있을까

있으면 좋겠다

울음 터뜨리며 와락 안겨들

그 사람

꼬부랑 할머니가 되서도

함께일 수 있는

내가 기다리는 것처럼

나를 기다리는

꼭 한 명

정말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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