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순간 2009/04/09 23:03

내가 돈 벌러 간 사이

 
                           우리들의 죽음 
 
                                                              - 정태춘
 
(낭송)맞벌이 영세 서민 부부가 방문을 잠그고 일을 나간 사이, 지
하셋방에서 불이나 방 안에서 놀던 어린 자녀들이 밖으로 나오지 못
하고 질식해 숨졌다.
불이 났을 때 아버지 권씨는 경기도 부천의 직장으로 어머니 이씨
는 합정동으로 파출부 일을 나가 있었으며, 아이들이 방 밖으로 나
가지 못하도록 방문을 밖에서 자물쇠로 잠그고, 바깥 현관문도 잠
가 둔 상태였다. 연락을 받은 이씨가 달려와 문을 열였을 때, 다섯
살 혜영양은 방 바닥에 엎드린 채, 세살 영철군은 옷더미 속에 코
를 붙은 채 숨져 있었다. 두 어린이가 숨진 방은 3평 크기로 바닥
에 흩어진 옷가지와 비키니 옷장 등 가구류가 타다만 성냥과 함께
불에 그을려 있었다.
이들 부부는 충남 계룡면 금대2리에서 논 900평에 농사를 짓다가 가
난에 못이겨 지난 88년 서울로 올라왔으며, 지난해 10월 현재의 지
하방을 전세 4백만원에 얻어 살아왔다. 어머니 이씨는 경찰에서 "평
소 파출부로 나가면서 부엌에는 부엌칼과 연탄불이 있어 위험스럽
고 밖으로 나가면 길을 잃거나 유괴라도 당할 것 같아 방문을 채울
수 밖에 없었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평소 이씨는 아이들이 먹을 점심상과 요강을 준비해 놓고 나가 일
해 왔다고 말했다. 이들이 사는 주택에는 모두 6개의 지하방이 있으
며, 각각 독립 구조로 돼 있다.

(노래)젊은 아버지는 새벽에 일 나가고
어머니도 돈 벌러 파출부 나가고
지하실 단칸방에 어린 우리 둘이서
아침 햇살 드는 높은 창문 아래 앉아
방문은 밖으로 자물쇠 잠겨있고 윗목에는 싸늘한 밥상과 요강이
엄마, 아빠가 돌아올 밤까지 우린 심심해도 할게 없었네
낮엔 테레비도 안 하고 우린 켤줄도 몰라
밤에 보는 테레비도 남의 나라 세상
엄마, 아빠는 한 번도 안 나와 우리 집도 우리 동네도 안 나와
조그만 창문의 햇볕도 스러지고 우린 종일 누워 천정만 바라보다
잠이 들다 깨다 꿈인지도 모르게 또 성냥불 장난을 했었어

배가 고프기도 전에 밥은 다 먹어치우고
오줌이 안 마려운데도 요강으로
우린 그런 것 밖엔 또 할 게 없었네 동생은 아직 말을 잘 못하니까
후미진 계단엔 누구 하나 찾아오지 않고 도둑이라도 강도라도 말야
옆방에는 누가 사는지도 몰라 어쩌면 거긴 낭떠러인지도 몰라

성냥불은 그만 내 옷에 옮겨 붙고 내 눈썹, 내 머리카락도 태우고
여기저기 옮겨 붙고 훨~ 훨~타올라 우리 놀란 가슴 두 눈에도 훨~훨
~
(엄마, 아빠! 우리가 그렇게 놀랐을 때
엄마, 아빠가 우리와 함께 거기 있었다면...)
방문은 꼭 꼭 잠겨서 안 열리고 하얀 연기는 방 안에 꽉 차고
우린 서로 부퉁켜 안고 눈물만 흘렸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

(낭송) 우리 그렇게 죽었어
그 때 엄마 아빠가 거기 함께 있었다면..
아니, 엄마만이라도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 우리가 방 안의 연기와 불길 속에서 부둥켜 안고 떨기전에
엄마, 아빠가 보고싶어 방문을 세차게 두드리기 전에
손톱에서 피가 나게 방 바닥을 긁어대기 전에
그러다가 동생이 먼저 숨이 막혀 어푸러지기 전에
그 때 엄마, 아빠가 거기에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야, 우리가 어느 날 도망치듯 빠져나온 시골의 고향 마을에서도
우리 네 식구 단란하게 살아 갈 수만 있었다면..
아니, 여기가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축복을 내리는 그런 나라였다면...
아니, 여기가 엄마, 아빠도 주인인 그런 세상이었다면..
엄마, 아빠! 너무 슬퍼하지마
이건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냐
여기, 불에 그을린 옷자락의 작은 몸둥이, 몸둥이를 두고 떠나지만
엄마, 아빠! 우린 이제 천사가 되어 하늘 나라로 가는 거야
그런데 그 천사들은 이렇게 슬픈 세상에는 다시 내려 올 수가 없어
언젠가 우린 다시 하늘나라에서 만나겠지
엄마, 아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배운 가장 예쁜 말로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이제, 안녕...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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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아팠다.. 이른 아침 분주하게 출근해서 일을 시작하는 동안, 혼자서 학교갈 준비를 하던 아이는 머리와 배가 아파왔고 마침내 아침으로 먹은 죽을 고스란히 토했다. 울먹이는 아이의 목소리에도 이미 시외 밖에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저 얼른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말하고 보건실에 누워있으라는 것 뿐.  그러나 알았다며 전화를 끊는 아이의 목소리에는 원망이 가득 담겨 있었다. 조용히 밀려드는 무기력함 -  얼마 후 상태를 알고 싶어 학교 보건실로 전화해봤지만 아픈 아이만 눕혀둔 채 보건교사는 내내 자리에 없었다. 결국 시간여유가 있는 친구에게 병원으로 데려가 줄 것을 부탁했고 다행히 두통 외에는 상태가 호전되어 집에서 쉬게 됐다. 물론 혼자서 말이다.
 
비극적인 노랫말에 눈물 흘리며, 그러나 내가 아이를 키울 때쯤이면 설마 이런 일은 없겠지, 안일하게 생각했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인가. 나는 알 수 없었다. 불과 십수년 후에 내 현실로 닥쳐올 것을. 지금의 모습을 그때는 상상하지 못했다. 이런 인간의 무지몽매함이 현실보다 비참한 미래를 빚어내는 거겠지. 막연한 환상 따위, 가차없이 버려야 하는 걸. 
 
퇴근후에 돌아와보니 아이의 상태는 좋아져 있었다. 다행이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 있지만 한켠에 접어둔다. 우리 둘다 현실을 인정하고 극복하면서 함께 성장해가야 한다. 아이는 아이라서 힘들겠지만 그 또한 어떤 식으로든 감당해야 하리라. 하지만 슬픈 일이다. 아이가 아플 때 당장 병원에 데려갈 수 있는 부모가 과연 얼마나 될까? 절박한 상황이었다면 직장이고 뭐고 포기해야 가능했을 것이다. 엄마 아빠 또는 양육자가 직장에 가 있는 동안 우리의 아이들은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 걸까? 우리 아이는?? 현실도 대안도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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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9 23:03 2009/04/09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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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thesunis 2009/06/13 16:18 ADDR EDIT/DEL REPLY

    제목은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정태춘의 음성으로 저 노래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가난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는, 그래서 미안하고 서글픈 노래였는데...
    아이가 자라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사정은 다르지만 제각각 불안한 미래와 맞닥드리고 살잖아요? 힘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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