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순간 2009/01/07 01:14

서투른 배우

서투른 배우

                                             -  최영미

술 마시고
내게 등을 보인 남자.
취기를 토해내는 연민에서 끝내야 했는데,
봄날이 길어지며 희망이 피어오르고

연인이었던 우리는
궤도를 이탈한 떠돌이별.
엉키고 풀어졌다,
예고된 폭풍이 지나가고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너와 나를 잇는 줄이 끊겼다
얼어붙은 원룸에서 햄버거와 입 맞추며
나는 무너졌다 아스라이 멀어지며
나는 너의 별자리에서 사라졌지
우리 영혼의 지도 위에 그려진 슬픈 궤적.

무모한 비행으로 스스로를 탕진하고
해발 2만 미터의 상공에서 눈을 가린 채
나는 폭발했다
흔들리는 가면 뒤에서만
우는 삐에로.

추억의 줄기에서 잘려나간 가지들이 부활해
야구경기를 보며, 글자판을 두드린다.
너는 이미 나의 별자리에서 사라졌지만
지금 너의 밤은 다른 별이 밝히겠지만…

<출처> 최영미, 『문학사상』, 2009년 1월호(통권 4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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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지우고 싶다

유치한 농담처럼 가볍게

가끔은 그렇게

당신 이름조차 지우고 싶었다

알 수 없을 만큼

내 속 깊이 박혀 있는 당신,

당신을 도려내기 위해

쉴새없이 자신을 파헤치며

희망따위 잊어버렸다

그토록 피흘리며

한해, 두해, 세번째 해가 지난 후,

여전히 살아 있는 당신의 기억

그러나 나도 살아 남았다

남은 건 피곤함과 뻔뻔함,

젠장 그냥 이렇게 살지 뭐

혹 하나 달고 사는 셈

모른 척 시치미 떼버리지

그렇게 살자

자유로운 척,

두려움 없이 맞이하는

내 2009년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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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7 01:14 2009/01/07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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