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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일!

하루종일 전화를 돌렸다.

네팔로 방글라데시로 한국으로.

 

동지들의 의견을 묻고,

다른이의 의견을 전달하고,

앞으로의 논의를 준비하면서

함께 무언가를 준비하는 순간의 부푼기대

반질반질 생기가 돌았던 활동가로 잠시 돌아간 느낌^^;

 

우리는 6월에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한 때 우린,

피곤에 지친 몸으로도 밤을 세우며 투쟁계획을 짰었고

명동 한복판 텐트 밑에서 오손도손 왁자지껄 그렇게 사계절을 보냈었고

외국인 보호소 플라스틱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손을 마주 댔었지.

쫓겨날 일이 없었던 나에게 늘 떠남을 마주해야 하는 건

떠나는 자의 그것과는 또 다른 상실감이었다.

동지도, 친구도 하나둘 떠난 자리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뻘쭘함 

그래도 꾸역꾸역 희망을 강요해야 했던 시간들.

 

그 자체로 유목적 존재를 생산해 내는 이주의 과정은

자본과 정치가 만들어낸 집단적 정체성,

그 허구의 정체성으로  이주자들을 외각으로 소외시킨다.

한국에선 외국인으로

본국에선 이주자로.

어디든 보낸 시간만큼 낯익어도 좋을 그곳이건만

어디든 낯선 곳이 된다는 건

부유하는 주체들에게 무수한 고통의 시간이었다는 걸

난 전해 들었다.

 

끝까지 같이하자던, 

우리는 하나라는,

한 때 가슴으로 외쳐됐던 구호는

집단적 투쟁에서 멀어지는 순간

그저 습관적인 혹은 거짓인 단어가 되어버림을

추방된 동지들은 누누히 말해왔었다.

어쩐지 나는 원래부터 그런 종류의 구호가 싫었었다.

 

지지직 거리는 스카이프의 통화음질을 탓하기도 뭣한

저 멀리 있는 그/녀와의 거리

뭘 같이 할 수 있을까?

주절주절 말해보고

끄적끄적 써봤지만

뿔뿔이 흩어진 한 때의 동거인들이

연결된다는 것

그것이 6월 만남의 목적이 아닐까?

 

힘들어도 빛났던 시간들을 함께 나누고

지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서 와장창 웃어 재끼고

현재의 삶을 공유하는 것

그리고 더 욕심을 내서

'그들'이 의도한 소외가 만들어 낸,

그 경험이 연결해준 우리의 고리를

다시 되찾는 것.

 

한 시기를 함께 싸웠던,

그 싸움으로 인해 쫓겨나고 흩어진 사람들이

이제는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움직이고 저항하고 있는데

보이지 않는 지하수 처럼 서로 연결된다는 것.

그것도 그들이 굳건히 지키려는 국경을 넘어서.

 

멋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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