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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번쩍

얼마 전 우연히 도서관에서 외국 저널에 실린 한국의 이주운동에 대한 글을 발견하고

그 날 하루종일 기분이 참 좋았었다.

 

처음 제목만 보았을 땐, 

뭐 또 누가 대강 쓴  그저 그런 글이려니함서 훑어보고 있었는데,

아니 이게 왠일이야?

평등노조 이주지부가 나오고, 이주노조가 나오고,

바라보는 관점도 어찌나 맘에 들던지,

참고문헌에는 노힘, 현장에서 미래를, 진보평론 등등,,, 게다가 내가 쓴 글도 참고 문헌에.

한국에선 눈 씻고 찾아봐도 그런 글을 쓸 '학자'는 없는데,

난 넘 깜짝 놀라서 글 쓴 이를 다시 확인하니까

놀랍게도 내가 다니는 학교의 강사였다.

 

와!

너무 신기하고 기쁜 나머지

이런저런 일들로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그에게 글 잘 읽었다는 간단한 이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이번 주 금요일에 만났는데....

 

참 재밌었다.

 

그의 박사논문 연구 주제는 민주노총이었고,

한국의 이주운동에 대해서도

참 잘 알고 있었고

같이 차를 마시는 한시간 동안

그와 내가 알고 있는 이주운동과 연관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깊이 공감하며 나눌 수 있었다.

물론 영국인인 그에게 내가 전달할 수 있는 언어는 섬세할 수 없었지만

이미 그가 갖고 있는 배경 지식으로 잘 전달되는 것이

뭔가 속이 후련한 느낌 이랄까?

 

그의 말에 따르면

한국의 학자들이 쓴 이주에 대한 글들은 너무 지루하고 뻔하다는.

여기엔 물론 유일한 이주 연구자인 모 교수에 대한 평가가 빠지지 않았다.

맞다고, 맞다고,

그게 문제라고.

한참 고개를 끄덕이고 속 시원한 이야기를 하고 나서는

왜 한국의 학자 혹은 활동가들은 그와 같은 시선의 글을 좀처럼 잘 쓰지 못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이건  '우리나라 사람'이 써야 한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로

어떤 정치적, 인간적 지형에도 영향받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 그의 시선이 참 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정작 이전에 내가 글을 쓸 때도

외노협과 이주인권연대 그리고 민주노총과 이주노조와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들어서 

더 명확해야 했을 평가들을 뭉뚱그렸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행여 이주노조에 해가 될까 하는 두려움,

늘 희생 정신 강하고 착한 일 하는 사람들로 칭송되어 온 이주센터 활동가들이 보여준 

비판에 대한 과민 반응과 이어서 반드시 불거질게 뻔한 감정적인 논쟁에 대한 두려움,

아는 얼굴들의 활동을 신랄하게 평가하는 것에 대한 주저함.

등등.

 

균형을 염두에 둔 시선이나 잣대란

얼마나 둔한 것인가

관계의 두려움이 갖고 온 주저함이란

어떤 입장도 없음과 무엇이 다른 것인가

활동의 경험과 나이가 갖고 왔다고 믿었던 유연함이

시선조차 잠식했던 것은 아닌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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