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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아침에 눈을 떠 창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얼마 전 오빠가 갖고 온 묵은 김치에 밥을 먹고

학교에 가는 늦은 오전

간만에 한가롭다.

 

오래만에 도서관에 앉아 있으니

오늘 따라 왠일로 글이 쏙쏙 들어오는고나.

우연히 만난 쥬군은

앞자리에 앉아 책을 보고

가끔 마주치는 눈빛이 익숙하다.

 

소곤소곤 밥먹자,

하며 나선 길에서 만난 바네사는

우리집 아랫방 친구의 데쉬에 고민을 털어 놓는다.

아랫방 친구는 바네사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바네사는 나와 쥬군을 우리집에서 있을 저녁 식사에 초대하는

이상 야릇한 약속이 만들어지고

부침개를 해먹을지, 봉골레를 해 먹을지 잡담을 하다보니

오후 두시.

 

급하게 체육관으로 가니

이미 선수복으로 갈아입은 친구들이

베드민턴 라켓을 들고 기다린다.

발랄한 여고생 같은 환호성을 지르며

플레이에 임하는 친구들과 한 판 뛰고,

바람 살살 부는 잔디밭에 앉아 한 잔 하니

알딸딸한 기분이 좋다.

 

이주미와 한국어 공부 일정을 짜면서

가까운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살짝 하다보니

확정된 것이 하나도 없고나, 나의 미래는.

에고.

 

집에갈까 말까 망설이다

다시 도서관에 들어가니

휑하게 비어있는 서고 한구석

창 밖에선 풀이파리들이 일렁이고

벽에 기대고 앉아 몇 자 읽다보니

저녁 시간이다.

 

버스정류장에서 우연히 만난 아랫방 친구,

서로의 하루를 이야기하고

대형 마켓에 가서 장을 보고

땅콩을 까먹으며 집에 오는 내내

바네사 이야기를 물을까 말까 고민만. 흐흐

 

집에 들어오니

온 집안이 이상한 냄새로 뒤숭숭하다.

냉장고 속 묵은 김치가 걱정이 된 나는

이리저리 킁킁 거려 보지만 이건 아닌데 갸우뚱,

일주일 넘게 냉장고에 넣어둔 통닭의 시신을 수습하는 아랫방 친구,

부패한 통닭이 원인이란다.

정말 정신이 없는 모양이다, 요즘.

 

해물 미역국에 볶음밥, 아빠가 갖고 온 참외 짠지를 먹고 나니

백만년만에 뛴 베드민턴 플레이의 압박이 온 몸으로 전해진다.

오늘은 빨리 씻고 자야지,

오늘 아침 한국에서 막 도착한

쫀득쫀득 찰떡 파이를 먹으니

입에 착착 달라 붙는 그 맛.

하루의 마무리!

 

오래간만에 여유로운 하루다.

이럴 땐,

학생 만큼 팔자 좋은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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