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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

이렇게 지내면 안된다고

마음을 굳게 다 잡아

일일 계획표를 짜서 방에 떡하니 붙여놓은지 몇 시간 후

늘어지는 몸을 반 강제로 설득해서

계획표대로 오전에 학교에 갔더니

방학이라 토요일엔 도서관이 쉰단다.

어째 캠퍼스에 갈매기들만 가득하다 했지 머야.

 

허탈한 심정으로

걷고 걷고 또 걷고

이곳은 살살 걸어다니기에 얼마나 좋은 곳인지 알아?

이층 버스타고 바깥구경 하는 것 만으로도 좋은 관광이라던 아빠 이야기처럼

창 밖 풍경의 절반은 나무들이고 절반은 하늘이야.

들꽃 가득한 언덕에 배깔고 누워 뒹굴어도 좋지.

나이먹어 듬직한 나무 밑 벤치에 앉으면 바로 그림나와.

날씨는 또 어떤지 알아?

춥지도 덥지도 않은 것이

저 쪽 북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들이키면 정말 프레쉬하다고.

투명한 햇살에 맑은 공기란 바로 이런 것 아니겠어?

근데 하나도 안 즐겁다.

어쩌면 좋지

카투만두에선 녹물 나오는 호텔이 싫어서 인 줄 알았어

지천에 널려있는 쓰레기랑 까마귀들이랑 내 옷을 부여잡는 길가의 아이들이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빵빵빵 크락션 소리들이

풀풀 날리는 먼지에 금새 까매지는 손톱밑의 때가

그게 싫어서인줄 알았는데

근데 그것도 아니잖아.

 

문득 생각했어.

지금 이렇게 혼자 있는 건 너무 가혹하다고.

혼자가는 여행이 미치도록 자유로왔던 건

혼자사는 생활이 폴짝 뛸 만큼 신나고 즐거웠던 건

어딘가 내가 머물 집이 있었기 때문이잖아.

삼치구이에 된장찌개 해놓고 기다리던,

잠자는 내 얼굴 한 번 더 보겠다고 한 밤중에 방문을 빼꼼히 열던,

여기가 원래 네 집이야, 라며 출렁이는 배를 가리키면서 웃던,

그 배에 얼굴 파묻어 깊이 위안 받던.

내 집.

이젠 세상 어디에도 집이 없다고

그걸 또 최근에 깨달았지 머야.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잊혀진다고, 나아질 거라고

누가 그랬어

어떻게 그래

세상이 달라졌는데

내 삶의 일부가 사라졌는데

어떻게 그래

순간순간 떠오르는

수 많은 기억의 파편들이

어떻게 사라지겠어

시간이 지날 수록

그 부재감은 하나하나 현실로 나타나는데

잊혀진다고

아니야

깊어지는 거겠지.

 

어느 순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져 버렸어.

아니 혼자있는 시간에 떠오르는 기억들을 감당하는게 두려워설지도 몰라.

잠시라도 사람이 옆에 없으면

견딜수가 없어.

옆방 친구의 방문닫는 소리에도 위안을 받는

이 상태는

언제까지 가게 될지.

 

그래서 카투만두 갈 땐 생각했어.

인정어린 어떤 집에 손님으로 머물면서

책을 보고, 길을 걷고,시장에 가고

밥 때가 되면 그 집에서 차려주는 소박한 밥을 먹고

환하게 웃어주는 집주인한테 나도 웃어주고

그 집 꼬마들이랑 장난도 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그럼 잠시 허전함이 매워질까 했었거든.

 

그런데, 그런데 말야,

사람들이 다들 바쁘고 힘든 것 같았어.

난 어디서든 잠시 머물고 싶었는데...

게다가 누군가 나에게 힘들다고 자기 얘기를 시작하면

막 짜증이 나기 시작하는 거야.

손을 잡아줄 힘도, 하다못해 고개를 끄덕일 힘도 없는데

나한테 이야기를 쏟아내는 게 싫어서 말야.

어떻게 지내냐고 나한텐 묻지도 않고,

어련히 잘 지낸다고 생각하는 게

너무 가혹한 것 같아서 눈물이 났었어.

그래서 좀 아펐지.

 

그리고 여기와선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지는 거야.

그래서 지금도 또 밥 먹었잖아

새벽 3시에.

 

이제 나 어떻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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