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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

유독  예민하고 신경질적이었던 십대의 나는

집에선 도통 말이 없는 아이였고

생계를 위한 일과 사회활동에 항상 시간에 쫒기던 엄마는

틈나는 대로 내 일기장을 통해 나를 이해하려고 했었다.

일기장에 살짝 붙여둔 종이테이프가 찢겨져있으면

엄마가 왔다갔음을 난 알 수 있었다.

 

우리 집에는 내 일기장 이외에도 많은 일기장이 있었다.

오빠의 일기장, 엄마의 일기장, 아빠의 일기장.

방 마다 꽂혀있는 일기장들은 언제든 펼쳐볼 수 있었고

그것은 또 다른 소통의 공간이었다.

 

남자친구는 대학가서 실컫 사귀라는 엄마의 말 한마디에

며칠 후 내 일기장은 당시 유행하던 청소년 드라마 속 연애하는 십대들과 개방적인 부모들의 묘사로 가득채워졌다.

오빠의 대학 생활과 고민은 여린 내 십대의 감수성에 수 많은 상상을 불러 일으켰다.

엄마가 남긴 수십권의 일기장 속에는 나에 대한 그녀의 일상적 사랑, 그 깊은 애정들이 지금껏 내 가슴을 적셔 놓고 있다.

간간히 쓰다 말다 한 아빠의 일기는 노년의 일상과 삶의 허무함이 짙게 베어 나온다.

 

나의 일기 쓰기는 언제부턴가 중단되었다.

아마도 컴퓨터가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던 90년대 중반쯤이 아니었을까?

아님 더 이상 하루하루를 반성하고 성실한 계획으로 내일을 결심하지 않게 된 때, 일기 보다는 술자리에서 쏟아지는 이야기, 애인과의 인텐시브한 토킹에 목을 매던 시절 부터였던 것도 같다.

 

그러다, 그러다 어느 날

이 블로그가 내 일기장 비스무래한 무엇이 되었다.

가족들을 특히 엄마를 의식하면서 썼던 어린시절의 일기는 이제는 오픈된 공간에서 알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의식한 일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조금은 공적인 듯 한 내용이지만, 사실 나는 내가 얼마나 아픈지를 징징거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그리고 조금은 불편해졌다.

난 왜 이렇게 불특정 다수를 향해 징징거리고 있는가

무엇을 그렇게 이해받고 싶어 안달하는가

 

오픈된 사적인 공간, 블로그

새 단장을 하던지 이사를 가던지 방법을 찾아야겠다.

쪽팔려서 더이상은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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