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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와 나> 나의 옛이야기이기도 한...

 

우리집 막내가 태어난 것이 내가 국민학교 1학년 때. 1학년의 거의 마친 겨울의 어느날이었다. 그리고 그 막내는 이후 나의 책임이 되었다. 원래부터 몸이 약하셨던 어머니께서 요양 겸 치료를 받으셔야 했던데다, 조금 건강이 나아지고서는 일하러 다니시느라 막내를 돌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시골에서 몸조리하고 오셨을 때 막내가 무섭다며 가까이 가지도 않았던 경우마저 있었다.

막내 분유를 타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업어주고, 놀아주느라 국민학교 3년까지의 시간은 정말 빨리도 갔다. 학교에서 갔다오면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어두컴컴한 단칸방에 앉아 막내가 어디 다치기라도 할까 걱정하며 보살피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책을 읽으며 문지방을 넘어 부엌에라도 구르지 않을까, 어디서 넘어지거나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하루를 보내곤 했다. 나는 맏오빠였으니까.



그때의 감정이란 쉽게 설명할 수 없다. 동생에 대한 사랑스러움과 함께 나를 구속하는 동생에 대한 미움이 있었다. 동생에 대한 책임감과 더물어 동생을 버리고 나가 놀고 싶은 도피의 욕구도 있었다. 차라리 이 녀석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고, 그러면서도 껴안으면 따뜻하고 보드라운 그 몸이 정말 좋았다. 오빠라며 졸졸 쫓아오는 귀여운 강아지같은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왠지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아직 어렸던 내게는 버거웠던 감정들이었다.

더 끔찍한 것은 이모들이 내 동생을 기점으로 줄줄이 매년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다. 내 동생 한 살 아래서부터 네 명이 한 살 터울로 태어났다. 뭐 이모네 집에 있을 때야 나와는 상관없다. 문제는 이모들이 서울로 올라올 경우. 당시 외할머니를 모시고 살던 터라 이모들이 서울로 자주 올라오게 되었는데 그때면 나의 지옥은 시작된다. 이제 좀 자라 마음이 놓이던 막내 아래로 아직 어리던 줄줄이 꼬맹이들은 나 혼자 책임지고 보살피려면 그건 차라리 지옥이다. 오죽하면 지금도 그 녀석들은 나를 보면 "무서운 형아"로 기억한다. 감당하지 못한 짐에 치여 그 아이들에게 꽤나 상처를 주었던 모양이다. 

지금도 나는 누군가를 책임지는 일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누군가를 배려하고 보살피라고 하면 일단 도망부터 치고 본다. 아마도 그 때의 너무 무거웠던 책임들이 일찌감치 나를 지치게 만든 모양이다. 누군가를 책임지고 보살핀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가를 너무 어려서 깨달은 탓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아직도 아이들이 모여있는 곳에 가면 머리가 아파오고 유난히 피곤해지는 것은. 아이들과 어울리는 자체도 공포로 여기는 것은 그 지옥과도 같은 어린시절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아기와 나를 읽으면서 내가 느낀 감정은 아련한 추억과 함께 주인공 "진"이에 대한 동정이었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부모를 대신해서 부모의 역할을 대신해야 했던, 아직 부모가 되기에는 너무 어린 시절이 있었는데. 그 시절을 떠올리며 진이에게 나를 일치시킨다. 신이에게 막내를 일치시킨다. 그리고 그 시절로 돌아간다. 역시 추억은 좋은 모양이다. 그래도 좋은 기억이 더 많이 더오르는 것을 보니.

아기와 나에서 진이는 동생 신이를 보육원에 맡긴다. 진이 말고 철수와 장수도 동생들을 보육원에 맡기고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을 찾아온다. 하지만 그 때 우리 동네에는 보육원이 없었다. 아니 있었다 하더라도 사설 보육원에 아이들을 맡길만한 돈은 없었을 것이다. 가난한, 너무 가난해서 가난조차 일상이 되어버린 그런 동네였으니까. 내가 동생을 떠맡아야 했던 것도 그 가난 때문이었으니까.

1980년대 초반 그때를 살았던 많은 집들이 그랬다. 아마 지금도 많은 집들이 그럴 것이다. 부모는 한 푼이라도 돈을 벌기 위해 모두 일을 나가고 아이들만 집을 지켜야 했고, 또 지금도 지키고 있다. 살아가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아이들은 스스로를 책임져야 했고 부모 대신 동생들을 보살펴야 했다. 그런 집에서 유아원이 있다 해서 맡길 돈인들 있었을까? 결국 나이 많은 아이가 소년소녀가장 아닌 가장이 되어 동생들을 책임지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그렇게 크게 달라지지 않은 우리네 가난한 이웃들의 일상이다.

그러나 그때 우리에게는 동네가 있었다. 옆집 아줌마, 끝방 아줌마, 저기 파란대문집 아줌마, 도사견집 아줌마 등등... 수많은 동네 아줌마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그 모든 아줌마들의 공동의 아이들이었다. 그 아줌마들로 인해 동네는 하나의 커다란 보육원이 되었다. 학교에 가면서 옆집 아줌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그 아이가 동네를 돌아다니며 노는 내내 다른 아줌마들이 그 아이를 살피고 보호한다. 아이가 어디로 갔는지, 아이가 어디에서 다쳤는지, 누구와 싸우고, 누구와 친한 지 아르고스의 눈과도 같은 아줌마들의 눈에 의해 감시되어진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 험한 동네에서도 안전하게 자라날 수 있었다.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집안에 가두어 두어 문제가 되었다는 뉴스를 보면 가슴이 아프다. 쓰레기통같은 방안에 과자 몇 개와 함께 아이들을 방치해두었다는 부모를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우리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우리 때는 그렇게 아이들을 방치해둘 새가 없었는데. 방치하고 싶어도 방치할 수 없을 정도로 극성스런 동네 사람들이 아이들의 보모가 되어주어 그렇게 외롭고 슬프게 자라지 않아도 되었는데. 흙투성이 상처투성이일망정 최소한 그곳에서 아이들은 즐겁고 자유로울 수 있었는데. 

재개발로 파괴되어지는 수많은 동네를 보고 있으면 힘겹고 가난한 사람들을 감싸주던 가장 든든한 보호막이 사라진 듯한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져온다. 그로 인해 멀리 흩어지는 동네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마지막 의지처조차 파괴된 사람들의 슬픔이 먹먹하니 가슴을 매어온다. 서로를 감싸고 서로를 위로하던 그 끈끈한 인정이 자본에 의해 해체되어가고 있음에 울컥 가슴 저 밑에서 뜨거운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그 기억. 그 가난하던 시절의 사라진 기억들이 부숴진 건물의 잔해 속에 처절하게 투쟁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투영되어 그 분노는 더욱 뜨겁게 젖어온다. 이 땅의 민중들은 왜 이리 슬픈 것일까? 그 작고 하찮은 공동체조차도 스스로를 위해 지키지 못할 정도로 왜 이리 무력하고 슬픈 것일까?  

그렇게 모든 것을 부숴놓은 위에 제대로 된 보육시설이라도 지어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차라리 그렇게라도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럽처럼 국영 보육시설을 갖추자고까지 주장하지는 않는다. 최소한 일본과 같은 수준의 사설보육원이라도 충분히 확보되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그조차도 현실에선 꿈에 불과하다. 

시설은 부족하고, 있는 시설조차도 제대로 관리가 되어지지 않고 있다. 정부의 관심과 지원은 미미하기 이를데 없어 그나마의 보육시설들마저도 운영자의 사익을 위해 이용되어지도록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해체된 공동체의 보육원 대신 주어진 아이를 기르기 위한 환경이라는 것은 고작 이 정도다. 이 나라의 자본이, 이 나라의 권력이 해놓은 일이라는 것은 고작 이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면서도 아이를 낳으라 떠들어대고 있다. 어이없고 한심할 뿐이다. 도대체 아이를 낳으면 누구더러 키우라는 것일까?

진이가 동생을 돌보게 된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셔서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으면서 진이는 본의아니게 어머니의 역할을 해야 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에는 부모가 있어도 부모의 역할을 대신하지 않으면 안되는 수많은 아이들이 존재한다. 어디 의지할 곳 없는 현실 속의 외롭고 고단한 아이들이다. 그 아이들이 만화의 환상 저편에 존재하는 우리의 현실이다. 언제쯤 그 아이들이 아무 걱정없이 아이로서의 일상을 누릴 수 있게 될까? 그 아득하기만 한 현실이 이 만화를 불편하게 만든다.

 

아기와 나는 진이와 신이의 성장 이야기다. 동시에 진이와 신이의 현실을 살아가는 이야기다. 진이와 신이 같은 수많은 아이들, 그와 같은 경험을 가진 수많은 성인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현실이며 현실이었던 이야기다. 과거이며 현재이고, 또한 미래일 지도 모르는 이야기들. 그래서 이 만화는 그냥 만화로만 읽히지 않는다. 그래서 감상을 쓰더라도 만화 감상문이 아닌 현실의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이 만화 자체가 현실이니까. 역시나 좋은 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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