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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한국을 대체 뭐로 아는 거냐?

1. 김윤진 - 극중 이름 <선> - 은 어쨌거나 "회장님" 소리를 듣는 사람의 딸로 나온다. 가든파티를 여는 장면이나 남편인 <진>과 아버지인 "회장" 사이의 관계를 보더라도 결코 범상한 신분은 아니다. 그러나 정작 그녀는 남편과 아버지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영어를 배우기 전까지는 영어를 하지 못한 것으로 나온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해 그녀 스스로 영어를 할 수 있음을 밝히기까지 남편인 <진>이 전혀 알아채지 못했을 정도로.

 

우리나라 재벌집안 교육이 그렇게 형편없었나? 하긴 <루루공주>를 보면 재벌집안 여자들은 덜떨어진 바보로 나오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그런 여자가 영어 하나 못할까? 최소한의 단어 정도는 알아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영어를 한다고 해서 <진>이 놀라거나 자존심 상해 해야 할 이유도 없고 말이다.

 

 

2. 더 압권인 것은 <선>의 남편이자 <선>의 아버지인 "회장님"의 보좌관까지 되는 남편 <진>이 영어를 전혀 못 한다는 것. 아주 간단한 단어조차 알아채지 못한다. 진짜 아주 간단한 생활영어조차 못한다. 뗏목을 타고 섬을 떠날 때 김윤진이 그를 위해 만들어 건네준 영어단어장을 보면 아마 무어라 말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 아주 간단한 단어를 일부러 단어장까지 만들어 건네주다니.

 

무엇보다 한국의 영어교육은 아주 지랄맞은 데가 있어서 중학교만 졸업하면 어느 정도 간단한 회화는 가능하다. 영어교육 어떻네 하고 난리를 피우지만 우리나라 중학교 영어 교과서 무척 잘 되어 있다. 최소한 영어시간에 졸지만 않았다면 아주 간단한 일상적인 대화 정도는 나눌 수 있다. 인사를 한다거나, 밥을 먹는다거나, 아니면 최소한 내가 지금 어떤 상황인가를 설명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더구나 <선>은 "회장님"의 딸이고, <진>은 그런 <선>의 남편이자 "회장님"의 사위이지 않은가 말이다.

 

 

3. <선>의 아버지가 경영하는 회사라는 것도 수상쩍기는 마찬가지다. 환경부 차관의 집에 총을 든 킬러를 보내지 않나, LA의 정체불명의 거래처에 심부름을 시키지 않나, 이건 무슨 기업의 회장이라기보다는 조폭의 보스와도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최소한 드라마상에 나온 모습으로 <선>의 아버지는 조폭의 보스가 아니다. 마치 80년대 홍콩느와르에서 일상적으로 나오던 비밀결사와 결탁한 기업가의 모습 그대로다.

 

 

4. 환경부 차관이라는 사람이 사는 집이 참 멋지다. 일본풍이지? 분명 일본풍이다. 어찌 보면 고증이 잘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한국의, 특히 엘리트라 불리우는 사람들 가운데 일본 마니아들이 많이 있으니까. 그 환경부 차관이라는 이도 일본 마니아였던 것일까? 사는 집을 온통 일본식으로 치장해 놓고 살 정도로?

 

 

5. "회장님"의 심부름을 온 사람에게 딸의 개를 빼앗아 선물하는 센스는 또 뭔가? 한 나라의 환경부 차관 쯤 되는 이가 아무렴 선물로 줄 게 없어 딸의 개를 뺏어서 선물로 주나? 우리나라 환경부 차관 월급이 그렇게 짠가? 아니 환경부 차관에게는 뒷줄로 들어가는 돈 없어? 무엇보다 기르던 개 받으면 뭐가 좋은가? 아무래도 수상쩍다. 거기서 왜 하필 개를 선물로 준 것일까? 그것도 기르던 개를. 북한에서 일부러 차로 개를 치어 당간부에게 뇌물로 바치곤 했다는 말이 떠오른 것은 왜일까?

 

 

6. 환경부 차관을 죽이라고 "회장님"이 보낸 킬러. 무려 총씩이나 들고 있다. 믿겨지는가? 총을 들고 있다. 총을 들고 행정부 관료를 죽이려 하고 있다. 어디 동남아시아나 남미의 거의 무법지대에 가까운 나라들을 연상한 모양이다. 마피아가 태연히 고위관료를 암살하고, 검찰이 오히려 범죄조직을 두려워하는 행정공백의 저개발국가를 생각하고 묘사한 것이 분명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최소한 길 가다 총 맞아 죽을 일 없는, 그랬다가는 환경부 차관이 아니더라도 큰 뉴스가 될 수 있는 나라라는 건 개념이 없는 모양이지?

 

 

7. <진>이 아내에게 죽었다고 거짓말 했던 아버지를 찾아가는 장면. 좋다. 어촌 풍경이라는 게 여러가지 있으니까 나무로 얼기설기 짜맞춘 선착장이라든가, 선착장에 아무렇게나 걸려 있는 물고기들은 그러려니 하겠다. 그런데 그 아버지 등 뒤로 둥실 떠다니는 돛단배는 무언가? 돛단배다. 분명 돛단배다. 돛도 단 배가 아니라 돛을 단 배다.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돛단배를 타고 물고기를 잡은 것이 언제였을까?

 

 

8. 한국 남자에 대한 표현도 아주 지랄이다. 아무렴 요즘 남자가 아내가 비키니 좀 입었다고 그렇게 난리치나? 한국 남자가 조금 - 아니 많이 가부장적이기는 해도 바닷가에서 비키니 입고 물에 뛰어드는 것 가지고 그렇게 지랄거리지는 않는다. 물론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30줄 안쪽에서는 그런 남자 그리 많지 않다. 더구나 한국 남자들은 체면을 무척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리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어도 집 밖에서 그렇게 노골적으로 말하고 행동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9. 김윤진의 캐릭터도 웃기기는 마찬가지다. 학원에서 영어를 배워야 했던 김윤진이 놀랍게도 식물의 전문가다. 정확히는 약용식물의 전문가. 도대체 어디서 배운 것일까? 한국인은 모두 허브의 전문가라 생각하는 것일까? 영어는 못해도 비전으로 전해받은 식물에 대한 전승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마치 일본 만화에서 "중국 3천년의 비전"이라는 말로 모든 것을 합리화시키는 것이 생각나 웃음부터 난다.

 

 

10. 내가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아주 안 본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엉망으로 묘사한 작품은 보다보다 처음이다. 일본식 집에, 돛단배가 떠다니는 어촌에, 총을 들고 관료를 죽이려는 킬러에, 한국에서도 시대착오적인 가부장적 남성에, 무엇보다 어떻게 "회장님"씩이나 되는 이의 딸과 사위가 영어 한 마디 하지 못하는가 말이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우습게 여겨졌으면 이따위로 묘사했을까?

 

새삼 세계에서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라는 말이 현실에 와 닿는다. 하다못해 한국이 어디에 붙어 있는 나라고, 한국에 대해 최소한의 경험이나 지식이라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었다면 이런 식의 어처구니 없는 묘사는 없었을 텐데. 아니 그보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미국인들에게 어떻게 인식되어지고 있는가 조금은 엿볼 수 있게 되어 입맛이 쓰다. 역시 미국에게 한국은 그렇게 우스운 것일까?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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