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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27
    쥬이쌍스 마지막 끼어들기
    깜깜

쥬이쌍스 마지막 끼어들기

 쥬이쌍스의 마지막 호인데 여차저차 끼어들었음.

 

거기서 어떻게 살아요?

주로 낯선 사람들과 알게 되는 자리에서 썩 부담스럽지 않고 적당한 화제거리를 찾는 데 사는 곳을 물어보는 것은 꽤 괜찮은 선택이다. 질문을 하는 사람도 질문을 받는 사람도 꽤 적당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이런 일반적 상황에서 살짝 비껴서 있다. “거기서 어떻게 살아요?”(그곳에는 주택가가 없을 것이라는 환상) “아 거기 옛날에 정말 불야성이었지”(대부분 아저씨들의 반응) “거기서 살면 얼마나 들어요? 거기 건희 사는 데 아닌가?”(우리 동네 근처에 이건희가 산다고는 하는데 물리적 거리만 가까울 뿐이고,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저소득층 밀집 구역이다) “거기 있으면 신기한 거 많이 보고 먹겠어요.” (이젠 별로 신기할 것도 없고 신기하고 좋은 걸 먹으려면 꽤 돈이 든다) “외국인들 많은 곳인데 무섭지 않아요?”(2년 동안 살면서 위협적인 외국인은 만나보지 못했다) 등등. 아마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거기서 어떻게 살아요?” 정도가 되겠다. 사실 남이 사는 동네를 두고 어떻게 사냐고 물어보는 것은 무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인류는 사막에서도 살고 심지어는 빙산 밑에서도 사는데 뭐 그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긴 하다.   

 

당신이 알고 있는 이태원은?

내가 살고 있는 곳의 행정적 지명은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이고, 일반적으로는 이태원으로 불리는 동네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태원에 가려있는, ‘이태원이라는 적당히 퇴색한 유흥가의 뒷골목에 자리한 가난뱅이 동네, 그곳이 내가 살고 있는 곳이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을 기준으로 이태원 뒷동네를 동선을 중심으로 보면 이렇다. 우선 어디를 나가려면 버스가 몇 다니질 않기 때문에 6호선 이태원역을 이용해야 하는데, 이 역까지 걸어가는 시간은 5~10분 정도가 걸린다. 그곳을 가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 길을 선택해야 하는데, 1) 게이 바가 밀집해 있어 게이 힐로도 불리는 골목을 지나거나, 2)미군들을 상대하던 이제는 퇴색한 작은 평수의 술집들(일명 후크 힐이란다)이 밀집해 있는 골목을 지나거나, 3)이슬람 중앙성원을 따라 형성된 무슬림들을 상대하거나 무슬림들이 경영하는 가게들을 지나야 한다. 주로 장을 보기 위해서는 이태원역 근처에서 가장 큰 마트인 코아마트를 이용하는데, 이 곳으로 가는 지름길은 주로 아프리카계 흑인들이 장사를 하고 느릿느릿 걸어다니는 게토를 지나쳐 가는 것이다. 이 골목에는 주로 터키인들이 운영하는 케밥집들이 몇몇 있고, 오래 전부터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감자탕, 순대국 집들이 모여 있다. 코아마트는 웬만한 대형 마트나 백화점보다 수입 식재료와 향신료, 양념, 과자들이 잘 갖춰져 있다.  이태원역 4번 출구에 자리한 이곳에서 미군부대가 있는 녹사평역 쪽으로 걸어갈수록 점차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자리한 이태원의 냄새가 짙어진다. 큰 옷 전문점과 양복점, 명품 모조품을 파는 쇼핑가를 지나 중간중간 과거 미군들을 상대했을 법한 펍과 레스토랑들이 있고, 최근 맛집들로 알려진 수제햄버거 가게들이 곳곳에 있다. 삼각지 방면으로 더 가면 한국 근대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듯 미군부대-국방부-전쟁기념관으로 이어지는 배치를 확인할 수  있다. 해밀턴 호텔 뒤쪽은 상대적으로 (한국인을 포함한) ‘유색인종들보다 백인들이 많이 보인다. 고급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게다. 한강진역 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백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노천 카페나 레스토랑이 있고, 삼성 그룹의 핵심 회사 중 하나인 제일기획 건물이 괴물처럼 솟아 있다. 거기서 더 내려가면 커다란 관광버스에서 내리는 일본인 혹은 중국인 관광객을 자주 마주칠 수 있다.  그곳을 지나 한강진역으로 내려가면 그 뒤쪽으로는 고급 주택들이 들어서 있고, 월간 미술 건물과 리움 미술관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뒤가 바로 남산이다.

다시 이슬람 중앙 성원 쪽으로 돌아와보자. 무슬림들의 가게들을 지나 이태원역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2-3분을 걸어가면 초등학교가 있고 그 초등학교 건너편에는 성당이 있으며, 초등학교를 바라보면 그 뒤에는 등대처럼 빛나는 모스크 건물을 확인할 수 있다. 초등학교 근처에 자리잡은 작은 분식집과 문방구들을 거치면 보광동이 등장하는데 이 동네는 서울에서도 꽤 오래된 서민층 동네고 슬슬 외국인들의 모습이 자취를 감춘다. 여기서 좀더 걸으면 한강이 나온다. 동네 탓인지 근처의 이촌과는 썩 차이가 나는 한강공원이 보이고 양쪽으론 한남대교와 반포대교가 보인다.

남산과 한강 사이, ‘관광특구’, 그로테스크할 정도로 으리으리한 신축 용산구청이 이전하는 곳, 트랜스젠더들이 호객을 하고 편의점에서 담배를 살 때도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는 곳, 한국 최고의 재벌들의 집이 있는 곳, 외국인이 많은 곳, 한국 이슬람 중앙 성원이 있는 곳, 게이들의 드라마가 시작되는 곳, 흑인들의 미용실이 있는 곳, 서울에서 집값이 아직은 저렴해 저소득층이 많이 사는 곳, 대사관이 밀집해 있는 곳, 서울에서 미군을 볼 수 있는 곳, ‘짝퉁장인들이 있는 곳, 고급 레스토랑이 많은 곳, 무슬림들의 단식기도 기간인 라마단이 끝나면 마치 크리스마스처럼 장식용 전구가 켜지는 곳,  이 모든  것이  우리 동네 얘기다.

 

무심함이 지탱하는 근대적공간

이 동네의 일상 생활의 모든 영역에 한국 사회의 근대화 역사와 한국 사회의 근대성이 압축되어 있다. 화룡점정인 것은 용산이 이제 서울에서 거의 마지막 남은 재개발 대상 지역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공간을 요즘 유행하는 모양새에 맞춰 다문화 공간이니 어쩌니 하는 움직임들이 있지만, 내가 살아본 이태원은 연구자들이 원하는 만큼 다양성이 공존하는 공간은 아니다. 물론 서울이라는 공간에 한정했을 때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근무하고 있는 구로 지역에 재중동포나 중국출신의 노동자들의 공간이 확장되고 있는 형태나, 화교들이 모여있는 인천, 명동과 이태원의 공간 구성은 매우 다르다. 이태원은 한국사회가 낯설어하는 모든 문화와 사람들이 한 데 모여 뒤섞여 있는 모양새와 비슷하다. 보통 사람보다 체격이 큰 사람들은 이태원에서 옷을 사고, 이슬람 신도들은 이곳에서 이슬람 율법에 따른 식재료를 사러 이태원에 오고 기도를 하기 위해 이태원에 온다. 거침없이 게이들은 서로에게 추파를 던지고(!), MTF 성전환자들은 과잉된성정체성을 길거리에서 거침없이 드러낸다. 한국 사회에 꺼리길마다하지 않는 아프리카계 흑인들은 자신들의 커뮤니티를 이곳에 형성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모든 이방인들은 모두 이태원에 모여있다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이태원이 작동하고 있는 방식을 보자면 마치 근대화 시기에 농촌에서 도시로 막 올라온 사람들이 느낄 법한 무심함익명성이 그 축에 있다는 느낌이다. 아주 좁은 공간에 작은 골목들이 있지만 각 골목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고정적이다. 본인이 필요한 골목만 이용할 뿐, 그 사이의 어떤 상호관계도 목격하기는 힘들다. 본래 한국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던 순대 골목에 점차 들어서는 아프리카계 흑인들이 한국인 상인들은 달갑지 않다. 아프리카계 흑인들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상점에 돈을 쓰지 않는다. 어리고 철없는 한국인 게이 청년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온 무슬림들이 이슬람 중앙성원 근처가 아닌 이태원역 근처에 보이자 뒤에서 무례하기 짝이 없는 욕지거리를 한다. 무슬림들은 자신들의 성원 이 자리한 동네에 게이들과 성전환자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면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지만 이태원에서는 이러한 잠재적 갈등이 외연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표출되지 않는다. 그 기반에는 서로의 무심함이 존재한다. 순진한 나는 어떤 이유로든 한국사회라는 상자 속에 맞지 않는 사람들끼리의 조금이나마의 연대의식 같은 것이 있지 않나 생각해봤지만 기대했던 이상향 따위는 없었다. 그렇다고 서로가 포비아에 기반해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는다. 이건 서로 친한 것도 아니고 갈등적이지도 않다. 아마도 이태원이 소비에 기반한 상업공간이고 이태원의 문화도 그에 맞춰 짜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쯤 되면 한 연구자(한양대 인류학과 송도영 교수)의 말대로 다문화 공간이 유지되고 작동되는 가장 중요한 기반은  무심함일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

이렇듯 이태원은 여러모로 참 근대적공간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한국의 근대 역사가 압축되어 있는 듯한 인상에서도, 마치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만국박람회장 같은 인상에서도, 도시 생활의 근간인 무심함이 지탱하고 있다는 인상에서도, 서울에서 거의 마지막 재개발 대상 구역이라는 것에서도, 소비가 동선을 규정하고 있다는 것에서도 말이다.

최근 이태원과 녹사평 사이에 으리으리한 마치 밤에 보면 괴물과도 같은 인상의 신축 용산구청 건물이 완공을 앞두고 있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거대 기업에서도 이태원 부근의 땅을 계속 사들이고 있다고 한다. 요새는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담론이 유행이긴 하지만, 조금은 천박해 보이고 조금은 난리법석인, 그리고 한국사회가 부끄러워하는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이 근대적 공간이 다시 한번 자본과 정치권력에 덮어져 버리는 것은 꽤 쓸쓸한 기분이 들게 한다. 마치 조선총독부를 그대로 폭파시켜버렸던 한국사회의 천박한 역사관을 재확인하는 기분이 들 뿐 아니라, 이제 이 복잡한 동네는 내가 정 붙이고 사는 동네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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