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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27
    쥬이쌍스 마지막 끼어들기
    깜깜
  2. 2009/12/09
    커트 보네것, 제5도살장의 몇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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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9/02/11
    비바! 레볼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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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9/02/11
    제로와 제로가 만나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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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9/02/11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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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9/02/11
    만화 그리기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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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이쌍스 마지막 끼어들기

 쥬이쌍스의 마지막 호인데 여차저차 끼어들었음.

 

거기서 어떻게 살아요?

주로 낯선 사람들과 알게 되는 자리에서 썩 부담스럽지 않고 적당한 화제거리를 찾는 데 사는 곳을 물어보는 것은 꽤 괜찮은 선택이다. 질문을 하는 사람도 질문을 받는 사람도 꽤 적당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이런 일반적 상황에서 살짝 비껴서 있다. “거기서 어떻게 살아요?”(그곳에는 주택가가 없을 것이라는 환상) “아 거기 옛날에 정말 불야성이었지”(대부분 아저씨들의 반응) “거기서 살면 얼마나 들어요? 거기 건희 사는 데 아닌가?”(우리 동네 근처에 이건희가 산다고는 하는데 물리적 거리만 가까울 뿐이고,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저소득층 밀집 구역이다) “거기 있으면 신기한 거 많이 보고 먹겠어요.” (이젠 별로 신기할 것도 없고 신기하고 좋은 걸 먹으려면 꽤 돈이 든다) “외국인들 많은 곳인데 무섭지 않아요?”(2년 동안 살면서 위협적인 외국인은 만나보지 못했다) 등등. 아마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거기서 어떻게 살아요?” 정도가 되겠다. 사실 남이 사는 동네를 두고 어떻게 사냐고 물어보는 것은 무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인류는 사막에서도 살고 심지어는 빙산 밑에서도 사는데 뭐 그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긴 하다.   

 

당신이 알고 있는 이태원은?

내가 살고 있는 곳의 행정적 지명은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이고, 일반적으로는 이태원으로 불리는 동네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태원에 가려있는, ‘이태원이라는 적당히 퇴색한 유흥가의 뒷골목에 자리한 가난뱅이 동네, 그곳이 내가 살고 있는 곳이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을 기준으로 이태원 뒷동네를 동선을 중심으로 보면 이렇다. 우선 어디를 나가려면 버스가 몇 다니질 않기 때문에 6호선 이태원역을 이용해야 하는데, 이 역까지 걸어가는 시간은 5~10분 정도가 걸린다. 그곳을 가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 길을 선택해야 하는데, 1) 게이 바가 밀집해 있어 게이 힐로도 불리는 골목을 지나거나, 2)미군들을 상대하던 이제는 퇴색한 작은 평수의 술집들(일명 후크 힐이란다)이 밀집해 있는 골목을 지나거나, 3)이슬람 중앙성원을 따라 형성된 무슬림들을 상대하거나 무슬림들이 경영하는 가게들을 지나야 한다. 주로 장을 보기 위해서는 이태원역 근처에서 가장 큰 마트인 코아마트를 이용하는데, 이 곳으로 가는 지름길은 주로 아프리카계 흑인들이 장사를 하고 느릿느릿 걸어다니는 게토를 지나쳐 가는 것이다. 이 골목에는 주로 터키인들이 운영하는 케밥집들이 몇몇 있고, 오래 전부터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감자탕, 순대국 집들이 모여 있다. 코아마트는 웬만한 대형 마트나 백화점보다 수입 식재료와 향신료, 양념, 과자들이 잘 갖춰져 있다.  이태원역 4번 출구에 자리한 이곳에서 미군부대가 있는 녹사평역 쪽으로 걸어갈수록 점차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자리한 이태원의 냄새가 짙어진다. 큰 옷 전문점과 양복점, 명품 모조품을 파는 쇼핑가를 지나 중간중간 과거 미군들을 상대했을 법한 펍과 레스토랑들이 있고, 최근 맛집들로 알려진 수제햄버거 가게들이 곳곳에 있다. 삼각지 방면으로 더 가면 한국 근대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듯 미군부대-국방부-전쟁기념관으로 이어지는 배치를 확인할 수  있다. 해밀턴 호텔 뒤쪽은 상대적으로 (한국인을 포함한) ‘유색인종들보다 백인들이 많이 보인다. 고급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게다. 한강진역 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백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노천 카페나 레스토랑이 있고, 삼성 그룹의 핵심 회사 중 하나인 제일기획 건물이 괴물처럼 솟아 있다. 거기서 더 내려가면 커다란 관광버스에서 내리는 일본인 혹은 중국인 관광객을 자주 마주칠 수 있다.  그곳을 지나 한강진역으로 내려가면 그 뒤쪽으로는 고급 주택들이 들어서 있고, 월간 미술 건물과 리움 미술관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뒤가 바로 남산이다.

다시 이슬람 중앙 성원 쪽으로 돌아와보자. 무슬림들의 가게들을 지나 이태원역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2-3분을 걸어가면 초등학교가 있고 그 초등학교 건너편에는 성당이 있으며, 초등학교를 바라보면 그 뒤에는 등대처럼 빛나는 모스크 건물을 확인할 수 있다. 초등학교 근처에 자리잡은 작은 분식집과 문방구들을 거치면 보광동이 등장하는데 이 동네는 서울에서도 꽤 오래된 서민층 동네고 슬슬 외국인들의 모습이 자취를 감춘다. 여기서 좀더 걸으면 한강이 나온다. 동네 탓인지 근처의 이촌과는 썩 차이가 나는 한강공원이 보이고 양쪽으론 한남대교와 반포대교가 보인다.

남산과 한강 사이, ‘관광특구’, 그로테스크할 정도로 으리으리한 신축 용산구청이 이전하는 곳, 트랜스젠더들이 호객을 하고 편의점에서 담배를 살 때도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는 곳, 한국 최고의 재벌들의 집이 있는 곳, 외국인이 많은 곳, 한국 이슬람 중앙 성원이 있는 곳, 게이들의 드라마가 시작되는 곳, 흑인들의 미용실이 있는 곳, 서울에서 집값이 아직은 저렴해 저소득층이 많이 사는 곳, 대사관이 밀집해 있는 곳, 서울에서 미군을 볼 수 있는 곳, ‘짝퉁장인들이 있는 곳, 고급 레스토랑이 많은 곳, 무슬림들의 단식기도 기간인 라마단이 끝나면 마치 크리스마스처럼 장식용 전구가 켜지는 곳,  이 모든  것이  우리 동네 얘기다.

 

무심함이 지탱하는 근대적공간

이 동네의 일상 생활의 모든 영역에 한국 사회의 근대화 역사와 한국 사회의 근대성이 압축되어 있다. 화룡점정인 것은 용산이 이제 서울에서 거의 마지막 남은 재개발 대상 지역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공간을 요즘 유행하는 모양새에 맞춰 다문화 공간이니 어쩌니 하는 움직임들이 있지만, 내가 살아본 이태원은 연구자들이 원하는 만큼 다양성이 공존하는 공간은 아니다. 물론 서울이라는 공간에 한정했을 때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근무하고 있는 구로 지역에 재중동포나 중국출신의 노동자들의 공간이 확장되고 있는 형태나, 화교들이 모여있는 인천, 명동과 이태원의 공간 구성은 매우 다르다. 이태원은 한국사회가 낯설어하는 모든 문화와 사람들이 한 데 모여 뒤섞여 있는 모양새와 비슷하다. 보통 사람보다 체격이 큰 사람들은 이태원에서 옷을 사고, 이슬람 신도들은 이곳에서 이슬람 율법에 따른 식재료를 사러 이태원에 오고 기도를 하기 위해 이태원에 온다. 거침없이 게이들은 서로에게 추파를 던지고(!), MTF 성전환자들은 과잉된성정체성을 길거리에서 거침없이 드러낸다. 한국 사회에 꺼리길마다하지 않는 아프리카계 흑인들은 자신들의 커뮤니티를 이곳에 형성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모든 이방인들은 모두 이태원에 모여있다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이태원이 작동하고 있는 방식을 보자면 마치 근대화 시기에 농촌에서 도시로 막 올라온 사람들이 느낄 법한 무심함익명성이 그 축에 있다는 느낌이다. 아주 좁은 공간에 작은 골목들이 있지만 각 골목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고정적이다. 본인이 필요한 골목만 이용할 뿐, 그 사이의 어떤 상호관계도 목격하기는 힘들다. 본래 한국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던 순대 골목에 점차 들어서는 아프리카계 흑인들이 한국인 상인들은 달갑지 않다. 아프리카계 흑인들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상점에 돈을 쓰지 않는다. 어리고 철없는 한국인 게이 청년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온 무슬림들이 이슬람 중앙성원 근처가 아닌 이태원역 근처에 보이자 뒤에서 무례하기 짝이 없는 욕지거리를 한다. 무슬림들은 자신들의 성원 이 자리한 동네에 게이들과 성전환자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면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지만 이태원에서는 이러한 잠재적 갈등이 외연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표출되지 않는다. 그 기반에는 서로의 무심함이 존재한다. 순진한 나는 어떤 이유로든 한국사회라는 상자 속에 맞지 않는 사람들끼리의 조금이나마의 연대의식 같은 것이 있지 않나 생각해봤지만 기대했던 이상향 따위는 없었다. 그렇다고 서로가 포비아에 기반해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는다. 이건 서로 친한 것도 아니고 갈등적이지도 않다. 아마도 이태원이 소비에 기반한 상업공간이고 이태원의 문화도 그에 맞춰 짜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쯤 되면 한 연구자(한양대 인류학과 송도영 교수)의 말대로 다문화 공간이 유지되고 작동되는 가장 중요한 기반은  무심함일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

이렇듯 이태원은 여러모로 참 근대적공간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한국의 근대 역사가 압축되어 있는 듯한 인상에서도, 마치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만국박람회장 같은 인상에서도, 도시 생활의 근간인 무심함이 지탱하고 있다는 인상에서도, 서울에서 거의 마지막 재개발 대상 구역이라는 것에서도, 소비가 동선을 규정하고 있다는 것에서도 말이다.

최근 이태원과 녹사평 사이에 으리으리한 마치 밤에 보면 괴물과도 같은 인상의 신축 용산구청 건물이 완공을 앞두고 있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거대 기업에서도 이태원 부근의 땅을 계속 사들이고 있다고 한다. 요새는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담론이 유행이긴 하지만, 조금은 천박해 보이고 조금은 난리법석인, 그리고 한국사회가 부끄러워하는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이 근대적 공간이 다시 한번 자본과 정치권력에 덮어져 버리는 것은 꽤 쓸쓸한 기분이 들게 한다. 마치 조선총독부를 그대로 폭파시켜버렸던 한국사회의 천박한 역사관을 재확인하는 기분이 들 뿐 아니라, 이제 이 복잡한 동네는 내가 정 붙이고 사는 동네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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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네것, 제5도살장의 몇 부분

 다시 읽은 커트 보네것의 <제5도살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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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즈워터는 그에게 말해 주었다. 그것은 킬고어 트라우트가 쓴 <외계에서 온 복음서>였다. 트랄파마도어인과 흡사하게 생긴 외계인 방문자에 관한 책이었다. 그 외계인 방문자는 기독교를 깊이 연구했다. 왜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쉽게 잔인해지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그는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신약의 어설픈 이야기 솜씨가 문제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복음서의 의도는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자비로워질 것을, 나아가 낮은 자들 가운데서도 가장 낮은 자가 되라고 가르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복음서들은 실은 이렇게 가르쳤다.

 

누구를 죽이기 전에, 그자에게 든든한 연줄이 없다는 것을 반드시 확인하라.

 

그렇게 가는거지.

 

 

*********

 

 

그리스도 이야기들이 안고 있는 결점은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가 실은 우주에서 가장 힘센 존재의 아이들이었다는 사실이라고 외계인 방문자는 말했다. 신약 독자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어서, 십자가형 대목에 이르면 당연히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며 로즈워터는 그 부분을 큰 소리로 다시 읽었다.

 

오, 이런- 그 시람들 이번에는 멋대로 죽일 상대를 잘못 골랐어!

 

그 말을 거꾸로 뒤집으면 이런 말이 되었다.

"멋대로 죽이기게 적당한 사람들이 있다."

누구인가? 든든한 연줄이 없는 사람들. 그렇게 가는 거지.

 

 

 

2.

 

시간에서 조금 해방되어, 심야 영화가 역방향으로 보이다가 다시 정방향으로 보였다. 그것은 2차 세계대전의 미군 폭격기들과 그것들을 모르는 씩씩한 사나이들이 등장하는 영화였다. 빌리가 역방향으로 보니, 이런 내용이었다.

곳곳에 구멍이 나고 부상자들과 시체를 가득 실은 미군 비행기들이 영국의 한 비행장에서 후진으로 이륙했다. 프랑스 상공에서 독일군 전투기 몇 대가 그들을 향해 거꾸로 날아왔고, 폭격기들과 승무원들로부터 탄알과 포탄 파편을 빨아들였다. 그들은 지상의 파괴된 미군 폭격기들로부터도 똑같은 행동을 했으며, 그 폭격기들은 후진으로 날아올라 편대에 합류했다.

편대는 화염에 휩싸인 어떤 독일 도시 위를 후진으로 날았다. 폭격기들은 폭탄 투하실의 문을 열었고, 기적 같은 자력을 일으켜 불길을 작게 만든 후 원통형 강철 용기들 속으로 거둬들였으며, 그 용기들을 폭격기의 뱃속으로 끌어올렸다. 강철 용기들은 깔끔하게 거치대에 장착되었다. 지상의 독일군도 기적을 일으키는 장치를 여럿 갖고 있었다. 그것은 길쭉한 강철 튜브였다. 그들은 그 장치를 이용해 폭격기들과 승무원들로부터 더 많은 파편들을 빨아들였다. 그러나 아직 부상당한 몇 사람이 있었고, 파손된 폭격기 몇 대가 있었다. 그런데 프랑스 상공에서 독일군 전투기들이 다시 올라오더니 모든 것들과 모든 사람을 새 것으로 완전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

 

폭격기들이 기지로 돌아갔을 때, 철강 원통들은 거치대에서 내려져 미합중국으로 반송되었고, 그곳 공장들은 밤낮 작업을 하여 원통들을 해체하고 위험한 내용물을 각각의 광물로 분리했다. 애처롭게도, 일하는 사람들은 주로 여성이었다. 그 광물들은 이제 멀리 떨어진 지역의 전문가들에게 보내졌다. 광물들을 지하로 보내 다시는 누구에게도 손상당하지 않도록 꼭꼭 숨기는 것이 그들의 일이었다.

미군 비행사들은 제복을 반납하고 고등학생이 되었다. 히틀러는 갓난아기로 돌아갔을 거라고 빌리 필그림은 추측했다. 그것은 영화에는 없는 장면이었다. 빌리가 기지의 사실로부터 미지의 사실을 추정한 것이었다. 모두가 다시 갓난아기로 돌아갔으며,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전인류가 생물학적으로 협력하여 아담과 이브라는 두 명의 완벽한 인간을 탄생시켰다고 그는 추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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냠, 평화. 짹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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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hing human is alien to me

I am a human.

Nothing human is alien to me.

 

세상의 절반만이라도 저렇다면.

 

부끄러워지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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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김혜리 기자

김혜리 기자가 인터뷰를 하니, 정성일도 귀여워 진다능! 킥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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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가 만난 사람-정성일 편 중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2007&article_id=57907

 

귀여운 정성일 씨

 

1.중학생 때 꼭 봐야 할 영화 500편의 리스트를 작성하셨다는데, 당시는 구할 수 있는 정보량도 미미했을 텐데 어떤 자료에 기대어 목록을 작성했나요?
 

=노트 한권 가득이었으니 500편 넘었을 거예요. 중학교 1학년 2학기에 명동의 외국 잡지 가게에서 일본의 <스크린>과 <에이가노토모>를 샀어요. 표지 보고 샀다가 답답해서 겨울방학 동안 한자와 가타가나를 조합해 독학으로 읽기 시작했죠. 팬진(fanzine, 스타의 팬을 타깃으로 한 영화잡지)이지만 일부 페이지는 전문적인 잡지여서 매월 누벨바그 베스트5, 고다르 베스트5 등 다양한 베스트5를 뽑는 코너가 있었어요. 일본 잡지를 통해 영화 정보를 구하기 시작한 거죠. 신기한 건, 노트에 영화 제목을 쓰고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염원하면 어떻게든 기적처럼 볼 기회가 생기는 거예요. 응답이 와요. 영화를 보면 하나씩 노트의 제목을 지워나가는 즐거움이 너무나 컸어요. 나중에 <데쓰노트>를 보면서 내 아이디어를 도둑맞은 게 아닐까 했다니까요. (폭소)

 

2.사회적 상황이 엄혹한 80년대 초였으니 대학생이 영화에 열정을 쏟는다는 사실에 대해 죄의식이나 부채의식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스스로 갈등을 중재했습니까?
=영화는 친구들이 볼 때는 역겨운 취미였고 한심한 여가생활이었죠. 정치적이지 않아서만이 아니라 문학이나 음악을 취미로 삼는 것보다 저급하게 여겨졌어요. 그러나 저는 영화를 그냥 운명 같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를테면 하루는 종로서적에 갔는데 저 멀리서 <고다르 전집>이 ‘줌 인’으로 눈에 들어오는 거예요. 헉 해서 달려갔더니… <타고르 전집>이었어요. (좌중 폭소) 군대에서 제 첫사랑에게 받은 이별 통보의 마지막 구절은 “성일씨는 제가 아니어도 영화를 사랑하면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많이 행복하세요”였어요.

 

 

3.<키노>는 부정적으로 본 영화에 대해선 자세히 비판하기보다 침묵하는 편이었습니다. 그건 좋은 것에 대해 말할 시간과 지면도 부족하다고 판단해서였나요?
=나쁜 영화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내 생각이 망가지기 시작한다는 두려움이 있어요. 제 경험상 나쁜 영화에 대해 비판적 글을 쓰고 나면 재활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웃음) 정말 좋은 영화를 일주일 정도 봐줘야 해요. 영화를 참 잘 보던 좋은 필자가, 어느 날 나쁜 영화에 대한 비판적 글을 논쟁적으로 쓰기 시작하고 그 글들이 환호와 관심을 모음에 따라 그도 더욱 그런 글을 찾아 쓰고, 그러다 좋은 영화에 대해 갑자기 눈먼 소리를 쓰는 걸 볼 때가 있어요. 감히 조언은 못하지만 지켜보면 가슴이 아파요. 좋은 연주를 듣다보면 나쁜 연주를 금방 판별하지만 이것저것 잡다하게 들으면 좋은 연주를 들어도 모르죠. 그림도, 음식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영화를 너무도 쉽게 보는 젊은 관객이 영화는 재미있으면 되는 게 아니냐고 말하는 순간 가슴이 아파요. 본인의 감식안이 망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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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런데 여기서 정말 궁금한 거.

 

좋은 영화는 뭐고 나쁜 영화는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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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뮨주의 선언을 읽다가

일을 그만두고 묵혀뒀던 철 지난 책들을 보고 있는데,

개중 <코뮨주의 선언> 머릿말을 다시 보다가.

 

'공통된 것'이 차이나는 것들 사이에만 존재하고 생산할 수 있는 어떤 것이라는 썰을 풀던 중,

 

"소통을 꿈꾸면서도 차이를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차이를 해소하는 것만이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거꾸로다. 대화가 불가능한 것은 동일성 안에서다. 동일성 안에 있는 존재들은 둘일 때조차 한 사람처럼 독백한다. 차이들만이 소통할 수 있다. 우리는 매번 그 방법을 발명해야 한다."

 

마침 오전에 엘 워드 마지막 시즌을 다시 봤는데,

거기서 알리스의 질투어린 수다가 생각나는 지점.

 

알리스는 타샤라는 전 군인 출신의 흑인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있었는데, 여기 제이미라는 친구가 함께 친해지면서 삼각관계에 이르렀는데 그들의 섹스를 질투어리게 상상하며 쉐인에게 투덜거리던 전화 내용 중,

 

"걔들은 일심동체잖아. 걔들의 섹스는 섹스가 아니라 자위일걸?"

 

 

흐흐 뭐 그랬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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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 레볼루션!

 

 

영국의 유명한 좌파 코미디언 마크 스틸의 책이 몇 달 전 '바람구두'(!)라는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나왔다.

 

어찌나 급하게 책을 냈는지 오탈자도 초반부터 마구 발견이 되고 통일성도 좀 떨어지지만, 워낙 글이 유쾌하고 입담스러운 것이 강해 그러려니 하면서 읽게 된다.

 

이 책이 재미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마크 스틸의 독설 어린 입담과 비꼬는 문장(아, 왠지 너무나 영국 사람인듯!) 도 너무나 귀엽고, 통쾌하다.

 

이 책은 마크 스틸이 들려주는 걸죽한 프랑스혁명 이야기다.

 

프랑스혁명을 들려주면서 끊임없이 마크 스틸이 개입했다 빠져나가면서 책에서 눈을 못 떼게 한다.

(이야기를 하면서 영국 왕실과 그 추종자들을 '까대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고, 온건하기 짝이 없는 영국 정치판을 비웃는 건 기본 옵션이다)

 

그 걸죽함은 가령 이런 식인거다.

 

 "하지만 의회의 결정은 후속 '이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왕실은 여전히 너무나 놀란 나머지 세력화할 틈도 찾지 못했을 즈음이다. 이 인권선언의 발표는 아주 중차대한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써 귀족들은 세금과 10분의 1세, 귀족 집에서의 집안일 돕기 등을 요구할 권리를 잃게 되었다. 이를 오늘날의 입법 속도와 비교해 보시라. 영국 신노동당 정권이 힘주어 약속한 것 중 하나는 여우사냥의 금지였다. 5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들은 이걸 어떻게 처리할 지 고심 중이다. 정시닝 똑바로 박힌 정부라면 집권 첫 날에 아마 이렇게 시작하는 법률로 당장 통과시켰을 텐데 말이다. "빨간 승마복을 입고 와선 셰리 포도주를 마시고 들판 가득 개들을 풀어 놓으시겠다? 그리곤 여우 창자를 끄집어내는 거 축하한답시고 나팔을 불으시겠다? 당신 좀 심하게 아프시구만. 치료는 해드릴 테니까, 그딴 짓 아젠 절대 못하실 줄 아쇼."

 

또는,

 

"그런데 자코뱅이 오늘날의 좌파정당과 비슷하게 굴었던 게 한 가지 있다. 새 의회 구성을 위한 선거를 목전에 두고서 분열한 것이다. 공화국을 지지하는 로베스피에르의 연설을 듣고선 절반 너머의 회원들이 모임을 떠나버린거다. 남은 자코뱅들은 가입비를 감액함으로써 이 사태의 해결을 도모했으며, 프랑스 전역에 걸쳐 500여 개의 분점을 열게 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리옹에만 해도 자코뱅 당원이 3천에 달했다. 물론 처음부터 회원이었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약이 올랏을 수도 있겠다. 마치 하위리그에 있을 때부터 응원했던 팀이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하자 이렇게 투덜대는 축구팬처럼 말이다. "우리 팀이 개판일 때가 훨씬 좋았어." "

 

"전쟁이 벌어진 뒤 최초로 프랑스군은 전선을 지켰다. 후다닥 파리로 진격하리라 싶었던 브런즈윅공은 충격에 휩싸여 당황했다. 브런즈윅공에겐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의 군대에는 요한 괴테라는 부대원도 있었다. 훗날 세계적인 문화가 될 바로 그 젊은이가 거기서 그날의 사태를 낱낱이 기록한 것이다. 브런즈윅공은 마치 대사를 까먹어 연기를 망친 배우가 나중에 쟁쟁한 비평가는 다 왓었다는 소식을 전해드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으악, 그 빌어먹을 괴테도 왔다구? 왜 하필 오늘 같은 날 온 거냐구. 베르됭에나 오지 말이야. 거기선 하룻밤에 죄다 휩쓸었는데 말이지.""

 

등등.

 

프랑스혁명의 온갖 사소한 이야기들로 당시의 분위기를 복원해 내는 것도 대단하고, 프랑스혁명의 의미를 계급적 성격으로 찾아내는 일관성도 아주 설득력이 있다.

 

"프랑스대혁명을 이끌어낸 발상과 사건들을 보다 잘 이해하려면, '계급'이란 말을 둘러싼 오해를 걷어내는 게 도움이 된다. 예컨대 오늘날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휴대용 컴퓨터와 핸드폰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에게 이런 발명품이 그들의 삶을 보다 편안하게 만들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보다는 출퇴근하는 동안에도 일을 해야하는 사묵직 노동자로 만들었다는 편이 더 옳다. 19세기 방직공장 노동자들도 그렇지는 않았다. 그들이 퇴근하면서 계속 베틀을 휴대하고 빙빙 돌려야 했던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대부분의 비제조업 일자리들은 '중간계급'이란 호칭에 어울리지 않는다. 버거킹에 뚜벅뚜벅 걸어가 이렇게 외침으로써 카운터의 직원을 얼떨떨하게 만드시려는가? "당신은 당신이 그건 줄 알지, 응? 이 거만한 중간계급 속물아!" (킥킥)

 

해당 사회가 물건을 생산하는 방식과 한 인물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의해 결정되었을 때의 계급이라야 실질적인 의미를 지닌다.

 

프랑스대혁명 직전의 수백 년 동안 오늘날과 같은 의미의 노동자 계급이라고 얘기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사회의 여러 구성부분들 사이의 차이는 아주 심했으며, 이들은 사회가 물건을 생산하는 방식을 두고서 이해관계의 충돌을 겪곤 했다. "

 

 

출퇴근하며 오며 가는 길에 읽느라 죽죽 보지를 못하는데, 이 책 읽다가 내리는 곳을 지나친 적도 있다.

 

얼마나 이 책이 웃기느냐 하면 무려 캡션을 보다가도 킥킥 거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 유쾌한 혁명찬가를 읽으면서 드는 느낌은 정말 이렇다.

 

 

그래, 비바! 레볼루션!!

 

이 사회에도 비바! 레볼루션!

 

"파업투쟁이나 시위에 한번이라도 참여해 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 지ㅣ배권력에 도전하는 사건들의 경우, 바로 그 다음날에도 심각하게 왜곡된다는 것을. 그러니, 200년 전 일이라면 오죽하겠는가. 근세에 일어난 여러 사건들의 경우처럼, 대혁명 관련자들이 근본부터 썩었다는 편견을 일단 걷어내고 나면, 완전히 색다른 그림이 펼쳐진다. 프랑스대혁명이 졸지에, 오늘나르이 우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둔갑하는 것이다. 우리와 너무 비슷한 보통사람들이 너무나 보통스럽지 않은 대장정에 몸을 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혁명은 우리 시대를 보여주는 지침서이자 영감의 원천으로서 주목해볼 만한 가치를 지닌다. 게다가 대혁명 이야기는 완전 흥미진진하고 진짜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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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와 제로가 만나면2


제로와 제로가 만나면?

 

무한.

 

<소라닌>에서 그랬다. 제로가 제로가 만나면 무한.

 

2주 정도가 지나면 이제 한동안 일을 하지 않게 된다.

 

일을 그만두는 명목은 논문을 마무리하는 것이었는데,

올해는 분명 어떻게 됐든 앞으로 몇년간의 삶을 결정지을 해가 될 터다.

 

 

얼마전 한동안 보지 않았던 <소라닌>을 다시 봤다.

 

2년 전 이 책을 봤을 때도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긴 했다.

 

학교를 휴학하긴 했는데 여전히 학생 신분인 상황에서 일을 하겠다고 허덕거리고 있었다.

(더불어 지금 생각하면 연애같지 않던 연애도 조금씩 바닥으로 향하고 있을 때였고, 새로운 사람들에게 적응하고 있지 않을 때이기도 했고)

 

갈피를 못잡고 있을 때 이 책을 봤다.

결론은 '아무렴 어때' 덩어리인 어른이 되고 싶진 않았던 거다.

 

 

지금도 비슷하다.

그리고 주인공의 상황과 더욱 비슷해졌다.

 

지향점이 불일치하는 일터, 사소한 사건에도 여전히 예민하고 발끈하고,  어떤 책을 만들고 싶은데 스스로 규율해 이야기하지 못하게 되고, 예심도 통과하지 못한 아니 주제도 점점 흐릿해 지는 논문을 마무리는 해야겠고.

 

여튼 난 논문 쓸래요! 이러면서 사표를 내긴 냈는데,

실은 다음달 월세, 학자금 등등을 생각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깜깜하다.

 

지금 연애하고 있는 자와 함께 살고는 있지만,

그 자의 앞날도 어찌될지 모르고 그 자에게 내 삶을 책임지라고 우길 수도 없으니.

 

그래도,

마무리 지을 것은 지어야 하고,

여전히 '아무렴 어때' 덩어리인 어른이 되고 싶진 않은 거다.

 

어떻게든 되겠지.

 

"나도 어떻게든 해볼테니까"

 

 

갈림길에 선 청춘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주는 <소라닌>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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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와 제로가 만나면 1 (2년전쯤인듯?)  

<소라닌>을 방금 다 읽었는데, 꼭 <마이제너레이션>을 보고 난 이후의 기분이 든다.

 

마이제너레이션 보다는 좀 더 따스한 시선이 느껴지지만,

한 치 앞을 알 수 없고, 당최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시류에 휩쓸려 조금씩 자기를 잃어가는 소라닌의 주인공들의 모습은 20대를 살고 있는 수많은 '나'들과 너무 닮아있다.

 

그래도 뭐.

 

제로와 제로가 만나면 무한이라니까.

 

아직은 '아무렴 어떠랴' 덩어리인 어른들이 되고싶진 않거든.

 

 

이들의 노래, 우리의 노래 '소라닌'을 듣고싶다.

 

 

 

[소라닌]

 

서로의 다른 생각은 하늘 저편으로

이별의 연속인 인생이여

아주 희미한 미래가 보이는 듯하니

안녕이라네

 

그때의 그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의 나로는 영원히 돌아갈 수 없네

 

그 옛날 너와 내가 살던 작은 방은

이미 다른 사람이

너에게 들은 상처의 말도

무의미한것 같았던 하루하루도

추운 겨울의 차가운 캔커피와

무지개빛 긴 머플러와

종종 걸음으로 뒷골목을 빠져나가 기억을 떠올려본다.

 

그때의 그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의 나로는 영원히 돌아갈 수 없네

 

느긋한 행복이 영원히 계속된다 해도

나쁜 씨가 싹을 틔워

이제 안녕이라네

 

그때의 그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의 나로는 영원히 돌아갈 수 없네

 

이별이 나쁠것도 없지

어디선가 늘 건강하기를

나도 어떻게든 해볼테니까

꼭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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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작년, 아니 재작년 여름 친구 강부장이 찍은 것.

 

멀리는 학교 건물이 슬쩍 보이고, 빨래들이 널려 있는 뽄새가 확연한 여름이다.

 

탈 많았던 시절을 보냈던 집의 옥상.

 

날씨가 따땃해져서 그런지, 벌써 여름이 성큼 다가온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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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그리기 능력

가끔 이런 게시물을 보면, 직접 만화를 그리는 재주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림만 퍼오는 게 찝찝해서 글까지 퍼왔심.

 

제2창당이고 뭐고 여하간 비열한 사건인건 분명하니까.

 

 

 

http://hagi87.egloos.com/1300210

노회찬이 두려운 이 정권
 



오세훈이 죽을 쓰고, 2010년 지방선거에 역풍을 두려워 하는 현 정권의 눈엣 가시가 결국 철퇴를 맞았다. 2010년 서울시장 출마가 유력한, 그리고 당선여부와 무관하게 큰 바람을 일으킬 가능성이 큰 노회찬 전 대표의 정치생명을 끊으려고 한 것이다. 이 기막힌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퍼나르기에 가담한다.

 

[만화] 노회찬, 1심형이 확정될 경우 3년간 피선거권 제한

 "국정참여기회 줘야한다"면서, 출마는 꿈도 꾸지마라

 

노회찬에게 ‘징역6개월, 자격정지1년, 집행유예2년’의 중형이 선고되었습니다.

기가 막힌게 1심 판사는 스스로 “피고인에게 국정참여기회를 줘야한다”고 주장하면서

중형을 선고하였습니다. 1심형이 확정된다면 3년간(집행유예2년+자격정지1년)

피선거권이 제한되게 됩니다.


노회찬은 즉시 항소하였습니다.

“삼성 X-파일에서 내가 본 것은 보호받아야할 사생활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훼손하고 국가의 기강을 뿌리채 흔드는 범죄의 현장이었다. 검찰이 오히려 수사를 방훼하고 있을 때 범사위 위원이 내가 침묵해야 옳았다는 말인가?”(노회찬 전의원의 발언)


국민들의 힘으로 2심에서 반드시 무죄를 받아냅시다.

[서명]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66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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