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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2/13
    도시의 테러리스트! 2탄(by 웡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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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02/13
    도시의 테러리스트! 1탄(by 웡긔)(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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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그 그게 아니라(by 얌얌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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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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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커(by 새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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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시 모욕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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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9/02/12
    고양이 위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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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9/02/12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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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9/02/12
    섹스와 공간
    깜깜

도시의 테러리스트! 2탄(by 웡긔)

(1탄에 이어) 

 

조형물 설치

 

 : 거리에 자신이 만든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으로 이 역시 사람들이 보고 생각하도록 만든다. 혹은 단순한 재미.

 

 조형물의 경우 '스트릿 아트'의 '아트'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많은 경우, mark jenkins의 작업처럼, 단순한 아트와 미시적인 문화정치의 맥락은 구분하기 힘들다.

 

 

 

 

 

 

 (출처는 확실치 않지만, 밑에 것은 GRL와 Mark Jenkins와의 Tape Sculpture 합동 작품)

 

 

 

 

 

(바로 위가 mark jenkins의 작품: 아기 tape sculpture)

 

 

Textual healing

 

 프로젝터를 이용하여 건물의 창문에 말풍선을 달고, 알려준 번호로 문자를 보내면 풍선 안에 채워진다. 항상 이용하는 문자서비스(SMS) 기술을 이용한 상호작용 퍼포먼스.

http://www.txtualhealing.com

 

 

  

 

 

* 보통 이러한 활동을 일컬어 street art 라고도 하지만, banksy가 지적하듯이 예술이란 단어가 갖는 부정적인 함축과 소외시키는 기능 때문에 쓰지 않기로 한다. 오히려 반달리즘이나 (헤게모니에 대한) 문화적 교란행위cultural jamming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이들 행위가 가진 본질적인 아트로서의 동기를 가리고, 더군다나 재미없게 되어버린다.

 

 

 

 위의 사례들이 대부분 다른 나라에서의 일이라고 한다면, 한국에서의 상황은 어떨까? 일반적인 그래피티라면 압구정동과 홍대 일대를 중심으로 각 지역에서 흔하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작품’은 일반인과의 접촉을 금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밴크시로 대표되는 스탠실 그래피티의 경우, 필자가 살고 있는 종로지역에서 매우 가끔 목격하기도 하지만 거의 없다고 봐야 옳다. 오히려 한국에서 스탠실 그래피티는 공공기업이나 일반 기업체에서 자신들의 광고를 위한 방법으로 널리 쓰여진다. (사진) 스티커는 그 정도가 더 심해서, 아무런 이윤의 목적이 없는 경우란 찾기 힘들다. 그 외 다른 종류의 아트로서의 반달리즘은 여러 가지가 시도되고 있지만, 사실상 외국, 그것도 국제적인 도시에서 시도되고 있다.

 

 

(명동,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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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테러리스트! 1탄(by 웡긔)

 





 



Vandalism


 

 

 도시에서는 테러가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다. 폭탄 공격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와의 합의 없이 강요된 美, 취향, 소비조장, 세뇌광고, 감시 등과 도시의 공백이 이 테러리스트들의 목표이다. 오히려 이들은 힘과 돈을 무기로 우리 주변을 압박해 들어오는 자들이야말로 진짜 테러리스트라고 항변한다.

 

 도시의 공공물 또는 사적 재산을 의도적으로 파괴, 변형시키는 행위를 반달리즘(vandalism; 발음은 ‘밴덜리즘’이다)이라고 한다. 위키피디아에서는 이 용어의 정의를 분석상 ①범죄, ②정치, ③예술로서의 반달리즘으로 나눈다. 범죄학에서는 이것을 반사회적 행위 상태(ASBO), 즉 상습적으로 경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으로 규정하여 범죄의 하나로 본다. 분명 유리창을 깨뜨리고 자동차 타이어에 펑크를 내는 등의 일은 어느 누구라도 테러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벽에 낙서나 그래피티(graffiti)를 하는 것은 어떨까? 분명 다른 사람의 재산을 손상시키는 일이지만 동시에 그것이 보기 좋다면?

 

여기서 눈여겨 보는 것은 예술로서의 반달리즘이지만, 사실상 문화와 정치가 구분이 모호한 시대라고 한다면, 이 셋은 항상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려우며, 아트로서의 반달리즘도 분명한 (미시적인) 정치적 함의를 지닌다. 사방에 지겹게 붙어 있는 광고판이나 전단지, 스티커 등을 귀엽거나 기발한 각자의 그림으로 대체하거나 변형시킨다면 어떨까. 내가 사는 동네와 이웃에 나와 전혀 상관없는 기업들은 마음대로 자신들의 상품을 현란하게 광고할 수 있는데, 정작 그곳에 살고 있는 나는 눈과 마음이 즐거울 아무런 권한도 없는 걸까.

 

여기 몇 가지 움직임들이 있다. 이것들이 단지 철없는 사회부적응자들의 한심한 짓거리인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상징적 저항의 움직임인가의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공공물 변형

 

대표적인 반달리즘으로 표지판이나 간판 등의 공공물을 '재미 있게' 변형시킨다.

 

 

 

 

 

 

 

 

 

stencil graffiti

 

 Banksy는 스탠실 그래피티로 가장 유명한 사람이다. 보통의 것과 달리 스탠실 기법을 이용한 그래피티다. 뱅크시는 주로 고향인 영국에서 활동을 하며, 공공물 훼손과 박물관에 무단으로 자신의 그림 걸기 등의 奇行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인사지만, 여기서는 별로 말이 없는 그의 이야기 한 토막을 살펴보고 짧게 넘어가자. 그는 brandalism을 선언한다.

 

Brandalism : “…그들은 당신 삶에 엉덩이를 들이대고 한 방 날린 뒤 그렇게 사라진다. 그들은 높은 빌딩 위에서 감시하고 우리를 작은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버스에 붙은 건방진 코멘트들은 우리자신을 하찮고 섹시하지 않으며, 재미있는 일은 항상 다른 곳에서 일어난다는 암시를 준다. 그들은 TV를 통해 당신의 애인이 별로라고 생각하게 하며, 세계에서 가장 세련된 기술들을 이용해서 집요하게 당신을 괴롭힌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손댈 수조차 없다. …깽판을 부려라(screw that!). 공공장소의 어떤 광고라도 원하는 대로 해치우자. 그것을 떼던지 변형시키던지 마음대로 하라. …기업들은 우리가 보는 앞에서 이 세상을 재배열하며 바꾸어 가지만, 아무도 우리에게 허락이나 동의를 구하지 않는다. 우리도 (광고를 망치는데 있어) 그들에게 동의를 얻을 필요가 없다.” (banksy: wall and piece, 2005)

 

‘brandalism’은 뱅크시가 특히 마구잡이 광고로 일상생활에 관여하는 기업들에 대한 깽판을 추동하면서 만든 단어이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예로 들 수 있는 것으로는 ‘puma’라는 브랜드를 파마, 피나, 치마, 임마, 엄마, 쿠마, 튜나 등으로, bean pole을 ‘bean gone’ 등으로 바꾸는 경우가 있지만 이것마저도 사실 또 다른 상품이 되기도 한다. 시장경제는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 이용을 할 수 있는데, 특히 ‘커트 코베인’이나 ‘체 게바라’같은 인물들도 티셔츠, 목걸이, 핸드백, 뱃지 등으로 잘 팔리는 자본주의 아이콘이 되었다. 뱅크시는 말한다. “사람들은 혁명가처럼 입으면 실제로는 혁명가처럼 행동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는 듯 하다.”

 

 

 

 

 

(위 모든 사진은 뱅크시 작업; 마치 내가 찍은 것처럼 서명이 붙었지만 당연히 퍼온 것. 카피레프트쪽이니 퍼도 무방. http://www.banksy.co.uk/)

 

 

 

 

 

 

 

 

stickers

 

 보기 싫은 광고 스티커 위에 자신이 만든 예쁘고 기발한 스티커를 포개놓는 바로 그 순간부터 이 현대의 낙서는 반달리즘이 된다. 물론 이런 짓거리로 코끼리 다리만큼 탄탄한 사회구조가 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상 생활영역에서 만큼은, 내가 생활하는 이 공간만큼은 저들에게 맡길 수 없다는 작고 보이지 않는 테러는 이데올로기·마케팅 수법·문화가 블렌딩된 현대 사회에서 의미 있는 움직임이 분명한 듯하다. 한 예로 미국의 CAUSS라는 단체는 아마도 자유주의적인 시민정신을 발휘해 거리의 모든 불법적인 광고(“street spam”)를 떼어버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와 달리 단순한 재미와 꾸미기 위해 스티커를 직접 만들어 도시의 빈 공간에 붙이는 사람들도 많다. 돈이 거의 들지 않는 ‘예쑬’을 배우고 싶다면 이곳을 참고하라 :

 

스티커 만들기 강좌 : www.showmesomeart.co.uk

CAUSS : http://www.causs.org/what_is_street_spam.html

 

 

 

 

 

 (처음꺼는 내가 직접 찍었음, london,2006)

 

 

 

 

 

billboard liberations

 

 광고판의 ‘해방’. 이건 보다 스케일이 큰 작업이다. 이 경우에는 행위가 갖는 정치적 함의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 외

 

 

 

guerilla gardening

 

 : “우리는 도시의 방치된 공간에 면허나 허락 없이 씨와 묘목을 심습니다. 우리와 함께 이 도시를 반달라이징합시다!” http://publicspace.ca/gardeners.htm

 

 

 

 

 

 

LED 투척

 

: 공공영역을 풍부하게 만들 모든 자료와 정보, 컨텐트를 공유하는 아티스트와 엔지니어들의 실험적 연합체인 The Eyebeam Openlab의 가히 혁명적이라고 칭할 수 있는 프로젝트인 ‘Graffiti Research Lab(GRL)’의 대표적인 발명품.

 

 아이빔 오픈랩은 현대 기술을 우리의 삶과 예술에 바로 응용, 연결시키는 뉴욕에 본부를 두고 있는 민간단체다. GRL은 그들의 프로젝트로 하나로 거리예술을 위한 기술 연구소이다. 이 연구소의 목적은 “기업들과 상업적인 문화로부터 개인들을 그것을 변경하고 자신의 환경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기술적으로 원조해주는 것이다.”

 

 LED 투척은 이 연구소에서 개발한 발명품 중 하나로 이미 블로그나 you tube와 같은 곳에서 알려진 바 있다. 이 것은 길 위의 사람들이 생각하게 만들고(make people think), 자신의 환경을 다시 보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일명 발광다이오드라고도 하는 LED를 전지와 함께 엮어 말 그대로 ‘투척’하는 것으로 이것의 위력을 알고 싶다면 아래 주소의 동영상을 보라. 그리고 이곳의 깜짝 놀랄 발명품들을 직접 확인해주시길 :

 

LED Throwies : http://graffitiresearchlab.com/?page_id=17#video

아이빔 : http://research.eyebeam.org/

GRL : http://graffitiresearchlab.com/

 

 

 

 

 

 (2탄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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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그게 아니라(by 얌얌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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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깽이(by 얌얌군)

토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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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커(by 얌얌군)

 

 

이것도 재미없고 마음에 안드는 곳에 낼롬낼롬 붙이시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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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커(by 새얀)

재미없고 마음에 안드는 어느 곳이든, 인쇄해서 낼롬 붙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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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모욕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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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위령제

고양이 위령제

 

평소에 고양이를 싫어 했지만

사람보다 더 잉여 스러워 싫어 했지만

 

정말로 맞춤법을 맞추기 힘들 정도로

술에 취한 새벽에

고양이의 주검을 본다

 

걔는

흰털에 바큇 자국의 때를 입고

바둑이 갔다

이내 하지만 고양이지

 

세미나 하고 내가 친구 고양이 괴롭힌게 생각나서

숙연해진다

 

내가 그에게 무엇을 할까

할까? 할 게 없어

가방 측면에서 나의 디스 담배를 꺼낸다

 

디스를 고양의 주검에 물리려다

고양님의 턱이 벌리지 않음을 느꼈다

 

고양님의 한은 그만큼 벌어지지 않나보다

 

나는 그 고양님의 턱에다 담뱃불을 붙히네

 

편의점에서 요구르트를 사고나서도

그 불 잘 붙어 있다

 

고양이는 무슨 한이 있어 담배를 피나

차에 치어서 그러나

 

나는 무슨 한이 있어서 담배를 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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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

엄마는 다소 충격에 휩싸인 듯하다.

 

결혼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결혼할 마음도 없이 남자와 한 집에서 살고 있는 내가, 엄마 눈에는 문자 그대로 '미친년'으로 밖에는 안 보인다는 반응이다.

 

이미 현관에 발을 들여 놓은 상황에서, 이미 완벽하게 우리 둘을 위해 짜여진 이 공간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최대한 충격과 당혹스러움을 절제하는 것 밖에는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 일을 꽤나 잘 해냈다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의 반응은 채념과 인정. 그리고 다시 그녀의 틀 속으로 나를 끌어다 맞추는 일. 엄마는 졸업한 후에 곧장 '머리를 올릴' 것을 협상안으로 내놓았다. 어쨌든간 지난 수원 방문 때 합격점을 받은 남자친구랑 그냥 결혼해서 살았으면 하는 심산이다. 이미 한남자랑 '살을 섞고' 동거한 경험이 있는 여자는 (그 남자랑 결혼하지 않는 한) 평생 불행해질 것이라는 게 엄마의 지론이다.

 

연애만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나의 발언은, 그야말로 엄마한테는 미친 소리, 한심한 소리, 세상 모르는 소리(이건 맞는 말이다)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그에 비하면 아빠의 반응은 훨씬 호의적이다. 하지만 이건 놀랄 일은 아니다. 이십여년의 결혼생활 동안, 수십차례의 외도로, 그러니까 수십차례의 로맨스로 엄마를 울리고 본인은 웃었던 아빠는, 엄마에 비해선 연애의 기쁨을 좀 더 잘 아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수십차례 중의 한 번, 더이상 참을 수 없이 분노한 엄마와, 엄마에 대한 의리, 아빠에 대한 증오와 경멸로 다듬어진 우리 남매는 어느 차가운 겨울날의 새벽에 집을 나왔다. 그리고 아빠는 원래의 '우리집'에서 5분도 안되는 거리의 원룸에 그 때 '당시' 사랑에 빠져있던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 그 집은 곧 동네 사람들의 입을 거쳐 엄마에게 발각됐고, 엄마는 그 집 문을 따고 들어가 이불이며 옷가지를 모두 찢어버렸다. 복받치는 설움과 악, 그리고 묘한 쾌감으로 그 공간을 발기발기 찢어버린 것이다. 그 때 나는 충실한 공모자의 역할을 했다.

 

어쨌든 엄마에게, 혼외(성)관계는 모두 '악'이다. 그리고 이 기준은 묘하게도(실은 당연하게도) 여자에게 더욱 가혹하다. 외도를 하고, 가족을 불행하게 했던 것은 여자인 자신이 아니라, 남자인 아빠였음에도 말이다. '몸을 함부로 굴린 여자'의 끝은 불행일 수밖에 없다는 믿음. 엄마는 심지어 자신이 아빠를 만나 한평생을 고생한 것도, 어느정도는 '처녀성'을 지키지 못해 스스로의 몸값을 낮춘 본인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여기에 대해선 아무리 열을 올리고 싸움을 걸어봤자 시멘트 벽에다 바늘을 꽂는 격이다.

 

아빠는 '그 녀석'이 내 속을 썩이면, 자기가 술의 힘을 빌어 단번에 해결해 주겠다고 괜한 장담을 한다. (정말이지, 너나 잘하세요. 라고 말해주고 싶은 순간이다. 그리고 아빠와 나의 애인은 실로 아무 관계도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덧붙여, 나보곤 열심히 살림을 배우란다. 그래도 명색이 사내라면 여자가 지어주는 밥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거다. 본인이 그러했듯이.

 

둘의 방문은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엄마는 오전 내내 정성껏 만들어서 깔끔하게 정리한 반찬들을 내려놓고, 공간을 탐색하고, 놀람과 당황스러움과 분노와 절망과 채념과 인정과 부끄러움 등의 감정을 오갔다. 아빠는 그 짧은 동안에도 냉장고에 조금 남은 술병을 찾아내고, 술을 마시느냐고 나에게 묻고, 그 술을 비우고, 장롱에서 튀어나온 나사못을 찾아내 '사내녀석'의 부주의함을 힐난한다.

 

집까지 차를 몰고 오는 내내 말을 하지 못했다. 어차피 도착해보면 알테니까 조금만 미루자는 심정으로. 학교구경도 할 겸 반찬도 실어다 줄 겸 집까지 태워다 주겠다는 엄마 아빠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거절하지 않은 건, 어쩌면 그냥 알아버리길 바랬던 나의 욕망 때문이었을거다. 잘못을 하지 않았으니 감출 것도 없다는.

 

올 때는 아빠가 운전을 했으니, 갈 때는 엄마 차례다. 아빠는 다음번엔 애인과 함께 내려오라고 하고, 엄마는 제발 혼자오라고 한다. 그래도 여전히 나에게 미운건 아빠고, 가엾고 존경스러운건 엄마다. 둘은 창문 안에서 뭔가 시끄럽게 대화를 나누면서 신림동의 골목을 빠져나간다. 홀가분함과 허무함과 왠지 모를 씁쓸함, 그리고 나의 가족사. 여러가지 감정과 기억이 스멀스멀 머릿속과 가슴속을 스쳐간다. 이제 점심 먹을 시간이로군. 담배 한대를 빼물로 얼른 집으로 뛰어들어간다.



by 새빨간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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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와 공간

섹스와 공간   

     

     적지 않은 20대들이 섹스를 하며 살아간다. 섹스 파트너를 어떻게 구하는가는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고 취향에 따라 다른 문제겠지만,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20대들의 공통의 고민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공간의 문제이다. 물론 당신이 방음이 잘되는 원룸에서 살고 있다면 그다지 문제될 게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당신이 아직 부모님의 집에 얹혀살고 있다거나, 기숙사 혹은 자취방처럼 옆방 사람의 핸드폰 진동소리까지 들리는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살고 있다면 이는 크나큰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을 거다. 섹스를 하기 위해선 한 평 이상의 아늑한 공간이 필요한 법인데, 상상력도 주머니도 빈곤한 나에게 이 곳 서울은, 진심으로 나의 즐거움에 도움이 안 되는 곳이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급한 놈이 우물을 파는 수밖에. 지난 1년 동안 나와 애인은, 안전하고 만족스러운 섹스를 위해 엉덩이 누일 곳을 찾느라 적지 않은 고민을 했더랬다. 그리하여 결국은 몇 개의 안정적인 공간을 확보하게 됐는데, 물론 여기엔 주변 이들의 조언과 각종 매체들의 도움이 있었으며 그래봤자 크게 새로울 것은 없는 공간들이다. 그래도 혹시 이런 정보가 누군가에게는 지푸라기가 되어 한 번이라도 더 오선생을 모시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기에 몇 가지 장소와 비법(?)을 공개하려 한다.


1. 뻔뻔해져라

     방음이 안 되는 자취방이라면, 그냥 그 상태를 즐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물론 옆방 사람을 배려해서 최대한 ‘사운드’는 자제해야겠지만.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가족들이 집을 비운 때를 노리는 것도 좋다. ‘섹스’라는 활동과는 거리가 멀게 꾸며졌을 당신의 방에서 가족들의 귀가시간을 염두 해 두고 섹스를 즐기는 것은 나름의 스릴과 색다른 기분을 안겨줄 것이다. 다만 조심할 것은, 자취생의 경우 옆방 사람의 성격에 대해 조금 알아 둘 필요가 있겠다. 나의 경우,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무렵, 애인 옆방에 사는 할아버지가 뛰어나와 거세게 문을 두드리며 욕을 한 적도 있다. 물론 부모님의 집을 이용할 경우에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가족들에게 확인 전화를 해본다거나 문을 잠궈 둔다거나 하는 식의 준비가 필요하겠다. 


2. 돈이면 안되는 게 없다

     역시나 서울에선 돈이면 해결 안 될 문제가 없었다. 도심 곳곳에 있는 모텔들이 다 괜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우선 모텔의 최대 미덕은 방음이 완벽하다는 점이다. 방 안에서 무엇을 하든지,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대신 몰래카메라는 신경 써야 할지도). 그 외에도 숙박보다는 다른 목적으로 많이 쓰이는 공간인 만큼 다양한 시설들이 잘 갖춰져 있어서, 아무런 준비 없이 ‘몸만 가도’ 될 정도다. 하지만 화장대에 놓여있는 로션의 경우엔 향이 정말 별로이고 상표도 미심쩍으므로 여행용 화장품을 들고 가는 게 좋겠다. 콘돔의 경우에도 평소에 즐겨 쓰던 걸 챙겨가는 경우가 더 많더라. 모텔 중에서도 입소문을 통한 별 다섯 개짜리들이 있는데, 이런 곳은 정말이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가주고 싶은 마음이다. 물론 이건 그저 ‘마음’에 그칠 수밖에 없는데, 모텔 숙박료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보통 하룻밤 묵어가는 데에는 4-6만원이 필요하고, 네 시간 대실의 경우에도 그것의 절반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대학생이 모텔에 맛들이면 등이 휜다고.


3. 색다른 장소 찾기

     그 외에 우선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장소는 비디오방이다. 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즐겨 이용하고 있는 곳이겠지만. 비디오방 역시 시설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인 정도의 방음은 되는 곳이고, 조명 또한 나쁘지 않다. 반쯤 누운 자세가 가능한 소파도, 어떤 면에선 침대보다 낫다. 가격이 저렴하다는 점과 적절한 영화를 선택해 더욱 에로틱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점도 비디오방의 미덕이다(단, 너무 과한 영상은 피할 것). 항상 어두운 곳이라 위생상태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고, 체위에 따라서 문에 있는 작은 창문으로 밖에 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칠 위험도 있지만, 이쯤은 극복할 수 있을 만큼 비디오방은 매력적인 곳이다.


     비디오방은 식상하다, 더 색다른 장소가 필요하다 하시는 분들은 다양하게 고민해 보시길. 안타깝게도 카섹스는, 차가 없는 본인은 시도해보지 못했으므로 생략하겠다. 대신 사람이 없는 우등 고속버스에서 오럴섹스를 한 적이 있는데, 이 또한 매우 추천하고 싶다. 물론 여기에서 포인트는, ‘사람이 없는’이다. 최소한 ‘사람이 적은’이어야 한다. 아직 시도해보지는 못했지만, 야외 공간이나 강의실 등도 후보에 두고 있는 곳이다. 포르노와 실제 상황은 다르므로 사전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함은 당연하다.


     섹스는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이고, 수많은 사람들의 놀이일진데 결혼한 부부가 아닌 경우엔 ‘합법적’ 내지는 ‘건전한’ 장소를 확보하기가 어렵다. 때로는 괜히 죄짓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화사하고 깨끗하면서도 저렴하고 접근하기 쉬운 공간을 원하는 것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너무 큰 욕심을 부리는 걸까?

by 새빨간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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