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기장 - 2008/11/12 03:18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서 존재할 때, 호모사피엔스는 한없이 나약한 존재이다. 먹이사슬의 중간, 혹은 그보다 훨씬 아래쯤에나 위치할 수밖에 없는 신체적 한계로 인해, 인간은 자신의 생존을 이어나가거나 심지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라도 군집생활을 하게 되었고 이는 '사회'로 발전해왔다. 이 가련한 진화의 과정에서 '집단에의 소속 욕구'는 인간의 숙명적 본능으로 유전되어 왔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무리에서 벗어나는 것, 집단에서 내몰리는 상황에 대해 본능적으로 생존의 위협으로 느끼게 되며, 이를 피하기 위해 어떠한 것도 감내할 자세를 갖추게 된다. 자신의 자주성과 자발성을 포기하면서까지 인간이 집단에 속하고자 하는 것은 이같은 이유때문일 것이다. 이런 본능적 욕구를 이용하여 어느 집단이건 '권력'은 집단에서 배척하겠다는 협박이나 집단으로 받아들이고 남아있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회유를 통해 개인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가지곤 한다. 어느 영국학자의 말처럼 집단에서 배척당하지 않고 소속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야 말로 인간을 선과 악의 경계를 뛰어넘도록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인 것이다. 게다가 끔찍한 것은 스스로 판단하기를 멈추고 집단의 힘에 밀려 선과 악의 경계를 넘어선 자들은 스스로가 겪는 가치관의 혼란에서 벗어나고 인지부조화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온갖 이유를 대며 합리화를 시작한다는 점이다. 인류의 자랑인 '뇌'가 사회적 본능이랄 수 있는 소속에의 욕구, 소외에 대한 공포에 굴복하여 본연이 기능을 망각하고 조작과 왜곡을 향해 폭주하게 되는 것이다.

 

필립 짐바도르 교수가 1971년 스텐포드대학에서 실시한 실험은 이같은 인간의 나약한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었다. 짐바도르는 자신의 실험에 지원한 70여명중에서 정신과적 면점과 검사를 통해 '심리적으로 건강한' 20여명을 피실험자로 선정하고, 대학의 지하실에 설치한 모의감옥에서 2주일간 죄수와 교도관으로 생활하도록 했다. 물론 이들은 모두 한번도 감옥에 가본적이 없는 사람들이었으며 죄수와 간수역할은 무작위로 선정하여 배정했다. 그러나 채 이틀도 되지 않아 간수역할을 맡은 피실험자들이 죄수역할을 맡은 사람들을 강압적으로 통제하고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으며, 이에 대해 죄수역할을 맡은 피실험자들은 폭동으로 맞섰다. 폭동이 발생하자 간수역할을 맡은 피실험자들은 소화기까지 사용하며 신속하고 폭력적으로 진압했고, 진압후 죄수역할을 맡은 이들에게 신체적, 성적 학대를 가하기 시작했으며 조직적으로 역할을 분담하여 질서유지에 나섰다. 또한 이들은 죄수들이 화장실에 가는것까지 허가를 받도록 통제했으며, 폭동 가담정도에 따라 죄수들을 구분, 소수는 안락한 감방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하고 다수는 알몸으로 한꺼번에 한방에 집어넣는 방식을 도입했다. 놀라운 것은 처음 반나절은 폭동가담정도가 미약한 자들을 편한 감방에서 생활하게 하였다가, 다음 반나절은 가장 적극적으로 가담한 몇사람을 편한 감방에서 지내게 하는 수법으로 죄수들간의 불신을 조장하여 죄수들끼리 단결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단 한번도 감방근처에도 가본적이 없던 피실험자들이 단 며칠만에 철저하게 프로페셔널한 간수가 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피실험자중 한사람이 자해를 하며 실험에서 이탈하겠다고 요구했고, 이 사람이 귀가하자 나머지 죄수들은 탈주를 모의하기 시작했다. 연구자들은 긴급회의를 열어 죄수들의 탈주를 막을 방법을 모색, 실험장소인 모의감옥에 탈출방지장치를 설치했다. 실험에 참가하지 않은 다른 팀의 연구자가 와서 "도대체 무엇을 실험하고 있는가?"를 묻기 전까지 연구자들은 스스로 또다른 간수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실험은 6일만에 중단되었다.

 

짐바도르는 실험이 끝난뒤 35년만에 "무엇이 선량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라는 부제가 붙은 자신의 책 '루시퍼이펙트'를 통해 "'썩은 상자 제조자'에 해당되는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썩은 상자' 속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심지어 선량한 사람들조차도 사악하게 돌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악한 사람, 악한 기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순식간에 악의 나락으로 빠질 수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짐바도르의 실험에 앞선 1961년의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에서도 피실험자들중 65%가 고통스러워하는 다른 피실험자에게 450v의 전기충격을 가한바 있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흰가운을 입은 대학 연구자의 권위'와 '실험비를 받았다는 부담과 양심'에 굴복한 것이다.

 

전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던 2004년 미군의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의 학대사건을 다룬 '스탠다드 오퍼레이팅 프러시저'에서도 포로학대에 참가했던 미군들의 한결같은 인터뷰내용은 "모든것이 Standard Operating Procedure(표준작전절차)였을 뿐이고, 명령에 따랐을 것이다"였다.

 

결국 집단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권위와 권력에 복종하는 '침묵하는 다수'의 존재야말로 인간사회에서 끊이지 않고 벌어지는 온갖 악행의 든든한 밑거름인 것이다. 악이 승리하는 방법은 선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상황과 시스템에 '조용히 참여'하며 수동적으로 생활하는 것은 결국 그 상황과 시스템의 한 구성원으로서 기능하는 것일뿐이다. 세상을 바꾸는 변화의 첫걸음은 "그것은 잘못된 일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용기이다. 영화 '베오울프'의 주인공 레이 윈스턴의 대사 "내가 악해지지 않는 방법은 악에 맞서 싸우는 것뿐"이란 말을 되새겨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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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2 03:18 2008/11/12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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