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기장 - 2009/10/04 20:38

경기도지사 김문수가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면서

"나는 혁명을 꿈꾸던 사람이다. ...하지만 사회주의권이 붕괴되는 것을 보면서 저렇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민중당 활동을 했는데 실패했다. 그 실패가 민자당에 들어가는 계기가 됐다.”

고 한다.

 

거의 20여년만에 다시 들어본 얘기...

"나도 혁명을 꿈꿨다. 그런데 소비에트가 망하니 그 꿈이 허황된 것이라 느껴진다."

 

어느 학번에게나 다른 학번들과 구별되는 그 시절만의 아픔이 있겠지만

내가 대학을 들어가서 초반에 겪었던 황당한 상황만큼 독특한 경험이 있었을까?

 

독일 교과서를 가지고 세미나를 시작했든데

그 책을 다 읽기도 전에 동독이 무너졌고

역시 사회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의 책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선배들의 권유로 시작되었던 소련 교과서 세미나도

결국 소비에트가 붕괴되면서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돌아올 차비도 없이 막차 잘못 탄듯한 망연자실한 느낌의 그 시절,

입만 열면 혁명을 목놓아 외쳐부르던 선배들, 동기들은

무언가 새로운 이념을 찾아 분주히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들이 버리고간 책들이 학생회실 한켠에서 천덕꾸러기가 되어

라면 냄비받침으로나 쓰이게 됐을때도 여전히

나는 그 책들을 밑줄까지 그어가며 읽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며 사람들은 "너는 아직도 혁명을 꿈꾸냐"며 혀를 찼다.

 

나는 한번도 혁명을 꿈꿔본 적이 없다.

내게 혁명은 그때나 지금이나 꿈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현실이다.

그들도 그 시절엔 혁명은 꿈일뿐이라고 얘기해본적이 없다.

모두들 역사발전의 합법칙성과 필연성을 들먹이며

"오늘은 투쟁, 내일은 해방"을 외치곤 했었다.

그런 그들의 변화가 내겐 너무도 갑작스럽고 극적일뿐이었고

'현실'과 '꿈' 사이의 논리적 도약을 누구도 내게 설명하지 않았다.

 

한 시절의 영웅도 그 시절의 의지를 잃고 살아가게 된다면

역사의 쓰레기가 되는 것이야 순식간의 일이지만

20년전의 레파토리를 다시 듣게 되니 참 감회가 새로울 뿐이다.

유효기간이 한참 지난 음식물 쓰레기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바퀴벌레처럼

구역질나는 그 한마디

"나도 한때 혁명을 꿈꾸었던 사람이오"라는..

그 빌어먹을 대사는 도대체 언제쯤 듣지 않을 수 있을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10/04 20:38 2009/10/04 20:38
TAG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soist/trackback/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