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왜 나는 ** 선생님을 좋아하는가?
1. 이 글을 쓰는 이유
난 좋아하는 것이 별로 없다. 얼마 안 되는 좋아하는 것들도 오직 마음으로만 좋아한다. 이 뜻은,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도 실제 생활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이 구현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거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접하는 것도 없다. 당연히 어떤 것에도 열심히 하는 게 없다. 이건 나의 평생의 적이다. 보통, 좋아하는 일은 자연스럽게 열심히 하게 된다는데 난 한번도 자연스럽게 되어본 적이 없다. 그런 내가 죽이고 싶도록 싫어서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해 봤지만, 그게 문제다. 노력 자체가 안 되는 거다. 결국 난, 나를 죽이기 직전까지 가서야 살고 싶다는 나의 간절한 소망 앞에 죽일 만큼 나를 미워하지는 말자고 결심했다. 그래서 한동안은 내가 원하는 것 자체를 외면하고 부인하는 생활을 했다. 아마 결국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아니라서 열심히 하지 않는 걸 거야 라고 생각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몇 년 뒤, 아니 결국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건 그거였구나 하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눈 감고 귀 닫고 산 시절을 상당한 아픔으로 기억하며 작별했다. 그래 난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열심히 하지도 않고 원하는 대로 살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흥미, 내 바램, 내 의지가 없어서는 아니다. 다만 그만큼의 역량이 안 되는 것 뿐이다.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좌절하고 포기하는 대신, 마음을 지키고 계속해서 바라며 살면 언젠가는 이룰 수 있다고, 이룬다는 건 결국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난 상당히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내 평생의 짐인 우울증도 많은 부분 다양하게 해소해가며 살고 있다. 하지만 바라기만 하는 걸로는 언제까지 이 시절이 계속될 순 없다. 십대에 내가 썼던 것처럼, 개미 발자국만큼 이라도 움직여야 한다. 깨알만큼 어쩌다 한번씩 정말 가뭄에 콩 나듯 이라도 실제 노력을 하고 무언가를 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서 두 가지 이유로 이 글을 쓴다. 무언가 하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나에게 그다지 많이 일어나지 않는 소중한 일이기 때문에.
2. 만남, 그리고 왜?
내가 선생님을 알게 된 건 대학교 1학년 교양 강의를 통해서였다. 강의 제목이 뭐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첫 시간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뜻을 아느냐는 질문에 내가 잘못된 답을 했던 기억이 나는 것으로 보아 ‘사회주의 정치와 경제’ 였나 싶지만 잘 모르겠다. 나는 원래 엄청나게 내성적인 성격으로 절대 수업시간에 질문을 한다고 답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이 강의가 1학기였는지 2학기였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여하튼 나의 스무살을 가장 특징지을 수 있는 내용은 이전까지 고민으로만 하던 노력을 실제로 가장 많이 구현한 시기 였다는 거다. 난 그래서 많은 시간을 흥분과 열에 들뜬 채로 보낸 편이었다. 그 때도 정말 내 생애 있을 수 없을만큼의 엄청난 용기를 짜내어 대답을 했다. 게다가 그 대답은 내가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설명해 준 걸 그대로 답한 거였다. 그런데 틀렸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언제든지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으면 시간을 주겠다고 말씀하셨고, 나는 그 때 인터넷을 통하여 처음 접하게 된 아나키즘에 대해 상당히 흥분한 채로 나름 정리한 발표문을 선생님께 보내어 발표를 하고 싶다고, 또 한번 내 생애 다시는 있을 수 없을 용기를 짜내어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답변은, 본인 이야기가 아니라 대부분 특정 사이트에서 취한 내용이군요 이라며 거절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언젠가 자기의 목소리로 노래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하셨던가. 그런 말씀도 덧붙어 있었다. ㅎㅎㅎ 특히 이 두번째의 좌절로 ㅋㅋㅋ 나는 엄청나게 술을 많이 먹었다. 그리고 그 후로 다시는 같은 류의 용기를 내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래도 전공 시간에 조발표를 스스로 나서서 맡은 적 정도는 있다. ㅋ 그래도 확실히 이 두 번의 일로 내 스무살 흥분에 찬 열의가 한풀 꺾였던 것이다. ㅋㅋㅋ
내가 선생님과의 만남에서 기억하는 건 사실 이 정도다. 선생님이 아나키즘에 대해 이야기를 하셨었던가? 그래서 내가 아나키즘을 찾았던 건가? 내가 왜 갑자기 아나키즘에 대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기 시작했었을까? 강의 내용은 뭐였을까?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강의도 대부분 졸거나 친구와 잦은 자체휴강으로 보냈다. 1번에서 말한 눈감고 귀닫은 시기에 과감하게 학교 다니며 남긴 노트와 레포트들을 모조리 다 없앤 관계로 아무 기록도 남지 않았다. 내가 이 수업 이후에 또 한번 강의를 들었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왜, 나는 선생님을 늘 좋아한다고 믿고 있을까? 미스터리~ 미스터리~ 무언가 맘에 드는 말씀을 하셔서일 텐데 무언가 맘에 드는 제스쳐가 있었기 때문일 텐데, 어째서 그것들은 생각이 나지 않고 좋아한다는 것만 남은 건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어쩔 도리도 없다. 갑자기 생각이 날리도 만무하고 말했듯이 뒤져볼 기록도 없으니까.. 그냥, 무언가 있었을 거다. 아나키즘을 선생님을 통해 들었는지 어쨌는지도 기억 안 나지만 분명한 건 선생님의 강의를 듣기 시작한 스무살 무렵에 아나키즘에 처음 강한 흥미를 갖기 시작했고 세월이 흘러 스물여섯살쯤 강하게 나는 아나키스트, 라고 할 순 없지만 말하고 싶은, 지금까지 최종적으로 가장 나의 마음을 강하게 끄는 것으로 느끼고 있다는 거다. 또 그 때쯤 아나키즘 강의를 찾아듣게 되었는데 그 강의를 맡은 분도 선생님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나는 선생님을 좋아한다 는 믿음만 강해진 채로, 여전히 아나키즘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스무살 때보다도 없고 아나키스트처럼 살고 있느냐 하면 그것도 절대 아니고 여전히 내 목소리는 어떤 분야에서도 한톨도 없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있다. 다만, 포기하지 않고 행복하게, 인생에 돌연히 나타나는 사건들에 충실하며 살고 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보니 조금씩 더 기억나는 것들이 있다. 과제로 전태일 평전을 읽고 감상을 썼던 것 그리고 그 레포트에 선생님이 써주셨던 말.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함께 노력해 보아요’ 였던가. 아마 그 레포트에서도 섣부른 좌절을 많이 했었겠지 ㅋ 또 당시 아직까지 가정경제가 현재상태에 이르기 전이었기 때문에, 내가 가진 부와 특혜를 포기할 수 있는가? 아마 난 버릴 수 없을 것이고 그 때문에 아나키스트가 될 수 없을 것 이라고 생각했던 (혹은 레포트에도 그런 내용을 썼던) 기억이 난다.
3. 현재의 이유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1번의 제목이었지만, 강조하기 위해 다시 쓴다. 내가 선생님을 왜 좋아하는지 보다 내게 중요한 건, 내가 선생님을 좋아한다는 거다. 말했듯이 난 인생에 좋아하는 것이 거의 없다. 좋아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친구라고 하면 나이 스물 아홉이나 먹었지만 다섯 손가락 안으로 충분히 꼽을 수 있고 그래도 범위를 많이 넓히고 넓혀서 세어보아도 열명을 채울 수 없다. 연예인을 생각해 봐도 난 좋아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난 아는 게 깜짝 놀랄만큼 없어서 정치인이든 뭐든 아는 공인조차 없다. 아는 게 없으니 좋아하는 것도 더 없다. 이런 내 삶에 좋아하는 선생님이 있다는 건, 꼭 선생님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친구도 아니고 연예인도 아니고 아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나에게 소중한 일이다. 게다가 그런 사람에게 아이를 키우는 힘듦에 대해 위로와 격려의 말을 듣고 책 선물까지 받는다는 건 내 인생에 보통 사건이 아닐 수밖에 없다. 나에게 소중한 일이기 때문에, 오랜만에 쓰는 글로서 기록한다. 내 일상에 또 하나 좋은 일이 있었다고.
4. 그래서
열심히 책을 읽을 것이다. ^^ 지금당장 열심히 끝까지 다 읽지 못한대도 포기하지 않고 언젠가는 꼭 다 읽고 또 글도 쓸 것이다. 스물아홉살의 나이로 이런 글을 쓴다는 건 참 부끄러운 일이다. 열아홉이면 모를까. 서른아홉에 또 부끄러워하기 전에, 혹 또 한번 부끄럽게 되더라도 개미 발자국만큼 또 계속해서 움직이자. 쉬지 않고 노를 저어 한 번 앞으로 향하고 세 번 뒤로 물러서더라도(누구였더라?;; 이 글 읽고 또 엄청 좋아했었는데) 노를 젓는 게 내 삶이라고 결정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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