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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의 여자 1

 잊는 것은 완벽한 소화 후에 가능하다. 부지런하거나 통찰력 있는 사람에게는 완벽하게 소화하는 일이 쉬울 수도 있다. 재주가 많은 사람은 다른 일에 집중함으로써 늘어지는 소화 과정을 그럭저럭 견딜 수도 있다. 나는 무능력하고 끈기도 없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집착이라고 부르는 기억을 온 몸으로 맞는다. 그리고 마르기 전에 다시 맞고, 그것은 또 스며들고, 나는 주먹을 꽉 쥐고 짜낸다.

 오늘도 비가 내렸고 바닥은 축축하다. 덜 마른 빨래를 앞에 두고서도 세탁기를 돌려야 했다. 싸늘함이 싫어서 시원하게 뚫린 신발을 신고 저녁에 나왔다. 우산 밑에서 빛나는 얼굴들과 건조함 없이도 바삭거리는 젊음을 보고 그 사이를 걸었다. 앞에서는 검은 색 구두를 신고 검은 색 치마를 입은 늙은 여자가 은행에서 받은 우산을 들고 걷고 있었는데, 살짝 휘어진 다리가 괄호 모양으로 바닥을 끌면서 지나갔다. 그녀의 몸통과 다른 곳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앙상한 다리가 치마를 팽팽하게 만들었다가,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밀렸다가 바닥을 찼다. 그녀와 함께 버스정거장에 섰다. 우산들도 동시에 팔을 접고 얌전히 다리 옆에 섰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는 명품 가방의 로고를 흉내내지도 못한 조그만 가방을 든, 키 작은 여자가 있다. 두 손바닥보다 작은 가방에서 '스카치 브라이트'의 손잡이 부분이 삐져나와 있다. 서늘한 날씨에 붉은 얼굴을 하고 머리를 묶은 스카치 브라이트 여자는 핸드폰을 지켜보고 있다. 스카치 브라이트를 가방에 꽂고 버스를 기다리는 그 여자는 파출부다. 하루 4시간, 아파트 한 채, 3만 5천원 때문에 버스를 기다리면서 중학생 아들 때문에 집 냉장고에는 반찬을 대기시켰다. 한참 전에 떠난 겨울은 손에만 머물러서, 검붉어진 그 손은 항상 건조하고 따끔거린다.

 변두리를 순환하는 버스를 타고, 남겨둔 현금으로 혼자 DVD방에 갔다. 어두운 방에서 <Up>을 보고 소리내어 울었다. 사랑과 같은 것이라고 평가받는 행위로 발생하는 충격을 흡수하기 위한 쿠션을 최대로 이용하며 슬퍼했다. 여기보다 더 어두운 영화관에서 그와 같이 봤을 때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빠뜨리지 않고 울었다. 부은 눈으로 집에 돌아와서 나는 이 글을 쓴다. 너무 무거우면 버리고, 소화가 안 되면 게워내고, 잊지 못하면 발설해야 한다. 다 스며들지 못한 것이나, 다 마르지 못한 것이나 그대로 두면 썩기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서사가 아닌 상황이고, 기록이 아닌 나머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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