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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의 여자 2

 시간이 조금만 지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른 것들을 보면 새로운 생각들이 나타난다. 잠시를 기록하는 데서 만족하지 않으려면 긴 호흡이 필요하다. 기록하지 못한 것에 연연하지 않고, 나를 스쳐간 생각들이 내 생각임을 믿어서 다시 내게 자연스럽게 돌아오게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래서 주인공이나 말하는 사람을 '나'로 두는 것은 어느 정도 위험한 일이다. 글을 쓰기 전에 '나'는 아직 없다. '나'는 경험하고 생각하고 기록했던 내가 아닌 등장인물인데, '나' 라고 한 번씩 말할 때마다 태어날 필요도, 생길 필요도 없었던 나는 점점 사라지기 때문이다. 나는 내 몸으로 나를 지우면서 '나'의 이야기를 쓴다. 그러니까 '나'라고 이야기할수록 나를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 결국에는 내가 엄청나게 얇고 희미해지리라는 것을 알면서 쓴다.

 사실은 이야기 안에 '나'를 두지 않는 것이 좋다. 오히려 그래야 쓰는 나도 그게 내 이야기라고 착각하기 쉽고, 오히려 나는 일부러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진짜 생각들을 그, 그녀, 혹은 그것의 것인 양 솔직하게 적을 수 있을 것이다. 문장의 장난, 나의 장난. 단어의 장난인가? 하지만 '나'를 쓰지 않고 글을 이어나가기에 나는 너무나 편협하다.

 해가 빛나는 낮에 화려한 상점들을 웃으며 돌아다니는 젊고 예쁜 여자들을 보고 다들 한 마디씩 했다. 저 여자는 돈 많은 남편을 둔 예쁜 아내거나, 돈 많은 아빠를 둔 예쁜 딸이거나, 술집 여자일 것이라고 말했다. 술집 여자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사라지는가? 그녀들은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고,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가? 나는 돈 많은 남편도 돈 많은 아빠도 없었으므로 술집 여자가 되어볼 수는 있었다. 찬란한 낮에 밝은 상점에서 걱정 없이 돈을 쓸 수 있다는 것에서부터 추락을 감지되었다. 더 많이 추락할수록 더 많이 쓸 수 있고 더 깊이 내려갈수록 더 즐거운 낮을 보낼 수 있으리라.

 그리고 나머지는 호기심이었다. 호기심의 자루를 쥐는 쪽에게는 더없이 흥미롭고 찬탄할 만하지만 호기심의 보이지 않는 날을 맞아야 하는 쪽에서는 당혹스럽고 모욕적인 일을 벌이는 것. 호기심 때문에 어떤 벌레는 찢기고 어떤 라디오는 분해되었다. 호기심은 시간과 장소의 제약이 덜할수록 목표에 강하게, 정확하게 집중할 수 있다. 호기심은 마음이 아니고 어떤 종류의 자세이다. 호기심은 대화하는 법을 모르므로 그의 상대, 그의 목표에게 아무 것도 알리지 않는다. 다른 이들에게도 호기심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으면서 자기가 발견한 것, 연약하거나 친절해서 자기가 접근할 수 있었던 그것에게서 빼앗아 온 것을 잘린 귀들처럼 지니고 있다가 자랑하는 법만 알고 있다. 이제 나는 철저하게 계획된 호기심을 실행하려고 한다. 이 활동은 자유로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떤 시간에, 어떤 장소에서 어떤 사람을 파헤치고 어떤 것을 가지고 나올 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솔직히 이야기하면, 나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너무 많은 것을 예상하고 있었는데도, 나의 자세는 호기심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너무 단단해져 있었음에도 욕심을 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르바이트를 구할 수 있는 웹사이트를 찾았다. 술집 아르바이트를 거기서 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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