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디 브라운, <관용> 1, 2장

웬디 브라운, <관용>

 

관용: 탈정치화 담론

 

-문제제기: 현대 미국에서 통용되는 관용 담론은 어떤 종류의 정치적 담론이며 어떠한 사회적 정치적 효과를 낳고 있는가? 관용담론에 대한 분석적 연구는 오늘날 서구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식민주의 제국주의의 긴밀한 결합관계를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가?

-관용을 목적과 내용, 행위주체와 대상에 따라 다양한 역사적 지리적 변형태를 가지는 정치적 담론이자 통치성의 실천으로 이해해야.(푸코의 통치성 개념은 공식적인 정치영역에 한정되지 않는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합리성을 통해 행위의 지도를 조직하는 것.)

-9/11 이후 활발히 등장한 문화와 문명, 근본주의와 민족주의, 이슬람 세력에 대한 정치적 수사의 결과 미국 내 관용 담론이 크게 변화. “세계시민주의적 서구 사회와 근본주의적 타자들”이라는 대립쌍. 제국주의적 자유주의 통치성. 스스로를 보편적인 가치이자 공명정대한 실천으로 여기면서 특정한 믿음이나 행동을 문명화된 것과 야만적인 것으로 규정. 이러한 중립성 신화는 부르주아 프로테스탄트 규범에 깊숙이 매몰되어 있다.(개인의 도덕적 자율성)

-후기 근대적 통치성의 한 양식으로서 자유주의적 원리들의 보편적 지위에 도전하는 사회 내부의 집단과 초국가적인 비자유주의 세력을 연결 결합시키고 이 둘을 동시에 길들이려는 시도.

-하지만 관용을 지금의 지위에서 끌어내리는 작업이 폭력을 줄이고 시민 간의 공존을 가져오는 데 있어서 관용이 기여해온 모든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관용과 권력이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분석은 관용의 지위를 초월적 덕목에서 끌어내려 자유주의적 통치를 구성하는 역사적인 요소로 재조정 할 뿐.

-오늘날 관용은 법에 의해 인가된 시민의 혹은 사회의 실천이지만, 그 실천은 성문화되거나 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게 시민의 실천으로서 관용은 적용되는 문화-정치적 영역이 합법적이라고 규정된 영역 내부에 존재. 이는 관용이 자유주의적 법치와 평등의 대리보충으로서 작동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어렵게 만들고, 권력과 규제의 실천을 파악하기 어렵게 한다.

-개인적 윤리로서 관용은 대부분 긍정적. 정치적 담론으로서 관용은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규범들을 부과하는 행위이며, 관용의 대상이 열등하고 주변적이며 비정상적인 이들로 표지하는 일, 상대가 관용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판단될 경우 부과할 수 있는 폭력행위를 사전에 정당화하는 기제. 이 둘은 상호작용.

-관용의 탈정치화 기능.(불평등 종속 주변화 사회갈등 같이 정치적인 분석과 해결책을 필요로 하는 문제들을 한편으로는 개인적인 문제로,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적 종교적 문화적인 문제로 이해하려는 시도.) 관용 담론은 사회적 갈등을 상이한 정체성 간의 마찰로 환원시키고, 종교적 종족적 문화적 차이가 그 자체로 갈등을 내재하고 있다고 주장. 관용 담론은 차이와 정체성의 자연화와 존재론화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음. 관용의 대상을 관용하는 주체와 태생적이고 본질적인 차이를 가진 존재로 이해할 수밖에 없고, 갈등과 마찰은 이러한 차이로 인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제시되며, 따라서 대안은 참는 것 밖에 없다. 이렇게 정치현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그 현상이 등장하게 된 역사적 배경과 그 현상을 조건 짓는 권력의 문제를 배제. -관용은 이제 자유주의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정치적 입장을 초월하여 옹호해야 하는 단어. 불관용이 백인 사회의 편협함이 아니라 야만적ㆍ반서구적ㆍ폭력적인 근본주의를 지칭하는 용어로 변화하면서 탈정치화가 심화.(서구, 자유민주주의, 계몽, 근대성 같은 개념들과 동의어)

-관용이 유일한 탈정치화 담론은 아니며 자유주의, 개인주의, 시장합리성, 정치의 문화화와 결합. ①자유주의: 공식적인 정치적 문제 이외의 문화적이고 사적인 문제들은 자연적이거나 개인적인 것으로 간주. ②개인주의: 개인의 믿음과 행동 그리고 개인의 성공돠 실패를 강조하는 미국 문화. ③시장합리성: 기업가 담론과 소비자 담론은 인간의 모든 욕구와 인간관계를 합리적인 기업가나 소비자의 선택으로 설명함으로써 이러한 욕구와 관계를 구성하는 권력의 문제를 비가시화. ④정치의 문화화: 탈냉전 시대의 모든 정치적 갈등은 문화의 문제로 환원. 그리고 이를 넘어 해독제로서 자유주의를 필요로 하는 하나의 문제로 구성. 자유주의의 이중적 책략(한편으로는 자신의 원칙을 보편적인 것으로 제시하고, 다른 한편으로 문화를 사사화). 문화에 지배받지 않으면서 모든 문화와 종교에 안착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적 원리로서 자유주의. 이로써 자유주의의 제국주의적 야망과 실천의 문제를 타인을 강제로 해방시키는 것이 자유주의 원칙과 일치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의 문제를 둘러싼 논의로 환원해버리는 결과.

 

2장 관용: 권력의 담론

 

-tolerate: 고통이나 곤경을 견디는 행위, 무언가를 허락하는 행위, 타인의 의견이나 행동을 관대하게 수용하는 태도.

-관용은 위협적인 내부의 타자를 편입시키고 규제하는 하나의 방식. 데리다가 말한 대리보충(동일성과 차이, 내부와 외부라는 이분법을 개념적으로 잠식하는 동시에, 지배적 용어의 연속성과 통합성, 자기완결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소.) 위협적인 차이를 관리하면서 그것을 전체 속에 편입. 위협받는 전체를 지속하기 위한 하나의 독특한 방편.

-관용은 어떤 문제가 관용이 필요한 문제인가라는 유관성의 범위와, 이 범위 내에서 어떠한 부분까지 수용이 가능한가라는 도덕적 범위를 구획.

-역사적으로 점차 도덕적 종교적 진리가 형식적인 정치의 장에서 배제됨에 따라, 국지적인 진리의 장소들은 오히려 강화되고 증식하는 경향. 이와 함께 시민사회는 점차 종교, 섹슈얼리티, 문화 등에 기반한 국지적 정체성들로 조직된 장이자 이러한 정체성에 기반한 믿음과 가치체계가 표현되는 장으로 변화. 국지적 진리의 생산과 집단적이고 공적인 진리를 빈껍데기로 만드는 데 일조함으로써 도덕적 진리에 대한 상대주의를 부추김. 종교나 믿음은 인간 생애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 중 하나라고 하면서도, 관용은 이렇게 근본적인 믿음의 문제가 도덕적 절대성을 가져서도, 도덕적 우월성을 판단하는 장소가 되어서도 안 된다고 주장. 따라서 믿음은 어떠한 공적인 효과도 가지지 않는, 개인적으로 실천되고 유지되어야 할 것이 된다.

-정체성과 차이를 둘러싼 논의들은 믿음과 공적생활 혹은 국지적 적대와 보편적 관용 사이의 오랜 긴장 관계에 새로운 자극을 주고 있다. 푸코의 근대적 주체 구성 분석에 따르면, 대중 사회에서 개인을 규율하고 분류하는 방식은 믿음과 행동을 주체의 내밀한 진리로 환원시키려는 시도와 동시에 이러한 믿음과 행동에 대한 과학을 통해 내밀한 진리를 규제하려는 시도 간의 상호 교차에 기반해 있다. 이때 개인성은 규제의 도구인 지식의 기반이 된다. 흑인, 레즈비언, 유대인 같은 표지된 정체성들은 특정한 믿음, 행동, 경험을 만들어 내는 어떤 핵심적 진리의 산물로 간주.(정체성 정치의 지배적 관점과의 공모) 정체성이 타인의 진리와는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진리의 장소로 여겨지는 한, 각각의 정체성은 다른 이들이 가진 진리와 그것의 정체성이 문제가 될 때 상호 간의 대립이 인격체의 차원에서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 중요. 주체를 특정한 믿음과 의식을 낳는 요인으로 간주하는 하나의 역사적 구성을 반영하는 것. 주체와 그의 믿음, 행위를 그 자신의 신념이나 교육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기반한 물질성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바라봄. 근대의 주체 형성에 있어 성적선호나 인종과 같은 범주는 다른 믿음과 행동을 낳는 본질로 간주하는데, 이는 관용이 해결책으로 제시될 수밖에 없는 내재적이고 영구적인 조건을 낳는다. 관용 대상이 가진 차이를 규범적이고 세속적이며 중립적인 것과 대립시키고 물화함으로써 이미 주변적인 것들을 한층 더 주변화. 이렇게 특수한 주체는 자신이 그 특수한 믿음과 가치관을 포기할 때에도 여전히 주체 안에 기입된다. 계급의 부재, 계급은 관용의 대상이 될 수 없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2014/08/31 19:56 2014/08/31 1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