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에서 노동력의 재생산과 끝나지 않은 여성주의 혁명(실비아 페데리치)

세계경제에서 노동력의 재생산과 끝나지 않은 여성주의 혁명(실비아 페데리치)

 

들어가며

 

-자본주의는 노동력재생산을 위해 막대한 부불가사노동에 의존해야 하지만, 동시에 노동력비용을 줄이기 위해 이런 재생산 활동을 평가절하 해야 한다.

-맑스의 문제 ①자본주의 발달은 생산력 확장을 통한 공산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물적조건의 형성이 아닌 지구자원의 고갈이었다. ②노동자들 간의 협력을 강화하는 듯하지만 실제로 수많은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분열시킨다. ③20세기 반체제 투쟁의 주역은 유급산업노동자들만이 아니었다.

 

맑스와 노동력의 재생산.

 

-맑스는 재생산노동을 노동자의 임금으로 살 수 있는 상품의 소비와 해당 상품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으로 축소함으로써 재생산노동 문제를 가볍게 넘겼다. 맑스가 재생산노동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것은 무엇이 노동을 구성하는가와 관련하여 자본주의적 기준을 받아들이고, 유급산업노동을 인간해방을 위한 전투가 치러지는 무대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내에서 여성재생산노동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회주의 여성주의자들마저 과거에는 재생산노동의 케케묵고, 후진적이며, 전자본주의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자본가계급은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노동력 재생산에 투자하는 한편, 경공업에서 중공업으로 축적의 형태를 이동시켜 더욱 강도 높은 노동규율과 육체적으로 건강한 노동자를 원하게 되었다. 재생산노동의 발전과 그 결과 등장한 전업주부는 노동착취양식으로서 “절대적” 잉여가치의 추출이 “상대적 잉여”가치 추출로 전환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가사노동에 대한 여성들의 저항과, 노동ㆍ계급투쟁ㆍ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여성주의의 재정의

 

-1970년대 초 여성주의 이론은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유급계약노동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고, 본질적으로 유급계약노동은 자유가 없는 노동이라고 주장하는 한편, 재생산노동의 가치절하와 여성의 사회적 지위의 저평가 간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재생산노동의 발견 덕분에 자본주의적 생산은 특수한 형태의 노동자(그리고 따라서 특수한 가족, 섹슈얼리티, 번식형태)에 의존한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따라서 사적 영역을 생산관계의 영역과 반자본주의 투쟁의 영역으로 재정의 할 수 있게 되었다.

-1970년대 중반에 이르자 여성의 투쟁은 더 이상 “비가시적”이지 않게 되었고, 남성에 대한 경제적 의존, 사회적 예속, 자연화된 부불노동에 얽매임, 국가의 통제를 받는 섹슈얼리티와 생식 등 수많은 결과를 낳은 성별분업에 대한 공개적인 거부로 자리잡게 되었다.

-유엔은 여성해방의 정치를 국제자본의 필요와 계획, 개발 중에 있었던 신자유주의적 의제와 양립가능한 틀에 끼워넣었다.(아프리카에서 남성들의 환금작물/여성들의 자급지향 대립 → 화폐경제로의 통합 계획.)

-여성은 노동력이 아닌 개인들을 생산한다는 여성주의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노동력 개념 유지하는 이유. ①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생산노동은 자신의 의향에 따라 자유롭게 우리 자신이나 타인을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 ②재생산노동에 내재한 이중적인 성격과 모순(개인/개인이 보유한 노동력)을 드러냄으로써 불안정하고 잠재적으로 파괴적인 성격을 보여줌, ③포스트모던 경향에 맞서 생산과 재생산 간의 분리를 유지, ④감정노동이라는 표현은 그 지배적인 특성상 인류의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 중 제한된 일부만을 가리키고, 재생산노동이라는 여성주의적 개념의 전복적인 잠재력을 지워버린다.

 

참을 수 없는 것에 이름붙이기: 시초축적과 재생산의 재구조화

 

-세계경제의 재구조화는 다섯가지 중요한 방법을 통해 60~70년대에 불붙은 투쟁의 순환에 대응. ①노동시장의 확장. 수백만명을 토지와 일거리, “관습권”에서 유리시킨 전 지구적 “엔클로저” 과정을 통해, 또한 여성고용의 신장을 통해 세계프롤레타리아트의 규모를 역사적으로 손꼽힐 정도로 성장시켰다. ②자본의 탈영토화와 컴퓨터 혁명을 통해 가능해진 경제활동의 금융화는 자본의 거의 순간적인 세계이동을 통해 노동자들의 저항이 자본에 가한 제약을 넘고 또 넘음으로써 시초축적이 영구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조건을 창출했다. ③복지국가의 해체를 통해 노동력재생산에 대한 투자를 체계적으로 철회. ④기업이 생태계 도용 및 파괴 최고조.

-신경제질서는 신식민주의과정. 전략적인 중심은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의 취약점이자 노예제와 플렌테이션의 장소인 구식민지들. 기대수명이 짧아지고 기근, 기아, 반복적인 전염병, 심지어는 마녀사냥 등 지구상에서 사라진 줄만 알았던 현상들이 다시 나타났다.

-국제적인 자본의 계획 속에는 “제로에 가까운 재생산”의 운명을 짊어진 지역들이 있다는 결론을 내려야만 한다. 실제로 모든 형태의 생명파괴는 오늘날 원재료 획득, 원치않는 노동자들의 탈축적(제거), 저항약화, 노동비용감축을 위한 수단이다. 이는 자본주의적 관계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생명력이 가진 생산력만큼이나 중요하다.

-자본주의는 영구적인 재생산 위기를 양산한다. 만일 이 재생산 위기가 최소한 많은 북반구 지역에서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것은 자본주의가 양산하는 인간의 재난이 외부화되고, 식민지에 떠넘겨진 뒤 문화적 후진성이나 그릇된 전통과 “부족주의”에 대한 집착의 효과로 합리화되었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노동자-자본관계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이런 사건들은 자본이 노동자들을 분산시키고 유급노동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조직력을 약화시키는 힘을 꾸준히 보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 세기 동안의 노동자투쟁이 쟁취한 공산주의의 성과들이 파괴되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공공재’의 생산을 위협하고 있다.

-유목적 삶을 강요당해 항상 떠돌아다니는 노동력 집단이 성장.

-그림자처럼 존재하면서 노동하는 이 프롤레타리아트 집단은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 인구집단(노예, 연한계약노동자, 재소자, 불법체류자)의 창출이 아직도 자본축적을 위해 구조적으로 필요한 요소임을 확인시켜준다.

-전 지구적 경제의 구조화에서 창출된 새로운 생산형태가 더욱 자율적이고 더욱 협력적인 노동형태의 가능성을 마련한다고 주장했던 네그리와 하트 같은 이들의 낙관주의를 공유하기란 불가능하다.

 

세계경제에서 젠더관계와 여성노동, 재생산노동

 

-생산은 세계경제의 핵심영역에서 기술적인 도약을 통해 재구조화 되어왔지만, 가사노동영역에서는 집 밖에서 고용된 여성의 수가 상당히 늘어났음에도 노동력재생산에 필요한 사회적 노동을 크게 줄여주는 기술적인 도약이 전혀 없었다. 인간의 생산은 육체적 요소와 감정적 요소가 복잡하게 결합된 욕구의 충족과 고도의 상호작용을 요하기 때문에 많은 부분 기계화로 환원할 수 없다.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은 기술화되지 못하고 상업화와 세계화를 통해 다양한 주체들의 어깨에 재분배된 것이다. 북반구에서는 갈수록 많은 여성들이 지불노동에 참여하면서 많은 양의 가사노동이 집 밖으로 나와 이제는 임금고용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지배적인 경제부문을 차지하는 서비스 산업의 실제적인 부흥 속에 시장을 기반으로 재조직되었다. 대도시 노동력 재생산의 많은 부분, 그 중에서도 특히 어린이와 노인을 돌보는 노동과 남성노동자를 성적으로 재생산하는 일이 이제는 남반구 출신의 여성이민자들을 통해 수행되고 있다.

-전 세계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집에서 수행하는 (부불이든 지불이든) 가사노동의 양이 실제로는 늘어났을지 모른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여성의 노동일을 연장하고 노동을 집으로 돌려보낸 요인. ①세계화에서 비롯된 충격을 흡수한 집단은 세계경제의 악화와 노동력재생산에 대한 갈수록 심화된 국가의 투자철회를 자신의 노동으로 상쇄한 여성들이었다. ②가내노동의 확대. 가내노동은 구시대적 노동형태이기는커녕 오랜기간 지속된 자본주의적 전략의 하나. ③여성고용으증가와 재생산의 재구조화는 젠더노동의 위계를 없애지 못했다.

-급격하게 줄어드는 자원 앞에서 더 이상 생산성이 없다고 판단된 구성원에 대한 가족의 지원이 크게 위기를 겪게 되었음을 반영한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공유지시스템의 꾸준한 붕괴와 연결되어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는 화폐관계의 확산 속에 재생산노동과 그 노동의 주체들이 겪어온 가치절하의 표현인 측면도 있다.

-결론 ①임금노동을 위한 투쟁이나 “작업장의 노동계급에 합류”하기 위한 투쟁은 해방에 이르는 길이 될 수 없다. ②재생산의 물질적 조건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고 자본과 시장의 논리 밖에서 재생산노동과 관련된 새로운 협력의 형태를 창출함으로써 재생산을 둘러싼 집합적 투쟁의 문을 다시 여는 것이 필요하다.(토지의 탈취, 도시농업, 공동체자차원에서 지원하는 농업, 빈집점거, 다양한 형태의 물물교환, 상호부조, 대안적인 보건의 창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2014/01/14 20:41 2014/01/14 20:41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tightrope/trackback/145
  1. 안녕하세요!^^ 저는 곰탱이라고 합니다.^^ 제가 공부를 하기 위해 저승사자님의 이 글을 복사해 갔습니다. 죄송합니다. 말씀 먼저 안 드리고 복사해 가서요.. 복사를 허락해 주시면 참으로 고맙겠습니다.^^

    • 복사라면 블로그에 하신 건가요? 아무튼 뭐 괜찮습니다. 저도 지금 하고 있는 공부모임 준비하면서 발췌요약한 것뿐이니까요~

  2. 블로그에 복사한 것은 아니고요, 제 개인 PC에 복사, 저장해 두었습니다. 복사 허락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로그인][오픈아이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