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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3/14
    '불법파견 판정 그 후' 현대차 울산공장①…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과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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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파견 판정 그 후' 현대차 울산공장①…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과 고민

‘원칙’과 ‘현실’ 사이, 그 넓고도 깊은 '불법파견 판정 그 후' 현대차 울산공장①…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과 고민 고용불안과 차별해소를 외치는 적지 않은 비정규노동자들의 절박한 외침들이 이어졌지만, 지난해 9월은 우리 사회의 모순을 오롯이 안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를 둘러싼 대지각변동을 구체화한 시점이다. 정부의 비정규법안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현대자동차 울산, 아산, 전주공장 전 하청업체 불법파견이라는 서곡이 시작된 즈음이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 비정규법안은 2월 임시국회 처리도 유보된 채 또 오는 4월을 기다리고 있지만, 국내 굴지의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판정을 둘러싼 노동자들의 투쟁은 쉼없이 계속되고 있다. 어쩌면, 노동계는 물론 학계로부터도 '외면'받고 있는 비정규법안이 정말 '비정규 보호법'으로서 제기능을 하기를 기대하기보다 1만여개 직무에 대한 '불법파견' 판정 이후 사내하청이라는 간접고용 형태를 어떻게 바로잡아나갈지가 더 현실적인 과제일지 모른다. <매일노동뉴스>가 울산 현대자동차를 찾았다. 이틀에 걸쳐 '불법파견 판정 이후' 모색가능한 해법들을 고민해 본다. <편집자주> 기상관측 이래 사상 최고치였다는 폭설이 잦아든 울산, 그 곳에선 ‘봄’을 찾을 수 있을까? 정규직노조·비정규직노조의 ‘불법파견 정규직화’ 요구와 회사의 ‘공정 완전도급 전환’이라는 주장 사이의 간극을 메울 ‘답’을 얻어갈 수 있을까? 울산행을 준비하면서 품었던, 아니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노동부가 현대자동차 울산, 아산, 전주공장 127개 업체 9,234개 비정규직 직무에 대해 도급을 위장한 불법파견 판정을 내린 뒤부터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던 물음이었다. 한겨울 농성장 단전단수, 비정규노동자의 분신기도, 웃옷마저 벗어던진 채 회사 관리자들에게 항의하는 여성노동자…. 기자가 몸을 실었던 ‘역방향’의 고속철(KTX)처럼 마치 시간을 60, 70년대로 돌려버린 듯한 비정규직의 현실과 ‘불법’이라는 행정부의 지침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버티’면서 해외로, 해외로 뻗어가는 자본의 미래가 공존하는 울산에서, 해법을 구하기란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공정 완전도급 전환’ 가능한가? 먼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컨베어시스템으로 운용되는 자동차 공장에서 회사가 주장하는 ‘공정의 완전도급 전환’이 가능한지 여부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어렵다’는 것이다. 기자가 울산을 찾았던 지난 9일, 현대차비정규직노조 오민규 교육선전위원은 회사쪽의 ‘5공장 공정 완전도급 전환’ 시도에 대한 얘기부터 들려주었다. 비정규직노조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회사는 테라칸을 생산하는 51라인에서 일하는 정규직을 투산을 생산하는 52라인으로 전환배치하고, 반대로 52라인의 비정규직을 51라인으로 배치한 뒤, 51라인을 멀티라인(플랫폼 통합을 통한 어떤 차도 생산 가능한 라인)으로 개조할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5공장 내에서 정규직, 비정규직 혼성작업 등에 따른 불법파견 소지를 없애는 한편 정규직들이 파업을 해도 ‘멀티라인’을 통한 다른 차종생산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파업의 효과마저 감소시키려는 시도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오민규 위원은 52라인에 근골격계 질환자가 발생하는 등 정규직들이 꺼리는 공정도 적지 않은 데다 특히 전환배치에 대해서는 정규직노조와 협의해야 하기 때문에 이 같은 방식의 공정 합법도급(블록화) 가능성은 지극히 낮은 것으로 평가하면서도 긴장을 늦추진 않았다. 정규직노조 역시 공정 블록화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설명했다. 현대차노조 김태곤 수석부위원장은 “한 공정이 끝나고 정지한 뒤 다른 공정으로 가는 셔틀방식이면 몰라도 컨베어시스템상 라인 내에서 블록화를 추진하긴 어렵다”면서 “또한 이 과정에서 정규직들의 전환배치가 수반되는데, 우리가 불법파견을 정당화해주는 방식으로 합의를 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에 회사쪽 관계자는 여전히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강변하면서도 블록화는 정규직노조와 협의 등의 문제로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용 협력지원팀장(이사대우)은 “노동부가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한 핵심 근거는 정규직과 사내하청이 뒤섞인 혼성작업이라는 점”이라며 “유사공정을 묶는 등 공정의 순서를 바꾸는 방식으로 일정 부분을 블록화 할 수 있지만 이때 자연 노사협의가 필요한 정규직의 전환배치가 수반된다”고 말했다. 즉 일방적으로 블록화를 추진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 셈이다. 그런데 지금 현대자동차에서는 불법파견 혐의를 씻어내기 위한 블록화 문제도 있지만 시급하게 사업부별 물량 차이에 따른 시간당생산량(UPH·Unit Per Hour) 조정, 이와 맞물린 전환배치 등의 문제도 있다. 회사는 5공장 투산 52라인의 생산량을 5 UPH 올리는 대신 테라칸 51라인을 3 UPH 낮추려 하고 있다. 이 때 51라인에서 발생하는 여유인력은 270여명인데 비해 52라인에 신규로 필요한 인원은 40여명이어서 230여명이 고스란히 남게 된다. 물론 이는 정규직만 따진 수치다. 현대차노조에 따르면, 회사는 비정규직의 직무를 정규직화하고 여기에 230여명을 투입하려는 계획인데, 당장 그 공정을 맡아온 비정규직들에 대한 대책은 없는 상황이다. 현대차노조 이상욱 위원장은 “충분히 협의를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지만 뾰족한 방안은 얘기하지 않았다. 5공장만의 문제로만 풀 수 없는 과제였기 때문일까? 사업부별 물량, 넘치고 모자라고 울산에 내려간 첫 날 저녁에 만난 한 정규직 활동가는 “마침 오늘(9일)부터 휴가”라고 했다. 그가 속한 4공장 주간조 라인 노동자 1,300여명은 이날부터 한꺼번에 임시휴가에 들어갔다. 4공장은 스타렉스와 포터를 생산하는 곳인데, 내수부진 등으로 생산물량을 확보하지 못해 이달 말까지 주간조는 휴가에 들어가기로 했다. 휴가 간 주간조 대신 야간조는 2시간 잔업 없이 8시간 정상조업을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전체 매출액과 당기순이익이 전년과 견줘 각 10%, 2% 늘어난 27조5천억원, 1조7천억원을 기록했고, 국내생산 자동차 판매 역시 167만8천대로 1.9% 증가했는데, ‘물량을 확보하지 못해’ 한 달 가까이나 휴가라니….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믿기지 않는 현실은 4공장뿐이 아니었다. 5공장의 테라칸 51라인도 물량이 없어 주간조가 잔업 없이 6시간만 근무하고 나머지 2시간은 교육을 받고 있었다. 경기침체와 승합차의 자동차세 인상 등의 영향이었다. 내수위주인 에쿠스 라인 역시 수입차와 체어맨 등에 밀려 판매가 부진해 UPH를 낮추면서 비정규직의 전환배치까지 시도했고, 거의 지난 1년 동안 잔업이나 특근 한번 한 적 없이 버텨오고 있었다. 그러나 같은 공장 안에서도 물량이 넘치는 곳은 있다. 주로 내수를 담당하는 1공장 클릭, 3공장 아반테, 5공장 투산 등에서는 잔업과 특근을 밥 먹듯이 하고 있다. 현대차노조 한 관계자는 물량 넘치는 사업부에서는 한 달에 특근이 7~8개나 된다고 귀띔한다. 이처럼 차종에 따라 시장환경이 좋은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등 내부 불균형도 심각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사업부별 물량이전이나 전환배치 등 같은 정규직 조합원들 간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해소하려는 시도는 왜 가시화되지 않는 걸까? “조합원 의식이 상당히 바뀌었다. 정리해고(98년)를 겪으면서 설문조사를 해보면, 노조의 핵심과제 1순위로 고용안정을 꼽는다. 그런데 노조가 자신들 비전을 얘기 안 해주니까 노조에 대한 기대보다는 ‘언제 짤릴지 모르니 돈벌이가 될 때 쎄빠지게 벌자’는 위기감이 항상 존재하는 거다.” 민주노동자회 박유기 사무장 말이다. 하지만 같은 공장 노동자이면서 누구는 한 달 가까이 휴가를 가야 하고, 누구는 한 달 내내 잔업, 특근을 하며 호주머니를 챙기는 현실은 어떤 말로도 이해가 안 간다. 이에 대해 현대차노조 이상욱 위원장은 “다른 차종을 넣든 신차종을 넣든 해서 사업부별 불균형을 바로잡을 생각”이라며 “생산계획, 생산단계, 판매까지 염두에 두고 기준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 위원장은 ‘불균형 시정’이 단순히 물량이 넘치는 곳에서 물량을 빼는 방식, 즉 상대적으로 기득권이 있는 조합원들에게 박탈감을 주는 방식이 돼서는 곤란하며 총량고용보장 차원에서 조심스럽게 접근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미국, 중국, 인도, 터키 등 해외 공장은 해를 거듭할수록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 현재 15만대 생산규모인 미국 앨라바마 공장은 내년 30만대까지 늘릴 예정이고, 중국 베이징 공장은 올 30만대에서 2007년 60만대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25만대를 생산한 인도 첸나이 공장은 2007년까지 40만대, 현재 6만대 규모인 터키 공장은 올 11월까지 연산 30만대 규모의 자동차 모듈공장을 짓기로 하는 등 확장추세다. 박유기 민노회 사무장은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해외공장의 현지 대응력이 높아지면 현재 70%대 수준인 국내 공장의 수출비율을 점차 낮출 수밖에 없고 이는 자연 국내생산 축소로 이어져 2~3년이 지나면 국내공장 축소문제가 실제 본격화될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결국 자본은 비정규직은 물론 정규직 고용을 직접 위협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셈이다. 합의와 번복, 그리고 모듈화 하지만 이에 대한 노조의 대응은 안타까울 정도로 속수무책이다. 단체협약을 포함, 각종 노사합의서마저 지켜지지 않고 있다. 현행 단체협약에서는 ‘회사는 국내 자동차산업의 공동화 방지와 종업원들의 고용보장, 임금보장을 위해 국내공장의 생산물량을 2003년 수준(180만대)으로 유지할 것’을 명시하고 있지만 이미 생산물량은 지난해 167만4천대로 축소됐다. 또한 ‘회사는 국내 공장에서 생산하는 완성차 및 부품(엔진, 변속기)은 해외 현지공장으로부터 수입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했지만 지난해 인도공장으로부터 클릭용 입실론 엔진 3천개를 역수입한 상태다. 또한 주간조가 휴가에 들어간 4공장 노사는 지난해 6월, 소형버스 부문의 장기적인 물량확보와 고용안정 차원에서 올 초부터 터키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는 유럽 수출용 스타렉스 전량(1만여대)을 이관, 생산키로 합의했지만 회사는 이를 지키지 않았고, 5공장 노사의 사내모듈공장 설립 합의서 역시 지켜지지 않고 있다. 단협 및 합의서 불이행에 대한 노조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해 온 각 현장조직들은 지난 2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제기된 해외공장 저지와 물량나누기 대책위 구성건에 대한 진지한 검토와 계획을 세울 것을 촉구하면서 국내생산의 변동과 함께 해외공장 투입물량을 조절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상욱 위원장은 고민에, 또 고민이다. “합의사항을 지키려고 노조는 계속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합의사항 이행여부도 생산-수요문제와 결부돼 있다. 예를 들어 입실론 엔진 역수입 문제를 보자. 단협상 역수입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돼 있다. 원칙이란 것은 불가피한 경우 협의가 가능하다는 뜻인데, 조합원들은 수입하는 것 자체가 단협 위반이라고 한다. 그런데 차가 팔리든 말든 단협만 지키는 게 노조가 할 일인가. 단협도 중요하지만 당장의 고용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은가.” 실제 유럽 수출 증대로 추가물량이 요구되는 모닝(기아차) 엔진을 추가로 생산한 만큼, 그 만큼 부족해진 클릭(현대차)용 입실론 엔진 3천개를 인도공장에서 들여온 것인데, 단협을 엄격히 해석해서 3천대를 생산하지 말자는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3천대만큼의 고용을 도외시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와 함께 단협에는 ‘회사는 세계경제의 불황 등으로 국내외 자동차시장에서 판매부진이 계속돼 공장폐쇄가 불가피할 경우 해외공장의 우선 폐쇄를 원칙으로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점차 내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고, 해외공장은 해를 갈수록 괄목상대한 성장을 해 나가는 상황에서 이 조항의 실효성을 어느 정도 담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와 함께 주요 핵심 기능을 표준화시켜 필요한 기능부분을 미리 조합해 최종 조립과정을 간편하게 만드는 모듈(module)화의 진척 역시 고용불안과 노동강도 강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급히 대책마련이 요구된다. 지금도 회사는 중간 조립단계인 모듈을 바깥(사외)으로 빼내고 있고, 모듈화에 따른 완성차 조립 공정의 공정수 감소를 초래하고 있다. 현대차노조는 “자동화를 증대시켜 작업에 필요한 인원을 감소시킬 뿐 아니라 사외에서 품질테스트까지 하고 들어옴으로써 그것과 연동돼 있는 간접부서 일자리 또한 감소할 수밖에 없는 상태”라며 “일자리가 없어지는 상태에서 생산량을 늘리니 UPH는 상승하고 이는 결국 노동강도 강화로 이어지게 된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달 24일 발간된 현차노조신문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이미 투산 36%, NF 36.5%, MC 35% 등이 모듈율 36%를 달성했다. 올해 2공장에 도입예정인 신차 CM은 37.4%를 계획하고 있고, 아산에 투입예정인 TC는 36%를 계획하고 협상 중이다. 문제는 모듈로 이뤄지는 외주화가 이미 심각한 수준이라는 데 있다. 모듈율에 일관된 기준이 없고 회사 입맛대로 모듈율이 정해지다보니 현장에서 각기 적용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사업부별 대응 또한 천차만별로 이뤄지고 있다. 스스로 잡은 발목 … 16.9%, 40% 이 뿐 아니다. 노조가 스스로 발목을 잡는 상황도 연출되고 있다. 현대차노조는 지난 2000년 6월, 직접 생산라인 내 사내하청 투입을 16.9%까지 합법적으로 보장해 주는 내용의 ‘완전고용보장합의서’를 체결했다. 98년 정리해고 악몽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회사가 무분별한 하청 투입을 실시한 데다, 현장에서는 노조도 모르게 사업부별 대의원들이 고용조정시 1차 대상이 될 하청 투입에 합의하는 사례가 빈발하면서 ‘가이드라인’을 정해야겠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결과는 제어하기 어려울 정도의 무절제한 사내하청 투입으로 나타났다. 결국 이 합의를 했던 정갑득 위원장을 포함한 전현직 노조위원장들은 지난 1월 “사내하청 16.9% 비율을 정하도록 합의한 것은 잘못된 관행”이었다며 “그동안 불법파견 문제를 근본적으로 저지하지 못하고 때로는 방치하고 때로는 부분적인 합의를 해준 사실을 국민 앞에 고백하고 깊이 반성한다”고 밝혔다. 비단 합의 자체에 대한 반성만은 아니다. 현대차노조 김태곤 수석부위원장은 “만약 합의를 하지 않았더라도 하청은 늘어났을 것이다. 이는 공동의 책임이다. 16.9% 강제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있었어야 했는데…”라며 합의 자체보다 이를 지켜내기 위해 노조가 제대로 견제, 감시하지 못했던 부분을 아쉬워했다. 40%의 문제도 있다. 2003년 현대차 노사는 직영인원 충원시 인원의 40%를 사내하청노동자로 채우도록 합의했다. 당시 노조 사무국장이었던 민노회 박유기 사무장은 “신규 채용의 일정규모를 사내하청으로 채용토록 해 ‘하청의 정규직화’라는 긍정성이 없지 않지만 제도운용 과정에서 하청업체 사장들에게 추천권을 부여하는 등 특권을 줌으로써 본 취지를 상실했다”며 “제도를 보완하든지, 아니면 차라리 폐기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현재 노조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대차노조 서동식 조직강화팀장은 “업체 사장 추천권을 없애는 등 제도보완은 추진했지만 (40% 할당이) 근본적인 차별해소 방안이 아닌데다 40%에 포함되고 싶은 하청노동자들의 정당한 노동기본권 행사마저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현대차비정규직노조(위원장 직무대행 조가영)는 지난 1월18일부터 시작한 파업과 80여명의 조합원이 함께 하는 5공장 탈의실 점거농성을 두달 가까이 이어가고 있다. 농성자 전원 해고와 폭행, 집회금지가처분, 안기호 위원장 공장 내에서의 체포·구속 등에 시달리면서도 농성과 파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또한 정규직노조와 함께 꾸린 원하청 연대회의를 통해 이번 투쟁의 목표와 구체적인 전술을 마련, 올 임단투와 맞물린 사업을 펼쳐나갈 방침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불법파견 정규직화와 차별철폐, 그리고 조직화이다. 하지만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는 사업부별 물량부족 또는 과잉, 합의사항 미이행, 가속화되는 모듈화, 해외공장 생산량 확대 등은 과연 이들이 내건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난관을 예상케 한다. ‘불법파견 정규직화’라는 원칙과 시장의 역동성을 내재한 자본의 움직임이라는 현실 사이에 놓인 깊고도 넓은 '그 사이'를 어떻게 좁혀낼 것인가.


2005-03-14 ‘첩보전’ 방불케 하는 노동자 사찰·감시

<심층취재> 현대중공업 경비대의 실체①…“나는 ‘추적조’, 현중의 개였다” 최근 들어 현대자동차 경비대가 점점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다지만, 뭐니뭐니 해도 ‘폭력 경비대’의 원조는 현대중공업 경비대다. 경비조직을 갖고 있는 대부분의 기업이 용역을 쓰는 것과 달리, 현중은 자체 경비대를 운영하며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매우 조직적이고 공격적으로 대응한다. 현중이 몇 년째 선박수주 물량 세계 1위를 이어가고 있고, 작년엔 경실련 주최 ‘경제정의기업상’과 일본능률협회의 글로벌 경영자상 최고경영자 대상을 수상하는 현실이지만, 경비대를 통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노동자 사찰 및 폭행 의혹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레이버투데이>는 현중 경비대를 심층취재한 기사를 3회(①‘첩보전’ 방불케 하는 노동자 사찰·감시 ②경비대 역사와 ‘폭력적’ 운영방식 ③경비대를 둘러싼 각종 의혹들)에 걸쳐 게재한다. 현중 경비대의 베일이 하나둘 벗겨질 때마다, 화려한 외양 속에 가려진 한국 대표 기업의 ‘글로벌 경영’의 실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박일수씨가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외치며 분신자살한 후 두 달을 채워 가던 2004년 4월, 조광한씨가 하청노조 사무실을 나섰다. 2월 23일 하청노조 조합원임을 공개선언한 후 해고당한 조씨가 노조 가입 권유차 동료 소지공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오토바이 두 대가 따라붙었다. 조씨가 탄 차가 멈추면 오토바이도 멈췄고, 커브를 돌면 오토바이도 따라 돌았다. 조씨는 직감적으로 미행당하고 있음을 느꼈다. 동행 중이던 방송사 기자가 차를 세우고, 당황하는 오토바이 운전사들에게 미행 이유를 물었다.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하던 두 사람은 오토바이를 몰고 황급히 도망쳤다. 며칠 뒤 아침, 조씨는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를 데려다 주러 학교로 향하고 있었다. 또 누군가가 뒤따라왔다. 일정 거리를 두고 졸졸 따라오는 그 사람을 보고, 아이가 물었다. “아빠, 저 아저씨 누구예요?” 고민 끝에 조씨가 대답했다. “응, 아빠 보디가드야.” 박일수씨 사망 직후 현중 하청노조를 중심으로 노동자 탄압 중단 및 비정규직 차별철폐 요구가 거세게 분출하자, 울산 동구 골목골목엔 오토바이 부대가 깔리기 시작했다. 노동자들과 사측 간의 대립이 첨예해지면서, 회사는 경비대들을 풀어 요주의 인물들을 감시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모든 동선을 뒤쫓았다. 박일수씨 대책위 관련자들의 동태를 파악하고 움직임을 하나하나 체크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하청노조 사무실 주위엔 사복을 입은 경비대원들이 상주했다. 노조 관계자는 “작년 2월부터 4월까지 사무실 앞뿐 아니라 인근 골목마다 경비들이 지키고 있다가, 사무실에서 누가 나가면 오토바이를 타고 바로 따라붙었다”고 말했다. “4월 14일에도 그랬다. 열사 투쟁 끝나고, 구치소에 수감돼 있던 노조 위원장을 면회하러 사무실을 나서자 미행이 붙었다. 한참 가다가 안 되겠다 싶어 차에서 내려 오토바이를 세웠다. 따져 묻는 우리의 추궁에 헬멧을 벗은 경비는 ‘뭐 다 알면서 그러냐’며 겸연쩍어 하더라.” 경비대의 감시는 현중 노동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박일수씨 대책위와 관련 있다는 의심만 들면 여지없이 감시대상에 올랐다. 이영도 민주노총 울산본부 정책국장은 자신이 미행당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뒤쫓는 경비대를 붙잡아 경찰에 넘기려다 한바탕 몸싸움을 벌여야 했다. “오토바이가 붙길래, 차를 경찰서 근처로 몰았다. 일부러 급정거해 차를 세우자, 미처 대응하지 못한 경비를 붙잡을 수 있었다. 경찰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경비 힘이 워낙 좋아 결국 놓치고 말았다. 완강하게 뿌리치는 완력을 내 힘으론 당할 수 없었다.” 경비대의 감시와 미행은 올해에도 계속됐다. 박일수씨 1주기를 맞아 ‘분위기’가 다시 고양될 것을 우려한 회사는, 1주기가 되던 2월 14일을 전후해 약 보름 가량 하청노조 사무실 근처에 진을 쳤고, 그 과정에서 노조원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첩보전’ 방불케 하는 노동자 사찰 ‘수위’ 정도의 역할을 하는 일반 기업 경비들과 현중 경비를 구별짓는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경찰도 못 따르는’ 노동자 사찰 및 감시 능력의 ‘탁월함’이다. 현중을 매개로 노동운동에 깊숙이 관여한 ‘죄’로 감시와 미행의 위협에 시달린 사람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현중 경비대의 조직적 노동자 감시는 비단 박일수씨 사건 전후에만 불거진 게 아니다. 20년 이상 현중에 몸담아 온 한 노동자는 “경비대의 감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며 그 ‘역사성’을 되짚었다. 전직 노조 간부로 “노조의 힘이 특히 강했던 90년대 초엔 그 정도가 훨씬 심했다”고 말하는 그 역시 “움직일 때마다 경비들이 따라 붙는 상시 감시 대상”이었다. 현중 경비의 노동자 사찰은 그의 말처럼 ‘전통’을 자랑한다. 노조가 실용주의 노선을 강조하며 회사측과 협력관계로 돌아선 95년 이전만 해도, 현중 노조는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노조 가운데 하나였다. 때문에 노조가 창설된 87년부터 회사는 매우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노조 핵심 인물들을 감시해 왔다. 경비대의 활동이 처음 공개적으로 드러난 것은 지난 91년 10월이다. 당시 울산지원에서 열린 전 현대그룹노조총연합 간부의 집시법 위반에 대한 3차 공판에 검찰쪽 증인으로 나온 경비대원 3명의 진술을 통해서다. 당시 이들은 “집회 때면 밤 10시라도 시위대 속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얼굴을 정확히 식별할 수 있을 만큼 지근거리에서 감시 대상자의 활동을 면밀하게 파악해 왔다”고 밝혀, 충격을 줬다. 현중 경비대는 그러나 여전히 많은 부분 베일에 싸여 있는 게 사실이다. 현재 울산 지역 노동자들 사이에서 현중 경비대의 ‘활약’은 상식으로 통하지만, 문제가 될 때마다 회사는 항상 ‘사고를 친’ 경비와의 관련성을 부인해 왔다. 노동자들 또한 오랫동안 감시당하면서 체득해 온 ‘경험적 지식’ 외에, 경비대의 세세한 활동 시스템에 대해서는 ‘수차례 부대끼며 안면을 튼’ 경비대원들의 입을 통해 부분적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레이버투데이>는 현중 경비대의 노동자 감시·사찰 ‘노하우’를 매우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취재 과정에서 한때 직접 ‘추적조’로 뛰며 회사가 ‘찍어 준’ 요주의 인물들을 밀착 감시했던 한 퇴직 경비대원을 만난 것이다. 그의 증언은 가히 충격적이었고, 그가 털어 놓은 추적조 운영 시스템은 ‘첩보전’을 방불케 했다. “밥을 벌기 위해 약자를 탄압할 수밖에 없다는 데 회의를 느껴” 사표를 썼다는 김주홍씨(가명)는 자신이 경비대 추적조로 활동했다고 밝히고, 스스로 겪었던 경비대의 실체를 낱낱이 공개했다. 김씨의 증언을 통해 <레이버투데이>는 과거 경비대를 둘러싸고 떠돌던 일부 소문들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기사에서는 김씨의 증언 중 노동자 감시·사찰과 관련한 부분만 우선적으로 소개한다. “경비대에 비하면 경찰은 경찰도 아니다” 추적조 운영과 관련, 김씨는 회사가 ‘불순분자’를 찍어 주면 현중 경비대는 전담 미행을 붙여 24시간 감시체제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추적조는 오토바이를 잘 다루고 똘똘한 사람 위주로 선발했는데, 감시 대상을 ‘밀착 마크’하는 추적조 특성상 조별로 움직이는 추적조 인원은 필요에 따라 늘고 줄었다. 경비대에 대한 대우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김씨가 일하던 당시만 하더라도, 경비대 조원의 월급은 부장 월급을 상회했다. ‘착실한’ 경비일 경우, 몇 년만 고생하면 집 한 채 살 정도의 돈을 모을 수 있었다고 한다. 24시간 감시하고 지키느라 노숙도 불사해야 하는 일의 특성을 감안해 오토바이 연료비, 식대 명목으로 추적조에겐 별도의 수당이 지급되기도 했다. 김씨는 “우리에 비하면 요즘 경찰은 경찰도 아니다”란 말로 추적조 사찰력이 ‘최고 수준’임을 강조하는 한편, 자신을 포함한 경비대원들을 “길 잘 들인 현중의 개”라고 표현했다. 회사의 명령에 따라 “온갖 더러운 일들”을 해야만 했던 그의 과거에 대한 착잡한 소회였다. 다음은 김주홍씨와의 인터뷰 중 일부다. -추적조는 말 그대로 추적만 했나? “일반적으로 그렇다. 24시간 붙어 있어야 하니까, 추적일만 해도 벅찼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추적조가 교체될 때도 있었다. 얼굴이 알려지면 바뀌고, 놓쳐서는 안 될 사람을 놓치거나 하는 큰 실수를 해도 바뀌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엔 거의 추적일만 계속했다. 뽑을 때도 얼굴 많이 안 팔린 사람들로 뽑았다. 그래야 추적을 해도 잘 모르니까. 나머지 경비들은 각기 자기 일상 업무가 있어서, 평소엔 그 일하다가 일 터지면 동원됐다.” -추적조 운영체계는? “한 조가 된 조원들은 해당 감시 대상에서 한 시도 떨어져서는 안 된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거다. 때로는 대 놓고 감시자 옆에 같이 걸어가기도 했다. 어쩌다 알아보면 능청스럽게 ‘같이 갑시다’ 하기도 하고. 조원들끼리는 임무 교대할 때까지 지금 위치가 어딘지 수시로 연락했다. 임무 교대도 다른 경비들과 달리 회사에서 하는 게 아니라, 추적 중인 현 위치에서 했다. 또 무전기나 전화를 사용해 회사 정문으로 평균 한 시간 단위로 상황을 보고했다. 그게 기본이다. 교대한 후에는 회사로 들어와서 그날 있었던 내용 모두를 서면으로 기록해 제출했다.” -각 조가 전담 마크 하는 사람들이 조별로 정해져 있었나? “그렇다. 내가 일할 당시 감시 대상은 회사에서 정해 줬다. 총무부 윗사람들(현중 경비대는 총무부 소속)이 요주의 인물이라고 찍어 줬다. 그 사람들을 춘하추동 상관없이 1년 365일 풀로 쫓아다녔다. 나 있을 땐 20여명 정도가 추려진 ‘블랙리스트’가 있었다. 때론 위에서 ‘저 사람 좀 조져라’며 ‘특별주문’ 하기도 했고, 그럼 밖에 나가서 대 놓고 조지는 거다.” -365일 밀착 추적은 어떤 시스템으로 이뤄졌나? “모씨가 지금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 그 일상생활을 일일이 다 체크하는 거다. 회사 들어갔다 나온 시간 ‘체크’, 현재 울산 어디에 있다 ‘체크’, 건물 안에 들어갈 경우 몇 시에 들어갔다가 몇 시에 나왔고 누굴 만났다 ‘체크’, 선전물 만들러 어떤 인쇄소에 들어갔고 안에서 뭘 하고 있다 ‘체크’….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모든 생활을 파악했다고 보면 된다.” -본인은 누구를 담당했나? “정○○, 박○○…. 이름들이 특이해서 아직 기억하고 있다.” -놓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은데. “오토바이 타고 추적하다가 오토바이 기름이 떨어지면 오토바이 버리고 택시 타고 가는 거다. 그러다 어쩔 수 없이 놓치면, ‘행불처리’ 하고 보고했다. 하지만 놓칠 가능성을 최소화시키는 시스템이 있었다. 이를 테면, 감시 대상인 노동자가 회사 안으로 들어가면, 이 사람이 어느 문으로 나오는지 항상 정문에 보고하게 돼 있었다. 현중이 문이 다섯 갠데, 만약 정문으로 들어갔다가 ‘중전기문’으로 나온다고 하면, 중전기문에서는 이 사람이 문을 통과하기 전까지 말을 걸면서 잠깐 잡아 놓는다. 담당자가 그쪽으로 따라 붙을 수 있는 시간을 벌어 주는 거다.” -매우 조직적인 운영이다. “‘조직적인 정도가 아니다. 거의 첩보전 수준이었다. 첩보영화를 생각하면 된다. 요즘 경찰들이 하는 것보다 더 나았다. 우리가 보기에 요즘 경찰은 경찰도 아니다.” -감시 대상이 집으로 완전히 퇴근하면 어떻게 하나? “집 앞에 오토바이 세워 놓고 외투 입고 날밤 까는 거다.” 현중 “모르는 일이다” -추적조가 하는 일은 밀착감시 외에 또 뭐가 있었나? “정보수집도 했다. 어디 모여서 집회를 하면, 근처 건물에 올라가서 숨어서 망원렌즈로 쫙 당겨서 사진을 찍었다. 마이크로 집회를 하니까, 녹음하면서 속기도 했다. 음악을 크게 틀어 놔서 잘 못 알아듣겠다 싶으면, 그 부분엔 무슨 음악이 나왔다는 것까지 다 적었다.” 굳이 추적조가 아니더라도 경비들은 현중을 상대로 한 모든 집회현장을 촬영하고, 집회 도구들을 빼앗기도 한다. 회사 안이나 인근에서 작은 선전전이나 피켓시위를 하려고 하면, 경비대원들은 승합차를 타고 다니며 기동력 있게 기물탈취와 사진촬영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광한씨를 비롯한 노동자들은 이를 두고 회사가 징계나 처벌을 위한 증거자료를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요즘도 아침마다 선전지 돌리면 그걸 사진으로 찍어서 일일 보고를 한다. 최근 정규직 노동자 중에 회사가 징계 절차를 밟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유 중에 하나로 ‘하청노조 홍보물 배포 몇 회’ 이런 게 적혀 있었다. 경비들 사진촬영의 위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추적이나 정보수집이나 모두 불법 아닌가. “우리가 하는 일 중 불법 아닌 일 없었다. 그래도 이런 일로 처벌받는 거 한 번도 본 적 없다. 회사는 자기가 추적조 가동을 지시했으면서, 문제가 생기면 나 몰라라 하며 상관없는 일이라고 발뺌했다.” -사내 노동자 감시는 어떻게 이뤄졌나?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지만, 보직 변경된 경비들을 이용되기도 했다. 경비 중에서 괜찮은 사람이다 싶으면 회사에서 다른 부서로 뽑아가는 경우가 있었다. 그렇게 뽑아간 경비들을 회사는 각 포인트 마다 심어 놓고, 동료 노동자 동향을 파악해 보고토록 했다. 외형상 더 이상 경비가 아니라 옮겨간 부서 인원이었지만, ‘회오리바람’이 한 차례 돌 분위기다 싶으면 전화로 관련 정보를 위쪽에 수시 보고하도록 했다.” -보직 변경한 마당에 그런 요구까지 따라야 하나?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만큼 개가 돼 줬으면 됐지’ 하며 보직변경 후엔 완강하게 선을 긋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 문제의식 없는 사람들은 평생 윗사람들에게 딸랑거리며 사는 거다.” -왜 그만 뒀나? “약자한테 미안했다. 위에서 지시받고 어쩔 수 없이 하긴 했지만, 가슴 아팠다. 후회도 많이 된다. 나를 비롯한 경비대들은 회사의 온갖 더러운 일 처리하는 ‘오물처리반’이자, 잘 훈련된 ‘개’였다.” 최근 현중의 추적조 가동은 예전만큼 활발하지는 않다. 직영노조 성격상 노조가 회사와 마찰을 빚는 경우가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반면 하청노조가 사측과 강하게 대립하는 요즘엔, 경비대의 사찰과 감시도 하청노조에 집중되고 있다. 김씨는 박일수씨 분신사건과 관련해 하청노조와 대책위 관계자들에게 경비대 미행이 집중적으로 붙었던 것처럼, “큰 건만 생기면 언제라도 추적조가 가동된다고 보면 된다”고 되풀이해 강조했다. 현중측은 그러나 이러한 증언들과 관련 “금시초문”이라며 추적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경비대와 관련한 각종 의혹들에 대한 해명을 듣고자 총무부 산업보안팀 소속의 최 아무개 경비대장(직급 : 차장)과 전화인터뷰를 시도했다. 인터뷰 자체를 매우 불편해 하던 최 차장은 “전화로 이야기할 사안이 아니”란 말만 되풀이 하다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사내하청노조를 포함해 박일수씨 대책위 관계자들을 경비대가 감시·미행했다는 증언들이 많이 들린다. 해명이 필요할 것 같다. “그렇지 않다.” -그런 일 없다는 뜻인가. “그렇다.” -그럼 미행 관련 증언들은 사실이 아닌가? “아니…, 그건 전화로 말할 사안이 아니다.” -답변 부탁한다. “시간도 오래 지나고 해서….” -올초 박일수씨 1주기 때도 그런 일 있었지 않나. 사진 증거가 다 있다. “무슨 올초 말인가. 금시초문이다.” -어땠든 경비대와는 무관한 일이란 말인가? “그렇다.” -한 가지 더 묻겠다…. “미안하다. 더 이상 말 못 하겠다.” (전화 끊음) 최 차장의 부인과 달리, 과거 추적조 운영에서 최근 박일수씨 대책위 관련자 미행까지 경비대의 노동자 사찰과 감시는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현중 사측의 지시에 따라 저질러졌음이 증명되고 있다. 이는 울산 지역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전혀 새로울 것도, 더 이상 충격적일 것도 없는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이다. 하지만 ‘그 상식’을 유독 당사자인 현중만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어, 세계적 기업이라는 ‘양지’ 이면에 폭력적 노무관리란 ‘음지’를 감춘 현중의 ‘글로벌적 위상’이 앞으로 얼마나 튼실하게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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