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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하나가 내게 물었다.
"네 이름은 꽃이야. Rose of sharon. 어떤 꽃인지 본 적 있어?"
내 이름을 꽃에서 따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사진으로도 그 꽃을 본적이 없다. 무슨 색인지도 어떤 모양인지도 알 턱이 없다. 이 이름을 내게 준 나의 아버지도 그 꽃을 본 적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책에서 가져온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논쟁을 위해서 쓰여진 책에서 가져온 이름이기 때문이다. 내 이름이 도대체 어떤 꽃을 가르키고 있는지, 각 언어권별로, 또는 학자들 별로 치열하게 싸웠다고, 그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당연하게도 나의 아버지는 그 꽃을 알수가 없었다. 그냥 어떤 꽃이겠거니 상상이나 해보았을 것이다. 몇 번 입으로 그 이름을 발음해 보았을 것이다. 샤론,샤론,샤론. 이 발음의 어떤 모양이 그를 매혹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그 울림을 내게 주었다. 어쩌면 그것은 어떤 예언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너는 책으로부터 나왔고, 책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나는 본래 어떤 기록의 일부였다. 나는 단단한 제본으로 묶여진 종이들, 몇 천년 동안 종이와 종이 위를 전전하며 유랑하는 나의 이름을, 그 책갈피 사이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나를 상상한다. 그리고 대답한다.
"아니요."
손님은 기쁜듯이 말을 잇는다.
"미국에서 그 꽃을 키워봤어. 아침에만 피는 꽃이야. 신기하게도 해가 저물면 떨어져 버리지. 무척 예쁜 꽃이지."
"....."
"넌 언제 피지? 언제 활짝 피지?"
순간 남자의 눈이 욕망으로 번들거린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몸을 움추린다. 역겹구나. 당장 이 의자에서 일어나, 언제든 그가 손을 뻗어 나를 만질 수 있는 이 공간에서 벗어나, 그의 눈길을 피할 수 있는 다른 곳으로 벗어나버리고 싶다. 그러나 나는 그의 눈을 피하지 않고, 도리어 피식 웃으며 이렇게 대답한다.
"먹을 때, 나는 먹을 때 웃어요. 다들 이야기 해요. 먹는 거 앞에서 제일 예쁘게 웃는다고."
술에 비틀러기는 몸을 겨우 가누며, 그가 가게 문을 나섰을 때 나는 무척 안심하고 있었다.
기지개를 피고 뻐근해진 고개를 이리저리 틀며 뼈를 맞춘다. 에어콘 바람에 차게 식은 피부를 몇번이고 마찰시켜 조금의 열이 나게 한다. 말랑거리는 내 살의 감촉을 느끼며 또다시 살아있음을 생각한다. 나는, 삶이란 것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안다. 그것은 끔찍하게도 지루한 것이며, 때때로 감당 못할 정도로 치열한 것이다. 가슴을 움켜지는 아픔과, 피로 번들거리는 칼로 베여지는 상처들을 바라보며 오열을 토해냈던 눈물이 내 삶이었다. 그럴때면 나는 살아있는 것이 저주스러워서 바듯이 몸을 웅크리고, 스스로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의 숨소리만 뱉어 세상의 소음 속으로 숨어들어갔다.
그러나 살아있다는 것, 숨쉬고 있다는 것의, 그 자체가 나에게 주는 기쁨의 감각을, 나는 또한 알고 있는 것이다. 추억들이 부서져가는 나를 추스린다. 추억이 만들어 낸 나의 미소는 결코 거짓도 가식도 아니다. 나는 내쉬는 숨들을 가만히 세어본다. 그리고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한다. 내가 돌아갈 장소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한다.
모든 언어뿐만 아니라 한 언어의 모든 단어는 그 자체가 완전한 세계이다. Mel C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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