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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춥다_첫번째 캠핑

밤은 춥다 _ 첫번째 캠핑
 
캠프장 레스토랑의 유쾌한 종업원과 농담따먹기를 하며 비싼 저녁을 배불리 먹은 우리는, 잠을 자기 위해 텐트로 돌아왔다. 텐트는 한기가 돌았다. 텐트 바닥은 땅의 냉기를 그대로 전달했고, 공기도 찼다. 아마도 밤에는 더욱 춥겠지, 라고 생각한 우리는 가지고 있던 옷을 전부 껴 입었다. 양만만 세개, 바지도 움직이기 불편할 정도로 여러겹. 슈타른베르크의 자전거 길은 언덕과 언덕의 연속이었고, 이제 막 자전거 기아 바꾸는 법을 터득한 초급 라이더인 나는 심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무척이나 지쳐있었다. 때문에 아무리 추워도 잘 수 있겠지, 하고 그때는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렇게나 추울 줄이야. 문제는 우리가 독일의 봄 밤을 얕보았다는 사실이었다. 독일 친구가 눈 덮인 들판 사진을 보여주며 독일은 춥다,고 경고했을 때 깊이 새겨들었어야 할 것을. 우리에게는 한국에서 가져온 봄 가을용 침낭과 텐트 뿐이었다.
 
나흐트! 칼트!
 
다른 곳보다 발이 아플 정도로 얼어붙었다. 양말을 신고 있어도, 맨살을 부벼 열을 내어보아도 도저히 추위가 가시질 않았다. 너무 추워 자고 깨기를 반복하다가, 이대로 얼어버리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아까 텐트를 치고 있을 때 지나가던 독일 할머니가 '밤에는 추워!'라고 소리쳤을 때 나는 웃으면서 '저도 알아요^^'하고 대답했었지. 별수 없이 같이 얼어붙고 있는 D를 깨워 샤워장으로 들어갔다. 텐트보다 차라리 샤워장이 더 따뜻해, 온기가 도는 라디에이터에 몸을 부비며 발바닥을 녹였다. 
 
생각같아선 라디에이터에 기대어 잠을 자고 싶었지만, 독일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 지가 무서웠다. 결국 텐트안으로 돌아온 우리는 두개의 침낭에 따로따로 들어가 잠을 자지 않고 차라리 하나의 침낭에 몸 두개를 구겨넣어 부둥켜 안고 자기로 결정했다... 아.. 글 쓰다보니 엄청 처량하네. 그런데 생각보다 이 계획이 성공적이어서, 여전히 춥긴해도 잠은 잘 수 있을만치의 온기가 돌았다. 영화에서 종종 고립된 남녀 주인공이 추위를 못이겨 서로 부둥켜안다가 사랑에 빠지곤 하는데, 어허, 그게 정말 있을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ㅎㅎ
 
얼어붙은 텐트와 자전거.. 어제 레스토랑에서 먹다 물통에 담아온 맥주도 쾅쾅 얼어있었어요..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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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 슈타른베르크의 부자 동네.

 

뮌헨의 새벽
 
새벽 네시에 깼다 어제 저녁 8시부터 잠이 들었던 탓이다. 그래도 이정도면 시차적응에 성공한 것 같다. 주섬주섬 아이패드를 챙겨 호스텔의 라운지로 내려가 밀린 잡무를 처리하고 나니, 어스럼히 밝아오는 새벽의 뮌헨 거리가 나를 유혹했다. 수염이 수부룩한 호텔의 종업원에게 '지금 밖은 위험하니?'라고 물었더니 그는 위험할법 하냐면서, '대인저! 대인저!' 하며 오히려 놀린다. 두 손을 번쩍 쳐든 모습에 나도 피식 웃는다. 3년전 다녀왔던 중남미에서는 해가 떨어지기 전에 꼭 호텔의 철문 안으로 들어갔어야 했다. 그러나 이곳은 독일. 열명중 8명이 총을 들고다니던 엘살바도르도, 맨발의 아이들이 거리에서 잠을 자던 니카라과도 아니다. 
 
대충 옷을 챙겨입고 아직은 추운 뮌헨의 새벽거리로 나섰다. 뮌헨의 거리는 여전히 낯설고 복잡하다. 거리를 보수하는 사람들, 식당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중앙역의 빵집들은 벌써 진열장 가득 샌드위치를 내놓았다. 빵집이 많아서, 이곳저곳 살피며 가격을 체크한다. 승강장에 들어서자, 막 도착한 기차에서 사람들이 우루루 쏟아져 나왔다. 
 
나는 독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뮌헨'하면 떠오르는 것은, 전혜린? 뮌헨 올림픽? 정도가 전부다. 때문에 뮌헨의 시내를 돌아봐도, 어 저거.. 미술사책에서 봤는데? 정도의 건축물밖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만약 뮌헨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고, 또 내가 공부를 조금이라도 해 왔다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을텐데. 
 
그러나 다음에 다시 뮌헨에 올수 있기를 바랄뿐, 오늘은 어서 다음 도시로 떠나야 했다. 우리의 목표는 퓌센. 로만틱 가도를 달리기 위해서는 우선 퓐센에 도착해야 했다.
 
아, 관광을 목적으로 뮌헨에 가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 뮌헨에는 자전거 투어가 있다. 한무리의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이곳저곳 관광지를 돌며 해설사에게 해설을 듣는 투어인 모양이다. 가격이 얼마인지, 어디서 시작하는지 모르겠지만. 꽤 재미있어 보였다. 
부자동네, 슈타른베르크
 
퓌센은 뮌헨의 남쪽, 알프스 산맥의 아래 위치한 도시(인듯하)다. 여행에 필요한 몇가지 물건을 산 우리는 우선 뮌헨의 남쪽에 위치한 도시 중에 슈타른 베르크에 가기로 결정했다. 날씨는 맑았고, 슈타른베르크로 가는 자전거 길은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잘 정비되어 있었다. 커다란 나무가 가득차 있는 forstenrieder 공원을 지나며 우리는 정오의 산책을 즐기는 노부부를 부러운듯 힐끔거렸다. 공원은 왠만한 도시보다 컸다. 입구에서 출구까지 거의 15Km는 달렸던 것 같다. 무릎이 조금씩 아파올때 즈음 잔잔하고 평화로운 호수 슈타른베르크가 보이기 시작했다.
 
오후의 Starnberger see에는 이미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로 한 가득이었다. 도시와 가까운 호수가에는 약간의 쓰레기도 떠다니고 사람들도 많아서 물도 꽤 더러웠지만,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자 곧 "수정처럼 영롱한" 물결이 찰랑이는 맑은 호수가 보였다. 호수의 잔잔함에 감탄하기도 잠시, 곧 으리으리한 부자동네가 나왔다. 달리면서 만났던 집 전부가 단정하고 예뻤지만 슈타른 베르크의 집은 무언가 달랐다. 차고가 다섯개라든가, 마당이 마당이 아니라 그냥 벌판이라든가, 이것은 집이라기보다 오히려 저택이라고 불러야 할것같은. 척 봐도 비싸보이는 차는 물론이고, 하여간 그냥 으리으리했다. 잘사는 독일안에서도 진짜 부자동네에 들어선 것 같았다.
 
호수를 빙 둘러쌓고 있을 줄만 알았던 우리의 자전거도로도, 어느 부잣집의 사유지점거(?)에 의해 막ㅎ혀버렸다. 어쩔수 없이 다시 찻길로 나가 달리길 잠시, 호수의 풍경이 아쉬웠던 우리는 기회를 틈타,, 호수의 자전거 도로가 다시 시작되는 듯한 지점이 보이자 냉큼 그쪽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이럴수다. 이제 영원히 우리의 것이리라 생각했던 자전거도로는 안전문제 때문인지, 아니면 이 또한 어느 대저택의 사유지 주장인지는 모르겠지만, 철조망에 막혀버리고 말았다. 어쩔수 없이 우리는 다시 찻길을 향해 올랐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가파른 오르막이 나오고 말핬다. 
 
그나저나, 왜 부자들은 높은 곳에 살고 싶어하는 걸까? 부들부들 떨려오는 내 무릎으로는 도저히 오를 수 없는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졌다. 거기에 부자동네라서 그런지 슈퍼를 찾을 수가 없었다. 진작에 떨어지고 물을 사야했지만 슈퍼가 없었다. 목은 마르고, 물은 없고, 간절히 나타나길 바라는 슈퍼는 오르고 올라도 보이진 않으니, 양 옆으로 펼쳐진 화려한i 대저택이 눈에 들어올리 없었다. 어쩔수 없이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기를... 20분쯤 흘렀을까.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 있던 카페에서 맥주한잔.
 
정상에는 마치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작은 레스토랑 하나가 문을 열고 있었다. 종업원이라곤 칠십은 되어보이는 느림뱅이 할아버지와 오십대정도로 보이는 활기찬 할머니밖에 없던 그 레스토랑은 단체 관광객이 막 휩쓸고 나간 모양인지 어딘가 어수선했다. 할아버지는 춤추는 듯 느리게 움직이며, 사람 없는 테이블의 빈 접시들은 치우고 있었다. 더운날 일본을 여행하던 중 마신 맥주 한잔에 취해 고생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지만, 겨우 올라온 언덕에서 주어지는 상금같은 맥주한잔의 유혹을 어떻게 내가 뿌리칠 수 있을까? 거기에다 캠프사이트까지 앞으로 십오키로 남짓 남아있는 상황, 힘을 내서 더 달려가기 위해서 휴식이 필요했다. 우리는 주저없이 주스와 맥주를 주문하고 말았다. 맥주?! 상상했던 만큼 맛있지는 않았지만, 한 모금 홀짝일때마다 취기가 오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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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zar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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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7일. 독일, 자전거, 첫날.

뭐든지 처음은 특별하게 기억되는 법이다. 첫옹알이, 첫키스, 첫경험, 또 뭐가 있더라? 처음은 두번째도 마지막도 갖지 못한 특별한 경험으로 삶에 자국을 남긴다. 그렇다면 우리의 독일에서의 첫날은 어떨까? 달콤하고 신나고 두근되는 시간들로 가득했을까?

 
지금까지 내 인생의 '첫'들이 생각보다 멋지게 되지 않았던 것처럼 독일에서 자전거를 탔던 첫날도 그랬다. 마음 속으로 '아, D와 여기서 헤어져버릴까?' 라는 생각까지 해버렸다는 것.
 
독일 도착. 비행기의 안내 방송이 독일의 현재 기온을 알린다. 영하 1도? 승무원에게 인사를 건내고 비행기 밖으로 나서니 정말, 공기가 스산하다. 겨울 옷이라곤 얇은 패딩하나가 전부. 그래도 이것이라도 가져와서 다행이다. 무심한 입국심사관에게 여권을 건네고 짐을 찾은 후 빵 냄새가 진동하는 München Flughafen으로 나왔다. 비행기 안에서 고작 네시간여밖에 자지 못해 눈은 침침하고 고기위주의 기내식 때문인지 속은 더부룩 하다. 그런데 여기가 정말 독일이야?
 
졸리 누을 비비며 부지런히 자전거 조립을 해야 한다. 큼지막한 박스 두개. 우선 포장 테이프를 뜯고 그 안의 짐들을 꺼내 가방에 쑤셔넣었다. 자전거를 보호하기 위해 이리저리 감싸놓은 포장용 신문지를 없애는 것도 일이다. 다행히 인천에서 베이징을 거쳐 뮌헨까지 오는 동안 자전거는 어디하나 휘어진 곳 없이 멀쩡하다. 그 다음은 d의 몫. 나는 자전거에 관해서는 패달을 구르면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외에 아는 것이 없다. 그저 방해되지 않도록 파닥파닥 돌아다니며 짐을 정리할 뿐이다. 그렇게 낑낑되길 1시간여 지났을까. 드디어 멀쩡한 자전거 두대가 탄생했다. 신기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낑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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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하고 귀여운 뮌헨 공항.

 

사용자 삽입 이미지첫날 경로. 직선거리는 30Km 고작이지만 이곳저곳 해매이느라 50km는 족히 달린 느낌이다. 

 
한국에서 뮌헨공항에서 뮌헨으로 향하는 구글 지도를 보면서 나는, '그냥 이렇게 쭈욱 달리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이렇게, 쭈욱. 고작 한 두시간 달리면 되겠거늘 하고. 그런데 어디 인생이 내 생각대로 흘러간 적 있었던가. 뮌헨 공항을 빠져나오는 데만 삼십분은 족히 걸리고, 제대로 된 길을 찾기까지 한시간은 더 걸렸다. 우리를 도와준 것은 친절한 자전거인들. 우선 같은 자전거를 타고 있기 때문인지 쉽게 호감을 들어내는 대다가 동질감이랄까, 연대감 같은 것도 느껴지고, 무엇보다 자전거가 갈 수 있는 길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정말 모르겠으면 무조건 자전거인을 찾아야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물론 해매이는 것도 괜찮다. 해매이다 이상한 마을에 들어간 덕분에

빵과 커피한잔으로 멋진 아침식사도 했다. 

 
Goldach의 언덕길에서 우리는 차도로 내려갔다가 쏜살같이 달리는 차에 겁을 먹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우리는, 옆에 철도길쪽으로 가야하는지 아니면 차와 함께 차도를 달려야 하는지 아웅다웅 하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자전거 인은 마치 수호천사 같았다! 한국에 대해 여러모로 관심이 많아 보이는 대다가, 천만다행으로 영어도 잘하고 (ㅎㅎ). 그가 알려준 뮌헨으로 가는 가장 좋은 길인 Azar은 실로 멋진 환영이었다. 백조가 헤엄치는 강을 따라 숲길을 달리는 것은 얼마나 멋진 경험인지!
 
그래도 삐죽되는 마음은 여전히 삐죽삐죽거리고 있다. 아니 d는 대체 왜 그런담?
 
문제는 전적으로 나에게 있다. 잠을 제대로 못자 피곤이 겹친대다가, 날씨는 춥고, 첫 독일이라 긴장까지 한 탓에 무척 날카로웠던 것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었다. 
 
그렇지만 D도 쪼잖스럽긴 했다. 공항에서 자전거를 조립할 때,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람들의 눈을 피해 (특히 경찰의 눈을 피해) 구석진 곳으로 들어가고 싶어했다. 대체 왜? 자전거 조립이 불법이야? 그리고 나의 자전거를 타는 방식이 그리 세련되지 못한 것은 알겠지만 잘못할때다마 이렇게 하라 가르치는 조언이 잔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특히 건널목에서는 고개를 돌려 차가 오는지 안오는지 확인하라고 말하면서, 내 고개가 안돌아갔다고 말할때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분명 고개를 획돌리지는 않았어도 차가 오는지 안오는지 분명히 확인했던 데다가. 지금 그게 중요해? 나는 사실 이렇게 높은 자전거는 처음 타본단 말이다.
 
'D랑 달리느니, 호텔까지 그냥 따로 달리는게 낫겠어' 나는 생각했다. 여기서 헤어지자라는 말이 입까지 차 올랐다. 세상에나, 이렇게 작은 이유로? 응응, 이렇게 작은 이유로. (허허) 입이 대빨 튀어나온 나를 보며 D는 도대체 왜 그러는데? 라며 따라붙는다. 아, 그냥 쫌 귀찮을 뿐이라고!
 
호텔에 도착해서 가만 생각해보니, 이 모든 감정의 기복은 오로지 내 잘못이다. 사과해야지. '미안해, 내가 무조건 잘못했어'라는 말에 D는 어쩐지 의기양양하다. 어휴, 또 짜증이 나기 시작하지만 어서 자야겠다. 우리는 8시부터 잤다. 독일에서의 첫날? 뮌헨관광? 생각보다 잘 해내진 않았지만, 그래도 정말 Azar강은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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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6일 인천공항에서

생각해보면 나는 지금까지 누군가와 장기간 여행을 해 본적이 없다.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이나, 이삼일 친구들과 짧은 여정을 함께 한 적은 있어도, 한달이나 두달을 남과 함께 한적이 있었던가? 일본도 혼자였고 남미도 혼자였으니. 이 여행이 나의 첫 커플 장기 여행이 아닐까 한다. 아니, 우리의 첫 장기 여행이다.

 
동반자 D는 나의 남자친구다. D는 우리가 만난 지 한달이 채 지나지도 않아 '우리는 결혼할거야'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지만, 사귄 지 2년이 넘도록 아직 제대로된 프로포즈도 해 준적 없다(-_-) 나는 나대로 프로포즈나 결혼같은 것에 조금의 로망도 가지고 있지 않아서 그다지 큰 불만은 없다. 그러나 D는 프로포즈나 결혼식을 자신이 꼭 치뤄내야 하는 관례처럼 여기고 있는 모양이다. 때문에 가끔씩 내가 '프로포즈도 안했으면서!!'라고 놀리면 D의 괴로워하는 얼굴을 볼 수 있다. 무척이나 즐겁다.
 
4월 6일.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길. 자전거를 실기 위해 다마스를 불렀는데, 다마스 운전기사분의 따님 분이 대한항공에서 근무하고 변호사 남친을 가진 소위 엄친아인 모양이었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내내 기사님은 딸 자랑에 분주하다. 듣기에 나쁘지는 않았지만 변호사라는 딸의 남친이 얼마나 바쁜 삶은 살고 있는지 이야기 한 후, D의 허벅다리를 탁 내려치더니 하는 말이 '시간이 많아서 좋겠어!'란다. 순간 웃음이 픽 나왔지만, 어쨌든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어떻게 생각하면 핵심을 찌르지 않았던가. 시간이 많아서 좋겠다니!
 
아아, 도대체 우리는 왜 이렇게 시간이 많게 되었는가. 응당 우리 나이라면 (29살 동갑내기입니다) 한참 사회에 뛰어들어 바쁜 삶을 사는 것이 옳은 일이거늘. 어째서 우리의 시간은 이렇게 남아돈단 말인가. 
 
사회가 나의 시간을 사용하지 않아서 인지, 아니면 내가 시간이 남아 도는 삶을 선택했는지는 모를일이지만, 나는 나의 남는 시간을 가지고 유럽으로 여행을 떠난다. 우리의 재산 목록. 자전거 두대, 텐트, 침낭, 옷가지, 카메라, 아이패드 등. 과연 우리는 얼마나 멀리까지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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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대교를 건너며.

동작대교의 난간에는 말이 쓰여있다. 희망, 사랑과 같은 단어들, 넌 혼자가 아니야 같은 말들. 가만히 읽어보다가 무언가 눈가가 뜨겁다. 그리고나서 우스웠다. 누군가 말하는 사람이 보이는 것도 아닌데 고작 단어 몇마디에 위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우스웠다. 나는 자살하는 사람을 단죄할 생각이없다. 그럴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그것도 인간의 한 모습이려니. 그러나 다만 누군가 자살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려는 사람이 있다만 다만, 그 순간만큼이라도 그의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동작대교를 건너며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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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양미술 순례 / 서경식

 

긴 여행을 계획 중이다. 돈이 많지 않으니 호화로운 여행은 되지 않을 테고, 노동력을 팔아 숙식을 제공받는 방식으로 이곳저곳 떠돌아다닐 생각이다. 4월 달 초에 떠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벌써부터 할 일이 많다. 일주일째 고민하고 있는 비행기표도 오늘은 질러야 하고, 집 보러 오는 사람을 맞이해야 한다. 비자 준비하고, 이삿짐 싸고, 고양이를 맡기고, 숙소 알아보고.... 마음은 번잡한데 걱정꺼리는 또 있다.

 

“왜 너는 그렇게 네 마음대로 사냐?”

수화기 건너편으로 앙칼진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의 걱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자식을 먼 곳에 떠나보내는 일은 얼마나 마음 아리는 일일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심했다. “한곳에 자리잡을 생각을 해야지. 정착할만하면 도망가고, 또 도망가고... 너나, 너네 아빠나 똑같아!” 잠자코 듣고 있던 나도 그 한마디에 폭발하고 말았다. “내가 왜 그런 소리를 듣고 있어야 해?” 말을 뱉자마자 아차 싶다. 하지만 안 그래도 해야 할 일이 많아 어수선한데, 엄마가 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섭섭하다. 정신을 부여잡고 좋게좋게 전화를 끊고 나니 찹찹하고 허한 마음만 남았다. 이 여행, 과연 잘하는 짓일까? 그때, 이 책이 생각났다.

 

나는 혼자서 이런 비일상적인 방황을 계속하려 하고 있다. 왜? 무엇 때문에? 거기에 대답할 수가 없다. 생각하면, 나는 흡사 ‘엉거주춤이라는 독약’에 마비된 양, 이 10년 넘는 세월을 어영부영하며 살아버렸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끝장을 내야 할 때다. 양친은 이미 가셨고, 나의 젊은 날도 끝나려 한다. 이 여행에서 돌아가면, 확실한 ‘생활’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생활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마침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비행기를 곁눈질하며, 나는 그런 생각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 P47

 

내가 가지고 있는 판본은 1992년에 인쇄된 초판본이다. 문고본 사이즈의 작은 책. 디자인이랄 것도 없다. 멋 부리지 않은 시멘트색의 표지 위에 보라색 글씨로 나의 서양미술 순례라는 단촐한 글씨가 박혀있다. 도판이 삽입되어 있긴 하지만 흑백이다. 초판본으로부터 시간이 꽤 지났기에 깔끔히 디자인 된 풀 칼라판이 새로 출판되었으리라 생각하지만, 갖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뭐랄까, 그의 여행이 관광이 아닌 ‘순례’였기 때문에 검소한 초판본이 오히려 소유욕을 자극한달까.

 

서경식은 재일조선인이다. 재일조선인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그가 살아온 묵직한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하다. 거기다가 그의 두 형은 한국으로 유학을 와 공부를 하던 중에 ‘학생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투옥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 충격으로 얼마 뒤 돌아가시고,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형의 뒷바라지를 하던 어머니도 곧 남편의 뒤를 따랐다고 한다. 그러던 중 찾아온 여행에 대한 욕망. 그는 담담한 얼굴로 유럽 여행을 준ㅂ한다.

 

그의 여행은 오늘날 여행회사가 선전하는 여행의 미덕은 하나도 갖추지 못했다. 자아찾기나 새로운 것의 경험, 일상에서의 탈출 같은 것은 전혀 살펴볼 수 없다. 그 대신 그는 현실의 괴로움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몸은 멀리 유럽으로 왔지만, 그의 정신은 항상 감옥에 있는 형들과 일본에서 ‘생활’을 위해 분투하는 누이동생을 생각한다. 귀국 후 계속 될 삶에 대한 고민도 끊이질 않는다. 과거에도 얽매여 있다. 아주 작은 것에도 아버지 어머니의 험난했던 삶이 떠오른다. 여권을 제시할 때마다 부모의 나라이자 자신의 국적이 있는 나라 한국과, 태어나고 자랐지만 자신이 속할 줄 없는 일본의 사이에 끼어 고뇌한다. 새로운 것을 만난 흥분도 없다. 그가 감탄하는 그림이라고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과는 아예 거리가 먼, 슬프고 괴롭고 인간의 풍경이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순수한 감동에 젖는다. 그가 멋지고 화려한 여행을 하고 있지 않음에도, 젊음의 패기 따위 찾아볼 수 없는 정적인 여행을 하고 있음에도 그의 자욱에는 무언가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저자 자신이 그림을 보며 발견해 낸 것과 비슷한 성질의 감동일 것이다. 그는 삶의 고난도 슬픔도 그저 조용히 바라본다. 마치 그림을 볼 때처럼 바라보기만 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절망하는 듯하다가도, 한숨 깊이 쉬고 받아드린다.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듯 여행을 하고, 아파하는 기색 없이 담담히 자신의 여정을 고백한다.

 

이것이 실은, 여행의 실제 모습인 것 아닐까? 흥분하지도 두려움하지도 않고, 다음 도시로 또 다음 도시로 이동하는 것. 여행과 삶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삶 역시 시작과 끝이 있고, 먼 곳으로 떠나갔다 생각했지만 고작 몇 발자국 더 나아갔을 뿐이며, 결국 누구든지 시작한 곳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이곳에서 먹고 걷고 생각하며 잠을 청하는 것처럼 그곳에서의 나도 먹고 걷고 생각하며 잠을 청하게 될 것이다.

 

이번 여행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나는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 준비가 어렵다.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도 적다. 돈은 항상 없다. 준비하지 못하고 출발하여 큰 곤란을 당할 까봐 겁이 나기도 한다. 그렇다고 번잡한 마음에 휘둘릴 것이 무엇인가. 모든 것을 다 갖춘 삶은 없듯, 내 여행도 어딘가 부족한 듯 괜찮은 듯 흘러갔으면 좋겠다. 어디든지 나는 나로서 있을 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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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슬립, 스티븐 킹

 

fear는 모두 다 집어치우고 도망칠 것(fuck everything and run)의 줄임말이다.

『닥터슬립』 제일 첫장 인용구

 

애초에 나는 공포영화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정정한다.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 무서워한다는 표현이 알맞겠다. 내 친구 중 몇은 인생의 극악스러웠던 경험 중 하나로, ‘너와 함께 공포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갔을 때’를 꼽는다. 그런 영화를 볼 때면 나는 두 시간 꼬박 실눈을 뜨고 한껏 쪼그라들어 있는 편이다. 아주 작은 소리에 온몸을 튕겨가며 놀라기도 한다.

 

그런 나에게도 무척 아름다웠다고 기억되는 공포영화가 있다. 화면을 가득 채운 설원, 터진 강물처럼 붉은 피가 흘러들어오는 호텔의 복도, 단정한 금발의 꼬마아이가 쉰 목소리로 외치는 ‘레드럼! 레드럼!’. 바로, 『샤이닝』이다. 이 영화의 무엇을 내가 ‘아름답다’ 느꼈는지는 잘 모르겠다. 눈밭에서 뛰는 배우들이 멋졌다고 생각하지만, 주인공이 눈밭을 뒹구는 영화는 이것 말고도 쌔고 쌨다. 별 이유도 모른 채 이 영화를 아름다웠던 공포영화로 꼽고있다

 

이 영화의 원작이 스티븐 킹의 소설이었다는 것을 나는 까맣게 몰랐다. 우연히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다른 영화 『1408』을 보고 나서야, 스티븐 킹이 공포 소설의 거장이라는 것을 알았다. 쓴 책이 그렇게 많다는 데, 그 중 한권도 읽어본 적이 없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몇 권만이라도 한번 읽어볼까, 하는 생각으로 닥터슬립을 구매했다.

 

사실 스티븐 킹의 소설 중 하필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딱 하나였다. 닥터슬립 상,하권을 한꺼번에 사면^^ ‘웰컴 투 오버룩 호텔’이라고 적혀 있는 가방을 사은품으로 주는 신간이벤트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버룩 호텔은 영화 샤이닝에서 모든 사건이 일어나는 배경이 된 유령 호텔이다) 배송되어온 책보다 가방이 더 좋았던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다ㅎㅎ. 애초에 책은 읽지도 않고, 짜릿짜릿한(?) 이 가방만 장바구니로 열심히 들고 다녔으니까.

 

그리고 드디어 어제, 밤을 꼴딱 새어가며 닥터슬립을 다 읽었다. 닥터슬립은, 샤이닝의 꼬마 주인공 대니가 어른이 된 이후의 이야기를 그린다.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이런 류의 소설은 줄거리를 알고 숨은 의미를 유추해나가는 것보다, 주인공과 함께 소설 속을 여행하며 실감하는 ‘현장감’이 중요하지 않은가? 다만 나는 이 책의 표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다. 닥터슬립의 표지. 검색하면 금세 나올텐데. 15,6살 정도로 보이는 서양의 남자아이가 박혀있는 이 책의 표지 말이다.

 

책의 내용이 중요하지, 그깟 표지가 뭐 대수냐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이 책의 표지는 꽤나 강렬하다. 한번 읽어볼까 하고 책을 꺼냈다가도, 이 아이의 꿰뚫는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딴청을 하게 된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면서 등이 서늘해진다. 아이는 머리를 짧게 쳐냈고, 도톰한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어깨의 선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 위로 환영인 듯 보이는 이미지가 겹쳐진다. 언뜻 보면 인간의 살덩이 같기도 하고 밧줄과 같은 섬유조직을 확대한 이미지 같기도 하다. 하여간 비현실적이다. 이 환영을 통해서 본 아이의 얼굴은 갈기갈기 조각나 분열된 듯 보인다. 마치 불타오르는 불에서 선명한 악마의 얼굴을 본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처음에는 너무 무서워서 쳐다보지도 못했다. 사실 이 표지를 찬찬히 뜯어보고 있는 지금도 무서워 죽겠다. ㅎㅎ (지금 가만히 살펴보니, 1권과 2권의 글자 디자인이 미묘하게 다르다. 으아, 이것도 무서웤ㅋㅋ)

 

내가 앞으로 또 ‘킹의 독자’가 될 일이 있을까? 지금으로선 없을 것 같다. 공포 소설을 찾아 읽기에 나는 너무 겁이 많다. 그래도 오랜만에 책에 빠져들 듯이 독서를 했다^^. 이런 경험은 언제해도 즐겁다^^

 

fear는 모든 걸 받아들이고 극복할 것(face everything and recover)의 줄임말이다.

『닥터슬립』 제일 마지막장 인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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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하류지향, 세련된 '이십대개새끼론'이거나, 세대를 위한 뼈있는 충고거나.

하류지향, 우치다 타츠루

 

세련된 ‘이십대 개새끼론’이거나, 세대를 위한 뼈있는 충고거나.

 

어떤 의미에서 이 책은 윗세대가 고정된 젊은이의 상을 가지고 이래라, 저래라 비판하는 세대론의 범주에 잘 들어맞는다. 스러져 가는 20대의 끝에서(아아..) 아무런 변론도 못한 채 쏟아지는 비판을 모두 수용했던 어릴 적과 다르게 나는 이러한 세대론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 책은 ‘요즘 애들은...’이라며 혀를 차는 세대론의 변주일까, 아니면 후세를 위한 진정성있는 충고일까?

 

저자는 “선생님 이걸 배우면 뭐가 좋아요?”라고 묻는 학생들과 세상과 단절해 방에 틀어박힌 일본의 니트를 문제시한다. ‘학습으로부터 도피’하고 ‘노동으로부터 도피’하고 있는 젊은 세대. 1950년에 태어난 저자가 독자에게 묻는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사고방식은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생겨나고 어떤 이데올로기에 의해 강화되어가고 있는가?”

 

저자는 ‘이것을 배우면 무엇에 도움이 되는지’라는 물음은 학습과 소비를 동일시하는 세대와 함께 태어났다고 말한다. 태어날 때부터 노동주체가 아닌 소비주체로서의 자아에 더 익숙해진 세대는 마치 학습을 소비의 변형처럼 생각한다. 학습이 소비에 비유될 때, 돈(화폐)에 해당하는 것은 짧지 않은 수업시간을 참아내는 고통이다. 소비자로서 고통이라는 돈을 지불했으니 무언가 마땅한 것을 받아야 한다. 때문에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내가 지불하는 이 고통을 대가로 선생님은 저에게 무엇을 주나요?”라고 묻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지고 만다.

 

이렇게 만들어진 당돌한 세대는 ‘자기결정권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견고해진다. 아이들은 마치 학습을 소비와 같이 사도되거나 사지 않아도 괜찮은 것으로 인식하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소비자처럼 행동한다. 그리고 자신이 학습을 구매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은 자기가 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인식한다. 이 지점에서 끼어드는 것이 바로 ‘자기결정의 옮음’이라는 이데올로기다. 저자는 최근 일본사회가 자기결정권을 강조하는 나머지, <모두가 자기결정을 하는 시대이니, 너도 자기결정을 해라. 그리고 그 자기결정은 언제나 좋다.> 라는 이데올로기에 빠졌다고 말한다. 배우지 않음과 노동하지 않음을 선택한 아이들은 내가 결정한 것이기에 옳다,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학습과 노동을 소비자처럼 임하는 아이들과 자기결정의 옳음이라는 이데올로기 속에서 젊은 세대는 자발적으로 하류지향하게 된다는 것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저자의 문제제기는 매우 신선하다. 단 한번도 ‘학습의 효용’에 대해 묻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 본적 없는 나에게는 특히 그렇다. 우리는 저자와 같은 관찰자의 집요한 시선을 통하여서만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또한,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묻는 이 장면을 보고 저자는 어린 세대가 ‘소비문화에 젖었음’을 한탄한다. 소비문화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온 어른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 저자에게 묻고 싶다. 닭과 달걀 중 무엇이 먼저일까?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다. 아이들이 하는 행동은 어른의 모습을 보고 그것을 따라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이것을 배우면 뭐가 좋아요?’라고 묻게 된 것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공부를 하면 이게 좋다’라고 말해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소비주체로서의 자아만을 정립시켜버린 세대는 사실,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향해 ‘공부를 하면 좋은 학교에 들어갈 수 있고, 존경받는 지위에 이를 수 있고, 높은 연봉을 받고, 수준 높은 이성을 배우자로 맞을 수 있다(p46)’고 말했다. 아이들은 공부를 대가로 무언가를 받는 상황에 익숙해져버렸다. 그래서 새로운 학습을 시작하기 전에 어른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소비주체로서만이 자신을 생각할 수 있는 어른 세대로부터 태어난 아이 세대가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은 어른들의 보상에 설득당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린이, 청소년, 혹은 어떤 청년의 시각으로는 좋은 학교와 지위, 높은 연봉과 멋진 동반자가 매력적인 보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아니면, 그들은 공부를 통해 그것을 얻을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것들을 거부한다. 때문에 저자는 아이들의 ‘왜 공부해야 해요?’라는 질문을 ‘내가 공부를 하면 뭘 얻을 수 있나요?’로 해석하고 있지만 나는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이런 보상을 원하지 않아요!” 또는 “공부가 정말로 삶의 성공으로 이어지나요?”

 

물론 니트족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좋지 않은 방향으로 사회가 흘러가고 있으며, 또 문제화 될만 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것 처럼 니트족이 단순히 노동의 거부를 고집했기 때문에 틀어박혀버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노동함으로써 주어지는 그 모든 것의 거부는 아닐까? 다시 말해 그들은 저자처럼 자신을 소비주체로 생각해서 틀어박힌 것이 아니라 노동의 소비주체이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틀어박혔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은 저자가 젊은이들의 노동도피의 예로 소개한 두 가지 사례였다. 저자는 젊은이들의 ‘높은 자리에 오르려 하지 않음’, ‘돈과 지위를 얻는 것보다 여행과 음악을 좋아함’을 문제시하며 이런 사례를 소개한다.

 

내가 알고 지내는 회사 경영자로부터 들은 얘기다. 아르바이트생 수십 명을 고용하고 있는 그는 그 중에 아주 우수한 젊은이가 있어서 정사원이 되라고 권유했다가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그 이유는 아르바이트라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지만 정사원이 되면 그만두는 게 쉽지 않아서, 라는 것이었다. 또 다른 사례 역시 알고 지내는 젊은 회사원에 대한 얘기다. 그가 평소 일하는 솜씨를 높이 평가한 상사가 새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되어보라는 말에 그는 그 길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책임 있는 자리에 앉으면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즉, 직장을 빠져나와 음악회에 가지도 못하고 성수기에 유급휴가를 받아 여행을 가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이런 자유가 출세보다 더 중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P146, 2007년 출판본)

 

이들이 과연 노동으로부터 도피하는 사람들인가? 아니다. 이들은 노동으로부터 도피했다기보다 노동과 다른 가치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이러한 젊은이들의 모습이 어째서 ‘자기결정이라는 이데올로기에 함몰당한 것처럼 묘사되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저자가 꼭 그렇다고 말한다면 나는 노동하기를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열심히 일하면 신에게 가까워질 수 있다는 기독교의 노동 이데올로기에 함몰당해서 노동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이라 말해버리겠다. 물론 이 주장 또한 옳지 않다. 이것은 전적인 가치관의 차이로, 스스로의 삶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또 나는 ‘자기결정권’이 이데올로기화한 사회에 대한 비판 역시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일본사회는 ‘자기결정권을 맹신한 나머지 내가 결정한 것은 뭐든지 나에게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사회에서조차 여전히 자기결정권은 매우 소중하며, 모든 사람은 선택의 기로에서 오로지 자신의 판단만으로 내 앞길을 결정하고 그에 책임을 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만약 자기결정이 이데올로기화되어 있다는 이유로 그것을 멸시하는 사회가 더 끔찍하게 느껴진다. 따라서 저자가 자기결정권의 부작용이라고 생각하는 니트족에서조차 그들이 진정 그것을 선택했다면 아무리 내가 잘못되었다고 느껴져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을 비롯한 아무런 사회활동도 하지 않는 것이 스스로의 선택이었다면, 다시 사회 속에서의 자신을 찾아가려는 노력 역시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고서는 불가능 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그저 세련된 20대 개새끼론의 변형일 뿐일까? 그렇지만도 않다. 저자가 꼰대 인 것은 맞지만(잔소리한다는 의미에서^^;;) 분명 아래 세대가 자신이 느껴왔던 삶의 어떤 가치를 잃어버린 것이 안타까운, 저자의 진정성 있는 충고다. 아래는 내가 꼽는 이 책의 가장 감동적인 부분이다.

 

그렇다면 배움이란 무엇인가. 배움은 아이가 모국어를 습득하는 과정과 같다. 말을 배우는 데 있어서 아이는 ‘이것을 배우면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라고 묻지 않으며 ‘이것을 배우면 내가 어떤 사람이 될까?’를 알지 못한다. 아이는 말을 순수하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배운다. (...) 나는 이것이 고등교육 자살의 한 징후라고 생각한다. 학생이 앞으로 무엇을 배울 것인가에 대해 미리 알고 있을 것을 전제로 해서는 배움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배움이란 자기가 배운 것의 의미와 가치를 이해할 수 있는 주체를 구축해가는 과정이다. 공부를 끝낼 시점이 되어야 비로소 무엇을 배웠는지를 이해하는 수준에 도달한다. 공부는 이런 역동적인 과정이다. 배우기 전과 후에 다른 사람이 되어 있지 않으면 공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 하지만 이 비합리성 안에 멘토의 교육적 기능이 있다. 지금은 의미를 알수 없는 말이지만 일단은 ‘뭔지 잘 모르는’ 채로 받아들이고, 언젠가는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성숙의 단계에 이르게 되기를 희망한다. 이러한 생성 과정에 몸을 던질 수 있는 자만이 배울 수 있는 것이다. P152

 

배우는 사람은 배움에 끝에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 책을 다 읽기 전에는 책의 결론이 어떨지 모른다. 여행을 마치기 전에는 이 여행이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줄지 모른다. 삶이 끝나기 전에 나는 삶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 일등만을 향해 삶을 바쳤던 윗세대든지 여전히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하류지향세대든지. 가슴 속에 품어야 하는 이 길이 끝나기 전에 이 길을 판단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 만으로 벅차게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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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된 근대화』를 읽고_1

 

왜 우리는 토론을 멈추지 말아야 할까

『동원된 근대화』를 읽고_1

본 게시물은 『동원된 근대화』(조희연, 후마니타스, 2010년)을 바탕으로 2013년 5월에 작정된 서평의 첫번째 편이다.

향후 한국사회의 헤게모니의 향방은 1987년 이후 지난 20년 동안보다도 더욱 치열한 쟁투의

결과로 구성되게 될 것이다._376쪽.

 

그 쟁투의 모양이 어떠한지는 조희연 자신의 책에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것 같다. 이 책 자체가 박정희 시대에 대한 해석을 둘러싼 신보수와 포스트구조주의, 그리고 ‘지배헤게모니’를 선점하는 진보민주담론 사이의 쟁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예언처럼 쟁투는 치열하고 조희연 또한 쟁투에 걸맞은 치열한 전략가다. 그는 암묵적으로 그의 입장을 강화할 단어들, 그 자체로 그의 주장을 뒷받침해줄 단어를 사용한다. 그는 대답해야 할 질문과 대답하지 말아야 할 질문을 구분하고, 도전장을 내미는 새로운 해석자를 회유한다.

 

그러나 이 쟁투는 그저 서로를 견제하고 해석을 단단히 해나가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이 싸움은 전장(戰場)이자 관객인 독자를 설득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 책이 독자를 논리적으로 설복하기 위해 꾸며진 하나의 연극무대라고 생각한다. 무대에선 다섯 명의 배우가 서로의 역할을 연기한다. 그들은 박정희 시대에 대한 다섯 가지의 다른 해석을 보여준다. 우선 박정희 시대가 완전한 강압의 ‘독재’로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민주화세대가 있다. 두 번째로 박정희 시대가 완전한 ‘동의’로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친박정희적 시각이 있다. ‘일면적’이라고 정리되는 이 두 가지 해석은 투쟁을 위해 강압이 필요했던 세력이나 박정희에 대한 국민들의 태도를 자발적인 ‘동조’로 해석해야만 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다. 그러나 서로를 적으로 삼아 대립하는 두 일면적 시각은 이미 구시대의 것으로 희미한 웅얼거림으로만 무대의 배경을 메우고 있을 뿐이다. 세 번째와 네 번째 목소리는 ‘진보민주담론’으로 상징되는 ‘다섯번째 목소리’인 조희연에게 질문을 제기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노동자에 대한 억압을 부정하는 세 번째 목소리가 ‘신보수’, 임지현을 입술 삼아 말하는 네 번째 목소리가 ‘탈구조주의’의 것이다. 서로 다른 목적을 향해 교차하는 질문을 정리하고 대답하는 조희연은, 주인공으로써 기꺼이 모든 목소리를 호명하고 정의한다.

 

박정희 시대에 대한 시각은 1987년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달라진다고 할 수 있겠다. 1987년 이후 1990년대를 거치면서, 반독재 민주화 운동적 논리가 ‘국민적 상식’이 되어가는 것에 상응해, 박정희 정권 시대에 권력에 의해서 강제되던 ‘친박정희적인 관변 논리’가 퇴조하고 반박정희적인 진보 논리가 확산되어 왔다. 후자는 박정희 체제의 폭압성과 노동자·농민 등 민중에 대한 수탈성을 강조하고 있었으며 그런 폭압과 수탈에 대한 분석은 기본적으로 구조주의적인 논리 위에 서있었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다양한 새로운 논리들이 출현해 왔다. 한편에서는 기존의 폭압론과 수탈론에 기초한 진보적 분석이 포괄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측면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분석 시도들이 나타났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박정희 체제를 새롭게 신우익적 시각에서 옹호하며 폭압론과 수탈론을 비판하는 ‘뉴라이트’적 연구들이 나타났다. 전자와 관련해서는 일상사론, 대중독재론, 구술사적 연구 등을 예로 들 수 있으며, 후자와 관련해서는 이영훈·박지향 외, 교과서포럼 편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_378쪽. 

 

박정희 시대를 바라보는 해석은 시대가 다르고 그들이 처한 입장이 다른 만큼, 계속해서 변화할 것이고 또한 변화해야만 한다. 조희연은 1987년 그 해석이 일변한다고 말한다. 87년에서 90년, ‘친박정희적 관변 논리’ㅡ두번째 목소리ㅡ와 대립하는 동안 생겨난 ‘진보민주담론’ㅡ첫번째 목소리ㅡ가 ‘국민적 상식’이 될 정도로 설득력을 가지며 해석의 흐름을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두번째 분기점은 2000년대에 일어난다. ‘신우익’과 ‘포스트구조주의’의 해석이 등장하며 ‘폭압론과 수탈론’이 포괄하지 못하는 현실의 틈을 파고들기 시작한 것이다.¹

  

여기서 우리는 포스트구조주의로 분류되는 임지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저자가 4장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은 임지현의 ‘대중독재론’에 대한 조희연의 답변이기 때문이다.²

 

한양대 임지현 교수팀은 ‘대중독재’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박정희 시대를 재조명하는 논의들을 임지현·김용구 편(2004)에서 제기했다. […] 『대중독재』 출간 이후 조희연(2004c)의 비판이 있었고, 이에 대한 임지현·이상록(2004)의 반론이 있었고 조희연(2005c)의 재반론이 있었다(이 논쟁문은 임지현·김용우 편 2005, 3부에 실려 있다). 그 후 임지현 팀은 임지현·김용우 편(2005; 2007)을 통해 논의를 체계화시켜 가고 있다(182-183쪽). […]필자의 비판에 대해서 임지현·이상록(2004)의 반론이 있었다(277쪽).  

 

이 서평에서 그들의 논쟁 모두를 담을 수 없겠지만 우선 두 입장 사이를 오고 갔던 반론의 연대기를 나열해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흥미롭다. 결국 2010년에 출판된 『동원된 근대화』는 임지현의 대중독재론에 대한 조희연의 대답을 정리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이 책은 여전히 현재적 시제를 갖는다. 따라서 우리는 조희연이 어떤 결과를 바라며 이 책을 썼는가에 대해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그렇다면 ‘대중독재론’이란 무엇인가? 대중독재론은 ‘반독재 민주화 운동 논리’와 ‘친박정희적인 관변 논리’에 대항해 제기된 해석이다. 그러나 ‘일면적인 시각을 탈피하고 다양한 시각을 채득했다’ 정도로 이 이론의 의의를 말한다면 그것은 부족할 뿐 아니라 오해를 일으키는 설명일 것이다. 조희연은 임지현을 ‘포스트구조주의자’로 분류한다.³ 여기서 ‘Post’라는 말은 임지현이 ‘민주화운동’과 ‘친박정희파’가 가지고 있던 구조주의를 벗어나는 어떤 논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나는 이 서평에서 조희연과 임지현의 논쟁을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의 대립이라는 식으로 해석하고 싶지는 않다. 무언가를 쑤셔 넣기 위해 틀 지워진 개념은 ‘철창’과 다름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용어가 논쟁의 대립적 구도의 이해를 용이하게 하는 도구의 역할을 해준다는 언급으로 만족하기도 한다.

 

임지현의 대중독재론은 크게 두 가지 점에서 기존 논의들과 구별된다. 첫째, 지향하는 목적이다. 조희연이 저항집단을 결집시키기 위한 글쓰기를 한다면 임지현은 체제해석과 이해에 그 목적이 편향된다. 다시 말해 임지현의 논의는 체제의 구조를 살펴보는데 강점이 있고, 조희연의 논의는 집단의 정체성을 지켜내는데 주안점을 둔다. 따라서 임지현의 “소수의 사악한 가해자와 다수의 선량한 피해자라는 도식은 순진함을 넘어 허구적이기까지 하다”, “강압과 그에 의한 민중의 희생 혹은 영웅적 저항으로만 환원될 수 없으며”, “(박정희 시대가) 진보적 논의에서 강조하는 바와 같이 폭압과 폭력, 탄압 등으로만 일관된 것으로 볼 수 없다” 따위의 문장은 진보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체제의 구조를 파악하려는 그의 목적을 의식한 뒤에 읽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이들의 주장은 대립되지 않으며 임지현이 옳다, 조희연이 옳다 하는 식으로 다투어야 할 문제가 아니다.

 

둘째, 대중독재론은 그 논의의 시작을 억압자나 피억압자가 아닌 대중에게 둔다는 점에서 기존의 논의와 다르다. 다시 말해 대중독재론은 ‘독재’에의 해석에 있어서 그 무게중심을 ‘지배자’에서 ‘대중’으로 옮기는 시도인 것이다. 따라서 ‘동의’에 대한 해석은 수동적 동의나 자발적 동의와 같은 패러다임 안에서 이해될 것이 아니라, 권력의 주체가 어디로 설정되어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러한 주체변경의 인식은 “근대성과 그 근대성에 기초한 대중성”. “근대 파시즘은 ‘인민주권론’과 같은 근대적 정치 원리에 기반을 두고 출현한 ‘합의 독재’로서의 성격을 가지며 그런 점에서 ‘주권독재’의 외양을 띠며, ‘대중독재’의 성격을 띤다고 본다”, “독재에 대한대중의 자발적 동원, 그 결과로서 독재의 대중적 기반”같은 문장에서 드러나고 있다.

 

조희연이 말하는 것처럼 임지현의 대중독재론은 “기존 독재 혹은 파시즘 분석을 뛰어넘는 새로운 통찰력과 연구 지평을 열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와 함께 조희연은 임지현의 논의를 일정 부분 수용한다. 그는 그동안의 진보의 해석이 ‘일면적’이었기 때문에 현실을 잘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들이고, 그러한 문제점이 발생한 원인에 대해 반성한다.⁴그와 함께 그는 임지현이 대중독재에서 말하고 있는 ‘국민적 합의’나 ‘동의’가 근대권력을 이해하는 데 합당한 해석이라고 말한다.⁵ 그는 ‘대중독재론’이 우리에게 주는 이 인식을 ‘합리적 핵심’이라고 부르며 임지현이 말하고 있는 ‘대중의 동의’라는 개념을 민주 진보 담론의 입장에서 수용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민주 진보 담론의 관성화와 정체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측면들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 먼저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분석적 과제들이 운동적 언어 속에서 방기될 데서 유래했다는 점이다. 이론적 실천이 정치적 실천의 성찰적 계기로 작동하기 보다는, 이론적 실천이 정치적 실천과 곧바로 동일시되거나 도구화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이런 ‘이론적 실천의 도구화’는 운동적 언어가 쉽게 분석적 언어로 치환되어 동일시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속에서 분석의 문제는 쉽게 ‘입장’의 문제가 된다. […] 이런 일종의 ‘본질주의’적 분석이 진보적 분석을 지배하게 되면서, 그 분석의 공백에 뉴라이트 적인 현대사 분석이 존재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진보적 분석 내부에서의 ‘순수주의’ 같은 것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_382-383쪽.  

 

그럼에도 민주진보담론이 무턱대고 ‘동의’ 개념을 수용하기에는 저항지점이 있다. 민주진보담론은 지배헤게모니를 잡고 있던 일명 ‘보수’와 구분되는 측면들을 강조하면서 집단의 틀을 다져왔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박정희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말하며 서로를 결속한 보수담론에 대항해, 억압의 논리를 강조했던 민주진보담론의 역사 속에서 아무리 합리적이라 할지라도 언뜻 보수의 ‘동의’ 개념을 말하는 임지현의 논의를 받아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조희연의 ‘전략가’적 면모가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임지현의 논의를 수용하면서 그의 입장 또한 지켜내기 위해 몇 가지 개념을 만들어 낸다. 억압과 동의의 관계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강압적 동의’와 ‘동의적 강압’. 그리고 ‘모순적 복합성’과 ‘헤게모니의 분열이 그것이다.

 

 

 


각주 1 조희연이 가장 집중하는 해석이 ‘신우익’과 ‘포스트구조주의’의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임지현 교수팀의 대중독재론이 기존 진보 담론의 비판적 확장의 문제의식에 서 있다고 하면, 이영훈 교수의 박정희 시대 논의는 좀 더 전면적인 보수적 반론(박정희 시대에 대한 진보적 분석의 전제, 즉 ‘박정희 시대 노동자, 농민, 중소기업이 수탈받고 불이익을 강요받았다’는 것은 허구라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필자는 한편에서 이런 논의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것과 함께, 다른 한편에서 단순한 반박의 차원을 넘어서, 이영훈의 비판적 도전이 ‘근현대 역사사의 개발적 재구성’이라는 과제를 진보에게 제출하고 있음을 드러냈다”(같은 책, 26쪽); “임지현의 논의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기존 ‘민주진보담론’의 공백 지점과 한계 지점을 예리하게 쟁점화한 것이라 할 수 있는 반면에, 이영훈의 논의는 민주진보담론 자체의 ‘전제’에 대한 도전이며 보수적인 입장에서 민주진보담론을 해체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같은 책, 379쪽).

 

각주 2 이 글은 당초 임지현 팀의 ‘대중독재론’(임지현 2004; 임지현·김용구 편 2004)에 대한 비판적 논쟁의 글로서 쓰였다(182쪽).

 

각주 3 조희연은 자신을 구조주의적 입장으로 임지현을 포스트구조주의적 입장으로 명명하고 있다. “(임지현의 대중독재론은) 탈근대론 혹은 탈민족주의론적 입장에서의 민주진보담론의 정체에 대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382쪽); “민주진보담론이 다분히 구조주의적 담론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고 할 때, 이영훈의 논의는 구조주의적 담론 지향을 공유하면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고 볼 수 있고, 임지현의 논의는 포스트구조주의적 논의의 성격이 있다고 생각된다. 사회주의 붕괴 등의 조건을 매개로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구조주의적 담론에 대한 포스트구조주의적 담론의 도전은 서구 지식 세계에서는 다양하게 제기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임지현의 논의는 한국 ‘특수적’인 논의라기 보다는 좀 더 일반론적 문제의식을 깔고 있다고 생각된다. […] (임지현의 논의는) 기본적으로 포스트구조주의적인 비판 담론으로서의 성격이 존재한다. 그의 논의는 본질적으로 민주 진보담론의 성찰적 확대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지점을 담고 있다”(386쪽); “임지현은 반독재 민주진보담론과 다르게 포스트구조주의적 혹은 포스트 근대적 분석틀에 기초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 결국 임지현이 탈근대론적 분석틀에서 반독재 민주진보담론의 협애성과 일면성에 도전한다면, 이영훈은 근대론적 분석틀 속에서 민주진보담론의 협애성과 일면성에 도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임지현은 민주개혁이 지구화의 맥락에서 새롭게 도전받게 되는 과제들을 통해서 민주 진보 담론에 도전하고 있다고 하면, 이영훈은 민족 국가적 발전의 맥락에서, 그것도 민주 진보 담론의 ‘과잉 진보화’에서 간과되고 있는 점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387쪽)”. 인용자강조

 

각주4 필자는 (비판적) 연구자들은 단순한 현실의 복합성을 보여 주는 과제를 대면하는 사람이고, 운동가들은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해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급진적인 연구자일수록 거의 운동가와 다름없이 현실을 단순화해 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 진보적 연구자 진영일수록 이런 경향이 미덕이 되고 권장되고 통용된다. [...] 분석의 ‘출발점’이어야 할 개념이 분석의 결론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그 결과 분석은 설명이 아니고 ‘동어반복’이나 ‘단정’이 되는 경우 높은 수준의 전략적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도 ㅡ 연구자와 운동자의 ‘분업’을 현실로 전제할 때 ㅡ 연구자는 현실의 복잡성을 충분히 드러내는 방식으로 분석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384쪽. 인용자 강조

 

각주5 "대중독재론"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이 근대 권력(특히 그 일부로서의 근대 독재 권력)은 단순히 강압적 수단을 통해서만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개발이라는 근대적이며 전 국민적 합의에 기반을 둔 국가 목표를 통해서 독재에 대한 민중의 동의를 창출하면서 헤게모니를 형성하게 된다(39쪽). 이런 시각은 임지현팀의 대중독재론의 새로운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대중독재’론에 따르면, 근대 파시즘은 ‘인민주권론’과 같은 근대적 정치 원리에 기반을 두고 출현한 ‘합의 독재’로서의 성격을 가지며 그러 점에서 박정희 체제를 단순히 폭압과 허위의식에 기바한 정권으로 보는 것은 근대적 파시즘의 ‘주권 독재’적 성격에 비추어 보면 일면적이고 단순한 분석이 된다. 박정희 독재는 ‘위로부터의 독재’였을 뿐만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독재’였으며, 이렇게 볼 때 ‘독재를 악으로 보고 반독재를 서으로’ 일면화하는 ‘도덕적 이원론’을 넘어설 수 있게 될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이런 대중독재론의 합리적 핵심을 긍정적으로 파악하면서 그것을 ‘근대 독재 권력의 모순적 복합성’이라는 분석틀을 중심으로 재인식․재설정하고 그에 기초해 박정희 체제의 성격을 분석하고자 한다(2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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