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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1/21
    나의 서양미술 순례 / 서경식
    반작용

나의 서양미술 순례 / 서경식

 

긴 여행을 계획 중이다. 돈이 많지 않으니 호화로운 여행은 되지 않을 테고, 노동력을 팔아 숙식을 제공받는 방식으로 이곳저곳 떠돌아다닐 생각이다. 4월 달 초에 떠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벌써부터 할 일이 많다. 일주일째 고민하고 있는 비행기표도 오늘은 질러야 하고, 집 보러 오는 사람을 맞이해야 한다. 비자 준비하고, 이삿짐 싸고, 고양이를 맡기고, 숙소 알아보고.... 마음은 번잡한데 걱정꺼리는 또 있다.

 

“왜 너는 그렇게 네 마음대로 사냐?”

수화기 건너편으로 앙칼진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의 걱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자식을 먼 곳에 떠나보내는 일은 얼마나 마음 아리는 일일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심했다. “한곳에 자리잡을 생각을 해야지. 정착할만하면 도망가고, 또 도망가고... 너나, 너네 아빠나 똑같아!” 잠자코 듣고 있던 나도 그 한마디에 폭발하고 말았다. “내가 왜 그런 소리를 듣고 있어야 해?” 말을 뱉자마자 아차 싶다. 하지만 안 그래도 해야 할 일이 많아 어수선한데, 엄마가 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섭섭하다. 정신을 부여잡고 좋게좋게 전화를 끊고 나니 찹찹하고 허한 마음만 남았다. 이 여행, 과연 잘하는 짓일까? 그때, 이 책이 생각났다.

 

나는 혼자서 이런 비일상적인 방황을 계속하려 하고 있다. 왜? 무엇 때문에? 거기에 대답할 수가 없다. 생각하면, 나는 흡사 ‘엉거주춤이라는 독약’에 마비된 양, 이 10년 넘는 세월을 어영부영하며 살아버렸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끝장을 내야 할 때다. 양친은 이미 가셨고, 나의 젊은 날도 끝나려 한다. 이 여행에서 돌아가면, 확실한 ‘생활’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생활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마침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비행기를 곁눈질하며, 나는 그런 생각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 P47

 

내가 가지고 있는 판본은 1992년에 인쇄된 초판본이다. 문고본 사이즈의 작은 책. 디자인이랄 것도 없다. 멋 부리지 않은 시멘트색의 표지 위에 보라색 글씨로 나의 서양미술 순례라는 단촐한 글씨가 박혀있다. 도판이 삽입되어 있긴 하지만 흑백이다. 초판본으로부터 시간이 꽤 지났기에 깔끔히 디자인 된 풀 칼라판이 새로 출판되었으리라 생각하지만, 갖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뭐랄까, 그의 여행이 관광이 아닌 ‘순례’였기 때문에 검소한 초판본이 오히려 소유욕을 자극한달까.

 

서경식은 재일조선인이다. 재일조선인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그가 살아온 묵직한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하다. 거기다가 그의 두 형은 한국으로 유학을 와 공부를 하던 중에 ‘학생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투옥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 충격으로 얼마 뒤 돌아가시고,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형의 뒷바라지를 하던 어머니도 곧 남편의 뒤를 따랐다고 한다. 그러던 중 찾아온 여행에 대한 욕망. 그는 담담한 얼굴로 유럽 여행을 준ㅂ한다.

 

그의 여행은 오늘날 여행회사가 선전하는 여행의 미덕은 하나도 갖추지 못했다. 자아찾기나 새로운 것의 경험, 일상에서의 탈출 같은 것은 전혀 살펴볼 수 없다. 그 대신 그는 현실의 괴로움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몸은 멀리 유럽으로 왔지만, 그의 정신은 항상 감옥에 있는 형들과 일본에서 ‘생활’을 위해 분투하는 누이동생을 생각한다. 귀국 후 계속 될 삶에 대한 고민도 끊이질 않는다. 과거에도 얽매여 있다. 아주 작은 것에도 아버지 어머니의 험난했던 삶이 떠오른다. 여권을 제시할 때마다 부모의 나라이자 자신의 국적이 있는 나라 한국과, 태어나고 자랐지만 자신이 속할 줄 없는 일본의 사이에 끼어 고뇌한다. 새로운 것을 만난 흥분도 없다. 그가 감탄하는 그림이라고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과는 아예 거리가 먼, 슬프고 괴롭고 인간의 풍경이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순수한 감동에 젖는다. 그가 멋지고 화려한 여행을 하고 있지 않음에도, 젊음의 패기 따위 찾아볼 수 없는 정적인 여행을 하고 있음에도 그의 자욱에는 무언가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저자 자신이 그림을 보며 발견해 낸 것과 비슷한 성질의 감동일 것이다. 그는 삶의 고난도 슬픔도 그저 조용히 바라본다. 마치 그림을 볼 때처럼 바라보기만 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절망하는 듯하다가도, 한숨 깊이 쉬고 받아드린다.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듯 여행을 하고, 아파하는 기색 없이 담담히 자신의 여정을 고백한다.

 

이것이 실은, 여행의 실제 모습인 것 아닐까? 흥분하지도 두려움하지도 않고, 다음 도시로 또 다음 도시로 이동하는 것. 여행과 삶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삶 역시 시작과 끝이 있고, 먼 곳으로 떠나갔다 생각했지만 고작 몇 발자국 더 나아갔을 뿐이며, 결국 누구든지 시작한 곳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이곳에서 먹고 걷고 생각하며 잠을 청하는 것처럼 그곳에서의 나도 먹고 걷고 생각하며 잠을 청하게 될 것이다.

 

이번 여행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나는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 준비가 어렵다.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도 적다. 돈은 항상 없다. 준비하지 못하고 출발하여 큰 곤란을 당할 까봐 겁이 나기도 한다. 그렇다고 번잡한 마음에 휘둘릴 것이 무엇인가. 모든 것을 다 갖춘 삶은 없듯, 내 여행도 어딘가 부족한 듯 괜찮은 듯 흘러갔으면 좋겠다. 어디든지 나는 나로서 있을 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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