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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1/18
    닥터슬립, 스티븐 킹
    반작용

닥터슬립, 스티븐 킹

 

fear는 모두 다 집어치우고 도망칠 것(fuck everything and run)의 줄임말이다.

『닥터슬립』 제일 첫장 인용구

 

애초에 나는 공포영화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정정한다.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 무서워한다는 표현이 알맞겠다. 내 친구 중 몇은 인생의 극악스러웠던 경험 중 하나로, ‘너와 함께 공포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갔을 때’를 꼽는다. 그런 영화를 볼 때면 나는 두 시간 꼬박 실눈을 뜨고 한껏 쪼그라들어 있는 편이다. 아주 작은 소리에 온몸을 튕겨가며 놀라기도 한다.

 

그런 나에게도 무척 아름다웠다고 기억되는 공포영화가 있다. 화면을 가득 채운 설원, 터진 강물처럼 붉은 피가 흘러들어오는 호텔의 복도, 단정한 금발의 꼬마아이가 쉰 목소리로 외치는 ‘레드럼! 레드럼!’. 바로, 『샤이닝』이다. 이 영화의 무엇을 내가 ‘아름답다’ 느꼈는지는 잘 모르겠다. 눈밭에서 뛰는 배우들이 멋졌다고 생각하지만, 주인공이 눈밭을 뒹구는 영화는 이것 말고도 쌔고 쌨다. 별 이유도 모른 채 이 영화를 아름다웠던 공포영화로 꼽고있다

 

이 영화의 원작이 스티븐 킹의 소설이었다는 것을 나는 까맣게 몰랐다. 우연히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다른 영화 『1408』을 보고 나서야, 스티븐 킹이 공포 소설의 거장이라는 것을 알았다. 쓴 책이 그렇게 많다는 데, 그 중 한권도 읽어본 적이 없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몇 권만이라도 한번 읽어볼까, 하는 생각으로 닥터슬립을 구매했다.

 

사실 스티븐 킹의 소설 중 하필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딱 하나였다. 닥터슬립 상,하권을 한꺼번에 사면^^ ‘웰컴 투 오버룩 호텔’이라고 적혀 있는 가방을 사은품으로 주는 신간이벤트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버룩 호텔은 영화 샤이닝에서 모든 사건이 일어나는 배경이 된 유령 호텔이다) 배송되어온 책보다 가방이 더 좋았던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다ㅎㅎ. 애초에 책은 읽지도 않고, 짜릿짜릿한(?) 이 가방만 장바구니로 열심히 들고 다녔으니까.

 

그리고 드디어 어제, 밤을 꼴딱 새어가며 닥터슬립을 다 읽었다. 닥터슬립은, 샤이닝의 꼬마 주인공 대니가 어른이 된 이후의 이야기를 그린다.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이런 류의 소설은 줄거리를 알고 숨은 의미를 유추해나가는 것보다, 주인공과 함께 소설 속을 여행하며 실감하는 ‘현장감’이 중요하지 않은가? 다만 나는 이 책의 표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다. 닥터슬립의 표지. 검색하면 금세 나올텐데. 15,6살 정도로 보이는 서양의 남자아이가 박혀있는 이 책의 표지 말이다.

 

책의 내용이 중요하지, 그깟 표지가 뭐 대수냐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이 책의 표지는 꽤나 강렬하다. 한번 읽어볼까 하고 책을 꺼냈다가도, 이 아이의 꿰뚫는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딴청을 하게 된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면서 등이 서늘해진다. 아이는 머리를 짧게 쳐냈고, 도톰한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어깨의 선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 위로 환영인 듯 보이는 이미지가 겹쳐진다. 언뜻 보면 인간의 살덩이 같기도 하고 밧줄과 같은 섬유조직을 확대한 이미지 같기도 하다. 하여간 비현실적이다. 이 환영을 통해서 본 아이의 얼굴은 갈기갈기 조각나 분열된 듯 보인다. 마치 불타오르는 불에서 선명한 악마의 얼굴을 본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처음에는 너무 무서워서 쳐다보지도 못했다. 사실 이 표지를 찬찬히 뜯어보고 있는 지금도 무서워 죽겠다. ㅎㅎ (지금 가만히 살펴보니, 1권과 2권의 글자 디자인이 미묘하게 다르다. 으아, 이것도 무서웤ㅋㅋ)

 

내가 앞으로 또 ‘킹의 독자’가 될 일이 있을까? 지금으로선 없을 것 같다. 공포 소설을 찾아 읽기에 나는 너무 겁이 많다. 그래도 오랜만에 책에 빠져들 듯이 독서를 했다^^. 이런 경험은 언제해도 즐겁다^^

 

fear는 모든 걸 받아들이고 극복할 것(face everything and recover)의 줄임말이다.

『닥터슬립』 제일 마지막장 인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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