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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팰리스', 장애인의 성과 여성의 성...

인디다큐페스티벌 기간인데, 보고서 작업 때문에 토론회와 회의에만 참석하고 말았다. 오늘, 며칠 째 밤을 새고 있는 사무실에서, 휴관일인데도 나와 일을 하고 있는 언니들과 함께, 아 영화 보러 가버릴까.. 수다를 떨다가, 장애인의 성에 대한 다큐라는 "핑크팰리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건 꼭 봐야 해... 문제가 있다니까..."

간단하게 들은 내용만을 가지고 하는 생각이지만, 장애인의 성을 인정하고 성적 쾌락을 누릴 권리를 보장하는 것과, 장애인들에게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 여성들이 필요하다는 것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나는 이것이, 일본군 정신대에 대한 사고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남성들은 어떻게든'성욕'을 '해소' 해야만 하며, 거기서 여성은 언제나 이 해소의 대상일 뿐이다. 억압적 국가권력이 한창때의 청년들 잡아두었으니 어쩌면 필요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고, 솔직히 그렇게 생각한 남성들, 분명 있을 것이다. 아니, 그 시기에는 자신의 동생이나 애인이 끌려 가면 개인적인 분노이겠으나, 그렇게들 그렇게들 생각했을지도 모른다는 건 너무 큰 오해인가?

장애인의 성에 대한 담론과 실천적 활동들은 분명히 필요하다. 하지만, '장애인'이 곧 '이성애자 남성 장애인'은 아니어야 하며, 사회적 소수자들이 다른 모순 속의 소수자에 대한 잘못된 관점을 가지고 이 모순을 확대재생산하는 상황이 벌어져서는 안될 것이다.

여하튼, 아직 못봤으니,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겠다. 일단 보고 이야기해야겠지. 게다가 비장애인인 내가 왜곡된 시각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도 농후하니만큼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P.S. 이 작품이 미디액트에서 상영 지원도 하고 '보부상 프로젝트'로 DVD 제작 지원도 했다는 사실이 더 어처구니가 없다. 어찌나 익숙한 제목인지, 그런데도 불구하고 참으로 관심도 없었구나.. 하고.

P.S. 잠깐 검색엔진을 돌려보니 아래와 같은 칼럼이 나왔다. 참고.

P.S. 작년 서독제에선가 화제를 모았고 어디선가는 상도 받은 작품 중 '아빠..' 라는 작품이 있다고 하는데, 장애 여성의 성과 아빠라... 꽤나 논란이 되었던 것 같은데, 전혀 몰랐다. 챙겨 봐야지. 그리고 더 고민할 것이 있겠지...

 

[한라일보 | NGO 칼럼]핑크팰리스’ 누구를 위한 것인가


입력날짜 : 2005. 10.18

 

 얼마전 제주의 한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다큐멘터리가 있다. 장애인의 성 문제를 다룬 이 다큐의 제목은 ‘핑크팰리스’.

 영화 제작의 동기는 아주 간단하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장애인을 무성의 존재로 여긴 사람들에게 장애인의 성 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내겠다는 것이었다.

 다큐멘터리 초반부에 등장하는 장애인들의 당당한 성적 이야기들은 보는 이와 함께 융화되어 저절로 즐거웠다. 그들의 유머와 때로는 뼈가 아릴 정도로 힘겨운 생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내려갈 때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야기가 후반으로 가면서 점점 지루해지고 한편 답답함이 몰려와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과연 무엇이 내 숨통을 막았던 걸까? 내가 찾은 결론은 ‘영화의 시선’이었다. 앞부분에 몇 명의 여성장애인이 나오지만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남성 중심적이며 이성애 중심적인 영화인 동시에 성기 삽입적인 영화에 불과하다. 실제 핑크팰리스에서 여성 장애인의 성 문제는 깊이 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영화의 전개 속도에 비한다면 여성 장애인의 성 문제는 수박 겉 핥기식 정도. 또한 장애인 동성애자의 성 문제는 조금도 다뤄지지 않고 있다.

 전체 인구 중 동성애자의 수가 10%에 달한다는 통계를 볼 때 450만명에 달하는 장애인 중에서 동성애자의 수도 적지 않을텐데 말이다. 가슴이 답답했던 또 다른 이유는 영화의 후반부에서 차마 웃으면서 넘길 수 없는 문제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동수 아저씨가 다시 한 번 성매매 업소를 찾게 되는 과정은 감독과 PD의 유도하는 듯한 의도가 깔려있다는 인상이 강했다. 동수 아저씨가 성매매를 이용하는 과정은 상당히 인위적이고 유도성이 강하다. 그런 면에서 동수 아저씨의 이야기는 함께 걸음에 났던 기사의 재연에 불과했다.

 이 영화는 성매매특별법의 진상이 어떻든, 장애인이 성기 삽입 차원의 섹스에 소외되어 있으니 성매매가 합법화되어야 한다는 의도를 이면에 깔고 있다. 드러내놓고 공창제 등을 말하지 않았지만, 장애인 성매매 업소인 ‘핑크팰리스’를 영화제목으로 사용하고, 성매매 업소를 찾는 장애인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성 향유가 성기 삽입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성매매 업소를 찾는 장애인 역시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영화를 찍은 감독은 ‘장애인 성매매 업소인 호주의 핑크팰리스가 정부가 제공하는 사회적 환경’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틀렸다. 공창제를 채택하는 호주에서 장애인 성매매 업소는 현실적으로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한 업소 주인의 선택일 뿐 정부가 제공하는 게 아니다.

 이 영화 어디에도 ‘성매매피해여성들의 성’은 찾아볼 수 없다. 이들에게 성매매피해여성들의 성은 단순히 자신들의 ‘욕구해소를 위한 성’일 뿐이다. 그러한 욕구를 해소하는 데, 여성은 하나의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어떻게 성이라는 주제를 단지 아주 기본적인 욕구로 해소되어져야 할 것, 그것도 다른 사람을 타자화 함을 통해 해결될 것으로 그린단 말인가? 이 영화는 장애인의 성에 대한 현실을 그리고 있는지는 몰라도 성에 담겨져야 할 최소한의 것이 없다. 그것은 타인의 존중되어야 할 성이다. ‘핑크팰리스’라는 곳 자체도 성매매피해여성들의 존중되어야 할 성이 없는 단지 상품으로 여성을 만날 수 있는 곳 아닌가? 장애인의 성이 중요한 만큼 성매매피해여성들의 성도 중요함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아쉬움을 던져주며 이 영화는 끝이 났다.

<위혜연/제주여민회 부설 성매매피해상담소 상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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