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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사회주의자 선언] 활동 평가

최종수정일 : 2011.05.18

카페 : [일만 사회주의자 선언] 모임 (cafe.naver.com/wethesocialists.cafe)

 

1. 활동계획

 

 • 취지

  반-MB를 전제로 한 진보정당대통합 국면에서 사회주의자들은 규모있는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선언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스스로를 인식하고, 서로의 공간을 터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차원에서 시작됨.

 

 • 목적

  - 추상적 목적

   * 운동의 대상 : 사회주의에 동감하는 자, 사회주의를 감성적으로 받아들이는 개인, 조직에 소속되어 있음에도 사회주의자로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조직원 등.

   * 운동의 매체 : 온라인에서 덧글과 스크랩을 통해 지지서명을 받는다. 오프라인의 경우는 메이데이를 전후로 지지서명을 받는 활동을 전개한다.

   * 운동의 방향 : 1차적 목표로써 사회주의자로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도록 하고, 2차적 목표는 사회주의자들이 결집하고 연합하여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공론장을 마련한다.

 

 

 

1차적 목표 (단기)

사회주의자로써 서로 인식하도록 한다

2차적 목표 (중/장기)

결집/연합하여 사회주의자들의 의견을 나누는 공론장을 마련

 

 

  - 구체적 목적

   * 구체적 목적이란 현 단계에서 1차적 목표에 한한다.

   * 사회주의자로써 자신 그리고 서로를 인식하도록 하는 수준으로 기획된다.

   * 이러한 방식은 서명과 지지의사표명 정도를 통해서 결합될 뿐, 조직 가입이나 정당 가입 등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서로를 인식한다는 수준에서 지지하느냐는 수준의 인식론적 지평에서 우리의 활동이 이루어짐으로 이 활동은 홍보 또는 사회주의자의 ‘매체’가 된다는 수준으로 잡도록 한다.

   * 숨어있는 사회주의자들, 이에 감성적으로라도 동조하는 개인들에게 접근할 매체가 부재한다는 점에서 우리들의 활동은 그러한 매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한다.

 

 • 참여방법

 - 온라인 참여

   * 온라인의 경우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지지 표명을 받는다,

   * 진보넷 블로그(http://blog.jinbo.net/wethesocialists)를 통해 선언문에 동의/지지한다는 덧글, 스크랩 등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토록 한다.

  - 오프라인 참여

   * 오프라인의 경우 초기에는 회의형태로 진행하였고 이후 대중들을 상대로 하는 서명운동을 하자는 의견이 나왔음.

   * 4월 30일 메이데이 전야제에 공식적인 서명활동을 전개한다.

   * 12:00 ~ 18:00까지 두리반에서 하는 51+행사에 참여하여 부스를 마련하고 서명을 받는다.

   * 20:00 ~ 23:00까지 고려대에서 열리는 청년학생문화제에 학생회관 정문에 부스를 마련하고 서명을 받는다.

 

 

2. 활동내용

 • 서명참여 정보

  - 서명참여도

 

 

매체유형

점유율(%)

인원(명)

오프라인

31.1

37

온라인

덧글

42.0

50

아고라서명

12.6

15

알티(트위터)

7.7

9

스크랩

6,6

8

합계

100,0

119

 

 

 

 • 활동물품 내역

 

 

항 목

재 원

선언문 100장

각출

대자보로 쓸 선언문 1장

각출

대자보를 걸 바이포드

동아리 연합회 지원

이젤

전이좌련 지원

포스터

각출

포스트잇

필기도구

공생전 지원

우비 4장

김덕수

서명판으로 쓸 골판지

각출

비닐끈

박원익

 

 

 - 각출은 1인당 3,000원이며 각출자 명단은 아래와 같음(가나다순)

 

 

김덕수, 김연, 박원익, 요르, 이승한, 조윤호

 

3. 활동보고

 

 3-1. 두리반 51+ 활동보고

 - 두리반 51+ 콘서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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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만 사회주의자 선언] 서명 부스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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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활동의 기조

  - 두리반의 51+ 행사는 사회주의에 관심이 없는 인디밴드 매니아, 음악을 즐기려 하는 일반 대중들이 대부분으로 보이지만 ‘두리반’이라는 정치적인 공간에서 적절한 대중운동의 장이라 보고 활동을 결의하였음.

  - 대중운동을 통해 선언 모임으로 뭉친 조직원들이 단결할 수 있고, 이러한 활동을 통해 사회주의자의 운동이 어떤 것인지, 또한 대중들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 활동의 내용

  - 참여자(가나다순) : 김덕수, 김연, 김예찬, 박원익, 조윤호, 조은혜, 동아리연합회 3명

 

 

시간

내용

기타

12:00 ~ 13:00

부스 준비

행사 시작 전에 출입통제가 엄격하여 조윤호와 김연만 출입하여 부스준비에 수고해주심

13:00 ~ 14:00

사람들 입장, 부스 준비

행사장 진입 가능하게 되어 입장표를 받고 입장하여 다같이 부스준비 작업 진행

14:00

공식적인 서명운동 진행

 

 

17:00

서명운동 종료 후 고려대로 출발

 

 

 

  두리반 서명운동의 기회였던 점

  - 대중들을 상대로 한 서명운동을 통해 대중들이 사회주의에 대해 어떤 생각과 감성을 갖는지 등을 직접 체감할 수 있으며 이로서 다음 운동에 대해 반성할 수 있다.

  - 콘서트 진행에 시간차가 있었고 다른 밴드가 악기를 셋팅하는 10분~20분의 휴식시간이 있었음. 이 때 집중적인 활동이 가능했음.

 

  두리반 서명운동의 난점

   * 환경적 요인

    - 서명운동 진행 중에 15시 경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해 서명운동 진행에 어려움을 겪음.

    - 부스 공간이 사람들을 등진 후방 구석에 있음으로 인해 사람들의 관심이 매우 저조하였음.

   * 내부적 요인

    - 서명의 대부분이 지인들에 의해 이루어진 점이 있었음. 다만 옆의 서울시 조례개정 서명과 같은 대중적인 인지가 있는 서명운동의 경우도 참여가 저조한 바를 보자면 콘서트에 관심이 많은 일반 대중의 성격이 강해서 참여도가 저조했을 것이라 봄.

    - 각 밴드가 나와 콘서트를 하고 마칠 때 다음 콘서트가 준비될 때까지 10분~20분 정도 대중들에게 우리들의 활동을 인지시킬만한 기회가 있었지만 우리를 홍보하고 관심을 갖게 만들 매체가 부재했음. 투쟁가를 부르거나 구호를 외치는 등의 행동을 했으나 여의치 않았음(51+ 스탭에 의해 제재를 당함). 투쟁가나 구호는 조직 내에서, 또는 투쟁의 현장에서 단결력을 높이는 수단이지만 대중들에게 어필할만한 수단으로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 사료됨.

  아쉬웠던 점

   * ‘서명’이란 단어에 따르는 오해

    - 두리반의 경우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사회주의자 선언 지지를 받는 것이지만 여기서 ‘서명’이라는 단어를 쓰게 됨으로써 자신의 개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직관적인 오해 때문에 접근성이 떨어졌을 것이라 봄. ‘리플’이라고 하거나 ‘공감하기’라거나 하는 식의 단어를 썼다면 좀더 접근성이 쉬웠을 것이라 사료됨.

   * 사후관리의 부재

    - [일만 사회주의선언](이하 [선언]) 모임의 문제의식이 조직화되지 못한 사회주의자, 조직에 있음에도 소외된 사회주의자인 ‘개인’을 모은다는 측면에서 사회주의자를 지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들에 대한 ‘창구’역할을 하기 위해 우리들의 카페를 마련하거나 진보넷 블로그 주소가 담긴 팜플렛, 또는 명함 등을 돌려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을 지속화 시켜야 하지 않았을까 한다.

   * 팜플렛 전달 불충분

    - 팜플렛이 많이 있었지만 적당한 것은 아니었던 점을 생각하더라도, 적어도 휴식시간에 몇몇에게 팜플렛을 돌려야 하지 않았을까 한다. 적어도 남기진 않았어야 했었다.

    - 비가 상당수 많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팜플렛을 앞에 진열을 할 수가 없었던 환경적 요인이 매우 커서 팜플렛이 있는지 없는지 대중에게 제대로 각인을 시키지 못한 점도 매우 큰 것으로 사료됨.

    - 팜플렛에 지지서명을 하세요!와 같은 안내문이 포함되어 있었으면 서명받기가 더 충분하지 않았을까 한다.

 

 

 

3-2. 고려대 민주광장 청년학생문화제 활동보고

 • 활동의 기조

  - 청년학생문화제는 민주노총에서 주최하는 대회로써 다양한 학생조직들이 참여하는 큰 대회이다. 이로서 이전의 두리반 운동의 성격과 달리 사회주의에 대한 접근성이 높을 것이다.

  - 애초에 [선언] 모임의 취지가 개인 뿐만 아니라 흩어져있고 찾기 힘든 다양한 조직들을 모아 공론장을 만들려 했다는 점에서 이 문화제는 그들과 만날 훌륭한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활동의 내용

  - 참여자(가나다순) : 김덕수, 김연, 김예찬, 박원익, 이승한, 조윤호, 조은혜

 

 

시간

내용

기타

18:00 ~ 19:00

부스 준비

학생회관 정문 부근에 마련함

19:00

서명운동 시작

 

18:00

문화제 시작

 

23:00

서명운동 종료

 

23:00 ~ 24:00

문화제 참여

문화제 참여는 각자 소속된 단체로서, 또는 개인으로서 참여함.

 

 

  문화제의 기회였던 점

  - 문화제가 진행되면서 다양한 분파와 조직들을 만날 수 있고 우리들을 각인시킬 수 있는 장이다.

    -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학생회관에 들어와야 했음으로 홍보의 기회가 많다.

 

  ‣ 문화제의 난점

   * 환경적 요인

    - 문화제가 민주광장에서 이루어졌음으로 학생회관에 사람들이 수시로 유동하는 것은 아니었음.

   * 내부적 요인

    - 이미 두리반에서 [선언]모임 참여자들이 비 때문에 너무 고생한 나머지 활발한 운동을 전개할 수 없었음.

    - 다양한 분파와 조직들이 있었음으로 활동이 조심스러운 점이 있었음.

 

3-3. 총평

 - 대체적으로 (특히 두리반의 경우) 사회주의에 대한 거부감을 보이는 경우는 없었음. 다만 온라인 상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거부감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던 점은 사실임. 이러한 거부감에 대한 담론적 투쟁은 간담회 등을 진행하면서 피할 수 없는 투쟁임,

 - 우리들의 활동이 지지하느냐에 대한 동의만을 얻었다는 점에서 우리들의 활동대상이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좌파에 대한 층위도 포함한 개념이었다고 봄. 이로써 사회주의에 대한 내용적 규정으로 들어가는 간담회가 지속화되게 되면 이러한 감성적 측면은 극복이 가능할 것이라 봄.

 - [선언]의 지지서명은 한 달도 안 되는 촉박한 시기동안 규합되지 못한 개인들에게 충분히 서로의 존재감을 확인했다고 봄. 원자화된 개인들을 상대로 119명의 지지서명을 받은 것은 상당히 훌륭한 성과였음.

 - 그러나 지지를 받는 서명방식으로 얼마나 원자화된 개인들을 규합할 수 있었는가를 생각해보자면 본 운동은 부정적인 측면이 많다고 봄. 우선 사후관리적 측면에서 보자면 이 개인들이 [선언]모임으로 유입될 수 있는 매체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커다란 문제로 보임.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자생적인 활동이었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첫 걸음이었고 향후 이러한 서명운동은 일회성으로 끝내기보다 원자화된 개인을 규합하는데 여전히 훌륭한 매체로서 활용할 수 있다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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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사회주의자 선언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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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사회주의자 선언 FAQ

FAQ

 

1. 왜 사회주의인가? 사회주의는 역사적으로 실패한 기획이 아닌가?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본성을 간과했기에, 더욱 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념이 아니었던가?

 

- 사회주의는 이미 역사적으로 실패했다는 것이 사회주의에 대한 통상적인 공격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역사적 실패를 거론하기 이전에 우리들은 ‘실제 역사’로 눈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류는 역사 속에서 최소한 사회주의의 두 시퀀스를 경험했습니다. 1848년부터 1870년 파리꼬민까지의 한 시퀀스가 그것입니다. 관료제를 중심으로 한 불평등한 위계질서를 전복하고 일국 내에서 노동자와 인민의 자주관리를 실현하고자 한 아나키즘적 사회주의의 시퀀스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실패하고 1917년까지의 긴 휴지기가 있었습니다. 이 휴지기 동안 자본주의는 승승장구 했고, 국가와 자본에 대한 타협의 연속 속에서 사회주의의 실패는 자명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또 다른 사회주의의 시퀀스가 도래했습니다. 자본과 국가의 집요한 공격을 이겨내지 못한 지난날의 실패를 거울삼아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주의적 대의를 방어하기 ‘당’을 중심으로 ‘무장’을 했으며 맑시즘의 원칙에 따라 생산수단을 사회화하는 조치들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적으로 사회주의 ‘블록’을 형성하고 냉전시대를 열었습니다. 그것이 80년대 후반에 끝났다는 것은 우리가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우리는 휴지기 속에 들어가게 되었고 (19세기 후반 유럽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다시 한 번 이데올로기의 종언과 인간본성 드립이 난무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역사의 종언이 아니라, 역사의 반복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현 상황을 사회의주의의 오랜 이념 즉, 노동의 분할이 철폐될 수 있으며, 인간 간의 단적인 평등이 실현 가능하다는 보편적인 사유가, 회복 불가능하게 상실되었다는 의미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아직 자신이 사회주의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 역시 그러한 사유에 ‘참여’하고 있으며, 그러한 사람들 역시 얼마든지 ‘사회주의자’로 호명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와 자본의 지배는 불필요하며, 그것은 언제든지 철폐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말입니다! 누군가 그러한 사유를 새롭게 시작하는 곳에서라면 언제든지 새로운 사회주의적 운동의 시퀀스가 다시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자본주의는 그러한 시퀀스를 가능케 할 물적 토대를 예비하고 있습니다. 생산력의 발전과 자본축적은 고도화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빈곤과 노동의 불안정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 아무리 첨단 지식정보 사회라 하더라도 잘린 노동자들이 대학강사나 미술관 큐레이터로 전직하는 사회가 아닌 것입니다. 이 상황 속에서 우리는 앞으로 도래할 사회주의의 새로운 모습이 무엇일지를 모색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과거 사회주의 실험의 실패는 인간의 본성에 비춰 파악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당시의 역사적 정세 속에서 파악되어야 합니다. 첫 번째 시퀀스는 자본과 국가의 폭력을 견뎌내지 못하였고, 두 번째 시퀀스는 당 중심의 조직적 경직성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현실 사회주의의 두 역사적 계열들 속에서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성공과 실패를 밑바탕으로 사회주의자들은 (1) 자본-국가의 대항폭력에 대한 고민과, (2) 조직에 대한 고민을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2. 사민주의 문제, 복지요구는 국가에 대한 타협으로 흐르는 것 아닌가?

 

- 이것은 복지의 형태와, 나아가 정세적인 상황을 고려해서 대답되어야 하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일하는 복지’, ‘사회적 투자’로서의 복지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복지란 더 많은 이윤과 자본축적을 도와주는 보조적인 수단이 아니라, 그 사회가 가진 생산력에 비춰 볼 때 인민들이 당연히 향유해야하고 향유할 수 있는 사회적 권리로서 접근되어야 합니다. 물론 복지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요구조차도 정세에 따라서는 국가에 종속되는 형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본축적이 그 자체의 모순으로 인해 한계에 도달하고, 기본적인 수준의 복지요구조차 관용될 수 없는 상황에서, 복지는 실제로 ‘계급투쟁’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주의 이념은 노동자와 인민 모두의 보편적 시민권이라는 개념과 전혀 모순되지 않습니다. 과거에 ‘투표권’이 노동자들에게 있어 바로 그러한 시민권이었다면, 기본소득을 비롯한 보편적 복지는 오늘날의 노동자들이 쟁취해야 할 새로운 ‘시민권’입니다. 우리는 일부 자본가들과 자선사업가들이 감언이설로 내뱉는 시혜성 복지가 아니라, ‘보편적 복지’를 지지합니다!

 

 

3. 왜 조직의 역할을 폄하하는가? 혹시라도 ‘아나키즘’에 경도된 것 아닌가?

 

- 우리는 운동에 있어 조직의 역할을 무시하지 않으며, 다만 ‘다른 조직’, ‘대안적인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 정파적인 조직관을 넘어서 보편적인 사회주의 이념을 모색하고 토론하는 장이, 앞서 말한 대항폭력에 대한 전략과 조직화의 방법 등을 논의할 공론장이 부재했습니다. 그러한 장이 마련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협소한 정파적 관점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조직 간의 소통에 있어서 최소한의 민주적 소통의 기준조차 지켜지지 않은 일들이 비일비재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조직 자체 내에서도 사회주의자들은 이런저런 비민주적 관행들에 노출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라면 사회주의 이념은 대중 속에서 고립되고 말 것입니다. 오늘날 부르주아 정치꾼들에 의해 ‘운동’ 자체가 ‘정치’의 영역에서 축출당하거나 종속적인 영역으로 게토화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에 맞서기 위해서 운동과 조직 모두가 대중들에게 민주적으로 개방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에티엔 발리바르 말대로 오늘날에는 운동뿐만 아니라 혁명조차도 ‘문명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 왜 청년을 호명하는가?

 

- 우선 선언이 필요하다고 느낀 문제의식의 주체가 청년이고, 대중운동을 할 때 유효한 조직단위가 청년인 것입니다. 그 동안 조직 재생산에 있어서 주역은 엄연히 ‘청년’ 그 중에서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학생사회의 구성과 물질적 조건이 달라졌고, 자신의 개인적 권리에 더 민감해진 청년/학생들은 개개인으로서 더 이상 조직과 결합하려 하고 있지 않습니다. 헌신적인 청년 활동가들도 그들로부터 고립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청년이 조직 재생산의 최전선에 놓여 있는 집단인 만큼 이러한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도 청년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는 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러한 문제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우선 조직을 떠나서 ‘청년’ 그 자체가 주체가 되고 또한 호명되는 선언이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저희들이 청년을 호명할 때 세대 간 분열을 조장하기 위해 그러한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목적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선 전체 계급의 해방은 자기해방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무엇보다 청년의 자기해방을 이루기 위한 청년의 호명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노동 해방의 구체성을 담보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서 생각된 것입니다. 앞으로의 사회주의 ‘선언’에는 청년뿐만 아니라, 여성, 장애인, 청소년, 비정규 노동자들이 호명되어야 하며, 더 나아가 그들이 호명의 주체로 나서는 행위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5.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 일단 온-오프라인이든 무엇이든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탈정파적인 좌파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각자 속한 정파를 현실적으로 벗어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그것과 무관하게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좌파적 공론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르주아적 공론장이야 인터넷이든 어디에든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주의 이념을 수용하면서도, 여전히 각자의 정파적 시각을 떠나 현 정세에 대해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사심 없이 대화하고 토론하는 형태의 공론장은 존재하지 않는 실정입니다. 무엇보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좌파적 공론장에 결집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운동의 대중성과 민주화를 회복시킬 수 있는 현실적으로 가장 좋은 방안이라고 봅니다. 현재 어떤 조직들을 사양세에 접어들고 있고 어떤 조직들을 화장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어떠한 운동조직이든 대중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중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좌파 ‘활동가’들과 ‘시민’들 간의 접점을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할 시점입니다. 우리는 자본과 국가에 저항하는 운동을 지속시켜야 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해 대중들에게 우리의 ‘대의’를 더 ‘잘’ 선전하고 선동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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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현황

현재 서명을 받고있는 수단과, 정리된 서명인원은 다음과 같습니다.

 

선언 블로그 댓글을 통해 동참하신 분 - 29명

 

블로그 게제를 통해 동참하신 분 - 취합중

 

아고라 서명 -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106330

 

다양한 공간을 통해 논의되고 있어, 취합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블로그같은 경우는 해당 블로그 덧글로 지지의사를 표명하신 분이 많고, 블로그마다 돌아가며 정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한번 서명 올린 블로그를 링크로 취합해보겠습니다.

 

여전히 매주 월요일 회의를 돌리고 있으며, 430때는 51+참가 후 430문화제에 결합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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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the Socialists

  이 선언을 하고자 하는 우리는, 조직과 결합하지 않았으나 변혁을 갈망하며 진지하게 고민하는 개인들입니다. 이 선언의 목적은, 합당국면에서 규모있는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이들이 사회주의자로써 스스로를 인식하고, 선언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서로의 공간을 터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는 취지에서 기획되었으며, 온라인-오프라인상의 홍보와 활동을 통해 선언에 동의하는 이들과 함께 다듬어나가며 변혁운동의 장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오롯이 설 공간을 터나가고자 합니다. 

 

  온라인에서는 선언 포스팅의 블로그로의 펌글을 통해, 그리고 blog.jinbo.net/wethesocialists의 해당 선언 포스팅에 대한 댓글을 통해 참여를 받고 있으며, 오프라인에서는 매주 월요일(3/28) 고려대학교 학생회관 생활도서관에 모여 선언의 구체적 의미와 방향에 대해 논의합니다. 활동과 스스로의 삶에 대해 고민하며 나아가는 당신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얼마 전 민주노동당 강령에서 ‘사회주의 원칙’을 삭제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주의 원칙이 진보세력의 통합에 걸림돌이 되고, 무엇보다 이를 삭제하는 것이 기층 당원들의 눈높이에 맞춘 처사라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사회주의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이런 저런 구실로 사회주의 원칙을 퇴색시키려는 시도들은 단지 민주노동당 내에서의 현실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주의자들은 어느 곳에서든 우리 자신의 원칙과 노선을 명확히 표현하는 것조차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무엇보다 현실 정당 내부에서 우리들은 여러 가지 유혹에 직면해 있다. 우리는 우리의 구호와 강령을 약간만 완화하고 약간만 타협하기만 한다면 우리가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다는 협박과 회유에 직면해 있다. 우리들은 변혁에 대한 우리들의 열망을 제대로 수용할 수 있는 현실 정당과 조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사회주의를 내세우는 조직들에서조차 ‘우리들이’ 생각하는 사회주의의 원칙이 무엇인지에 관해 자유롭게 토론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우리들은 우리가 처한 어려운 현실에 대해 어떤 손쉬운 환상도 갖고 있지 않다. 노회한 진보적 어른들이 말하는 사회주의란 단지 겉치레에 불과했다. 지난 역사는 ‘진보’라는 저 막연한 관념이 사회주의 원칙을 얼마든지 판돈으로 걸 수 있는 것을 몸소 실증해 주었다. 사회주의를 말하는 여러 조직 역시도 의회정치의 의제에 끌려 다니면서 젊은 사회주의자들을 정치적 동원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이제 환상은 끝났다. 그러므로 우리, 청년 사회주의자들은 이제 우리가 생각하는 바를 명확히 말할 것이다.

 

  ‘진보’니 ‘통합’이니 하는 저 막연한 이름으로 우리가 견지하는 원칙들에 더 많은 힘이 실릴 것이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속이는 짓을 그만 둘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견해와 의도를 감추는 것을 경멸받을 일로 여긴다. 대신 우리가 생각하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공공연하게 말하자. 대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우리가 무엇을 지지하는지 정직하고 분명하게 말하자. 우리의 신념을 선언하고 어디에서든 가르치자. 현재 운동이나 정당의 규모가 작다고 우는 소리를 내는 일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전체 진실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말할 것이며, 우리들이 말하는 이 진실이 어느 곳에서도 ‘합의’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선언할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회주의의 원칙이란 합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정치적 권리’를 다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타협할 수 없는 사회주의적 원칙에 관한 우리들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우리는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복지’가 시혜의 대상이나 선심성 정책이 아니라, 모두의 ‘보편적인’ 사회적 권리라는 사실을 무조건적으로 단언할 것이다. 복지는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 교육권, 주거권, 행복 추구권, 그리고 사회적 국가를 실질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복지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소수 기술관료들이나 카리스마적인 정치인의 즉흥적인 판단에만 맡겨놓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복지는 무엇보다 예산주권의 문제이다. 이제라도 사태를 다시 바로잡아야 한다. 시민들의 사회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보육문제, 교육문제, 노동문제 등에 관해 어떤 복지가 필요한지에 대한 ‘판단’은 이제 ‘우리’들이 한다. 이에 관한 ‘정치적 책임’은 당신들, 예산을 멋대로 주무르던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져야 한다. 시민들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실질적 방안을 마련하는 데 예산을 우선 배분하라.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그 나머지 예산으로 당신들이 원하는 (각종 불필요한 토목사업과 같은) 소꿉놀이를 하라. 무엇보다 복지의 혜택을 이 사회의 구성원들이 부자이든 빈자이든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돌아가게 하라. 우리는 ‘보편적’ 무상급식 정책을 강력히 지지한다. 이제 복지에 관해서 ‘누가’ ‘더’ ‘불쌍한’ 사람인지에 관한 모욕적인 판단을 국가와 관료들이 내리는 시대는 끝났다. 복지는 이 사회의 시민 구성 모두가 당연히 누려야 할 자랑스러운 권리이다. 국가와 관료의 책임은 이러한 권리를 보장하는 데 있다.

 

  두 번째, 노동은 이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자원이다. 그럼에도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은 여전히 명목상의 문구에 불과했다. 우리, 사회주의자들은 모두 다 노동자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며, 노동권이 단순히 몇몇 소외받는 사람들의 사회적 권리일 뿐만 아니라, 노동계급 전체의 ‘정치적’ 권리라는 사실을 단언할 것이다. 우선 차별받고 억압받는 자들이 노조의 자유로운 결성을 방해하는 저 흔한 폭력적인 시도들은 그 정의상 ‘불법적인’ 것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노동자와 철거민들에게 용역폭력을 동원하는 자본가들을 구속하라! 그리고 우리는 노동자들을 ‘정치적 주체’로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노동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그들로 하여금 임금결정에 참여하도록 하라. 근로조건에 관한 그들 자신의 요구는 노동의 분할(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할)을 강제하는 자본의 공세를 무력화하는 수준까지 허용되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의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요구가 지나치게 ‘과도’해질 것을 걱정하고 있다. 우리는 저들의 한가한 ‘걱정’을 공유하는 어떤 정치세력과도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최저임금이 아닌 ‘생활임금’을 지지한다. 모든 노동자들은 그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 사회가 이룩한 문명을 향유할 권리가 있다. 그들이 받아야  할 ‘최저한’의 임금은 바로 그러한 권리를 척도로 산정되어야 한다.

 

  세 번째, 우리들은 모두의 교육받을 권리를 옹호한다. 우선적으로 공교육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사교육을 포함한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할 것이다. 오늘날 의무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수많은 학생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데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여라. 그들로 하여금 그들에게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라. 공교육 내부의 경쟁과 폭력에 시달렸던 수많은 학생들이 ‘대안학교’를 찾아 전전하는 불행한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공교육 자체가 그들에게 ‘대안’을 제공하도록 요구하자. 그것이 국가가 응당 져야 할 책임이다. 학력 신장을 명목으로 학교에서 자행되었던 흔한 사적 폭력들을 사회적으로 통제하라. 학교는 시민 양성소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시민적 권리를 우선적으로 교육하라! 무엇보다 우리 사회주의자들은 공교육을 넘어 대학교육에 대한 ‘사회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에 강력히 동의한다. 제 정신을 가진 대학생들은 이제 ‘대학 선진화’라는 미명 하에 캠퍼스를 화려하게 꾸미고 값비싼 상점들을 학내에 들이며 등록금을 인상하는 저 술책들에 더 이상 기만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대학과 자본이 상아탑 위에 쌓아올린 이윤은 우리들에게 외설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명문 대학이든 비명문 대학이든 그들이 쌓아올린 이윤은 단지 이 땅의 파행적인 학벌제도와 차별적인 노동시장 구조를 이용하여 갈취한 지대(rent)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저 위선적인 소수의 명문대학들은 명문대학으로서의 자신들의 특권적인 ‘지위’를 선전하는 저 역겨운 행위를 통해 그들이 제공하는 교육이 단순히 시장에서 제공되는 상품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반증해 주었다. 대학은 자본이 아닌 학생들이 요구하는 교육을 제공하라! 그리고 대학은 그들이 갈취한 이윤을 학내 구성원들, 학생들, 노동자들 모두에게 되돌려라!

 

  네 번째, 우리 청년 사회주의자들은 청년들이야말로 이 사회의 ‘재생산’의 ‘책임’을 지고 있는 ‘주체’들이라는 것을 선언하며, 그들의 사회적 독립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할 것이다. 지금까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어느 정치적 세력도 청년들을 단순한 ‘동원’의 대상 그 이상으로 보지 않았다. 오늘날 청년들 사이에서 만연한 정치적 냉소주의는 단순히 그러한 현실인식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 청년들이 청년에게 요구되는 ‘패기’와 ‘야성’을 잃어버린 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적 공간을 점유해왔던 기성세대 자신의 책임이다. 이제라도 위선적인 방식으로 청년들에게 사회적 참여할 것을 훈계하는 짓은 중단되어야 한다. 시위와 집회에 나가고 투표를 하는 등의 사회적 참여의 진정한 올바른 방향이 무엇인지는 ‘우리들’이 ‘결정한다.’ 무엇보다 청년들이 무한정 유예된 사회적 독립과 독자적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 각자의 사적영역 속에서 자기계발과 노동에 매진하는 상황에서는 어떠한 정치적 대의도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점을 직시하라. 그들이 노동권, 주거권, 교육권 등의 사회적 권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현실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더 이상 부모가 그들을 무한적 부양할 필요가 없어질 때, 청년들의 사회적 독립과 더불어 그들의 제반 권리를 위해 투쟁의 당위성이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서슴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위해 거리에 나서는 유럽의 청년들을 부러워하기 이전에, 각 정치세력들은 그들이 청년들의 사회적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하라. 우리들은 이제 더 이상 진보니 뭐니 하는 공허한 정치적 미사여구에 속지 않을 것이며, 청년들을 본연의 사회적 주체로 진지하게 인정하는 정치세력들만을 진지한 연대의 상대로 고려할 것이다.

 

  우리, 청년 사회주의자들은 현재 사회주의라는 대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냉정하게 직시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위기는 ‘조직’의 위기일 뿐만 아니라 ‘개인’ 양자의 위기이기도 하다는 점을 말이다. 그 동안 진보적 이념을 내세우는 각종 조직과 정치세력들은 그들을 떠받쳐 왔던 개개인들에 대한 자신의 정치적 책임을 등한시 해 왔다. 조직들이 진보적 개인들을 추수하기에 급급한 상황 속에서, 반대로 진보적 개인들은 자신의 대의에 대한 무력감과 냉소주의에 빠져들었다. 지난날 촛불시위는 과거의 조직들에 절망한 개개인들의 느슨한 네트워크를 통해 정치적 변화를 불러일으키고자 했던 최후의 시도였다. 촛불시위 이후 우리는 더 이상 개인의 자발적인 내면과 의식만으로는 무엇도 할 수 없다는 또 다른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반대로 각 조직들은 조직의 재생산이라는 장벽에 부딪히며 대중 동원능력을 급격히 상실해 가고 있다. 그들이 하나 둘 의회전술과 진보 대연합이라는 유혹에 굴복해 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럼에도 조직들은 자신의 책임과 과오를 깨닫지 못한 채 여전히 과거의 관성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 사회주의자들은 이러한 문제상황에 놓여 있으며, 동시에 이러한 문제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다시 이 자리에 모였다. 조직과 정파를 떠나, 우리들은 진보적 이념을 내거는 각 정치세력들에게 자신의 정치적 책임을 질 것을 다시 한 번 요구할 것이다. 진보대연합이나 각종 선거공학에 기초한 망상들로 스스로를 속이는 짓을 그만두자. 대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앞서 말한 사회주의적 원칙을 분명하게 내거는 세력들만 지지하고 연대함으로써 우리의 의사를 분명히 하자. 그리고 그들에게 그들이 대중들에게 진 정치적 책임을 자각하게 하자. 조직들로 하여금 그들이 할 일을 하도록,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혹자는 이념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우리들은 여기에 대해, 이념을 분명히 함으로써만 비로소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분명해질 것이라는 말로 대답할 것이다. 지금 대중들 사이에서는 이 사회가 재생산의 한계에 부딪혔다는 공통인식이 공유되고 있다. 말하자면 지금의 계급 사회가 이대로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공통감각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만연한 위기의식과 당혹스러운 망설임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이념을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 거리로 나서 당당하게 선언하자. 혹자가 말했듯이, "사회주의만이 유일한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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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를 제안합니다.

이 선언을 하고자 하는 우리는, 조직과 결합하지 않았으나 변혁을 갈망하며 진지하게 고민하는 개인들입니다. 이 선언의 목적은, 합당국면에서 규모있는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이들이 사회주의자로써 스스로를 인식하고, 선언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서로의 공간을 터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는 취지에서 기획되었으며, 온라인-오프라인상의 홍보와 활동을 통해 선언에 동의하는 이들과 함께 다듬어나가며 변혁운동의 장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오롯이 설 공간을 터나가고자 합니다.

 

 

온라인에서는 선언 포스팅의 블로그로의 펌글을 통해, 그리고 blog.jinbo.net/wethesocialists의 해당 선언 포스팅에 대한 댓글을 통해 참여를 받고 있으며, 오프라인에서는 매주 월요일(3/28) 고려대학교 학생회관 생활도서관에 모여 선언의 구체적 의미와 방향에 대해 논의합니다. 활동과 스스로의 삶에 대해 고민하며 나아가는 당신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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