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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과 달이 뜨고, 열차가 뿡뿡대는 영화관

처음의 걱정은 영화제와 무관한 것이었다. 불쾌지수를 높이는 여름의 한복판에 서서 더위야 나 잡아봐라 하는 꼴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섰던 까닭이다.

 

예상대로 덮고 꿉꿉하고, 불과 1시간도 견디지 못하고 씻지 못해 발생하는 온갖 괴로움을 느끼면서 하루 86400초, 그 금과 같은 시간의 무게들이 갑자기 온몸으로 쏟아지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견디지...'바다를 지척에 두고, 이런 생각을 하는 인간은 아마도 나뿐이었을 것이다.

 

나이가 들었나! 야영의 묘미, 한여름 모기 속에서도 마냥 좋았던 낭만은 너무 까막득했다. 

 

그렇게 영화제가 시작되었다. 그나마 어둠이 얼굴에 드러나 버린 짜증을 덮어주어 다행이었다.

 

어눌한 사회자의 멘트, 소소했지만 기술적 더딤..그리고 이어지는 몇 편의 영화들.

그렇게 4편의 영화가 그렇게 지나갔다. 누구의 어떤 영화를, 무슨 생각으로 보았는지 알 수 없게...

 

'저 쑥불이 모기를 정말 내쫒는건가? 최인희는 어디쯤 왔을까? 그래도 이 핵교에 댕기는 아그들은 참 좋은 곳에서 공부한다. 울타리도 없고..그네도 없고..영화제 한다고 없앴나? 저 앞에서 떠드는 꼬맹이들이 이 핵교 학상들인가! 가서 꿀밤한데 먹이고 조용히 하라구 하면 너무 야박하겠지...그래 떠들어라 얼마나 좀 쑤시겠어.......어! 별이다......달이 어제보다 뚱뚱해졌네...난 초승달이 좋은데..이곳 별들과 달은 역시 좀 밝다. 선명하고....서울은 안 그렇겠지..서울에 전화해서 자랑이나 할까..근데 저 영화감독은 왜 주인공이 자살하는 것을 결론으로 했을까? BH는 가희와의 추억의 흔적들을 지우고, 집에 간건가??............................................................................................'

 

그렇게 또다시 영화 4편이 지나갔다. 그리고 새로운 영화 5편이 시작되었다. 그쯤 세우고 있던 허리에 긴장을 풀었다. 앞에 비어있던 의자도 끌어다 다리도 올려놓았다. 그리고 자주 고개를 들어 별을 보았다. 뚱뚱해진 반달도 썩 좋았다. '어 기차다. 저 사람들은 기차타고 어디가나?' 멀리서 기차가 뿡뿡 유난히 경적을 울려대며 지나간다.

 

그리고 영화제가 시작되기 전, 사회자가 남겼던 말이 떠올랐다 "정동진영화제 할 때면 비가 그렇게 많이 왔었습니다. 그때는 우산 쓰고 앉아서 영화를 봤는데, 그래도 오늘은 비가 안와 다행이네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화제, 레드카펫 위의 배우 송강호의 세련된 액션도 없고 봉준호 감독의 스텍타클한 트릭도 없지만, 별이 있고, 달이 있고, 간혹 뿡뿡대며 지나가는 기차가 있어 가슴을 적시는 영화제다.

 

단, 모기약도 꼭 챙겨야 하지만, 영화상영 중 '주사'는 좀 꿍쳐두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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