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에 해당되는 글 21건

  1. 드라마 트루기 2009/04/23
  2. 산다는 것 2009/04/23
  3. 내겐 너무도 버거운 순정 2009/04/23
  4.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그녀들의 이야기. 2009/04/23
  5. 아킬레스건 2009/04/23
  6. 설레임과 권력의 상관관계 2009/04/23
  7. 적(敵) 2009/04/23
  8.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2009/04/13
  9. 노희경이 글쓰는 수칙 몇 가지 2009/04/12
  10. 홀로 사는 즐거움 2009/04/10

드라마 트루기

 

드라마국에 와서 내가 또 하나 내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얘기는 드라마는 인생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드라마와 인생은 확실한 차이점을 보인다. 현실과 달리 드라마 속에서 갈등을 만나면 감독은 신이 난다. 드라마의 갈등은 늘 준비된 화해의 결말이 있는 법이니까, 갈등만 만들 수 있다면, 싸워도 두려울 게 없다. 그러나 인생에 선 준비된 화해의 결말은 커녕, 새로운 갈등만이 난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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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3 19:36 2009/04/23 19:36

산다는 것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산다는 건, 늘 뒤통수를 맞는 거라고. 인생이란 놈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어서 절대로 우리가 알게 앞통수를 치는 법은 없다고.

나만이 아니라, 누구나 뒤통수를 맞는 거라고. 그러니 억울해 말라고.

어머니는 또 말씀하셨다. 그러니 다 별일 아니라고.

하지만, 그건 육십 인생을 산 어머니 말씀이고,

아직 너무도 젊은 우리는 모든 게 다 별일이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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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3 19:34 2009/04/23 19:34

내겐 너무도 버거운 순정

 

생각해보면 나는 순정을 강요하는 한국드라마에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단 한번도 순정적이지 못했던 내가 싫었다. 왜, 나는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더 상대를 사랑하는 게 그렇게 자존심이 상했을까? 내가 이렇게 달려오면 되는데, 뛰어오는 저 남자를 그냥 믿음 되는데, 무엇이 두려웠을까?

 

그날 나는 처음으로 이 남자에게 순정을 다짐했다. 그가 지키지 못해도 내가 지키면 그뿐인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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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3 19:28 2009/04/23 19:28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그녀들의 이야기.

 

감독이 작품속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자만할 때 작품은 본궤도를 잃고 방황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다. 내 앞의 상대를 다 안다고 생각한 그 순간 뒤통술 맞는 일이 일어나고 만다. 지금처럼.

 

이상하다.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 이 말은 엊그제까지만 해도 내게 상당히 부정적인 의미였는데,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준영일 안고 있는 지금은 그 말이 참 매력적이란 생각이 든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린 더 얘기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린 지금 몸 안의 온 감각을 곤두세워야만 한다.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건 아니구나. 또 하나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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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3 19:25 2009/04/23 19:25

아킬레스건

 

지금 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나의 아킬레스건은...인정하기 싫지만, 내가 너무 사랑을 정리하는 것도, 사랑을 시작하는 것도, 쉬운 애라는 거다. 하지만, 이 순간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이 사랑을 더는 쉽게 끝내고 싶지 않다는 거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일까?

 

새로운 사랑은 지난 사랑을 잘 정리할 수 있을 때에만 시작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지 않았다. 다만, 고맙다고 했다.

아마도 그는 그로 인해 내가 얼마나 많이 성숙했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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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3 19:22 2009/04/23 19:22

설레임과 권력의 상관관계

 

그러나, 이렇게 일이 주는 설레임이 한순간에 무너질 때가 있다, 바로 권력을 만났을 때다.

사랑도 예외는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강자이거나 약자라고 생각할 때,

사랑의 설레임은 물론 사랑마저 끝이 난다.

이 세상에 권력의 구조가 끼어들지 않는 순수한 관계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설레임이 설레임으로만 오래도록 남아있는 그런 관계가 과연..있기는 한 걸까?

아직은 모를 일이다.

 

일을 하는 관계에서 설레임을 오래 유지시키려면 권력의 관계가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강자이거나 약자가 아닌, 오직 함께 일을 해나가는 동료임을 알 때, 설레임은 지속될 수 있다.

그리고 때론 설레임이 무너지고, 두려움으로 변질되는 것조차 과정임을 아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미치게 설레이던 첫사랑이 마냥 맘을 아프게만 하고 끝이 났다. 그렇다면 이젠 설레임 같은 건 별거 아니라고, 그것도 한 때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철이 들만도 한데, 나는 또다시 어리석게 가슴이 뛴다

그래도 성급해선 안 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일은, 지난 사랑에 대한 충분한 반성이다.

그리고 그렇게 반성의 시간이 끝나면, 한동안은 자신을 혼자 버려둘 일이다. 그게 한없이 지루하고 고단하더라도, 그래야만 한다.

그것이 지나간 사랑에 대한, 다시 시작할 사랑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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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3 19:18 2009/04/23 19:18

적(敵)

 

지금 내 옆의 동지가 한순간에 적이 되는 순간이 있다.

 

적이 분명한 적일 때, 그것은 결코 위험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동지인지 적인지 분간이 안될 때, 얘기는 심각해진다. 서로가 의도 하지 않았어도 그런 순간이 올 때, 과연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될 까? 그걸 알 수 있다면 우린 이미 프로다.

 

지금 내 옆의 동지가 한 순간에 적이 되는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적은 언제든 다시 동지가 될 수 있다. 그건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때 기대는 금물이다.

그리고, 진짜 중요한건 지금 그 상대가 적이다, 동지다 쉽게 단 정 짓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한번쯤은 진지하게 상대가 아닌 자신에게  물어볼 일이다. 나는 누구의 적이었던 적은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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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3 19:12 2009/04/23 19:12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단결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

 

 

 

희망이 파괴되고
미래는 좌절되고
당신은 당신이 승리했다 생각하지만
그러나 좌절한 사람들은
다시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안다
밤이 낮으로 변한다는 것을.
패배가 승리로 바뀐다는 것을.
단결한 민중은
짓밟힐 수 없다는 것을.
지배자들은 반드시 물러날 것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것도
우리의 단결에 견뎌낼 수 없기에.
그러니 답하라, 당신 지배자여
누가 당신의 땅을 경작하는가
누가 광산에서 구리를 캐내는가

 

 

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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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3 17:03 2009/04/13 17:03

노희경이 글쓰는 수칙 몇 가지

-노희경이 글쓰는 수칙 몇 가지

 

1. 성실한 노동자가 되어라.

노동자의 근무시간 8시간을 지킬 것.

 

2. 인과응보를 믿어라.

쓰면 완성될 확률이 높아지고, 고민만 하면 머리만 아프다.

 

3. 드라마는 인간이다.

인간에 대한 탐구가 드라마에 대한 탐구다.

 

4. 디테일하게 보라.

듬성듬성하게 세상을 보면, 듬성듬성한 드라마가 나오고,

섬세하게 세상을 보면 섬세한 드라마가 나온다.

 

5. 아픈 기억이 많을수록 좋다.

작가는 상처받지 않는다. 모두가 글감이다.

 

6. 생각이 늙는 걸 경계하라.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 그러나 생각은 늙을 수 있다.

지금 내가 하는 모든 생각이 편견인 것을 직시하고, 늘 남의 말에 귀 기울일 것.

자기 생각이 옳다고 하는 순간, 늙고 있음을 알아챌 것.

 

7. 조율을 잊지 마라.

드라마는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닌 더불어 함께하는 직업이다.

조율하지 못할 거면 드라마 작가를 포기하라.

드라마작가는 드라마의 여러 작업 파트 중 다만 글을 쓰는 사람일 뿐, 우두머리가 아니다.

작가적 중심과 독선을 구분하는 게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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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2 20:11 2009/04/12 20:11

홀로 사는 즐거움

법정

 

 

사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이 세상에 올 때도 홀로 왔고 살 만큼 살다가 떠날 때도 홀로 간다. 가까운 사람끼리 함께 어울려 살면서도 생각은 저마다 다르다. 사람의 얼굴이 각기 다르듯 삶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업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같은 독신 수행자는 주어진 여건 자체가 홀로이기를 원한다. 한곳에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살면서도 저마다 은자처럼 살아간다. 서로 의지해 살면서도 거기에 매이거나 얽혀들려고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독립과 자유를 원한다. 묶여 있지 않는 들짐승이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숲 속을 다니듯, 독립과 자유를 찾아 혼자서 간다.

 

불교의 초기 경전인 <숫타니파타>에 이런 구절이 있다.

'만일 그대가 지혜롭고 성실하고 예절 바르고 현명한 동반자를 만났다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리니 기쁜 마음으로 그와 함께 가라. 그러나 그와 같은 동반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마치 왕이 정복했던 나라를 버리고 가듯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어차피 저마다 자기식대로 사는게 인생이다. 똑같이 살라는 법은 없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살려고 한다. 홀로 있을 때 전체인 자기의 있음이고, 누구와 함께 있을 때 그는 부분적인 자기이다.

 

우리 시대의 영적인 스승 크리슈나무르티도 일찍이 말했다.

'홀로'라는 낱말 자체는 물들이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이고 부서지지 않는 것을 뜻한다.  당신이 홀로일 때 비로소 세상에 살면서도 늘 아웃사이더로 있으리라. 홀로 있을 때 완벽한 생동과 협동이 존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래 전체적이기 때문이다.

 

무리로부터 떨어져 나와 단지 혼자 지낸다고 해서 과연 '홀로 있음'인가. 홀로 있을 수록 함께 있다는 가르침은 홀로 있음의 진정한 의미를 가리킨다. 즉, 개체의 사회성을 말한다.

모든 것은 서로 이어져 있다. 바다 위에 외롭게 떠 있는 섬도 뿌리는 대지에 이어져 있듯.

 

고독과 고립은 전혀 다르다. 고독은 옆구리께로 스쳐 지나가는 시장기 같은 것, 그리고 고립은 수인처럼 갇혀 있는 상태다. 고독은 때로 사람을 맑고 투명하게 하지만, 고립은 그 출구가 없는 단절이다.

 

다코타 족 인디언 오히예사는 이렇게 말했다.

"진리는 홀로 있을 때 우리와 더 가까이 있다. 홀로 있음 속에서 보이지 않는 절대 존재와 대화하는 일이 인디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예배이다. 자주 자연 속에 들어가 혼자 지내 본 사람이라면 홀로 있음 속에는 나날이 커져가는 기쁨이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것은 삶의 본질과 맞닿는 즐거움이다."

 

홀로 사는 사람은 고독할 수는 있어도 고립되어서는 안 된다. 고독에는 관계가 따르지만, 고립에는 관계가 따르지 않는다. 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관계 속에서 거듭거듭 형성되어 간다.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으려면 먼저 '자기 관리'가 철저해야 한다. 자기 관리를 소홀히 하면 그 누구를 물을 것 없이 그 인생은 추해지게 마련이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삶에는 즐거움이 따라야 한다. 즐거움이 없으면 그곳에는 삶이 정착되지 않는다. 즐거움은 밖에서 누가 갖다 주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인생관을 지니고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일상적인 사소한 일을 거치면서 고마움과 기쁨을 누릴 줄 알아야 한다. 부분적인 자기가 아니라 전체적인 자기일 때, 순간순간 생기와 탄력과 삶의 건강함이 배어나온다. 여기 비로소 홀로 사는 즐거움이 움튼다.

 

'누가 홀로 가는가?'

'태양, 태양이 홀로 간다.'

 

인도의 가장 오래된 베다 경전에 나오는 문답이다.

 

내가 소싯적부터 즐겨 외는 청마 선생의 <심산>이란 시가 있다.

 

심심 산골에는

산울림 영감이

바위에 앉아

나같이 이나 잡고

홀로 살더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4/10 15:36 2009/04/10 1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