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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1917년 여름 스몰니에서 볼셰비키는 민중의 대표를 취사장에서 발견하다 2009/12/27
  3. 혼자서 밥 먹는 게 그렇게 부끄러워? 2009/12/25
  4. 결정의 지속성 2009/10/26
  5. 조직행동2 2009/10/26
  6. 조직행동 2009/10/26
  7. 창의력 개발을 위한 제언 2009/10/26
  8. 삶은....여행 2009/09/29
  9. 꿈꾸는 자의 나침반은 2009/09/28
  10. 무엇을 흉내낼 것인가 2009/09/24

퍼옴/ 우리 철도 노동자들의 강고한 투쟁은 그 비극위에 서 있습니다

철도노조 서울기관차, 용산기관차, 청량리기관차승무지부 교육선전부 소책자 머리말 퍼옴

 

철도 노동자 더이상 외롭지 않습니다.

 

 

12월 4일 복귀소식이 각종 언론에 전해지자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들은 일제히 철도노조가 백기투항을 했다며, 자신들의 승전보(?)를 전하기 바빴습니다. 파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던 인터넷의 누리꾼들도 철도노조의 복귀소식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보수언론들이 떠들듯 백기투항을 했는지 작전상 후퇴를 했는지는 3차 파업에 돌입하는 순간 명확하게 밝혀질테니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그보다 이번 철도노조의 파업 그리고 복귀과정에서 드러난 이전과는 다른 모습에 좀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지도부의 지침에 따른 일사분란한 복귀도 전에 없던 진귀한 풍경이었지만, 이번 합법파업은 야4당을 포함하여 국민들의 지지가 이전보다 월등히 많아졌다는 사실입니다. 파업기간 내내 포털사이트 DAUM 의 토론방 아고라에서는 철도파업을 지지하는 글들이 봇물을 이루었고, 급기야 다급해진 철도공사는 아고라에 'KORAIL'이라는 닉네임으로 파업을 비판하는 글을 올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철도공사는 이로 인해 대다수 누리꾼들에게 뭇매를 맞아야만 했습니다. 더이상 말도 안되는 논리와 허위사실로 여론을 호도할 수 없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각종 블로그에서는 '불편을 참을테니 제발 이겨달라' 혹은 '나를 볼모로 꼭 승리하라'는 강도높은 누리꾼들의 메시지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자는 지난 8일간의 2차 파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누리꾼들과 국민들의 적극적인 지지에 대해 감사드리며, 이러한 연대의 의미를 결코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남기는 기록입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철도 파업에 대한 여론이 이전보다 좋아졌을까요? 지난 여름 쌍용차 사태를 바라보며 그저 울분을 삼키며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그리하여 분노와 슬픔, 후회와 반성 등의 감정이 마구 엉켜버렸던 그날의 참혹했던 비극을 아직 기억합니다. 왜 갑자기 쌍용 이야기냐구요?

 

 

사실 지금의 우리 철도 노동자들의 강고한 투쟁은 그 비극위에 서 있습니다. 그 비극을 함께 경험했던 수많은 누리꾼들과 국민들의 아픈 가슴들이 모아져 오늘 우리의 합법적이고 정당한 싸움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쌍용차의 파업은 비록 패배했지만, 결코 패배한 싸움이 아닌 것입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비록 패배할 것을 알더라도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나의 승리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패배했던 투쟁들이 그 밑거름이기에 혼자만의 승리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파업을 승리하라는 누리꾼들과 국민들의 메시지는 응원과 지지를 넘어 일종의 염원처럼 들립니다.

 

 

파업의 주체인 우리 철도 노동자들이 이 작은 책자를 통해 누리꾼들과 국민들의 지지를 다시한번 확인하고, 이후 3차, 4차 파업때는 더욱 넘치는 자신감을 얻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파업만 했다하면 바가지로 '욕'을 들으며 손가락질을 받아야했던, 그래서 항상 고립되어 외로울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기억들도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위대한 것은 보수 언론의 말마따나 '철도노조를 녹다운(?)시킨 이명박의 위대한 승리'가 아니라 복귀와 동시에 3차 파업을 결의해내며 언제든 또다시 싸울 수 있다는 철도노동자들의 확신에 찬 자신감이기 때문입니다.

 

 

철도노동자는 더 이상 외롭지 않습니다.

 

 

 

2009년 12월 11일

서울/용산/청량리 기관차 교선부장 드림

 

===============================================================================

 

내일 철도 진상조사단 들어갈 것을 나름 준비한다고 철도노조 홈페이지로 공부중이었는데

계속 감동의 물결이랄까...ㅠㅠ

 

전경찰청장 허준영의 사장임명부터 예고된, 아니 이명박 대통령 취임부터 예정된

험난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끊이지 않는 현장순회로 조직을 다지고,

전국 지역본부와 지부에서 자발적인 투쟁을 결의하고

한번의 철도파업을 위해 수많은 시간을 전국을 뛰며 노력했던 흔적들을 홈페이지에서나마

쫓아가면서, 철도파업은 한번의 파업명령으로 가능했던게 아니구나 하는 걸 확인하고 배웠습니다.

 

2003년 파업이후 7년째 해고투쟁중인 철도해고자 동지들은

전조합원의 생존권을 건 파업투쟁에 선봉이 되고

전조합원은 해고조합원들의 복직문제를 절대 포기하지 않는

그런 기풍이 지금의 철도노조를 만들어온 힘이 아니었을까도 짐작만 해보았습니다.

 

헌신적으로 뛰어다니는 노조간부들도 감동적이지만,

이 투쟁을 가능케한 조합원들의 자발적인 힘을 엿볼 수 있었달까요.

 

그래서

철도노조의 힘을 알기에

허준영 전경찰청장 사장으로도 모자라, 이명박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혈안이되어

철도노조 죽이기에 나서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위에 올린 글은 철도노조 기관차 지부들이 모여 펴낸 소책자의 머리말입니다.

 

나만의 투쟁, 우리만의 투쟁으로 생각하면 지치고 포기할 수 있지만,

선배들의 투쟁을 딛고 싸우고 있고, 우리의 투쟁을 딛고 후배들이 싸울거라고 생각한다면

순간 지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읽으면서 머리가 멍해지며, 먹먹해졌습니다.

참 많은 걸 잊고 살고 있구나...싶어서요..

 

한편,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간부와 조합원이 있는 철도노조라면 믿을 수 있겠구나도 싶었습니다.

 

머, 그러니깐 혼자 읽기는 넘 아까워서 퍼왔다는 얘기 입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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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7 23:01 2009/12/27 23:01

1917년 여름 스몰니에서 볼셰비키는 민중의 대표를 취사장에서 발견하다

브레히트


혁명의 2월이 지나고 대중이
행동을 정지했을 때
전쟁은 아직 계속되고 있었다 농민에게는 토지가 없었고
공장노동자는 압제 밑에서 굶주리고 있었는데
다수에 의해서 선출된 소비에트 평의회는 소수를 대변하고 있었다
이리하여 모든 것이 구태의연하게 무엇 하나 달라진 것이 없었을 때
볼셰비키는 평의회에서 백안시당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끊임없이 요구했기 때문이다 총구를
프롤레타리아트의 진짜 적 지배계급에게
향하라고

 

그로 인해 그들은 배신자로 간주당하고 반혁명이라 욕을 얻어먹고
강도 무뢰배 쓰레기라 일컬어졌다 그들을 지도하는 레닌은
매국노 스파이라 불리워지고 창고에 숨어있어야 했다
어디를 가나 그들과 눈이 마주치면
상대편은 눈을 돌리고 그들을 맞이한 것은 침묵이었다
대중은 그들과 별개의 깃발 아래서 행진하고 있었다
장군과 부호와 부르주아지들이 활개치고 다녔으며
볼셰비키 운동은 패배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그들은 끊임없이 활동했다
고함치며 비방하는 소리에 방황하지 않고 그들의 편이었던 대중이 공공연하게 이탈해가도 주눅들지 않고
끊임없이 반복하여 새롭고 새로운 노력을 거듭하여
최하층의 대중을 대표했다
그들이 유의했던 것은 그들에 의하면 이런 것이었다

 

스몰니 식당에서 그들은 알아차렸다.
빵이나 배추나 수프나 차를 건넬 때
집행위원들에게 서비스를 해주고 있는 병사가 다른 누구보다도
볼셰비키에게 보다 따뜻한 차를 보다 부드러운 빵을
건네주고 있음을 건네주면서 병사는
눈을 다른 데로 돌리고 있었는데 그것으로 그들은 인식했던 것이다
이 병사는
우리들에게 공감을 하고 있느나 상관 앞에서는
그것을 숨기고 있다고 마찬가지로
스몰니에 근무하는 하급직원은 모두가 분명히
위병도 전병도 보초병도 그들에게 기울어지고 있었다
이것을 보고 그들은 말했다.
'우리들의 운동은 그 반은 이루어졌다'고
즉 이와 같은 사람들의 사소한 움직임이나
발언과 시선과 침묵 그리고 눈의 방향 등이
그들에게는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사람들로부터
친구라고 불리워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들에게는 제일의 목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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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7 22:27 2009/12/27 22:27

혼자서 밥 먹는 게 그렇게 부끄러워?

혼자서 밥 먹는 게 그렇게 부끄러워?

오마이뉴스 | 입력 2009.12.25 12:01 | 수정 2009.12.25 12:29 | 누가 봤을까? 20대 여성, 부산

 

 




 

[오마이뉴스 박예슬 기자]"저 오늘 혼자 < 아바타 > 보고 왔어요. 극장에 온통 커플밖에 없더군요. 흑흑." "뭐 어때요. 저는 혼자 아웃백도 다녀 왔는데요."

"윗분, 그 정도 가지고… 저는 혼자 삼겹살에 소주도 먹는답니다." "다들 별 거 아니시네요. 전 놀이공원 갔다 왔습니다. 혼자." 인터넷 게시판이나 블로그에서 흔히 보는 대화들이다. 주로 혼자서는 선뜻 하기 어려운 일들을 해냈다는 '무용담'들이 경쟁하듯 속속 나오곤 한다. 개인 블로그의 경우 혼자서 패밀리레스토랑을 다녀왔다는 '인증샷'을 찍어 올리는 유저들도 있다.

사실 불과 몇 년 전에 비해 우리 사회가 '혼자 밥 먹는' 사람들에 관대해진 편이기는 하다. 아웃백 등 패밀리 레스토랑에서는 '싱글' 고객들을 위한 바(bar) 형 좌석을 마련하고 있다. 신촌의 일본라면 전문점 '이찌멘'에서는 혼자 오는 고객들이 중심이고, 2인석 이상은 '부수적'이다.

이곳에서는 무인 자판기로 주문을 하고, 독서실 좌석을 연상시키는 '칸막이형' 1인실에서 '주변 눈치를 보지 않고' 식사를 할 수 있다. 번화가 식당에서는 예전에 비해 혼자 밥 먹는 사람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왜 '칸막이'까지 쳐야 할까?





'혼자'인 고객들에게는 식당보다는 비교적 문턱이 낮은 카페. 바(bar)형 자리에는 싱글 고객들이 주로 앉는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책'과 '휴대폰'은 필수.

 
ⓒ 박예슬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는 '혼자 밥 먹는 것'을 포함한 혼자 '밖에서' 뭔가를 하는 것에 대해 사라지지 않는 선입견이 있다.

일전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던 동기를 만난 적이 있다. 그런데 동기는 날 보자마자, "널 만나서 오늘은 점심을 먹을 수 있겠다"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평소에는 점심을 안 먹는다는 건가? 물어보니 그렇다고 한다. 하루는 너무 배가 고파 혼자 분식집에서 김밥을 먹다가, 우연히 아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것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 없더라는 것이다. 그 후로 동기는 '절대로' 밖에서 밥을 혼자 먹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인터넷에는 얼마 전 '혼자 밥 먹기 매뉴얼'까지 등장했다. 매뉴얼에는, 혼자 밥을 먹을 때는 사람이 많은 '러시 아워'를 피하고, 맛이 '검증된' 곳을 찾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가뜩이나 혼자 밥 먹어서 우울한데 맛까지 없으면 얼마나 암울하겠냐는 것이다. 또 휴대폰으로 친구와 통화를 하며 식당에 들어서라고 한다. 가능한 한 '큰 목소리'로 '불가피하게 혼자서 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을 설명해야 한다는 팁까지 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만반의 준비'를 거쳐도, 싱글 손님은 아무 메뉴나 선택할 수 없다. 닭볶음탕이나 부대찌개 등 많은 한식 메뉴들은 '2인분 이상'만 주문을 받기 때문이다.





찜이나 탕, 볶음 등을 파는 한식당은 최소 2인분 이상부터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혼자 오는 손님들은 주문조차 어렵다.

 
ⓒ 박예슬


 
 
물론 모든 식당이 의무적으로 1인용 메뉴를 구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지나치게 모든 것을 '무리지어'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스스로에게 주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혼자놀기를 특이하게 여기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는 모름지기 ~해야 한다'는 담론이 지배하는 '피곤함'을 나타내는 일면인지도 모른다.

'보이기 위한' 삶보다 '나'의 즐거움을 찾아야

조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고작 밥을 먹고, 영화를 보는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데도 '애인이나 친구'등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곧 '언제나 어디서나 남에게 초라하게 보이기 싫다'는 생각과 맞닿아 있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들이 얼마나 '나 자신의 즐거움'보다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잘 보일지'를 생각하고 있는지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 '다른 사람의 시선'은 확고하게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는 식당이나, 영화관에서 내 앞자리에 앉은 사람의 동행인이 누구인지, 그 사람이 심한 민폐를 끼치지 않는 한 거의 신경쓰지 않는다. 사실 '혼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실제로 남의 '지탄'이 두려워서라기보단 스스로 남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가를 신경쓰는 데서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혼자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보면 '애인도 없고, 친구도 없어' 보일까봐 두려운 것이다.

이제는 타인의, 그리고 나 자신의 '혼자놀기'에 대한 과장된 선입견과 두려움을 깨야 할 것이다. 혼자 노는 것은 '자랑스러운 무용담'도, '부끄러워 숨겨야 할 일'도 아니다. 그것은 독립된 사람이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면일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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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5 16:01 2009/12/25 16:01

결정의 지속성

결정의 지속성이란 일의 비효율적인 진행을 계속하려는 경향을 뜻한다.

 

* 심리적 이유; 부정적 결과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스스로의 자기 정당화 욕구 때문이다. 책임이 클수록 더욱 비효율적 행동을 멈추지 못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 사회적 이유; 결정을 번복하면 지난번 의사결정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입증하게 되므로 그렇게 되면 주변의 비난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조직의 타성; 결정을 정지시키려해도 결정한 부서와 실행하는 부서와의 의사소통이 안될수도 있고 조직은 조직대로 변화를 싫어하고 이전대로 지속하려는 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 과업의 특성; 대개의 결정사안은 실행이 완료된 다음에야 손익이 드러나기에 그때까지는 계속 투자할수밖에 없다.

* 외부의 힘

 

여러가지 대안

- 처음에 최소한의 목표만 정해놓고 그것이 잘못되면 즉시 해체한다

- 실행 도중에 수시로 진행결과에 대한 계속적인 피드백을 받는다

- 실패에 대한 처벌이나 비난의 풍토를 없앤다

- 당사자들에게 계속할 경우 발생될 더 큰 손실에 대해 정확히 알린다

- 당초의 결정자와 도중에 번복이나 수정에 대한 겨정을 할 수 있는 두번째 결정자를 서로 다르게 한다. 즉 취소결정 여부는 애초부터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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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6 17:36 2009/10/26 17:36

조직행동2

대개의 사람들은 합리적 결정이 더 타당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느낌과 직관으로 결정한 사실을 감추려고 한다. 심지어는 직관으로 결정했더라도 거기에 합리적인 자료를 덧입혀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합리적 결정인 것으로 인정을 받으려 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은 의사결정시 자신들이 얻기 쉬운 정보에만 의존해서 결정을 해버린다.

 

응집력이 큰 집단 내에서 구성원들이 모여 의사결정을 할 때 주로 나타나는 사고의 형태로서 집단사고가 존재한다. 훨씬 오래전부터 개인들이 집단으로 모이면 각자의 감정과 사상은 전체의 한 방향으로 향하게 되고 각 개인의 고유한 사고와 성격은 사라지며 집단사고가 발생한다는 사실이 보고되었다.

 

자니스는 계속되는 연구를 통해 집단의사결정시에 나타나는 극단적인 의견 수렴 현상을 밝히면서 이러한 현상은 제한된 정보, 부적합한 대안 평가, 일방적이고 독재적인 리더쉽, 자아의식의 결핍, 그리고 구성원들의 높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쉽게 발생한다고 본다. 그는 "완벽한 개인은 없다"라고 하면서 한 심리학자의 말을 인용해 " 각 개인의 정보 처리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대규모 조직을 책임지더라도 모든 대안을 심사숙고하여 각 대안의 손익을 철저히 연구한 후 결정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개인은 정보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가장 일반적 방식으로 중요한 결정은 집단에 위임해버린다"라고 주장한다.

 

집단은 어떨 때는 최상이지만 동시에 최악일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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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6 17:31 2009/10/26 17:31

조직행동

우리는 타인을 지각할 때 상당한 모순에 빠지게 된다. 즉 나태함과 부지런함을 동시에 드러낸다. 다른 정보를 더 열심히 알아내려고 노력하지는 않고('지적인 게으름','인지적 인색자') 한두가지 정보만 가지고 부지런을 떨면서 서둘러 판단해버리고 만다.

 

타인의 행동 원인을 추측하는 것을 귀속이라고 부르는데, 우리가 그의 행동의 원인을 어디에 귀속시키는지에 따라 그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고 그 해석에 따라서 우리의 반응이 달라지기 때문에 귀속의 개념은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 앞에서 펼쳐지는 모든 사람의 모든 행동에 대해 귀속작업을 하는 것은 아니다. 평소와 다른 독특한 행동이거나 우리에게 큰 기쁨이나 고통이나 놀라움 등을 주는 의미 있는 행동에 대해서만 귀속작업을 하고 그를 지각한다.

 

자기 행동의 원인은 외부 탓에 귀속시키고 타인행동의 원인은 그 사람 내부 탓에 귀속시키는 편견을 행위자-관찰자 편견이라고 한다.

 

상동효과; 스테레오타입 ; 우리는 경험에 만들어진 수많은 원판을 머리속에 가지고 다니다가 전형중의 한 요소라도 비슷한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에게 즉시 우리의 원판을 찍어놓고 본다는 것이다.

첫째, 일단 타인이 지각범위에 들어오면 수많은 나의 원판 중 하나의 원판에 넣는데 그때의 기준은 나이, 성, 국적, 외모 등 몇가지 물리적 신체적 특성이 원판의 한가지 특성만 일치하면 거기로 분류된다.

둘째, 원판 속에 있는 특성들과 상대방의 외부적 특성들과 연결하여 공통 특성을 찾아낸다.

셋째, 상대방의 얼굴에 원판을 찍으면 복사판이 되고 그사람을 자기의 원판 보듯이 한다.

 

인간에게는 이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통제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에 모든 행동의 원인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다시 말해 자기만 잘하면 모든 일이 잘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어떤 일의 결과(행동)의 원인을 외부보다는 자신의 내부탓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타인의 행동을 예측하고 그렇게 되리라고 믿는 경향이 있으며 그 예측을 기초로 그를 대한다. 그렇게 되면 상대방은 우리가 예측한 대로 행동을 한다. 즉 우리의 당초 예언이 실현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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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6 17:03 2009/10/26 17:03

창의력 개발을 위한 제언

1. 창조적인 행동을 지원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라.

2. 권위주의적 리더쉽을 피해라

3. 새로운 아이디어와 새로운 경허믈 가져보도록 도와라.

4. 개인의 성장을 자극하는 과업을 부여하라.

5. 문제를 기회로 보는 시각을 열어주라.

6. 반대의견이나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을 헐뜯지 마라.

7. 단기적인 문제에 너무 집착하지 말게 하라.

8. 웃고 즐겁게 노는 기회를 주어라.

9. 방어적 행동에서 벗어나 자유를 느끼게 하라.

10. 실수를 학습의 기회로 삼아라.

11. 조그만 아이디어라도 실행에 옮기도록 하라.

12. 방해꾼이 되지 말고 촉매자 역할을 하라.

13. 창의적인 사람을 다른사람과 자유롭게 자주 의견을 나누게 하라.

14. 창의력 개발훈련을 받도록 하라.

15. 창의적인 아이디어 제공자를 포상하라.

 

- 조직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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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6 16:28 2009/10/26 16:28

삶은....여행

그래,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평소 다른 사람에게 무뚝뚝한 내가 나를 향한 타인의 작은 친절 혹은 무관심에 모든 신경이 곤두서는 것이다. 나에 관한, 그리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크게만 느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여행인 것이다.

 

 

고백할게. 나는 겁이 나. 베를린이라는 이 낯선 도시가 무섭게만 보여.

솔직히 말할게. 나는 나 자신에게 겁이 난 것 같아.

달라져야 한다는 것, 변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 여행을 의미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겁이 나는 것 같아.

 

누구나 여행을 떠나면 지구 위에 홀로 떨어진 외계인이 된 듯한 느낌이 든다.

집과 일, 가족, 그리고 나를 지탱해주는 견고한 안정감이 사라진듯한 기분.

그런데 나는 이 기분이 너무 좋다. 여행이 안겨주는 외로움을 끔찍이 사랑한다.

여행이란 이런 것이다.

여행은 자신을 둘러싼 인간관계의 망 속에서 내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게 해준다.

나조차 몰랐던 내 안의 모습을 똑바로 직시하게 해준다.

언제 어디서든, 나 홀로 강하게 서 있도록 독려한다.

내 존재를 증명해준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발적으로 벗어나게 해준다.

그래서 여행의 또다른 이름은 자유다.

내 존재라는 이름의 생명의 나무가 시들지 않도록 자유라는 이름의 비를 내리고,

바람을 불어넣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여행이다.

 

"실수를 두려워마라. 그런 것은 없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말이다.

실수를 할 때마다 실수의 결과 앞에서 두려워질 때마다 나는 그의 말을 되새기곤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가 미워졌다.

실수 앞에서 나는 단 한번도 담대한 적이 없었으니까.

실수로 인해 내 앞에 놓인 잿빛 일상을 바라보며 초조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으니까.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실수를 미리 짐작하며 불안해했으니까.

그런데 베를린 한복판을 걷는 내안의 또다른 나는 이렇게 말한다.

"실수를 하면 좀 어때?"

실수를 통해 우리는 삶을 사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실수를 할 때마다, 실수를 하는 만큼, 우리는 삶을 사랑하게 된다.

 

오늘은 낮잠을 자는 호사를 누려야겠다. 뼛속 깊이 잠이라는 이름의 평화를 주입시켜야겠다.

사람들은 여행지에서 너무도 부지런하게 살아간다.

여행지에서의 일상을 인정하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느끼는 감정을 조목조목 설명하기 위해 안달한다.

자신만의 은밀한 이야기를 만들기보다 남과 같은 기억을 소유하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을 때에는 잠시 쉬었다 가는게 필요하다.

여행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여행자란 원래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고향에 두고 온 순례자가 아니던가.

 

여행은 시간마저도 바꾸어 놓는다.

여행자의 시계는 마치 다른 세상을 살아가듯 좀더 천천히, 좀더 느리게 움직인다.

이유는 하나, 여행자가 되면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기 때문이다.

깊고 그윽한 눈으로 세상을 어루만지기 때문이다.

세상을 향한 진한 사랑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행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귀에 들리는 모든 것에,

가슴으로 느끼는 모든 것에,

손으로 만져지는 모든 것에,

발길이 닿는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진다.

 

돌이켜보면 사랑은 결국 '교육'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사랑에는 가르치는 힘이 있다.

 

위태로운 시간, 무기력한 일상.

삶속에 내재된 달콤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일상이라는 이름의 무서운 녀석과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그것으로부터 잠시 벗어나야 한다.

잠시 벗어나는 것,

여행이란 그래서 행복하고 소중한 것이다.

 

희극과 비극은 언제나 서로 맞물려 있다.

사랑과 이별은 언제나 서로 공존하고 있다.

떠남과 머묾도 언제나 함께 하고 있다.

 

 

 

삶은 여행... 이상은 in 베를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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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9 12:49 2009/09/29 12:49

꿈꾸는 자의 나침반은

꿈꾸는 자의 나침반은
언제나 미래를 향한다.
그러나 그 한끝이
과거로부터 이어져왔음을 잊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의 혈관엔
오늘의 의지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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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8 13:21 2009/09/28 13:21

무엇을 흉내낼 것인가

우리는 우리가 흉내를 내려고 노력하는 그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흉내낼 것인가 하는 문제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 커트 보네거트 , [태초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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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4 14:06 2009/09/24 1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