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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사회주의는 러시아 자본주의보다 우월하다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 : 거대한 논쟁이 다시 시작된다
(편집자 주) 1989년 구소련과 동구권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우후죽순 무너질 무렵 미국의 일본계 학자인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언”을 이야기했다.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에 승리함으로써 역사가 일단락되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사회주의는 역사의 사생아, 혹은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가장 먼 길’로 전락했고, 사회주의자들은 줄줄이 과거의 이념을 버리고 자유주의나 심지어 파시즘으로 전향해버렸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제임스 페트라스는 자본주의-사회주의 논쟁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그는 ‘신생 자본주의 국가'인 러시아와 동유럽의 현재와 과거를 비교하고 또 ‘신생 자본주의 국가'들과 사회주의를 견지해온 쿠바를 비교한다. 그리고 시민들의 삶의 질 측면에서 ‘신생 자본주의 국가'에 비해 그나마 옛 사회주의와 쿠바가 훨씬 우월하다고 판단한다.
저자 : 제임스 페트라스 미국 빙햄턴 대학 사회학과
출처 : Rebelion 2004년 6월호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
이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념 전쟁’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유엔, 국제노동기구, 식량농업기구(FAO), 세계보건기구 등과 엔지오, 유네스코, 각종 전문가들의 보고서를 보면 이 논쟁은 오히려 지금 다시 시작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결론을 이끌어내려면 우선 ‘자본주의 도입’ 이후 러시아, 동유럽의 모습을 그 이전과 비교해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옛 사회주의 국가들의 현재와 지금도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를 비교해보면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옛 사회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로 이행하기 시작한지 15년이 흘렀다. 평가엔 충분한 시간이다.
옛 사회주의 국가들 : 산업은 절망, 실업률은 급등, 조직범죄 극성
옛 사회주의 국가들이 공산주의 체제였을 당시, 경제 자원들은 국가 소유이거나 공공 소유였다. 또한 이를 운용하는 결정도 국가적이거나 공공적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국가들이 자본주의로 이행한 15년 동안 일어난 일은 이런 경제 자원들, 즉 모든 기초산업, 에너지, 광업, 사회하부구조, 유통 등이 미국과 유럽 혹은 억만장자 마피아들에게 넘어가는 것이었다. 혹은 문을 닫았다. 이는 대량실업과 불안정 고용의 증가, 경기침체, 이민, 돈 세탁과 국민경제에서 자본이 탈출하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폴란드에서는 연대노조의 기반이었던 그다노스크 조선소가 폐업하고 박물관이 되었다. 이 나라의 노동인구 중 20%는 공식적으로 실업상태이다.(『파이낸셜 타임스』 2004년 2월21일) 나머지 30%는 성매매, 밀수, 노천시장, 행상, 각종 지하경제 등 주변부의 저임금 부문에서 일하고 있다. 불가리아, 루마니아, 라트비아, 동독도 비슷하거나 더 나쁜 상황이다. 이러한 옛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지난 15년 동안의 1인당 평균 실질소득 증가는 그 이전의 15년(공산주의 치하) 보다 훨씬 낮았다. 이와 함께 소득격차는 엄청나게 심각해져서 최상위 소득계층 1%가 사적 자산의 80%와 소득의 50%를 지배하게 되었다. 빈곤층은 50%를 상회하고 있다. 옛 소련, 특히 아르메니아, 조지아, 우즈베키스탄 등의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는 생활 표준이 80%나 떨어졌다. 인구의 25%가 이민을 가거나 극빈 상태에 놓였으며, 산업과 공공자금, 에너지는 강탈당했다. 과학, 보건, 교육 시스템은 거의 붕괴되었다.
옛 소련에서는 하이테크의 중심지였던 아르메니아의 경우 지난 1990년엔 2만 명에 달했던 과학기술 연구자의 수가 1995년엔 5천명으로 폭락했으며 지금도 줄어드는 추세이다.(『내셔널 지오그래픽』 2004년 3월호) 아르메니아는 결국 대다수 인민들이 중앙난방장치와 전기 없이 사는 국가로, 국가의 경제적 자원들을 마피아들에게 강탈당한 국가로 전락했다.
러시아의 경제적 쇠퇴는 더욱 심각하다. 1990년대 중반 현재, 러시아 인구 중 50% 이상이 빈곤층이며 이러한 현상은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옛 레닌그라드) 외부에서 더욱 심각하다. 노숙자는 증가 추세이고 국가적 차원의 보건․교육 시스템은 붕괴했다. 비(非)전시 상황에서 한 나라의 경제가 이토록 빠르고 철저하게 무너진 경우는 현대사에서 ‘러시아 자본주의’밖에 없다. 러시아 경제는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민영화되면서 마피아들에게 접수되었다. 러시아 마피아를 이끄는 것은 8개의 억만장자 과두체제이다. 이들은 뉴욕, 텔아비브, 런던, 스위스 등의 은행으로 2천억 달러 이상을 반출한 바 있다. 이로 인해 러시아의 전 경제 부문에서 살인과 테러는 ‘경쟁력’이 되었고, 과학은 말살되었다. 공산주의 체제하에서는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었던 러시아 과학자들이 현재는 저소득과 설비부족 때문에 굶주리고 있다.
러시아 자본주의 : 한 나라 경제가 이토록 빠르고 철저히 망가진 적은 없다
‘러시아 자본주의화’의 수혜자는 옛 소련의 관료, 마피아 보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은행, 유럽의 땅 투기꾼, 미국의 제국주의자, 군부, 초국적 기업들이다. 이렇게 약탈과 대량실업, 빈곤, 절망이 만연하면서 자살과 알콜, 약물 중독이 폭증하고 있다. 소련 체제하에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던 질병도 나타나고 있다. 옛 소련이 붕괴되던 당시 남성의 예상 수명은 65세였으나 2003년엔 58세로 줄어들었다.(『월스트리트 저널』 2004년 2월4일자) 이는 방글라데시 보다 낮은 수준이다. 또 쿠바 남성의 예상 수명인 74세 보다 16년이나 적다. 인구학 전문가들은 러시아 인구가 다음 10년 동안 30%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월스트리트 저널』 2004년 2월4일자)
그러나 최악의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다. 옛 사회주의 국가들이 도입한 자본주의는 대중적인 보건 시스템을 전체적으로 붕괴시켜 과거엔 통제 가능했던 전염병을 다시 대대적으로 부활시켰다. ‘유엔 합동 프로그램’ 보고서에 따르면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에서는 에이즈 전염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2004년 현재 1백50만 명이 에이즈 보균자인데 1995년엔 3만 명에 불과했다.
이러한 상황을 초래하는 데 큰 몫을 한 집단이 바로 러시아, 동유럽, 발칸, 발틱 국가의 범죄조직들이다. 이들은 헤로인 무역을 주도하면서 매년 20만 명의 성노예를 세계 각국으로 팔아 넘기고 있다. ‘해방’된 코소보를 근거지로 설치고 있는 알바니아 마피아들은 헤로인 무역의 요충지를 통제하면서 성노예들을 서유럽과 북미에 ‘수출’하고 있다. ‘해방’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미국과 동맹을 맺었던 군부가 헤로인을 생산, 옛 유고슬라비아를 거쳐 서유럽으로 반입시키고 있다. ‘해방’된 러시아의 마피아 과두체제는 주로 마약 및 불법무기 거래, 성매매 여성 양산, 미국-유럽-캐나다를 경유한 돈세탁 등에 종사하고 있다. 마피아 억만장자들은 정치인과 정당들(‘동방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선거에서 선출된)을 사실상 사고 팔면서, 미국, 유럽 등의 정보기관과 공식/비공식적인 동맹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자본주의’의 경제, 사회적 상황들은 본질적으로 이전의 사회주의체제 당시 실존하던 완전 고용, 안정적 성장, 복지 보다 못하다. 개인적인 삶에서 봐도 고용, 노후생활, 저축, 생활의 공적, 사적 안전성 측면에서 옛 사회주의 체제는 ‘범죄집단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보다 훨씬 안전한 시스템이었다. 정치적으로도 옛 공산주의 국가들은 노동자들의 사회적 수요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했고, 소득 불평등을 억제했으며, 대외정책에서도 자국의 이해를 지킬줄 알았다. 또한 경제의 주요 부문을 산업화했고 소유했다. 그러나 새로 도입된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정치가들은 자국의 모든 주요 산업을 해외나 특정인에게 팔아 넘겼고 기괴할 정도로 심한 사회적 불평등을 지지하고 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보건과 고용은 무시된다.
쿠바 사회주의는 건재하다
옛 사회주의 국가들의 ‘자본주의 15년’과 ‘이전의 15년’을 비교해보면, 오히려 사회주의 당시에 시민들은 질적으로 훨씬 우월한 삶을 누렸다. 이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제 ‘신생 자본주의 사회’인 러시아, 동유럽, 중앙아시아를 쿠바 사회주의와 비교해보자.
쿠바 사회주의는 소련과 동유럽의 자본주의화로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산업 생산과 무역은 60% 하락했으며, 쿠바인의 1인당 칼로리 섭취량도 절반으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바의 유아사망률은 1989년의 1천명 당 11명에서 2003년엔 6명으로 하락했다. 한편 러시아가 국민소득의 3.8%를 공공 보건에, 1.5%를 사보험에 쓰는데 비해, 쿠바는 16.7%를 사용한다. 남성의 예상 수명도 자본주의 국가인 러시아에서는 58년이지만, 사회주의 쿠바에서는 74년이다.
자본주의 국가 폴란드에서는 실업률이 21%로 뛰어 올랐다. 그러나 쿠바에서는 3%로 떨어졌다. 신생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마약과 조직범죄자들이 날뛰고 있다. 그러나 쿠바에서는 청년실업자들을 위한 교육, 훈련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젊은이들은 기술을 배울 때마다 봉급을 받고 일자리를 제공받을 수도 있다. 쿠바에서는 과학기술(특히 생명공학과 약학)이 계속 발전해왔으며 이젠 세계적 수준에 도달한 상태이다. 이에 반해 옛 사회주의 국가들의 과학 인프라는 완전히 붕괴되었다. 이 국가들의 과학자들은 이민을 가거나 국내에 머물러도 먹고 살 수가 없다.
쿠바는 정치, 경제적으로 자주성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신생 자본주의 국가'들은 미국에 군사적으로 예속되어, 발칸반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에 용병을 보내 미 제국주의에 봉사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현재 쿠바의 의료인 1만4천 명은 남미와 아프리카의 최빈곤 지역에서 그곳 정부와 협력해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쿠바는 하이티에도 의료인 5백 명을 파견했다.
산업 측면에서 보면 쿠바에서는 대다수 산업이 국민적이거나 공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시장 부문도 존재하며, 외국자본과 합작한 벤처회사도 영업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옛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우 거의 모든 기간 산업과 언론매체, 문화산업 등의 소유권을 해외로 넘겨 버렸다. 쿠바는 기초 식량, 주택, 보건, 교육, 스포츠 등에서 사회적 안전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신생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실업자와 저소득자들이 재화와 서비스로의 접근에서 배제되고 있다.
사회주의 운동의 새로운 전망
이렇게 경제․사회 지표들을 비교해 보면 쿠바의 ‘개혁 사회주의’는 동유럽과 러시아, 중앙아시아의 ‘신생 자본주의 국가'들 보다 훨씬 낫다. 윤리, 문화적 측면에서 봐도 쿠바의 경우 비록 1990년 이후 관광 부문의 성장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불거지고 있지만, 마피아가 주도하는 ‘신생 자본주의 국가'들(마약, 성매매, 미제국으로 종속 때문에 부패한)보다 우월하다.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수백만 명을 감염시킨 에이즈에 대해서도 쿠바는 세계에서 가장 예방중심적이며 인간적인 의료 시스템으로 대처하고 있다. 에이즈에 대한 무료 의료, 무료 약품, 광범위한 공공 보건 프로그램 및 교육은 쿠바의 에이즈 발병률이 개발도상국 중 가장 낮은 이유를 설명해 준다. 분명히 관광산업과 저소득으로 인한 성매매가 존재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에 관한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와 동유럽에 도입된 자본주의가 그 이전의 체제 보다 모든 경제, 사회적 부문에서 훨씬 열악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에 관한 논쟁은 계속 될 수밖에 없다. 쿠바의 성과가 ‘신생 자본주의 국가'들을 뛰어 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아메리카에서 시작된 사회운동들이 자치(사파티스타), 토지소유 민주화(브라질의 MST 운동), 자원에 대한 민주적 통제(볼리비아)에서 실질적인 변혁을 이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미 제국주의가 제공하는 것, 그리고 ‘신생 자본주의 국가'들이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것 보다 훨씬 우월하다.
이렇게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사회주의는 과거의 복지국가에 쿠바식 인간적 사회 프로그램과 사회 안전망, 사파티스타와 MST의 자치 실험을 결합한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2003년 7월 또다시 지도부의 배신적 타협으로 철도노동자들의 파업은 투쟁의 깃발을 내렸다. 자신의 힘을 믿고 투쟁했다면, 그리고 민주노총의 연대총파업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면 분명 승리로 전진했을 투쟁이었다. 철도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을 벌벌 떨게 할 위력적인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투쟁은 바리케이드 너머의 적이 아닌 내부의 적에 의해 가로막혔다. 승리를 향한 파업의 진군을 가로막은 지도부의 타협과 배신, 이후 자본의 거침없는 현장탄압. 불과 1년 반 사이에 세 번이나 이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철도의 선진노동자들은 낡고 불철저한 지도부를 대체할 새로운 지도력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과제와 또다시 마주치고 있다. 이제는 "새로운 지도력을 만들자!"라는 선언을 반드시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한가? 답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과거 선배노동자들의 투쟁 속에서 쉽게 문제의 해답을 얻어낼 수 있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골리앗투쟁"은 오늘날 민주노조운동에 많은 영감을 던져준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의 거대한 불길에 겁먹고 동요했던 자본가들은 민주노조운동의 불꽃을 꺼뜨리기 위해 전열을 정비하고 반격을 시작했다. 공격의 초점은 당시 민주노조운동의 주력부대 중 하나인 현대중공업이었다. 대낮의 식칼테러, 노조사무실 습격, 직권조인 무효와 어용노조 퇴진을 요구하며 벌였던 88년 128일 파업과 가두투쟁의 무력진압 등 탄압은 강도를 더해갔다. 숨막히는 공안정국 속에서 누군가 앞장서 저지선을 구축하고 재반격의 계기를 만들어야 함을 모든 노동자들이 느끼고 있을 때, 현중노동자들은 자신이 그 "누군가"가 되겠다고 선포했다.
90년 4월 25일 단체협상 이행, 구속동지 석방, 노태우 타도를 내걸고 1만 7천여 현중노동자들은 법률적 제약 따위를 단호히 거부하며 쟁의발생신고 없이 과감하게 파업에 돌입했다. 그간의 패배를 겪으며, 승리를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힘을 남김없이 모두 동원해야 함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들은 "법"이라는 자본가의 족쇄에 묶이기를 거부했다. 공장의 장비와 재료로 무기가 만들어지고 바리케이드가 세워졌다. 128일 파업에서는 겁이 나서 쓰지 못했던 민주박격포에도 볼트와 너트를 가득 집어넣었다. 우유부단과 머뭇거림은 패배를 의미할 뿐임을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타오르는 현중노동자들의 투쟁을 가로막은 첫번째 장애물은 끝까지 이 싸움을 책임질 지도부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대중의 뜨거운 투쟁열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도망간 진민복 비대위장의 뒤를 이어 총파업의 총대를 메겠다고 나섰던 김영환 비대위장 역시 "정치파업은 못하겠다"며 적들에게 투항해버렸다. 그러나 대중들은 첫번째 장애물을 멋지게 뛰어넘었다. 위원장의 잇따른 투항에도 대중의 투쟁열기는 조금도 식지 않았고, 곧바로 전투적인 지도부를 탄생시켰다. 새롭게 구성된 이갑용 집행부는 무장한 사수대로 둘러싸였다. 자신들의 지도부를 자본의 회유뿐만 아니라 공권력으로부터 스스로 지켜내겠다는 현중노동자들의 적극적인 행동이었다. 지도부의 직권조인과 파업철회에 단순히 분노하거나 풀죽어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수동적인 모습을 거부하며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지도부를 만들어내고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지도부를 포섭하여 파업을 꺾으려는 시도가 실패하자 정부는 직접적인 공격으로 전환한다. 28일 새벽 73개 중대 1만명이 지상, 해상, 공중으로 동시에 들이닥쳤다. 총파업전선을 사수하고 전국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곧바로 150여명이 골리앗 크레인으로 올랐다. 중공업 진입로에서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연대투쟁을 시작으로 격렬한 가두투쟁이 시작되었다. 민주노조운동의 후퇴를 막아내려는 현중노동자들의 헌신적인 투쟁은 전국노동자들의 연대를 끌어냈다. 전노협 선봉대가 울산으로 모여들었고, 5월에는 전국 127개 노조 25만명이 현대중공업 골리앗투사들을 엄호하기 위해 연대총파업에 나섰다!
대중의 자발성이 고양될수록 자신의 지위에 위협을 느끼는 조합주의적 지도부는 비틀거리기 마련이다. 현중골리앗투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현중노동자들에 대한 자본가정부의 탄압을 보며 노동자투쟁은 승리하기 위해서 연대투쟁과 정치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배운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을 향해 현자 이상범 집행부는 "임단협을 준비하기 위해 정상조업에 들어간다"고 배신 결정을 발표했다. 이 이탈을 기점으로 투쟁은 한풀 꺾이기 시작했다. 연대투쟁이 소강기로 접어들고 결국 싸움은 골리앗투사들의 외로운 투쟁으로 변해갔다. "골리앗의 외로운 늑대들"은 패배를 예감했다. 전체 자본에 맞서 전체 노동자의 힘을 충분히 동원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결국 점거 14일만인 5월 10일 골리앗투사들은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골리앗을 내려오게 된다.
두번째 장애물은 이 시기에 등장한다. 투쟁이 일시적으로 난관에 봉착하거나 패배하면 대중은 일시적으로 사기저하에 빠진다. 그러나 모든 힘을 끌어내 싸운 노동자들은 패배주의에 빠지는 대신 "승리하기 위한 투쟁의 정확한 방향과 수단은 무엇인가?"라는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격렬한 투쟁을 통해 법, 의회, 정부, 언론 따위는 자본가의 권력기구이고, 노동자는 단사투쟁을 전체 노동자의 투쟁으로, 나아가 정치투쟁으로 발전시킬 때 비로소 진정한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배우며 자부심을 느낀다. 골리앗투사들은 자본가를 굴복시키고 더 높이 오르기 위한 전망을 갖고자했지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가진 노동해방 지도부를 만날 수 없었다. 결국 희망을 갖지 못한 노동자들은 패배주의만을 가질 수 있을 뿐이었다.
이처럼 골리앗투쟁이 마주쳤던 두번째 장애물은 미래의 승리를 위한 투쟁의 방향과 수단의 부재, 노동해방 정신으로 무장한 지도력의 부재였다. 노동자투쟁은 성장하면서 더 거대한 과제를 선진투사들에게 던진다. 이때 선진투사들이 충분한 답을 쥐어주지 못할 경우 대중의 사기저하는 계속되고 투쟁이 아닌 굴종, 노동해방이 아닌 개량주의에서 대안을 찾는다. 조합간부보다 관리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당당히 투쟁하기보다 눈치보며 계산기를 두드리며, 단사의 울타리를 절대 뛰어넘지 않으려 하고, 정치문제에 무관심하게 된다. 전체 노동자의 공동의 이익을 사수하기 위한 투쟁에는 무관심해진다. 오직 자기사업장, 자기부서, 자기 가족의 이익을 지키는 데에만 편협하게 모든 관심을 쏟게 된다.
반면 대중의 투쟁의지와 열망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수로를 여는 진정한 지도부를 발견했을 때 대중은 승리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굴하지 않고 행동하려 한다. 이것은 투쟁을 끈질기고 완강하게 만들뿐 아니라, 투쟁의 파고가 꺾이면서 동요가 생기는 상황에서도 그간의 투쟁의 성과를 보존하고 대중의 투쟁의지와 단결력을 보호하며 다음의 투쟁을 준비할 수 있게 한다.
골리앗투쟁은 노동자가 얼마나 멀리 나아갈 수 있는지 그리고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가르쳐준다. 골리앗투쟁은 대중의 열망을 현실화시키는데서 무능력한 지도부를 단호하게 갈아치우는 역동성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현중노동자들이 보여준 역동성은 전체 노동자에 대한 책임감에서 비롯되었다. 현중노동자들은 자본가정부의 대대적인 공세 속에서 질식해가던 민주노조운동의 활로를 뚫으려는 돌격대로 자신을 간주했고, 자신들의 투쟁이 정치투쟁임을 분명히 했다. 현중골리앗투쟁을 둘러싼 공방전은 총노동과 총자본의 이후 투쟁의 향방을 결정하는 대회전의 성격을 가졌다. 비장한 마음으로 골리앗 크레인에 올랐던 현중노동자들은 "전체 노동자의 공동의 이익"이라는 계급적 시야와 책임감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골리앗투쟁은 대중의 자발성에 걸맞는 지도력을 갖추지는 못했다. 마지막에 선출된 전투적 지도부는 대중이 이끌어간 투쟁에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함께 했지만, 대중들을 장기적인 승리의 방향으로 이끌 만큼 확고하지는 못했다. 투쟁과정에서 보여준 노동자들의 본능적인 힘을 의식적 투쟁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지도해내고, 전체 노동자를 하나의 투쟁대열로 결집시키는 더 강력한 지도력이 절실히 필요했다. 이 힘을 갖추지 못했기에 현중골리앗투쟁은 난관을 극복하지 못한 채 좌초하고 말았다.
이제 과제는 더욱 분명해졌다. 조합주의적 지도력을 뛰어넘는 선진노동자다운 지도력을 획득할 것! 그 지도력을 바탕으로 아래로부터 활력있게 밀어나가고 지도부를 강제하는 현장노동자들의 힘을 고양시킬 수 있도록 대중 속에서 활동할 것! 대중의 잠재력과 열망이 현실화되는 정도는 선진노동자들의 분투에 달려있다. 이렇게 나아갈 때 골리앗투사들의 외침은 우리의 피와 살이 되어, 미래의 희망을 개척해나가기 위한 훌륭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90년 현중노동자들이 우리에게 던져준 교훈을 받아안고, "골리앗의 외로운 늑대들"보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자!■
1946년 9월 24일, 4만 철도노동자들의 투쟁이 전개되었다. 미군정 운수부의 25% 감원방침이 그 계기였다. 철도노조와 전평(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은 미군정의 탄압에 맞서 "쌀을 달라! 물가인상에 따라 임금을 인상하라! 실업자에게 일과 집과 쌀을 달라! 공장폐쇄·해고 절대반대! 민주주의운동 지도자에 대한 체포령 철회와 즉각석방! 언론·출판·결사·시위·파업의 자유를 보장하라! 해방일보 등 탄압받고 있는 신문을 즉시 복간시키고 직원들을 석방하라!" 등의 요구를 내걸고 총파업에 돌입했다. 경제적 요구뿐 아니라 정치적 요구까지 포함하는 총파업투쟁이었다. 전화국, 우체국 노동자들이 이 파업에 합세하고 더욱 확대되어 전국적으로 25만 이상이 참여했다.
한국노동운동 최초의 위력적인 총파업이었으며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전평의 9월총파업은 결국 미군정과 경찰, 우익세력의 물리력에 의해 진압되었다. 이 패배로 타격을 입은 전평은 이후 다시 한번 조직화에 나섰으나, 미군정과 우익세력은 기세를 몰아 탄압의 고삐를 더욱 조였다. 전평은 급속히 쇠약해졌다.
오늘날 전평은 "먼 과거의 기록"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뛰어난 계급의식으로 새로운 세계를 향해 전진해나가던 전평노동자들의 위대한 업적과 의의를 계승해야 한다. 또한 그토록 강력했던 전평노동운동의 패배의 원인을 규명하고, 우리 운동의 자양분으로 삼는 것은 보다 더 중요할 것이다. 전평노동자들이 넘어서지 못했던 "벽"은 지금의 민주노조운동이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벽"이기도 하다. 우리는 아직 전평운동만큼의 역량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전평노동운동의 전진과 패배를 검토하며 미래의 승리를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먼 과거"의 기록을 들여다보는 이유다.
일제 패망 후 이 나라 산업의 80%가량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자본가들이 대대적으로 철수하자 경제 또한 극심한 침체와 혼란을 맞게 된다. 친일자본가들은 공장폐쇄와 사보타지를 통해 공장가동을 중단시켰다. 많은 노동자들이 실업자가 되었다. 공장이 멈추면서 심각한 물자부족과 물가폭등으로 노동대중의 생활수준은 급격히 하락했다. 노동자들은 일본자본가들과 친일자본가들이 운영했던 공장들의 공백을 메꾸고, 마비된 산업을 재건하며, 심각한 물자부족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시급한 과제를 안게 되었다.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만 했다. 생존을 위한 투쟁 자체가 노동운동을 한층 고도한 수준으로 밀어올리고 있었다. 우리는 이 시기 노동운동의 역사 속에서 "자주관리운동"을 만나게 된다.
해방 후 전국 각지에서 산업별로 노동조합 혹은 공장위원회가 조직되었다. 1945년 11월 5일, 전국 단일노동조합인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즉 전평이 건설된다. 노동자들은 공장위원회나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야근철폐, 8시간노동제 실시, 차별배급 철폐" 등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투쟁에 나섰다. 동시에 폐쇄된 공장, 경우에 따라서는 폐쇄되지 않은 공장에서도 "공장관리를 공장위원회에 맡길 것"을 요구하는 공장 자주관리운동을 벌였다. "자본가 없이" 노동자들이 스스로 공장을 가동하고 생산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경성방직의 경우, 김연직이라는 한국인사장은 노동자들의 요구에 맞서 공장 문을 닫고 투쟁지도자 5인을 해고했지만, 노동자들은 공장위원회 지도 하에 조업을 계속했으며 오히려 생산액을 증가시키기도 했다.
전평은 전체 노동자의 단결을 위해 분투했다. 생산의 조직화는 기존에 조직되어 있는 조합원들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공장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사무직·생산직을 막론하고, 숙련공·미숙련공·관리직을 막론하고, 무엇보다 조합원·비조합원의 차이를 넘어 현장의 모든 노동자들이 단결 협력해야만 한다. 전평의 자주관리운동은 생산현장의 모든 노동자를 포괄해야만 한다는 과제를 이해하고 있었다. 가령 전평은 공장 내 노동자를 분열시키려는 시도에 정면으로 맞서 "직종간 물자 차별배급 철폐"를 주장하며 노동자의 단결을 외쳤다.
더 나아가 전평은 "노동시간 단축, 인력 확충, 실업 방지, 실업노동자에게 일자리 보장"을 요구했다. 전평노동자들은 실업자 역시 노동자계급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동료임을 자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평은 "실업자 즉 산업예비군이 있다는 것은 끊임없이 현업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열악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실업자운동은 실업자뿐만 아니라 현업노동자가 선두에 서야 한다"고 선언하며 적극적으로 실업노동자들을 조직했다. 전체 노동자의 일부로서, 그리고 먼저 조직된 노동자로서 노동자계급 공동의 이익을 위해 선두에서 투쟁할 것을 꺼리지 않는 헌신적인 태도를 모범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전성기 전평의 55만 조합원 중 절반 이상이 실업노동자였다는 사실은 전평이 현업노동자인가 실업노동자인가를 떠나 모든 노동자들을 굳게 단결시키기 위해 분투했음을 잘 보여준다.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단결조차 두려워하는 현시기 정규직 노동조합운동(물론 전부 그렇지는 않다)과 크게 대비되는 대목이다. 이처럼 전평노동자들의 선진적이고 헌신적인 활동으로 전평은 노동자 전체를 단일하게 결속했을 뿐만 아니라, 생산 자체를 자주적으로 통제하는 기관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었다.
공장 자주관리운동은 노동대중의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한 자발적 행동으로부터 출발했다. 그러나 자본가 없이 노동자 스스로 공장을 가동하고, 물자를 생산하기 시작하자 문제는 달라졌다. 공장위원회와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은 "누가 공장의 주인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자주관리운동을 전개하던 노동자들은 자신의 실천 속에서 그 답을 찾아냈다. 지금까지 자본가들 밑에서 땀흘려 일해왔던 이 공장의 진정한 주인은 자본가가 아니라 바로 노동자라는 것, 노동자이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노동자들의 의식이 생산 전반의 통제와 계획이라는 단계에 도달하면 그것은 곧 국가의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이탈리아 공장평의회운동이 그랬던 것처럼, 전평의 자주관리운동 역시 국가의 문제에 직면했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재화를 체계적으로 생산, 관리하는 것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기 때문이다. 개별공장에서의 생산통제를 전체 산업으로 확장시킨다면 그 통제기관은 낡은 지배자들의 국가를 대체하는 새로운 권력기관으로 등장할 수 있다. 전평의 자주관리운동은 바로 그와 같은 기관의 맹아였다. 해방 후 정치적 공백기에 펼쳐진 노동자계급의 역동적 운동이 새로운 사회의 씨앗이 되는 새로운 형식의 기관을 창조해갔던 것이다. 전평의 자주관리운동은 "새로운 역사의 창조자"로서 노동자계급의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조금씩 자신의 힘을 축적하며 성장해가던 전평의 자주관리운동은 커다란 "벽"에 부딪히게 된다. 그 "벽"을 넘는다면 전평의 자주관리운동은 승리할 것이고 노동자의 피땀을 한줌 자본가들에게 빼앗기지 않는 "새로운 사회"의 건설은 가능할 것이었다. 반면 그 "벽"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자주관리운동은 정체하게 되고, 미군정을 중심으로 전열을 정비한 자본가들의 공격에 괴멸될 것이었다. 유감스럽게도 그 "벽"은 전평노동자들에게 치명적 한계로 다가왔다
급격히 성장해가던 전평의 자주관리운동은 두 가지 난관을 맞게 된다.
우선 전평이 이른바 "양심적 민족자본"에 대해서는 파업을 자제하고 협력할 것을 하달한 것이다. 당시 전평은 "자주독립을 위한 견실한 통일전선 결성을 통한 민중권력 수립"이라는 목표를 위해 노동자, 농민, 도시 소자본가, 양심적 민족자본 등 모든 계급이 연합할 것을 제기해왔다. 민중권력의 수립을 위해서 "민족자본"과의 마찰은 피하려 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이를 수긍할 수 없었다. 자주관리운동은 단순한 생존권 보장의 의미뿐 아니라 기존 자본가들을 몰아내어 착취를 없애기 위한 파업투쟁의 형식을 띠었다. 그리고 전평이 이야기한 "양심적이고 건전한 자본가"는 사실 존재하지도 않았다. 전평이 제시한 협력방침은 노동자들의 고유한 무기인 파업의 권리를 박탈하여 무장해제하는 것과 같았다. 그것은 공장 자주관리운동의 방향타를 망가뜨렸다. 현장의 노동자들은 전평의 이와 같은 조치에 반발하거나 혼란에 휩싸였다.
두번째로, 전평은 "자주독립을 원조하는 미·소 양군에 협력"이라는 원칙하에 미군정에 대한 협조노선을 취하였다. 전평은 소련과 함께 미·영·중을 "진보적 민주주의 국가"로 규정하고 조선 해방의 은인으로 격상시켜 평화적 민중권력 수립을 기대한 조선공산당의 어리석은 주장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협조노선이 성과를 가질 수는 없었다. 전평이 "협조"라는 이름으로 무장해제시킨 노동자들을 미군정이 짓밟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노동자들의 대중투쟁과 공장 자주관리운동은 탄압받기 시작한다.
전평은 그릇된 지도방침으로 전평노동자들의 능동적인 공장 자주관리운동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공장 자주관리운동은 급격히 위축되었고, 노동자들은 미군정과 자본가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게 되었다.
해방 후 공장위원회, 노동조합의 건설과 공장 자주관리운동의 확산은 노동대중의 자생적 힘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노동대중의 폭발적 물줄기를 자주관리운동으로 이끌었던 것은 일제시대부터 현장과 밀접하게 결합해 왔던 노동해방 세력이었다. 공장에서 헌신적으로 활동하여 노동대중의 광범한 지지를 받고 있었던 노동해방 세력이 없었다면 자주관리운동은 빠르고 강한 힘으로 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제시대부터 활동하며 해방 후 노동운동에 커다란 역할을 담당했던 노동해방 세력 즉 조선공산당은 성장하는 노동운동을 억제하고 결국 패배하게 만든 근본원인이 되었다. 전평의 미군정에 대한 협조노선, 자본가 및 소자본가들과의 통일전선전술은 바로 조선공산당의 그릇된 입장을 그대로 따른 것이었다.
노동운동의 발전방향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을 미리 획득하여 노동운동을 선두에서 이끌어 갈 선진노동자들 없이 노동운동의 발전은 있을 수 없다. 반면, 현실과 어긋난 왜곡된 발전방향을 제시하는 세력이 노동운동을 주도한다면 그 운동은 패배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당시 가장 강력한 제국주의 국가의 하나로 자국의 이해를 위해 전쟁을 벌여나가고 있던 미국을 "진보적인 국가"로 인식하고 미소공동위원회에서의 교섭을 통해 평화적으로 국가권력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던 것, 그리고 일제자본이든 민족자본이든 노동자를 착취함에는 변함이 없음에도 "양심적 민족자본"으로서 노동자계급과 협력할 수 있다고 본 엉터리 정치노선은 전평노동운동을 패배하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다.
그러나 조선공산당에 모든 책임을 떠넘길 수는 없다. 조선공산당의 그릇된 입장은 국제노동운동의 전반적 미성숙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1920년대 말을 통과하며 러시아 노동자국가가 관료들의 손아귀에 떨어지자, 러시아 즉 소련이 주도하고 있던 코민테른 (당시 노동자들의 국제연대기구) 역시 관료적 외교기구로, 국제노동운동 압살기구로 타락하기 시작했다. 세계노동자들의 공동이익을 도모해야 할 코민테른은 또다른 제국주의 국가로 변모한 소련의 일국적 이익만을 추구하게 된다. 코민테른은 노동자의 단결과 해방이라는 포장지를 덮어쓰고 세계노동운동을 주도한다. 때로는 극좌적으로 때로는 극우적으로 비틀거리며 코민테른은 세계노동운동을 위험에 빠뜨렸다. 1935년 7차대회에서는 이른바 "반파시즘 인민전선" 방침이 채택되는데, 이는 소련의 제국주의적 이익을 위해 미국, 영국 등과 동맹관계를 맺고, 조선공산당에 미군정과 협조할 것을 제기했던 것이다. 코민테른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조선공산당은 이 방침을 따르게 되었다. 당시 관료기구로 변질한 코민테른의 한계를 인식하고 극복하기에는 국제노동운동이 성장해 있지 못했고, 조선공산당 역시 이 한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처럼 그릇된 정치의식이 바로 전평노동운동을 패배로 이끈 핵심요인이다. 전평과 조선공산당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올바른 노동해방 정치를 획득하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당시 노동운동이 뛰어넘지 못한 커다란 "벽"이었다. 그리고 이 "벽"은 아직도 우리 앞에 놓여 있다.
1946년 중반이 되자 미군정은 전평노동운동에 대해 대대적인 탄압에 돌입한다. 그리고 미소 공동위원회가 결렬되자 전평과 조선공산당은 미군정에 대한 협조노선을 폐기하고 전면적인 투쟁에 나선다. 9월 총파업은 이와 같은 배경에서 진행된 것이다.
미군정의 탄압에 저항 한번 해보지 못하고 무기력한 처지에 놓여있던 노동자들은 재차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전평과 조선공산당의 정치적 오류로 노동자들의 힘은 약화되어 있었다. 반면 미군정은 우익세력의 힘을 결집하여 더욱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전평노동자들은 패배를 예감하면서도 정면으로 미군정에 맞선다. 패배를 직감하면서도 투쟁에 나섰다는 것이 어리석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9월 총파업은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전평노동자들의 정치의식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창이다.
노동자는 자본가와의 투쟁을 통해 성장해간다. 노동운동은 패배를 통해 더 많은 교훈을 얻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간다. 그리고 다시 자본가들에 맞선 투쟁, 패배, 보완을 통해 결국에는 자본가들보다 더욱 큰 존재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미래의 승리를 위해 현재의 희생을 감수하는 가장 선진적이고 헌신적인 노동자 없이 노동운동의 승리는 보장받을 수 없다. 전평노동자들은 미래의 승리를 위해 당장의 희생을 감수했다. 미군정의 힘에 눌려 자신의 힘을 최대한 동원하여 싸워보지 못하고, 노동운동의 생명인 단결, 연대, 투쟁의 무기를 빼앗겨 무기력한 존재로 떨어지게 된다면 결국 노동해방의 전망으로부터 더욱더 멀리 떨어지게 될 것을 잘 알고 있었던 전평의 노동자들은 9월 총파업이라는 힘을 동원한 것이다.
패배를 예측하면서도 미래의 승리를 위해 당장의 고통을 감수한 전평의 노동자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노동자들이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배울 수 있다. 당장의 이익을 위해 미래의 승리를 포기하는 경향이 주류를 장악해가는 현재, 전평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희생을 잊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전평의 노동운동은 자신의 한계를 통해 민주노조운동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당시 전평과 조선공산당이 넘지 못했던 정치적 한계는 민주노조운동에 그대로 남아있다. 우리는 전평과 같이 강한 규율과 헌신성을 가진 선진노동자들을 충분히 배출하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해외자본과 국내자본을 다르게 바라보는 민족주의 관점, 개혁의 옷으로 갈아입은 노무현 정권에 대한 환상 등과 같은 정치적 한계 역시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이 가야 할 길은 멀다. 하지만 과거의 동지들이 개척해 놓은 길을 따라 끈질기게 전진해간다면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이며 최대한 빠르게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전평노동자들이 넘지 못한 장벽! 이제 우리가 그 장벽을 무너뜨리고 전진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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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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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3006/12/7(목)
-쥐포도둑 '참회의 10만원' 그때 그 수퍼 주인 가족에게 전달-
18년 전 수퍼마켓에서 쥐포를 훔쳤다며 경찰에 10만원을 사죄의 글과 함께 전해 달라고
보냈던 한 시민의 '참회의 뜻'이 당시 슈퍼마켓 주인 가족에게 전달됐다.
<본지 1일자 A11면>
광주 남부 경찰서는 6일 "지금은 사라진 수퍼마켓은 오래 전에 없어졌고 주인도 이사해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러다가 가게 주인의 아들이 부근 초등학교에 다녔다는 사실을 알아낸 경찰은 학교를 통해 이름을 확인,
이 가족이 광주 북구 동림동에 살고 있음을 밝혀냈다.
하지만 18년 전 가게 주인은 2002년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경찰은 주인 아저씨의 부인 이모(67)씨에게 당시 쥐포를 훔쳤다는 시민의 사죄 편지와 현금 10만원을 대신 전했다.
이씨는 "18년 전 일을 잊지 않고 반성하며 보답하려는 걸 보니 참 촣은 사람인 것 같다"며
"(편지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부디 복을 받고 잘 살아가기 바란다"고 말했다.
광주남부경찰서 박승오 경무계장은,
"주인 아주머니는 편지와 현금을 전달받고 잠시 울먹이며 감격해 했고,
돈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겠다고 했다"며,
"참회의 뜻이 잘 전달됐음을 편지 속 사연의 주인공도 알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남부경찰서에는,
"18년 전 동네 수퍼에서 쥐포를 훔친 일에 대해 사죄드리고 싶지만,
가게가 없어져 찾을 수 없으니 대신 전해 달라"는 편지와 현금 10만원이 우송돼었다.
편지의 주인은,
"1988년 어느 날 동네 수퍼에서 주인 아저씨가 졸고 계실 때 친구들과 몇 차례 쥐포를 훔쳐 먹은
기억이 있다"며,
"다리가 불편한 아저씨를 도와주진 못 할망정,
도둑질로 폐를 끼쳐 지금껏 양심이 괴롭다"고 고백했었다.
*(개인적으로,
세상엔,
이런 분들이 더 많았으면 합니다.!)
2006년도,
이제,
저물어 갑니다.
본인을,
한 번 뒤돌아 볼 수 있는,
값진 시간이 되시길~~~~~~~~~~~~~~.
(불우한 이웃을 돌아보는 시간이 돼시길~~~~~)
(크리스마스에는,
님의 낡은?
컴퓨터가 최고의 컴퓨터로 교체돼는,
행운이.
님에게,
함께하기를~~~~~~~~
(누돌프사슴코는 매우 반짝이는코
만일 내가 봤다면 불붙는다했겠지 .. ~!
다른 모든 사슴들 놀려대면 웃었네 ..
가엽은 저 누돌프 외톨이가 되였네 ...
안개낀 성탄절날 산타 말하길
너의 코가 밝으니 썰매를 끌어주렴..
그후로 그사슴들 그를매우사랑했네
삐리리 삐리리 삐리리 기리 기리 기억되리 ...
매리크리스마스~~~~~~~~~~~~~~~~~
해피뉴이어~~~~~~~~~~~~~~~~~~~~~~)
녹슬은 철모-
이름없는 무덤가에 놓여진
녹슬은 철모.
군번도 없는 쓸쓸한 무덤가에
녹슬은 철모많이 당신을 지키고 있네.
조국을 위해 몸바쳐 가심을
철모가 말해주고 있네.
적의 총칼앞에 쓰러져간
젊은 청춘의 넋이여.
군번이라도 알 수 있다면,
좋으련만~~~~!
군번없는 무명의 용사가 돼어버린지,
56년.
56년이 흐른 지금에야
우리는
이름없는 무덤가에,
꽃을 놓누나.
애인같이 귀하게 여기던 총칼이
조문객을 살피우고
구름이
흘러흘러
청춘의 이름없는 넋을 위로하네
부디,
저,
세상에서
편히,
쉬시기를.
이기는 사람과 지는 사람
-
이기는 사람은 실수했을 때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고
지는 사람은 실수했을 때 ´너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말한
다.
이기는 사람은 아랫사람뿐만 아니라 어린아이에게도 사과합니
다.
지는 사람은 지헤있는 사람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습니다.
이기는 사람은 열심히 일하지만 시간의 여유가 있습니다.
지는 사람은 게으르지만 늘 ´바쁘다 바쁘다´며 허둥댑니다.
이기는 사람은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고 열심히 쉽니다.
지는 사람은 허겁지겁 일하고 빈둥빈둥 놀고 흐지부지 쉽니다.
이기는 사람은 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지는 사람은 이기는 것도 은근히 염려합니다.
이기는 사람은 과정을 위해 살고,
지는 사람은 결과를 위해 삽니다.>클릭이 안돼시는분들은 주소창에 복사하세요^^
(창을 따로 띄우신 후 하나씩 따라하시면 편합니다 ^^*)
target=_blank>http://www.donjunda.net/index.php?love_id=shinillku
포인트백 조선일보에 나온 기사입니다.
: *가입하시고 최소 하나 이상을 가입하면 돈이 적립?求?
: 다.
:http://www.chosun.com/economy/news/200602/20060215053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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