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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다. 나의 주민등록증.

  • 등록일
    2006/07/14 22:55
  • 수정일
    2006/07/14 22:55

지음님의 [피 흐르는 손가락에 검정 잉크를 묻힌 경찰] 에 관련된 글.

에밀리오님의 [안타까운... 손을 보면서...] 에 관련된 글.


대학교 1학년때, (1999년)
예전의 종이로 되어 있는 주민등록증에서 현재의 플라스틱 주민등록증으로 바꾸는 사업이
전 국가적으로 진행되었던 적이 있다.
그때 몇번의 공문이 집에 오고, 부모님이 새 주민등록증을 빨리 만들라고 성화를 하셔도
계속 버티면서 만들지 않았던 적이 있다.


그 후로 몇 년을 아무런 신분증도 없이 살았다.
(여권이나 운전면허증 따위는 아예 없고,
학생증도 분실했는데, 다시 만들지는 않았다.)
휴대폰은 당연히 주민증이 있는 가족 명의로 만들어야 했고,
은행계좌는 새로운 계좌는 만들 수 없고,
1999년 이전에 만들었던 계좌 하나만을 사용해야 했다.
(그것마저 통장을 분실했을 때, 재발급받을 수 없었다.)
웬만한 포털사이트 같은데에 실명인증하여 가입해야 하는 곳은 회원가입도 할 수 없었고,
선거에서 투표를 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학교에서 학생회 선거를 할 때에는,
그나마 투표소를 아는 사람이 지킬 때에, 투표를 할 수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불편했지만, 차마 주민등록증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주민등록증만 만들면 다 해결될 수 있는 것임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은 해결되는 것보다도 더 컸던 불안감때문이었다.
지문에 대한 정보를 비롯한 나에 대한 온갖 정보가 국가 전산망에 이미 있다는 것,
또 각각의 주민등록증에 들어간다는 것. 불쾌하기 짝이없는 일이었다.


 



 

 

한 때, 그 불안감이 내 영혼을 잠식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마저도 망각해버렸을까?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국가의 정보독점에 둔감해진걸까?
결국 플라스틱 주민등록증제도는 고착화되면서
주민동록증 거부자들의 운동에 대한 패배감이 들었던 것일까? 회의가 들었던 것일까?
사실, 이제와서는 어떤 게 내 생각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이런 식의 표현은 상황에 따라서 누군가에게 굉장한 짜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거 알지만,
지금은 달리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해해 주길...)
어떤 게 나의 정치적 감각을 후퇴시켰는지 잘 모르겠다. 이젠 기억마저 가물가물하다.
그 몇 년 후에 어느 여름, (아마도 2003년이었던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다.)
부모님께서 비과세정기예금을 위해서 내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어야겠다고 했을때,
결국은 그에 수긍하면서 동사무소로 갔다.
(1인당 2천만원 한도의 비과세정기예금을
나 빼고 우리가족들 명의로 모두 하나씩 만들었는데,
돈이 또 2천만원이 있어서, 내 이름으로 만들차례라고 하였다.
비과세로 이득을 보는 것은 1년에 10만원 정도였다.
한달에 100만원도 안되는 수입으로 이정도 모으신 우리 부모님이 자랑스럽기도 하다.)


그동안 하지 못하던 일상들을 이젠 할 수 있게 되었다.
근데, 사실 그때 비과세정기예금 계좌를 만든 것과, 분실한 나의 통장을 재발급 받은 것.
그리고 올해 5.31 지방선거에서는 처음으로 투표소에 갔던 것.
(물론, 찍을 데가 없어서 다 기권했지만...)
이것말고는, 주민등록증 가지고 멀 한 게 없는 듯 하다.
결국 나는 별로 하지도 않을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되는 이상한 권리와

내 정보를 맞바꾸고 말았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거 다 잊어가고 있던 이 비오는 계절에
김자현님의 손가락 자해를 통한 저항이 있었다는 것을 기사로 확인했다.
멍했다. 그 멍한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직 둔감해지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 아직 누군가가 싸우고 있다는 것.
그것을 한번에 확인해버린 것이 아닌가...


김자현님의 저항은 정당했다. 지지한다.
그리고, 무엇을 할 것인지... 다시 처음부터 고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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