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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후기

  • 등록일
    2007/03/18 17:12
  • 수정일
    2007/03/18 17:12
[결혼식]에 관련된 글. 결혼식장. 절대 뷔페식도 아니었고, 떡과 과일을 제외하고는 먹을 게 아무것도 없었으나 (김치는 일단 논외로 하자.) 떡은 또 아주 조금만 있고, 내 앞에는 밥 한공기에 갈비탕이 한그릇 놓여졌으며, 온갖 친척들이 나에게 갈비를 권한다. 그저 먹으란다. 먹으라고 한다. 고모부는 식권을 내고 들어왔는데, 자기한테 갈비탕 안준다고 식당 직원들한테 항의를 한다. 그렇게 해서 갈비탕을 받아가지고는 당신은 안 먹고, 또 나에게 준다. 많이 먹으란다. 그저 많이 먹으란다. 김치도 저 멀리, 떡도 저 멀리, 과일도 저멀리 있다. 내 눈앞에는 갈비와 회와 철저하게 계란으로 부친 전들뿐. 코너에 몰려서 결국 먹을 수 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 결혼식은 육식을 재생산하는 공간이고, 가부장적인 가족을 재생산하는 공간이라고 혼자 되뇌이고, 되뇌이며... 꾸역꾸역 삼킨다. 내 입이, 내 배가 갈비를 쳐 넣는 쓰레기통이 되면서까지도 철저하게 굴복하고, 순종하며, 그렇게 두시간을 넘겼다. 그 두 시간동안 처음보는 사람들이 나의 누나이고, 삼촌이고, 사촌형이고, 심지어 8촌동생이 되어버리는 이상한 공간을 경험해야 했다. 그것보다 더 이상한 것은 그들이 8촌이고, 6촌이고, 이런 걸 다 알아야 한다는 거다. 나는 내가 아니라, 울 아버지의 둘째아들일 뿐이었다. 그저 좀 친한 친척들이야 안부를 물으면서, 나름대로 인생에 대한 이상한 조언도 하긴 하더만 나머지 친척들은 언제 다시 만나도 알게 뭐야. 그러나, 그들에게도 굳이, 나는 울 아버지의 아들이어야 했다.


두 시간은 그렇게 가고, 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왔다. 지금 옆에서 주무신다. 오늘 저녁에는 또 무엇을 먹어야 할 지 내 맘대로 상을 차릴 수 있을지... 그것조차도 걱정된다. 큰집 형수가 조카들 공부 가르쳐달란다. 이런 거 정말 싫다. 그 분 입장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싫은 건 싫다. 어쨌든 이번 결혼식에 가면서, 다음주에 있을 엄마 생신때는 집에 안가기로 했다. 일종의 보상같은 거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갔다. 속이 좋지 않다. 이젠 고기가 배에 들어가기만 하면, 속이 거북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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