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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상무기에 대한 훈련

  • 등록일
    2006/07/30 22:54
  • 수정일
    2006/07/30 22:54

예전에 내가 운영하는 실명홈페이지에 내가 썼던 (다른 제목의) 글의 일부를 퍼온 것입니다.

분명히 내가 쓴 글이 맞는데, 이제는 내가 쓴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듭니다.

이제 '곧 민간인' 신분이 되었는데, 처음 입대할 때의 기억을 더듬어보면서

내가 얼마나 변해왔고, 내가 얼마나 저들의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졌는지 다시한번 생각합니다.

 



훈련소에서의 경험중에 굴욕적이었던 것이 많겠지만, 그 중에 아주 컸던 것이 바로 살상무기에 대한 훈련이었다. 이런 문제에서 무엇보다도 안전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은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훈련병의 위치에서 안전을 스스로 강조하는 것은 결코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물론 그들도 안전을 강조하지만, 오직 그들이 강조하는 안전만을 주입식으로 습득하고, 그들이 하라는 대로 하면 사고는 절대 있을 수 없다는 믿음을 주려고 애쓸 뿐이었다.

 

수류탄을 던지는 훈련을 할때, 교관이 못던지겠다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다. 일단 왼손잡이는 다 나오라고 했고, (투척장이 오른손잡이용으로 설계되어 있다.) 수전증, 다한증 환자들도 나오라고 했다.또 꿈자리가 안 좋은 사람들, 정말로 자신이 그것을 하다가는 사고날 것 같다는 사람은 다 나오라고 했다. 안전을 우선시하는 듯한 말투로 설명하며, 이런 사람들은 던져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그 결과 210명 중에 1/3인 70명이 열외자로 나왔다. 사실 이 70명 중의 대부분은 살상무기에 대한 공포때문에 나온 사람이었다. 수류탄은 손에서 터지면, 그냥 죽는 거 아닌가? 손으로 잡고 있는 것도 겁이나고, 던지는 것도 똑바로 던지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었다. 나 역시 그 70명 중에 한명이었다. 나는 괜히 저거 하다가 사고나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었다. 물론 기본적인 살상무기에 대한 공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70명은 엄청나게 굴욕적인 처사를 당했다. 수류탄도 하나 못 던진다고, 아니 던질 생각을 안한다고, 우리는 군인으로서 정신상태가 바르지 못하다는 질책을 들어야 했고, 얼차려라는 폭력을 겪어야 했다. 사실 저들은 처음부터 우리의 공포를 얼차려라는 폭력으로 억압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것이 70명이나 되어서 저들도 당황스러웠겠지만, 전체의 1/3이나 되는 사람들의 공포와 싸워서 결국 저들이 이겼다. 우리 70명은 모두 개같은 처사를 당하고, 결국 투척장으로 끌려갔다.

 

살상무기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것이 어디 70명 뿐이었겠는가? 다만, 그 70명은 그 공포때문에 피하려고 했던 것이고, 나머지 인원들은 비록 강제적이지만, 그 공포에 맞서려고 했던 것이다. 물론 일부는 수류탄을 다루는 것에 대해서 재밌어 했겠지만. 결국 저들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살상무기도 자기들이 하라는 대로만 하면 아무도 다치지 않고 다룰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느끼는 공포는 과연 그런 것뿐이었을까?

 

중요한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다. 그 죽음이 나의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것일 수도 있다. 과연, 당신은 누군가를 죽일 수 있겠는가? 실수로라도 당신이 누군가를 죽인다면, 과연 당신은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군대에서 살상무기 교육을 받는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 살상무기의 화력을 보며, 누군가에게 데미지를 많이 입힐 수 있는 것일수록, 우수한 것으로 인정하고, 또 경탄해버리는 사람들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곳에서 70명의 훈련병이 드러냈던 자신들의 공포는, 절대 인정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저들이 인정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다시는 부활하지 못하도록 어떻게 짓밟아버리는 지, 나는 똑똑히 봤다.

 

K-2소총 사격에서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이라고 떠들던 저들이, 막상 사격훈련을 평가하는 글에서 우리가 '안전해서 다행이었다'고 강조했던 것에는 아주 불쾌해 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래, 어쩌면 그때 저들의 본질을 알아차렸어야 했다. 그때 알아차리지 못하고, 수류탄 투척장 앞에서 처절한 폭력을 겪고 나서야 깨달은 나의 아둔한 머리의 탓을 하고 싶다.

 

좀 더 나의 아둔한 머리의 탓을 하자. 그런 공포를 끊임없이 인정해왔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한국사회가, 아니 구체적으로 한국의 군대가 어떤 입장을 고수해왔는지, 알았으면서도, 그것을 바로 이 상황에 연결시키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다. 그래도 '안전제일'이라는 건설현장의 사자성어가, 역시나 사람이 사는 곳인 군대에도 통할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미련한 기대가 문제였다. 저들에게 제일은 전투력이다. 싸워서 상대를 죽일 수 있는 능력. 우리의 안전은 그 다음 문제다. 이제야 알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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