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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관리사업소

  • 등록일
    2006/08/07 20:43
  • 수정일
    2006/08/07 20:43

'영생관리사업소'

오늘 내가 다녀온 곳의 이름이다.

이름 그대로 해석하면 '영생'을 관리해 주는 사업을 하는 곳이다.

 



우리는 보통 이 곳을 '화장터'라고 하는데...

 

 

1.

토요일 낮에 내 친구의 형님께서 돌아가셨단다.

그래서 어제 장례식장에 조문하러 가서,

'영생관리사업소'까지 따라갔다가 이제서야 집에 돌아왔다.

어제 밤에 다른 친구들과 그냥 돌아올까하고, 버스정류장까지 나갔다가

내가 머 당장 특별한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그냥 가기 미안하기도 해서

몇명의 친구들과 다시 장례식작으로 돌아갔다.

(나빼고 다른 녀석들은 월차쓰고, 약속취소시키고... 난리였다.)

그리고 '영생관리사업소'까지 따라가면서 도와준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도 우리들이 그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던 것이

그 친구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

다음학기에 복학을 하느냐, 수강신청은 했냐, 졸업은 언제하냐

머해서 돈 벌어 먹을거냐, 앞으로 머할거냐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지만, 장례식장에서 정말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이런 걸 물어봤다.

그들은 어쩌면 그냥 예의상 (별로 할 말도 없으니...) 물어본 것이었겠지만,

나는 그것으로 인해 진땀을 빼야했다.

나는 복학을 하겠다는 것 외에 아직까지 결정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지금단계에서 그런 '테크트리'를 결정하고 싶지 않고,

돌아가면 내가 무슨 활동을 할 수 있을 지에 대한 판단부터 새롭게 하고 싶은 거다.

그런데, 그런 걸 진지하게 이야기할만한 친구는 보이지 않고,

(기대했던 친구가 한명 있었으나, 장례식장에 내가 오기 전에 왔다 갔다고 한다. 4번 참조)

내 앞에는 저런 질문들만 던져진 것이다. 복학을 한다는 것 빼고는...

나에게는 아니, 몰라, 글쎄. 이 세가지 대답밖에 없게 되었다. 그 친구들도 짜증났을 거다.

 

3.

그런데 난 그 친구들에게 같은 질문을 역으로 던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즉, 나는 그 친구들에 대하여 어떻게 살든 궁금하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듣는다고 해도, 내가 그 친구들의 인생에 어떤 조언을 할 위치도 아니면서,

그럴 생각도 없으면서, 내가 그 친구들에 대해 꼭 알 필요가 있을까?

나는 안 좋은 일을 당한 친구를 위로하러 왔지, 다른 친구들이 궁금해서 온 게 아니었다.

 

4.

사실 나도 다른 마음을 조금은 가지고 왔다.

오래전부터 어떤 이유로 만나고 싶었던 그녀도 올 것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따로 연락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를 만나게 되는 일을 상상했고, 또 기대했다.

그리고 나의 고민들을 진지하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오기 전에 왔다가 먼저 가버렸다.

 

5.

어제 밤에 장례식장에 결국 남게 된 몇 명의 친구들과 새벽4시까지 술을 마셨다.

지금은 아무도 활동하고 있지 않지만,

우리들의 과격했던(육체적인 의미는 아님) 시절을 추억하며,

서로 상대방의 그 어이없는 과격함을 비난하는 재미로 농담을 하다가

조금 진지해지면서, 전술적인 부분들에 대한 늘 하곤했던 논쟁에 빠져 들었다.

(그 안에 있던 한 친구만 당비를 체납중인 무늬만 민노당 당원이었다.)

사실 아무것도 안할거면서 그런 논쟁을 또 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결국 마지막에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서 논쟁을 중단함을 선언해버렸다.

그건 나 자신에게도 똑같이 비수를 꽂는 선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해야 조금 더 마음이 편안해졌다.

 

6.

장례식장은 일회용품 천지였다. 모든 게 일회용품이다.

숟가락, 젓가락, 접시, 밥그릇, 국그릇, 술잔 등등...

일회용품을 쓴다고 해서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설거지하기 힘들 것이기 때문에 그 노동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는 것쯤은 알겠다.

근데, 그게 '어쩔 수 없는 일이다'라고 정리해버리면 찝찝한 것은 또 어쩌리. 대안이 멀까?

 

7.

장례식장이나 영생관리사업소 같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평소의 심리상태는 어떨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함부로 웃고 있을 수도 없는 곳에서, 침울한 분위기를 봐가면서,

그런 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 같으면 절대 못할 것 같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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