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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30 저는 차등수가제를 반대합니다. 아비
2014/06/16 활동보조인의 풍경 - 장애등급제 폐지를 두려워하는 사람들 아비
2013/10/30 고용 불안정, 수급 불안정, 인력 부족, 아비
2013/09/24 20130907 전국활동보조인노동조합 주최, 《장애인활동보조인 노동시간 제한의 문제점과 대안》, 토론회 발문 아비
2013/08/07 폭행과 직접지급제도 아비
2013/03/21 현장인문학 ‘모두를 위한 장애학’ 마지막 쫑파티 발표문 아비
2013/02/12 봉사자, 특수 노동자, 일반 노동자 아비
2011/12/08 ## 2011.12.06. 에 있었던 일에 관한 활보일기 아비
2011/09/26 저는 좀 편하게 일하고 싶습니다. 아비

저는 차등수가제를 반대합니다.

@ 최중증장애인 활동보조인은 차등수가제를 지지할 것입니다.

한명의 활동보조인으로서 다른 활동보조인이 더 붙는 것은 썩 반길만한 일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활동보조인들이 모이면 싸우기만 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한명의 이용자를 같이 맡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활동보조인이 이용자와 친해지고 더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자신의 월급이 깍이는 구조인데, 어느 누가 자신의 이용자에게 활동보조하는 다른 활동보조인을 흔쾌히 바라볼 수 있을까요? 이미 다른 활동보조인이 있는 장애인 이용자를 활동보조하기 시작할 때, 이미 있던 활동보조인과 갈등이 생기는 것은, 활동보조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보편적 경험 아닌가요? 자신의 월급을 깎는 불안 요인은 다른 활동보조인의 존재 뿐만 아니라 이용자의 바우처를 깎아먹는 목욕서비스나 간병서비스도 마찬가지 입니다. 너무나 바우처를 많이 깎아먹기에 실질적으로 잘 쓰이지도 않는 서비스이긴 합니다만, 저로서는 이용자가 목욕서비스나 간병서비스 받아 버리면, 다음 달 생활이 더욱 걱정될 것 같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2인활보 우선이냐 차등수가제 우선이냐 물으면, 최중증장애인을 맡고 있는 활동보조인 입장에서는 당연히 차등수가제를 우선해 달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2인활보는 다른 활동보조인이 붙어 자신의 월급이 깎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차등수가제는 최중증장애인만이라도 차별적으로 수가를 높여 자신의 월급이 오르는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저로서는 최중증장애인을 활동보조하고 있는 활동보조인들에게 설문조사를 한다면, 거의 대부분이 차등수가제를 지지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하지만 저는 차등수가제를 반대합니다. 최중증장애인을 맡고 있는 활동보조인의 입장에서만 정책을 평가할 것이 아니라 제도 전반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노동강도가 강한 경우라면 2인활보가 적절한 해법입니다.

차등수가제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최중증장애인의 경우 활동보조인력들이 기피하여 활동보조인을 구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으므로, 돈을 조금 더 많이 줌으로써 인력을 구해보겠다고 말합니다. 결국 최중증장애인의 경우 노동강도가 강하기 때문에 활동보조인력들이 기피한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하지만 최중증장애인들의 노동강도가 강하다고 칭해지는 경우는 오히려 2인활보가 더욱 적절합니다. 노동강도가 강하다고 말해지는 경우들 (예를 들어, 휠체어나 침대를 오갈 때, 목욕을 할 때)은 한사람이 활동보조할 경우 장애인 이용자도 위험하고 활동보조인의 건강도 위험합니다. 혼자서 최중증장애인을 번쩍번쩍 들다 보면 다칠 위험도 많고 다친다고 해도 산재처리가 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몸을 상해가면서까지 일할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100kg이 넘는 최중증장애인 이용자가 하루종일 아무것도 시키지 않다가 30분 목욕을 요구한다 하더라도 활동보조인 입장에서는 그 30분의 요구를 견딜 수 없어 못맡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루종일 쉰다고 하더라도 100kg의 이용자를 혼자 번쩍 들다가 허리를 다치면 누가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을까요? 여차하다가 이용자를 떨어뜨려 이용자도 함께 다치면 그 책임 여부와 죄책감 때문에 활동보조를 지속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노동강도가 강한 상황은 수가를 높이 책정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돈을 조금 더 준다고 하더라도 활동보조인이 갑자기 슈퍼맨이 되는 것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현행 2인활보는 장애인 이용자에게는 더 많은 바우처를 지급하게 하고, 활동보조인에게는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지급하며, 중개기관에는 서류업무를 가중시키기 때문에 거의 쓰이지 않고 있습니다. 센터, 이용자, 활동보조인이 부담없이 2인활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안하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 차등수가제가 시행될 경우 나쁜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동강도가 강한 최중증장애인의 경우 차등수가제가 적절한 해법이 아닌 것을 넘어서, 저는 차등수가제가 시행될 경우 별로 좋지 않은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경증장애인들에 대한 활동보조인의 기피가 예상됩니다. 지금 광화문에서는 장애인들이 당애등급제 폐지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장애등급제에 대한 비판 내용에는 장애인들의 필요가 섬세하게 정책에 반영되지 않고 정부의 편의대로 등급을 매기고 예산에 짜맞추는 장애인 복지 전반에 대한 비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장애등급제의 폐단 중 하나가 1급 장애인에게만 사회복지 서비스가 집중되는 문제지요. 안그래도 1급에게만 집중되는 서비스가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데, 활동보조인들이 바우처도 적으면서 거기에다 시간당 시급도 낮은 경증장애인을 활동보조 하려고 할까요?

거기에 더해 활동보조인들의 마음 속에 다른 형태의 장애인등급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요즘이야 노동시간 제한 덕분에 그런 대화가 많이 사라졌습니다만, 활동보조인들 사이에서는 몇시간 활동보조하느냐는 질문이 가장 쉬운 질문이었습니다. 이제 차등수가제가 적용되면 활동보조인들은 서로서로에게 당신은 시급 얼마짜리 장애인 이용자를 활동보조 하고 있느냐고 쉽게 물어볼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 정부의 노동감시가 더욱 심해지는 빌미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미 많은 활동보조인들은 야간에 활동보조를 할 경우 전화를 받거나 사유서를 쓰는 등 필요 이상의 노동감시를 받고 있는데요. 차등수가제가 어떻게 현실화 될지는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나, 그만큼 많은 수가를 받기 위해서는 그에 수반하는 감시와 서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2014/06/30 22:03 2014/06/30 22:03

활동보조인의 풍경 - 장애등급제 폐지를 두려워하는 사람들

오전. 장애인 이용자가 저녁에 친구와 약속이 있다고 했다. 요즘 바우처가 부족하니 저녁을 먹게 해주는 조건으로 퇴근기록을 하고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특별히 고기를 먹게 해주겠노라 한다. 고기는 좋지만, 돈도 안 받고 일하게 되는 이러한 상태. 과히 흔쾌하지 않다. 회식메뉴가 아무리 좋으면 뭐하나. 너와 얼굴 마주한 것 자체가 노동인 것을. 찝찝하나 저항하지는 않는 상태로 승낙한다.

일상적으로 반복하는 일은 모두 끝났다. 저녁 6시가 되어 단말기에 퇴근으로 기록하고, 이용자의 차를 타고 약속장소로 간다. 예전에도 한번 와봤다는 고깃집에서 친구를 기다린다. 이 집을 택한 이유는 별거 없다. 단지 아주머니들이 고기를 굽고 자르는 것까지 다 해주기 때문이다.

도착한 친구는 소아마비 장애인이다. 휠체어를 쓰기는 하나 양손을 잘 쓰고 근육량도 제법이다. 한마디로 몸짱. 장애인올림픽에 국가대표로 나간 적도 있다고 하니 그 활동량을 짐작할 수 있다. 나의 지금 이용자는 교통사고로 3번 경추를 다쳐 가슴 아래로는 감각이 없는 중도장애인이다. 손가락도 잘 움직이지 못하고 팔을 그저 움직이는 정도다. 이용자가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에 봉사활동을 하면서 둘은 만났다고 한다. 친구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했단다. 친구는 자신을 도와주던 이용자가 자기보다 더한 장애를 입었다고 말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끼 부리는 폭주족들을 보면 이용자 꼴 나겠다며 속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친구는 활동보조인을 둔 이용자가 내심 부러운 모양이다. 어디 멀리 여행이라도 좀 다니면서 즐기라고 말한다. 옆에 활동보조인도 있는데 좀 다니라고 말한다. 활동보조인이 절박한 일부 장애인들은 가끔 활동보조인만 있으면 뭐든 다 해결될 수 있는 듯이 말할 때가 있다. 하지만 활동보조인은 장애인이 활동하기 위한 조건 중의 일부일 뿐. 이용자는 돈도 없고 시간도 없다며 말끝을 흐린다.

그러고 보니 친구는 혼자 왔다. 활동보조인은 어디 갔느냐 물으니 없다고 한다. 왜 활동보조인이 없느냐고 물으니 처음부터 쓰지 않았다고 말한다. 옆에서 이용자가 한마디 톡 쏜다.

“처음 활동보조인 제도 생겼을 때, 제도 생겼다고 알려줬는데도 자기가 혼자 다니겠다고 신청 안 하고 뻐기다가 지금까지 왔지 뭐.”

말 마치기가 무섭게 친구는 국고를 축내는 ‘가짜 장애인’들을 흉보기 시작했다. 자기가 아는 사람은 할 일도 없으면서 활동보조인을 쓴단다. 남성 장애인이 일도 없으면서 젊은 여성 활동보조인을 데리고 매일 춘천에 꽃놀이를 간다고 흉본다. 그러니까 어지간하면 장애가 심해도 활동보조인 신청하지 말아야 한단다. 그러고는 갑자기 자기는 누가 같이 다니면 귀찮단다. 국고를 생각하는 애국심, 혼자서도 잘 다닐 수 있다는 자존심이 섞여 그는 활동보조 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았다.

“이제는 신청하려 해도 못 해.”

혼자의 힘으로도 자립을 해보려고 했던 그의 노력이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족쇄가 될 줄은 몰랐단다. 활동지원제도가 생긴 지도 몇 년, 그 사이 제도가 변하기도 여러 번. 장애등급에 대한 심사의 엄격함은 아주 강해졌다. 활동지원제도가 생길 초기, 이용자와 이용자의 친구는 장애 1급을 아주 쉽게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재심사를 하면 활동보조인 지원을 못 받을 게 분명하다고 한다. 비싼 사진을 찍어 신경이 살아있는 것이 보이면 그 신체 부위는 그냥 움직이는 부위로 간주한단다. 예전에는 휠체어만 타면 1급이었는데, 팔 한쪽만 움직여도 비장애인 취급 할 정도로 심사가 엄격해졌단다. 이제 이용자의 친구는 활동지원을 신청할 수 없다. 이제 활동지원을 받으려면 재심사를 해야 하는데, 장애등급이 내려가 활동지원을 받는 것은 고사하고 이미 받고 있던 다른 혜택들도 못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나의 이용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팔을 조금 움직일 수 있는데 재심사를 받으면 분명 1급에서 떨어질 것이란다. 그래서 부족한 활동지원 서비스 시간을 더 요청하지 않는다고 했다. 시간을 더 받기 위해서는 분명 재심사받아야 할 텐데, 재심사를 받으면 기존의 혜택들이 사라질 것이 분명하니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자신은 장애등급제 폐지가 두렵다고 말했다. 장애등급제가 폐지되면 새로운 기준으로 활동지원 서비스 시간이 책정될 것이고, 그렇게 제도가 변화되면 자신은 재심사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재심사를 피해 이미 받고 있는 서비스를 유지하며 받을 수 있지만, 장애등급제가 폐지되면 재심사는 불가피한 것이 된다. 이제는 조금 흥분한 듯 오히려 나에게 등급제가 왜 나쁘냐고 되묻는다. 1등급이라고 붙여놓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누가 알아보느냐며, 그게 그렇게 나쁜 거냐고 되묻는다.

“1등급 한우 취급이어도 좋아. 나한테 실질적으로 뭘 해주느냐가 중요하지.”

그에게 장애등급제 폐지는 중요한 주제가 아니었다. 장애등급제가 폐지되어도 어떤 점수표로든 공무원들이 장애인을 평가하는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활동보조 서비스를 얼마나 줄지에 대한 기준이 어떤 방식으로 정해지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공무원들은 예산에 맞추어 서비스를 받을 인원을 정한다. 예산에 넉넉하면 점수도 넉넉하게, 예산이 부족하면 점수도 짜게 줄 것이다. 장애등급제를 폐지하라는 주장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장애등급제 폐지를 넘어 국가가 권리를 받을 자격을 심사하는 것 자체를 문제시해야 할 것은 아닐까? 권리를 구걸해야 하는 현실이 문제시되어야 할 것은 아닐까? 하지만 나는 이용자에게 더 많이 싸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지는 못했다. 싸우러 광장에 나가기에 그에게는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았다.

시간은 흘러 집으로 갈 시간이 되었다. 이용자는 술을 마셨고, 나는 이용자의 차를 운전한다. 이용자를 집에 데려다 주고 시계를 보니 밤 10시 가까이 되었다. 집으로 오는 버스 안, 내 머릿속 계산기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4시간 해당하는 급여를 계산해본다. 내가 먹은 고깃값을 계산해본다. 대리운전 한 번 부를 때, 얼마를 써야 하는지를 생각해본다. 아무래도 밑지는 장사다. 이용자와 다시는 밥 먹으러 가지 않겠노라 결심해 보지만, 이 또한 잘 지켜지지 않을 것을 안다.

2014/06/16 02:07 2014/06/16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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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불안정, 수급 불안정, 인력 부족,

한성대학교에서 2013년11월16일에 활동보조인과 이용자간에 갈등해결을 위한 토론회가 있다. 토론자로 참석한다. 그곳에서 쓸 발제문.

노들야학으로 장소가 변경되었다. 오후2시부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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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불안정, 수급 불안정, 인력 부족,

1. 문제인식

활동보조인과 장애인 이용자 사이에는 해당 사회서비스를 중개하는 중개기관이 있다. 중개기관은 서비스를 중개하면서 무슨 문제가 있을 때 중개기관을 찾으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활동보조인과 장애인 이용자는 무슨 문제가 생기면 중개기관을 찾는 일은 드물다. 일을 오래 한 활동보조인일수록 그러하다. 드러나지 않은 문제들은 많지만, 드러난 문제들을 해결하는 중개기관의 대처는 미흡하다. 문제를 드러내도 해결되리라는 기대가 없기에 활동보조인과 장애인 이용자는 문제를 드러내지는 않고, 사적 차원에서 문제해결을 시도한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사적인 자리에서 서로 욕할 뿐이다. 그래서 활동보조인에 대한 악담과 장애인 이용자에 대한 악담은 더욱더 풍성해져 간다.

2. 활동보조인이 약자인 경우

장애인운동에서 말하는 장애인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면 존중할수록, 그것의 실현수단으로서의 활동보조인은 노예에 가까운 무엇이 되어 간다. 딱히 활동보조인의 업무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활동보조인은 장애인 이용자가 요구하는 것을 모두 들어줘야 한다. 문제의 소지가 많은 활동보조라 하더라도 혹은 거부할 수 있는 활동보조라 하더라도 활동보조인이 이를 적극적으로 거부하게 되면 장애인 이용자는 자신이 원하는 활동보조를 받기 위해 다른 사람을 찾는다. 합리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장애인 이용자가 활동보조인으로부터 서비스를 받는 것을 거부할 경우, 중개기관은 억지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 신앙, 취미에 이르러 정치적 성향까지, 장애인 이용자가 요구하는 조건은 매우 까다로울 수 있다. 결국, 중개기관은 서로의 욕구가 일치하는 장애인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을 매칭시켜줄 수밖에 없다. 중개기관이 구하지 못하면 장애인 이용자가 직접 구한다. 이런 장애인은 자기결정능력이 있는 장애인으로 높게 평가받는다. 일례로 구인·구직 사이트에는 활동보조인력의 요건으로 운전 가능자, 자동차 소지자를 찾는 장애인 이용자 개인의 광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결과 유류비를 처리하기 위한 부정수급의 문제, 사고 시 보험처리가 되지 않는 문제 등등 잇따르는 문제는 많지만, 장애인 이용자들의 욕구는 여전하고, 이는 결국 이런저런 상황을 잘 모르는 초보 활동보조인에게로 부담이 돌아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활동보조인은 문제를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고용불안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3. 장애인당사자가 약자인 경우

활동보조인이 중개기관의 장애인 당사자주의에 불만을 느낀다면, 장애인 이용자들은 또 다른 이유로 불만을 가진다. 그들이 불만의 근거를 구성하는 방법은 활동보조인과는 다르다. 활동보조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중개기관이 활동보조인의 편만 든다는 논지이다. 자신이 활동보조인을 구하는 자기결정능력이 높은 뛰어난 장애인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이 없어 자신의 불만을 표출하지 못하는 장애인 이용자는 같은 장애인 이용자가 아니다. 후자의 경우 활동보조인들이 꺼리는 최중증장애인인 경우가 많다. 혹은 아무런 관계자본이 없는 상태로 고립되어 사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활동보조인을 구하지 못해 밥을 먹지 못하고 신변처리를 하지 못하는 상황은 활동보조인에게 몇 대 쥐어박히는 것보다 더한 폭력적 상황이다. 문제를 드러내도 기존의 활동보조인이 그만두고 새로운 활동보조인을 구할 때까지 공백 기간이 생긴다. 새로운 활동보조인을 구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리고 활동보조인들 또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4. 중개기관의 대처

중개기관 입장에서는 활동보조인과 장애인 이용자는 중개기관의 수입요건이기 때문에 양자 모두 중요하다. 활동보조인이 장애인 이용자를 만나 활동보조 서비스를 제공하고 바우처가 결제되어야 중개기관의 수입이 생긴다. 둘 중 하나만 없어도 수입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중개기관의 역할은 미미하다. 활동보조인은 자신의 근무처도 중개기관으로부터 전달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장애인 이용자의 전화나 다른 보조자들을 통해 활동보조인이 자신의 근무처를 찾아간다. 중개기관이 근무처에 오는 일이 없으니, 활동보조인력이 행할 업무의 경계를 정하는 일도 없다. 중개기관은 장애인 이용자의 삶을 파악할 수도 없고, 활동보조인이 어떤 업무를 하는지 파악하지도 못한다. 갈등이 드러났을 때 양자의 주장만을 들으니 무엇을 어떻게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을까? 지금의 중개기관은 갈등해결기관을 자임하고 있으나, 그 능력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무능력하다.

5. 대안검토

가.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활동보조서비스 이용자 집체교육에 관한 의견

장애인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의 갈등에 대한 대안으로 이용자교육에 관한 의견들이 있다.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대구대 조한진 교수는 자립생활의 철학이 장애인의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것이며 활동보조서비스를 활용하기 위해 장애인이 어떤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을 가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이 적절하지 않다고 반론한다.1) 하지만 자립생활의 패러다임이 장애인 이용자의 선택과 결정이 도덕과 법을 넘어 무제한적으로 용인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활동보조서비스 또한 활동보조인이라는 사람을 대하는 일이기에 그 관계에서도 지켜야 할 윤리나 규범이 있게 마련이다. 장애인이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들의 결정이 존중받는 것과 동시에 사회구성원들과 어울려 관계 맺는 능력을 향상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장애인 당사자만이 특별한 취급을 받는 것은 그것 자체가 고립이며, 그 특별취급에는 오히려 시혜와 보호의 시선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활동보조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갈등은 활동보조인이 의견 없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용자 교육은 이용자가 활동보조인의 인권을 존중하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그들이 그들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나. 현장을 지속해서 돌보아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장애인 이용자에 대한 교육 또한 현장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해결하기에는 부족한 대안이라고 본다. 자기결정능력은 키워져야 할 능력이지만, 교육기회를 박탈당한 장애인들을 보호할 장치 또한 필요하다. 장애인과 활동보조인 간의 갈등은 그들의 폐쇄성에서 기인하는 경우도 많다. 장애인과 활동보조인이 폐쇄적 상황에 있다면 활동보조인과 갈등 상황에서 장애인 이용자를 지켜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장애인의 자립생활 공간을 지속해서 찾아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중개기관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인력충원을 하거나, 안 된다면 지방자치단체를 통하거나 다른 기관을 통해서라도 장애인의 자립생활 현장을 지속해서 찾아주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활동보조인에게 있어서도 업무를 명확하게 해줄 누군가가 있다면 갈등의 소지는 훨씬 줄어드리라 생각한다.

다. 시시비비를 가릴 기준이 필요하다.

활동보조서비스를 대하는 중개기관들의 태도는 중개기관의 성격에 따라 그 태도가 천차만별이다. 복지관은 비교적 서비스제공자 중심으로 관리하는가 하면, 자립생활센터들은 장애인당사자의 욕구를 중심으로 관리하는 경향이 있다. 활동보조 서비스의 공공성과 활동보조인의 노동권, 장애인 이용자의 권리가 조화된 갈등해결 기준이 필요하다.

라. 활동보조인이 정당한 문제제기를 할 수 있게 고용안정을 실현해야 한다.

활동보조인의 정당한 문제제기가 자신의 생계를 위협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활동보조인이 정당한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일을 쉬게 될 경우, 근로기준법 46조를 참고하여 이를 사용자(중개기관)의 귀책사유로 인한 휴업으로 간주하고 해당 조항에서 규정하는 휴업수당에 준하는 임금을 지급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겠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활동보조인의 월급제 도입을 검토해 볼 수 있겠다.

마. 장애인 이용자가 정당한 문제제기를 할 수 있게 활동보조인 수급 안정을 실현해야 한다.

장애인 이용자가 새로운 활동보조인을 구하는 기간 동안의 공백기를 염려하여 자신의 불만을 표출하지 못하는 사례는 없어야 한다. 활동보조인력의 수급을 원활하게 하려면 활동보조인력의 근로조건을 향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불어 긴급하게 임시로라도 활동보조를 해줄 수 있는 인력을 확보해두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나 자치단체 차원에서 긴급하게 투입할 활동보조인력을 고용하여 상시 대비시키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1) 에이블뉴스, ‘활동보조인·이용자 간 갈등 해결 단계적 방안’, <http://ablenews.co.kr/news/newscontent.aspx?categorycode=0009&newscode=000920131015093849836942>, 2013.10.15.

2013/10/30 21:23 2013/10/30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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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7 전국활동보조인노동조합 주최, 《장애인활동보조인 노동시간 제한의 문제점과 대안》, 토론회 발문

각자가 자신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

1. 들어가며

장애인 활동지원제도는 2007년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다. 장애인의 사회적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많은 싸움이 있었고, 그를 통해 쟁취한 것 중 하나가 활동지원제도이다. 하지만 이 제도를 올바르게 구성하기 위해서는 서비스를 제공받는 장애인 외에도 서비스 전달자라고 할 수 있는 활동보조인과 중개기관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행 제도는 전달자에 대한 고려는 미비하다.

이미 정치적 주체로 성장한 장애인의 적극적 요구로 인해 장애인 개개인에게 지급되는 바우처는 비교적 늘어난 것처럼 보인다. 장애인의 입장에서는 아직 한참이나 모자란 활동보조 시간에 대해 비장애인인 내가 이런 말 할 처지가 아님은 명백하다. 그럼에도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장애인의 투쟁으로 인해 지방자치단체에서 ‘24시간 활동보조 보장’을 약속한 사례가 속속 발표되고 있기 때문이다.1)

하지만 동시에 곳곳에서 활동보조인이 부족해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한 언론에 따르면 한 지역의 남성 활동보조인의 비율이 10% 정도 밖에 되지 않아 큰 문제를 겪고 있다.2) 더불어 최근 중개기관이 활동보조인의 노동시간을 208시간으로 제한하기 시작하여, 많은 활동보조인이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3)

이런 현실에서 지자체가 약속한 ‘24시간 활동보조 보장’이라는 것은 ‘24시간 활동보조 보장’이 아니라, ‘24시간에 해당하는 활동보조 바우처를 지급’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장애인 이용자에게 바우처는 전달되지만, 활동보조 서비스는 전달되지 않고 있다. 전달되지 않은 서비스는 집행되지 않은 예산으로 남는다. 활동지원 관련 예산이 800억이나 불용 되었다는 사실은 정부기관이 활동지원제도에 얼마나 무책임한지를 방증하고 있다.4) 나날이 심해지는 감시와 단속 속에서 예산집행을 더더욱 줄이려는 의지마저 엿보인다.5) 장애인 입장에서는 정작 필요한 활동보조 서비스는 받지도 못하고, 늘어난 바우처 만큼이나 자부담에 대한 부담만 높아졌다.

2. 통일되지 않은 요식적 요구들

근로시간 제한과 관련하여 최근 보건복지부에서 지자체에 내린 하나의 공문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보건복지부의 공문 내용은 법정 근로시간보다 많은 시간 활동보조하는 사람은 부정수급의 가능성이 높으니 지자체에서 잘 감시하라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한다. 하지만 지자체에서는 이를 오해하여 중개기관에 활동보조인에게 208시간 이상 활동보조를 못 하도록 제한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노조에서는 복지부에 문의하여 지자체가 오독한 것임을 확인했으며, 이를 수정하는 공문을 내려 줄 것임을 요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자체에서 활동보조인의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것은 지자체의 활동지원제도에 관한 독자적 운영지침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으며, 보건복지부도 노동시간에 대한 뚜렷한 기준이 없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이것대로 활동지원제도를 혼란스럽고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활동지원제도 관련되어 중개기관을 지시 감독하는 기관은 보건복지부뿐만이 아니라 지자체와 국민연금공단 등이 있다. 이들 사이에서 요구하는 기준은 통일되어 있지 않으며 중개기관은 그만큼 많은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이러한 요구는 결국 중개기관의 업무 부담으로, 활동보조인의 노동으로 돌아간다. 하나의 예로 ‘근무 기록지’를 들 수 있겠다. 지자체 차원에서도 활동지원 중개기관을 평가할 기준이 필요한데, 이러한 평가 기준은 대게 서류에 그친다. 보건복지부에서 마련한 사회서비스 전자바우처 시스템이 생긴 이후로, 보건복지부의 지침에는 실시간 결제의 경우 활동보조인의 근무 기록지 작성을 요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자체에서는 중개기관이 활동보조인을 얼마나 잘 관리하는지에 대한 평가 지표로 근무 기록지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결국 계약관계상 약자의 위치에 있는 활동보조인의 업무로 연결되어 근로조건에 영향을 끼친다. 이런 노동이 현장에 어떤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활동보조인과 장애인 이용자의 서명만 받는 요식행위일 뿐이다. 폭행사건이 발생하면 중개기관들은 범죄경력을 조회했으며, 향정신성 의약품 전력이 없음을 확인하는 건강검진서도 받았다고 말할 것이다. 활동보조인의 부정수급을 감시한다는 지자체도 장애인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의 사유서 한 장을 요구하거나 전화 한통화로 감시할 뿐이다. 각자 서로의 책임을 회피할 면책용 서류들만 있을 뿐, 그곳에 사람은 없다. 장애인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의 불쾌감만 높이고, 번잡한 서류만 만들 뿐, 아무런 실효가 없다.

3. 활동보조인의 임금체계

각 중개기관이 노동시간을 208시간으로 제한하기 시작했다. 지금에서야 본격적으로 두드러진 문제이지만 이러한 제한은 2011년 활동보조인 제도가 ‘활동지원제도’로 변화하는 시기부터 있어왔다. 당시 내가 재직한 센터는 208시간 이상 활동보조를 하는 활동보조인을 타 중개기관과 협의하여 2개의 센터에 등록하도록 종용하였다. A씨가 400시간의 활동보조를 한다고 가정하면 원래 속한 기관에서 200시간 정도 결재를 하고, 협의한 센터에서 나머지 시간을 결재하도록 하는 방식을 취했다. 서로 활동보조인을 교환하는 꼴이 되어 중개기관에 손해는 없었다. 활동지원제도와 관련하여 중개기관을 통해서만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많은 활동보조인은 영문도 모른 채 센터가 하라는 대로 따랐다. 활동보조인을 따라서 장애인 이용자도 2개 센터에 등록했다. 2011년 활동지원제도로 바뀌면서 변화한 내용 중 하나는 장애인 이용자뿐만 아니라 활동보조인 또한 다수 센터에 등록하여 활동보조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는 것이었다. 활동보조인의 구직활동 용이성을 담보하기 위한 이러한 개선은, 정작 현장에서는 활동보조인의 초과근무수당 지급을 피하기 위한 중개기관들의 편법으로 활용되었다. 2개의 센터에 등록된 활동보조인들은 퇴직금이나 4대 보험이 분할되어 관리되었고, 이 말은 곧 초과근무수당뿐만이 아닌, 퇴직금이나 세제의 측면에서도 활동보조인이 손해를 본다는 의미였다.

활동보조인은 실질적으로 시급노동자이다. 활동보조인의 월급은 일한 시간에 시간당 지급되는 바우처 8550원의 75%(6412.5원)이상을 곱하여 결정된다. 시급노동자의 수당은 시급을 그 기준으로 책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하는 주휴수당이나 초과근무수당에 짜 맞추기 위해 활동보조인의 근로계약서는 최저임금(2013년 현재 4860원)에 맞추어 계약되고, 이미 결정된 임금에 수당이 포함되도록 계산된다. 소위 포괄임금제라고 하는 이 계산방식을 중개기관들은 속속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에서는 주 40시간 이상의 노동시간에 대하여 150%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바, 노동시간이 어느 정도 많아지게 되면 초과근무수당으로 처리해야 할 시간이 늘어나게 되어 현재 지급되고 있는 바우처 수가를 넘어서는 임금이 발생하게 된다. 중개기관 입장에서는 손해 보는 장사가 된다. 노동시간 제한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노동시간을 제한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노동시간을 제한하지 않은 센터들은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임금체납 사업주가 된다. 여기에 더불어 상급기관들의 감시와 제재에 중개기관들은 활동보조인의 노동시간을 208시간으로 제한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활동보조인의 임금체계와 관련된 문제이다. 이는 활동보조인의 임금을 장애인에게 지급되는 바우처와 같은 기준으로 지급하기 때문이다. 장애인에게 단순히 시간당 얼마씩 지급하고, 활동보조인에게도 단순히 시간당 얼마씩 지급한다. 근로기준법에서 말하는 주휴수당, 초과근무수당(야간·연장근무, 휴일근무수당), 연차수당에 관한 고려가 없다. 여기서 특히 연차수당이 문제가 되는데, 연차수당은 포괄임금제에 포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활동보조인의 임금체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함을 시사한다. 연차수당과 관련하여 활동보조인이 관할노동청에 진정을 넣은 사례들에서 관할노동청은 중개기관이 활동보조인에게 연차수당을 지급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4. 중개기관들의 대처

활동보조인의 근로조건이 근로기준법조차 준수하고 있지 않음은 이미 많이 지적되었다. 여러 언론은 물론 국회에서도 언급되었다.6) 중개기관들은 활동지원제도가 자신들을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들의 발화가 정책입안자들을 향한 권리요구가 아니라, 활동보조인의 권리요구에 대항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중개기관들은 활동보조인의 노동권을 보장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포괄임금제 도입, 활동보조인의 직종특성을 언급하며 활동보조인의 노동자성을 무시하는 정부정책에 편승하고 있다. 연차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전국의 모든 중개기관의 장들은 기실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범법자들이다. 노동시간을 제한하지 않는 중개기관의 장들도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지 않았기에 범법자들이다. 최저임금 기준으로도 이 기준을 충족시킬 수 없다. 활동보조인들의 임금이 사실상 최저임금 이하라는 주장은 그래서 가능하다. 활동보조인들의 묵인과 희생을 통해서 여태껏 활동지원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법을 지킬 수 없는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중개기관들은 정책입안자들에게 항의하고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활동지원사업을 받아들이고 상급기관이 요구하는 감사를 충실히 이행한다.

이번 208시간 노동시간 제한 조처도 같은 선상으로 보인다. 208시간 이상 바우처를 지급받는 최중증 장애인 이용자들, 그리고 자신의 생계를 위해서 208시간 이상 노동할 수밖에 없는 활동보조인 노동자들의 현실을 고려할 때,7) 208시간 노동시간 제한은 사실상 활동지원제도의 해체를 가져온다. 노동시간 제한 이전에도 이미 활동보조인력이 부족하다는 성토들은 계속 있어왔다. 근골격질환, 저임금, 불안정 노동 등,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인해 매력적인 일자리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이 부족하다. 거기에 더해 내려진 208시간 노동시간 제한이라는 조처는, 근로조건 개선이 아니라 ‘부분적 실업’이며, ‘실질적 해고’이다. 활동보조인 없는 활동지원제도가 가능한가? 중개기관은 활동지원사업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가? 장애인 이용자들에게 활동보조 서비스가 가닿기는 하는가? 그럼에도 이에 대해 발언하는 중개기관들보다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중개기관들만 늘어나고 있다. 장애인의 입장에서, 노동자의 입장에서 발화하는 행위자들은 보이지만, 중개기관의 입장에서 활동지원제도에 관해 말하는 목소리는 미미해 보인다. 열악한 운영실태 속에서 한 푼의 예산이라도 더 받기 위해 그저 감시받는 중개기관이 있을 뿐이다.

5. 맺으며

최근 장애인운동가들 사이에서는 자립생활센터가 활동지원사업에 매몰되어 있다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장애인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자립생활센터가 영리기관으로 전락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자립생활센터가 활동지원사업을 정부에 반납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8) 내가 보기에 여기에서 중요한 쟁점은 자립생활센터가 활동지원사업을 하는지의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의 삶에 필요한 정책적 제안을 할 수 있는지의 여부이다. 활동지원사업은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중개기관 또한 활동지원사업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중앙정부가 활동보조인의 인력충원을 방기하는 만큼이나, 중개기관 코디네이터의 인력충원이 방기되기 때문에, 중개기관 또한 인력난에 빠져, 활동지원사업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 결국, 장애인의 삶에 필요한 정책제안도, 다른 사업을 행할 수도 없다. 자립생활센터가 활동지원사업에 매몰되어 버린 이면에는, 자립생활센터의 사회적 성격을 부정하고, 중개기관 운영에 책임을 방기하는 정부기관 때문이다.

장애인의 입장에서 노동시간 208시간 제한이 어떻게 다가가는지는 앞서 말한 바 있다. 장애인의 “활동보조 24시간 보장하라.”는 구호는 “활동보조 24시간에 해당하는 바우처를 보장하라.”는 구호로 축소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바우처를 쓸 곳도 만들어 주지 않고, 다시 회수될 바우처를 늘려주며 생색내는 정부기관들에게, 장애인들은 단호히 “활동보조인을 내 눈 앞에 대령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불용될 바우처, 다시 회수될 바우처는 없는 것과 같다. 집행되지 않을 예산은 없는 것과 같다.

장애인, 활동보조인, 중개기관, 그 누구도 견딜 수 없는 이 제도를 우리는 왜 참고 견뎌야만 하는가? 우리가 연대하는 것에는 사실 특별한 연대의 감정마저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 각자가 자신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만이 요구될 뿐이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활동지원제도의 공공성을 정부기관이 책임지는 것이다. 그것의 내용에는 활동보조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는 것, 장애인의 삶을 돌보는 중개기관 및 자립생활센터들의 사회성을 인정받고 정부의 지원을 받아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할 것, 장애인들은 안정적인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아 자유롭게 생활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정부기관의 책임이 담보될 때 실현 가능한 것이다.


1) 은평구, 전라남도, 용인시, 고양시, 등.

2) 에이블뉴스, 답답한 활동보조인 남녀 성비 ‘불균형’, <http://ablenews.co.kr/news/newscontent.aspx?categorycode=0022&newscode=002220130718175723013106>, 2013.07.19.

3) 이러한 활동보조인의 고충 토로는 활동보조인연대 카페를 통해서 아주 쉽게 접할 수 있다.

4) 경향신문, 장애인 활동보조인 예산, 800억 안 쓰고 놀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11120300035>, 2012.11.12.

5) 이런 감시와 단속은 장애인들에게만 행해지는 것이 아니다. 활동보조인이 심야에 활동보조 할 경우 전화를 하거나 사유서 제출을 요구하는 기관들이 있다.

6) 에이블뉴스, 활동보조인 수당 지급액 근로기준법 위반, <http://www.ablenews.co.kr/news/newscontent.aspx?categorycode=0044&newscode=004420121005172006197437>, 2012.10.05.

7) 임금체계 측면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활동보조인의 임금이 저임금임은 명백하다. 208시간 활동보조를 해서 받을 수 있는 임금은 2013년 3인 가구 최저생계비 수준이다. 2013년 최저생계비는 아래와 같다.

구   분

1인가구

2인가구

3인가구

4인가구

5인가구

6인가구

7인가구

금액(원/월)

572,168

974,231

1,260,315

1,546,399

1,832,482

2,118,566

2,404,650

8) 비마이너, "광화문역 농성은 혁명적 투쟁의 거점", <http://beminor.com/news/view.html?section=1&category=3&no=5727>, 2013.08.09.

2013/09/24 21:24 2013/09/24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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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과 직접지급제도

비마이너 기고 http://beminor.com/news/view.html?section=86&category=105&no=5689
위클리 수유너머 원고 http://suyunomo.net/?p=11572

1. 범죄경력 조회서

최근 활동보조인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던 것은 활동보조인에게 마약이나 향정신성의약품 중독자가 아님을 증명하는 건강검진 서류와 범죄경력 조회서를 중개센터가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건강검진에 드는 비용도 비용이겠지만(보건소에서 발급받을 수 있는 건강검진서류는 몇천 원에 불과하지만, 병원에서 발급받아야만 하는 해당 건강검진서류는 오만 원의 발급비용이 든다.), 자신의 신상정보를 유출하는 문제였기에 어떻게 대처할지 이야기가 많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2011년 ‘장애인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될 당시부터, 활동보조인의 자격과 관련된 조항에는 성범죄경력자나 정신질환자 등은 활동보조인을 할 수 없는 결격사유로 규정하고 있었다(‘장애인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 29조). 이러한 개인신상 정보의 요구도 법률로 규정되어 있기에 법적 문제는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미 법이 제정될 당시부터 그 결격사유를 규정하고 있었으나, 보건복지부는 물론 지자체, 중개센터들도 아무런 의식을 하고 있지 않다가(이러한 사항은 심지어 보건복지부가 내어 놓은 지침에도 몇 년 동안 적혀있지 않던 사안이었다.) 2013년에 들어서야 활동보조인의 신상에 관해서 관심을 두기 시작하였다. 법 규정상으로는 몇 년 전부터 엄존하고 있던 사안이었겠지만, 현장에 있는 활동보조인들에게는 새로이 생긴 큰 변화였다.

사회적으로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높은 요즈음, 노동자들에게 범죄경력 조회서를 요구하는 것은 활동보조인에게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택시기사, 외국인노동자, 병원종사자 등. 그 사례는 많다. 노동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는 사회적 인식 앞에 노동자가 대동단결하여 저항하여야 하는지, 아니면 밥벌이는 숭고한 것이라며, 다들 그렇게 사는데 나만 유난 떨 것은 아니라며, 순응해야 할지 참으로 아리송할 뿐이다.

2. 최근의 폭행사건

최근 한 활동보조인이 장애인 이용자를 폭행한 사건이 보도되었다.1) 나는 해당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이 사건에 중개기관이 책임져야 한다는 의견들이 있었다. 나도 이에 동의한다. 활동보조 서비스가 장애인 이용자에게 활동보조인을 통해 직접 제공되지만, 현행 활동지원제도에서는 중개센터가 중개수수료를 바우처의 25%까지 취하며 활동보조인을 파견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때문에 중개센터의 책임범위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 논의가 분분할 수는 있으나, 원칙적으로 중개센터는 활동지원인을 파견하는 주체이기 때문에 그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파견노동에서 파견업체에 그 책임을 묻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대답이다. 그런데 문제는 작금의 중개센터가 그러한 책임을 질 ‘능력’이 있는지의 여부이다.

3. 현장의 활동보조인이 느끼는 중개기관의 역량·역할

나는 중개센터가 활동보조인의 폭행과 같은 분쟁 사안에 어떤 현실적 대책을 세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현재 중개기관들의 인력상황은 아주 열악해서 코디네이터 1명에 100쌍가량의 장애인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을 관리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 현실에서 코디네이터들이 가능한 업무 거의 전부는 장애인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을 연결해주는 매칭업무가 전부라고 생각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동료 활동보조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그들 또한 중개기관에 기대하는 바가 없다. 현장에서 느끼는 중개기관의 역량·역할이라고는, 고작 연락처 전달책 정도밖에는 안 된다. 경험이 많은 활동보조인일수록 장애인이용자와 문제가 생겨도 중개기관을 찾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중개기관도 사업인 만큼 노동자인 활동보조인보다 고객인 장애인이용자의 편을 들어주기 쉬운 경향을 띨 수밖에 없다는 점. 둘째로 중개기관이 장애인자립생활운동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장애인당사자주의적 경향이 강하기에 활동보조인의 편을 들어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점. 셋째로 중개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장애인 당사자인 경우도 많고, 그들이 문제상황에서 감정이입하는 대상은 노동자이기보다는 장애인이용자라는 점 등을 들 수 있겠다. 이런 상황에서 장애인이용자와의 문제를 중개기관에 말한다는 것은 그저 시끄러운 활동보조인으로 낙인찍히는 의미 이상의 것은 없다. 장애인 이용자들이 중개기관을 어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내가 말할 바는 아닌 듯하다.

어쩌면 중개기관은 활동지원제도에서 가장 소외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중개기관의 현장장악력은 인력난으로 인해 거의 제로에 가깝다. 보건복지부가 활동보조인을 ‘개인사업자’로 취급하려는 배경에는 이런 이유도 무시 못 한다고 생각한다. 중개기관이 장애인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을 장악하고 있다면 이런 주장은 나올 수가 없다.

4. 폐쇄성

장애인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이 폐쇄적 공간에 있을 때, 활동보조인이 범죄를 저지를 경우 장애인 이용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오던 문제이다. 시설의 폐쇄성이 폭력을 부를 수 있는 것처럼, 장애인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이 폐쇄적 공간에서만 활동이 이루어진다면, 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시설 비리의 해결을 위해 시설을 투명하고 개방적으로 운영하는 것처럼, 장애인 이용자와 활동보조인 간의 폭력문제도 그들의 활동이 집안에서 폐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도록 외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들의 활동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투명성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 나는 그 역할을 중개기관이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태도가 파견주체의 책임 있는 태도이며, 자립생활운동의 본래 취지에도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집도 폐쇄적이라면 시설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인력난으로부터 기인한 현장장악에의 무능함 때문에 중개기관은 그저 활동보조인이 착한 사람이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마약을 한 적도 없고 범죄경력이 없음을 확인하는 것이 고작이다. 하지만 이는 시설의 폐쇄성은 그대로 둔 채 시설장이 착한 사람이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순진한 발상일 뿐이다.

5. ‘직접지급제’와 ‘개인예산제도’

그런데 최근 일부 장애인단체에서는 ‘직접지급제’와 ‘개인예산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움직임이 보인다. 보건복지부 또한 이에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듯하다. 이미 지적된 것처럼, 정부 입장에서도 예산절감이나 국가책임을 완화할 수 있기에 매력이 있는 정책이다.2) 서울시에서도 시도하였으나 중앙체계 때문에 좌절되었다고 하니, 그 도입가능성은 꽤 커 보인다. 하지만 장애인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활동보조 서비스가 시장화 되는 것이기에 그 폐단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주장하는 장애계에서는 중개기관이 수익으로 가져가는 25%의 수수료를 직접 장애인이 활동보조인을 고용할 때 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그만큼의 많은 돈을 지급하면 더 많은 활동보조인력이 몰려들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지만, 그러한 판단은 ‘시장’을 모르기 때문에 가능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활동보조인의 노동과 완전한 대입은 불가능하겠지만, 활동보조인의 노동과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설업체들이 이미 있다. 잔심부름센터가 그것인데, 해당 서비스의 요금은 회당 6000원에서 8000원이 기본요금이다. 이를 활동보조인의 노동에 대입해 보자면 그 비용은 현재 지급되는 수가보다 더 많이 든다.3) 시간별 이용료로 책정하는 경우도 최저 시간당 15000원이다. 5시간 이상 줄서기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인데, 이마저도 겨울에는 시간당 1만 원의 추가비용이 든다. 거기에 심부름센터로부터 거리가 멀 경우 또 추가비용이 발생한다. 25%의 중개수수료를 장애인이용자가 취한다 할지라도, 시장비용에 맞춰 활동보조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은 힘든 일이다.

▲ 2011년 8월 21일 mbc 뉴스 화면
▲ 2011년 8월 21일 mbc 뉴스 화면

이는 활동보조인 입장에서도 그리 반길 일은 아니다. 활동보조인이 ‘개인사업자’가 될 경우, 활동보조인이 노동자로서 받아야 할 보호는 못 받게 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지점은 역시 중개기관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듯 장애인의 자립생활에 있어서 자립생활센터의 역할은 더 커져야만 하고 그 역량을 키워야 한다. 이는 당연히 정부의 지원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직접지급제’나 ‘개인예산제’는 중개기관에 대한 지원을 현행보다 오히려 줄이는 제도이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입장에서는 25%의 중개수수료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 존립기반을 뒤흔드는 일이다. 활동지원사업을 통한 수익은 센터 운영비용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더불어 많은 장애인당사자로부터 제기되는 활동보조인의 전문성 재고를 위해서는 활동보조인의 교육 부분이 더욱 강화되어야 하겠는데,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활동보조인교육마저 사라지게 되어 현장에서 인권 침해적 사건들이 더욱 늘어날 가능성 또한 높다.

6. 코디네이터의 직접고용과 인력충원

활동보조인만 장애인을 폭행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활동보조인력의 10% 정도만이 남성 활동보조인이기에4), 많은 남성장애인이 여성활동보조인을 이용하고 있다. 장애인 이용자가 활동보조인을 성추행하는 사건도 크고 작게 일어난다. 그렇다면 장애인 이용자에게 활동보조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범죄경력 조회서’를 요구해야만 할까? 앞서 말했듯 나는 그것이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코디네이터 인력을 확충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만 하고 코디네이터는 자주 활동지원의 현장에 방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예산제’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논자들도 제도 안착을 위해서는 공적 기관들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복지 공무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으로는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당위보다 그것을 이루어낼 조건이다. 사회복지 공무원들의 열악함 만큼이나, 중개기관 코디네이터들의 열악함도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중개기관이 지출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코디네이터 인력을 감축시키는 것이다. 코디네이터가 현장을 자주 찾아갈 수도 장악할 수도 없는 이유에는, 현행 바우처 제도의 시장성도 한몫한다. 활동보조인이 장애인의 생존권이라면 그것의 공공재로서의 성격을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일부 장애인들이 주장하는 ‘직접지급제’와 ‘개인예산제’가 정부가 복지예산을 축소하는 빌미가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1) 에이블뉴스, 장애인 가정 덮친 65세의 악마, <http://ablenews.co.kr/news/newscontent.aspx?categorycode=0014&newscode=001420130624152702165943>, 2013.06.27.

2) 이어 종합토론에서 성심여대 이승기 교수는 "장애인계의 경우 그동안 배제됐던 장애인의 선택권과 통제권을 강화하고 행사하는 것에 의미를 두는 반면, 정부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정책이 예산절감이나 국가책임을 완화할 수 있다는 것에 의미를 더 두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_ 비마이너, 장애인의 선택과 통제, 개인예산제로 가능할까?, <http://beminor.com/news/view.html?section=1&category=3&no=5615>, 2013.07.12.

3) 잔심부름업체 애니맨의 서비스 이용요금 http://www.anyman.co.kr/?pg_code=230 참고.

4) 에이블뉴스, 답답한 활동보조인 남녀 성비 ‘불균형’, <http://ablenews.co.kr/news/newscontent.aspx?categorycode=0022&newscode=002220130718175723013106>, 2013.07.19.

2013/08/07 21:21 2013/08/07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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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인문학 &lsquo;모두를 위한 장애학&rsquo; 마지막 쫑파티 발표문

관계와 노동

 

1. 활동보조인의 업무, 장애인 이용자와의 관계,

활동보조인을 하면서 많이 드는 질문은 활동보조인이 활동보조 할 수 있는 영역은 어디까지인가 하는 질문이었다. 그것은 나에게 제공할 것으로 요구되는 급부를 한계 짓는 문제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장애인 인권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로부터 제기되는 질문이기도 했다. 그들은 장애인의 자립생활에 있어서 ‘관계자본’을 어떻게 구축할지에 대한 방안을 모색하였고, ①관계를 만들어내기 위한 수단으로서 혹은 ②‘관계자본’자체로서 활동보조인을 간주했다. 풀어보자면 ①전자의 경우 장애인이 관계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사회와 만나기 위한 외출이 필요하고, 그 외출을 위해서는 활동보조인의 노동이 필요하며, 만난 사람에게 활동보조의 부담을 주어 기피되는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활동보조인이 필요하다는 요청에서 나온 결론이었고, ②후자의 경우 장애인이 살아가는 중에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족처럼 달려 와 줄 활동보조인이 필요하다는 요청에서 나온 결론이었다. 그래서 실재로 활동보조인을 구할 때 장애인 이용자의 인근지역에 사는 사람이 선호되기도 한다.1)

관계의 문제와 활동보조인 노동의 한계 문제는 얼핏 다른 문제처럼 보일 여지도 있지만, 장애인 이용자와 돈독한 관계를 맺은 활동보조인에게는 돈독한 관계에 따르는 노동을 기대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기대는 ③‘알아서 해주는 활동보조인’으로 까지 나아가기도 한다.2) 우리는 <자기결정하는 자립>을 읽은 시간에, 자기결정만이 강조될 경우, 자기결정이 불가능한 장애인들―예를 들자면 정신장애인―이 자립에서 소외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자기결정하는 자립>에서 강조된 것은 자기결정능력이 없다고 하더라도 인간이라는 점이었다. 책에서는 자기결정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보조를 잘 확보해 그 사람이 불이익을 받지 않을 방법을 준비하라고 말한다. 자기결정능력의 절대성을 회의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결정하지 않는 즐거움을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활동보조인의 노동으로 요구되었을 때 어떤 방식으로 행해야 할지 고민되는 것은 사실이다.

 

2. 알아서 해주는 활동보조인

‘활동보조인연대’ 활동을 통해서 여러 활동보조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활동보조인들 대부분은 ‘운동’보다 ‘생계’에 가까웠다. 그들이 생각하는 활동보조인과 장애인 이용자의 관계는 장애인 인권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의 그것과는 달랐다. ○○센터 소속 활동보조인 N씨는, ‘알아서 해주는 활동보조인’이기를 거부한 사례다. 그는 자립생활센터 직원의 사무보조를 겸하는 활동보조인이었다. 그와 장애인 이용자 간에 센터 홈페이지에 기사를 스크랩해 업로드 하는 업무를 두고 갈등이 생겼다. N씨의 장애인이용자는 N씨가 기사 스크랩을 알아서 업로드 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N씨의 입장은 달랐다. 자신은 기사를 올리는 것에 대한 신체적 일을 해 줄 뿐, 기사를 선별하는 것은 장애인 이용자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장애인 이용자가 쉬는 경우도 있는데 자신이 알아서 기사를 업로드 한다면 그것은 활동보조가 아니라 장애인 이용자의 일을 대신하는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그의 이용자는 정신장애는 없었고 휠체어를 이용하는 중증 장애인이었다.

 

3. 관계자본으로서의 활동보조인

장애인 이용자가 활동보조인을 긴급하게 부른다 할지라도 갈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었지만 장애인 이용자의 긴급한 호출에 응할 의지가 없는 경우도 많았다. 약속된 시간 외에 장애인 이용자가 전화 하면 전화를 받지 않는 활동보조인도 있었다. 전화를 할 내용이 뻔하며, 이용자의 요청을 들어 줄 수 없다면, 그것을 고사하느라 실랑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장애인 이용자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표하는 경우도 있었다. 고용불안정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아무리 잘해줘도 어차피 이용자 마음에 안 들면 활동보조 제공을 거부당하는 것은 쉬웠다. 별다른 애착 관계를 맺는 것보다는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편했다. 장애인의 삶에 어떤 조언을 해주는 것은 장애인 이용자의 자기결정권침해를 이유로 해고당할 수도 있었다. 장애인 이용자의 삶에 개입하기에는 그들의 삶이 위태로웠다.

 

4. 관계를 맺는 수단으로서의 활동보조인

장애인이 활동보조인을 이용하더라도 사회와 관계 맺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폐쇄된 곳에서의 삶을 경험한 장애인들이 관계 맺는 것이 익숙지 않아서 이기도 하지만, 활동보조인이라는 존재가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것에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활동보조를 제공했던 장애인 이용자는 수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중증장애인이었다. 그도 전동휠체어를 이용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기에 하루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외출을 시도했었다. 하지만 그는 전동휠체어 운전이 힘들었고, 지나가는 사람이나 간판 등에 부딪히는 일이 잦았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내가 느꼈던 것은 장애인과 함께 있는 비장애인은 보호자나 장애인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보여진다는 것이었다. 이용자의 실수에 내가 사과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요청되는 윤리에 따른 것이기도 했지만, 장애인 이용자의 소중한 경험으로서의 실패3)를 막는 것이기도 했다. 그는 낯선 사람에게 행한 자신의 실수를 사과할 기회를 박탈당했다.

이용자의 언어장애를 통역해 줄 때도, 내가 그의 관계형성을 막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이용자의 언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비장애인들에게 이용자의 언어를 전달해 줄 수는 있었으나, 그들 사이에서 관계가 만들어지게 할 수는 없었다. 활동보조인이 있으면 된다는 어떤 심리는 관계를 맺는 것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듯도 했다.

 

5. 관계가 되어 줄 수도, 관계를 맺어 줄 수도 없다

활동보조인 제도는 동정과 시혜의 방식이 아닌 장애인의 권리로서 요구되었고, 그것을 현실화 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지급하는 바우처를 매개로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 관계의 본질은 계약관계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활동보조인의 특수성이라는 명목으로 특별한 관계일 것이 요구되거나 특별한 노동이 요구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접근방식이 아닌가 한다. 활동보조인의 고용 불안정은 장애인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의 관계를 임시적으로 만들며, 그들 사이에 공동체적 윤리가 발생할 가능성을 차단한다. 지속적 관계 이후에 윤리에 대한 고민이 가능하다. 지속적이지도 않은 관계에서, 본질적으로 이익으로 엮어진 관계에서, 그것을 넘어선 윤리를 요구하는 것은 과한 요구로 보인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누군가가 대신 해줄 수도 없는 영역이기도 하다. <나는 야한 장애인이고 싶다>를 다시 읽어본다. 저자의 야함과 핫함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가 타인과 관계 맺는 이야기 속에 활동보조인의 자리는 없다. 어쩌면 누군가의 부재가 조건인 듯도 보인다. 상처받은 맨살을 보여주는 것, 상처받을 맨살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관계 맺기의 시작은 아닐까. 그 맨살을 오히려 활동보조인이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1) 최근에 발족한 전국활동보조인노동조합 위원장 배정학씨는 인터뷰 중에 “장애인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지역 주민”으로 활동보조인의 가치를 설명하는데 이는 활동보조인을 장애인의 관계자본으로 여기는 여러 시선들과 맥을 같이한다. _ 비마이너, “활동보조인의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해달라.”, 2013.03.07. <http://beminor.com/news/view.html?section=1&category=3&no=4990>

2) 결정하지 않는 즐거움의 맥락에서 활동보조인의 역할을 규정한 의견 : “그렇다고 해서 활동보조는 장애인의 손발이라는 주장이 장애인이 모든 일을 일일이 지시해야 한다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가 대신 알아서 해 주는 것이 좋은 때도 있다. 일일이 모든 일을 시켜야 하는 것은 또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_ 비마이너, “일본의 장애인 활동보조 제도화 현장”, 2013.01.07. <http://beminor.com/news/view.html?section=86&category=105&no=4748>

3) 자립생활운동에서는 장애인도 실패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비장애인들도 실패를 통해 성장하고 학습하지만 장애인들에게는 애초부터 그럴 기회가 박탈 당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2013/03/21 21:19 2013/03/21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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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자, 특수 노동자, 일반 노동자

저는 얼마 전 서울지방노동청에 제가 활동보조인으로 근무했던 자립생활센터를 대상으로 임금체불 진정을 넣었습니다. 내용은 연차수당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근로기준법에서는 1년에 80%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 15일의 유급휴가를 보장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휴가는커녕 연차수당은 받지도 못했습니다. 오히려 명절이었던 추석 때, 여러 명의 이용자를 활동보조 하던 중, 이용자의 질투(?)로 대상자로부터 활동보조제공을 거부당한 상황이었습니다.

노동청으로부터 출석요구를 받고, 센터 출석인과 함께 근로감독관 앞에 앉았습니다. 센터 입장에서도 할 말이 많았습니다. 보건복지부에서 책정한 수가로는 활동보조인에게 연차수당 까지 지불하게 되면 센터를 운영하기가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활동보조인과의 근로계약서에서야 사업주로 계약을 맺지만, 정말 자신들이 ‘사장’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말을 합니다. 또 활동보조인은 특수한 직종이기 때문에 휴가를 보장할 수 없다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근로감독관은 고용자와 근로자의 관계 문제를 검토하였습니다. 활동보조인은 노동자이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을 준수하여야 한다는 점과 그 고용자가 센터라는 점을 분명하게 했습니다. 센터 입장에서야 보건복지부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운영하겠지만, 보건복지부는 활동지원 ‘사업’을 운영할 주체를 모집한 것입니다. 통상 경영자라면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그 사업의 수익성을 파악합니다. 센터를 운영한다는 것은 그 사업에 수반되는 금전상의 문제들을 모두 책임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과정이야 어찌되었건 보건복지부가 제시한 사업조건을 수긍하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근로감독관은 여기에 말을 더 붙입니다.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이 대체로 근로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없다고 말을 합니다. 요양보호사나 간병인의 경우도 활동보조인과 비슷한 직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보건복지부는 그러한 직종들에 관해서도 예산을 짤 때, 퇴직금이나 여러 수당 등의 근로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비용들은 책정하지 않고, 단순히 시간당 얼마씩 책정하여 예산을 짠다는 것입니다. 근로감독관은 센터 출석인에게 이러한 사안을 보건복지부에 문의하고 항의하길 권했습니다.

활동보조를 한다는 것 또한 사회적 편견과 싸우는 일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 편견들 중에는 활동보조인을 봉사자로 보는 사회적 시선 못지않게, 노동자이긴 하지만 권리는 보장받지 못하는 ‘특수한 노동자’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습니다. 봉사자로 바라보는 시선은 그저 바라보고 말 뿐이지만, 특수고용직종사자로 바라보는 그 시선은 우리의 권리를 축소하는 시선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더 격렬하게 싸워야 할 대상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

활동보조인연대 소식지 원고.

2013/02/12 21:25 2013/02/12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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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2.06. 에 있었던 일에 관한 활보일기

장애인 이용자와 길음시장의 이모네 포차에 또 들렀다. 이곳은 얼마전에 형호씨와 형호씨의 활동보조인인 존도우와 함께 휠체어가 들어갈 만한 술집을 찾다가 들르게 된 곳이다. 소주, 막걸리, 맥주와 치킨, 포장마차에서 팔법한 많은 메뉴가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되는 곳이다.

장애인이 술집을 들른다는 것은 꽤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다. 그것은 장애인을 활동보조 해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점뿐만이 아니라,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술집을 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비장애인들이 쉬이 드나들 수 있는 비교적 값이 싼 술집들의 경우, 장애인에 대한 배려나 시설을 해놓을 정도로 사정이 넉넉한 곳이 드물어서, 장애인들이 갈 수 있는 술집들은 대게 아주 시설이 잘 되어 있는 탓으로 비싼 술집이거나, 목 좋은 1층에 있어 음식값이 비싼 곳일 수밖에 없다. 그마저도 쉽게 찾기 어려운 까닭으로 나와 이용자는 본의 아니게 특정 술집의 단골이 된다.

그런 와중에 재래시장이라는 장애인 비친화적인 환경 속에서, 비교적 휠체어가 들어가기가 쉬운 술집을 찾았으니, 우리는 그곳을 자주 찾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모네 포차에 또 들르게 된 것이었다.

이용자와 제육볶음, 석굴, 소주와 맥주 등을 잘 먹으며 한 시간 가령을 보낼 즈음이었다. 자신을 사장이라 소개하는 아주머니가 아프신 분이 술을 이렇게 드시면 되냐는 이야기를 꺼낸다. 술이 몸에 좋지 않으니 안 드셨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 아픈분을 이곳에 데려오지 말아줬으면 좋겠노라고 나에게 부탁을 한다.

그저 장애인에 대한 몰이해의 하나로 하는 말씀인 줄을 알고, 술집에 온 것은 내가 ‘데려온’ 것이 아니라, 장애인 이용자분의 의사이며, 이분은 아픈 것이 아니라고 설명해 드렸다. 특별히 술이 떡이 된다고 하여 몸을 못 가누는 분이 아니기에, 이분은 술 안 드셔도 몸을 못가누고, 술 드셔도 몸을 못 가누며, 별 피해를 준 것도 없는데 못 마실 이유가 있는지 물었다. 그럼에도 이 아주머니 막무가내였다. 술은 몸에 좋지 않으며, 아프신 분에게 술을 팔기 싫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주머니는 몸에 좋지 않은 술을 왜 팔며, 마시고 마시지 않고를 왜 아주머니가 판단하느냐고 대거리를 했다. 아주머니는 그 판단을 자신이 하고 있으며 몸 아프신 분께는 술을 팔지 않겠다고 하였다. 병신은 술도 먹지 말라는 말을 하는 거냐고 따지자, 그렇게 따지듯 말하지 말라 한다. 오늘 계산은 하지 말고 내일부터 오지 말라 하였다. 사장 아주머니는, 계산서를 찢어 종업원에게 건네며 이 테이블은 계산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렇게 소란이 이는 도중 이용자는 마음이 상해 나가자고 하였다. 이 정도 불의면 영업방해 정도는 해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짐을 챙기며 사장에게 눈을 부라리고 소리를 친다. 사장은 영업장 내의 다른 고객들이 신경 쓰이는지 나에게 소리치지 말라고 말한다. 이런 강짜를 길게는 못하고 대략 몇 초간 놓은 뒤에 이용자의 휠체어를 몰고 나오며, 아주 보란 듯이 큰소리로 캬악~ 퉤! 마른침을 뱉어주고 나온다. 이왕이면 감기라도 들어 진득한 가래침이었으면 좋으련만, 나의 침은 너무도 청량했다.

존도우와 형호를 이곳에서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던 터였다. 전화하는데 때마침 나타난다. 상황 이야기를 듣고 존도우는 어느 활동가에게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묻고, 나는 그 사이 내 분이 풀리지 못한 찌질함 탓으로 다시 가게로 들어가 사장에게 장애인 차별 금지법 운운하며 신고하겠노라 엄포를 놓았다. 사장은 당당하게 그러라 한다. 사장의 관심사는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빨리 나갔으면 하는 모양이다. 빨리 나갈 것을 재촉한다.

그곳을 나온 우리는 또다시 휠체어가 갈 수 있는 술집을 찾았다. 시장을 배회하다 근처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그 난리 속에서 술값은 굳었으니 좋지 않느냐는 농을 건네 보았다. 이용자는 술값 굳었으니 이 술판 값은 자기가 치르겠노라 한다. 그 술판의 술안주는 이모네 포차였고, 이용자와 술집을 다녔던 그 어느 날보다 많은 음식을 먹을 수 있었던 통쾌한 날이었다.

2011/12/08 21:17 2011/12/08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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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좀 편하게 일하고 싶습니다.

이제 3살 된 아들을 두고 있는 선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밖을 돌아다니다 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된다고 말입니다. 편의점 가장 아래쪽 매대는 사람들이 잘 보지 않고 지나치게 되는 곳입니다. 하지만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그곳에 시선이 미치는 사람이 누구이며, 그 사람은 어떤 욕망을 가지고 어떤 물건을 사는지 참으로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3살 아이의 시선이 머무는 그곳에는, 편의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조그마한 장난감 자동차가 놓여 있었고, 아이는 그것에 반응하고 있었습니다.

활동보조인을 하면서 제가 새로이 느끼는 것들이 많아졌습니다. 이용자와 함께 밖을 돌아다니다 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비장애인으로서는 느끼지 못할 불편이, 이용자의 발이 되어 그의 휠체어를 끌고 있는 저의 신체에,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비장애인들이 쉽게 말하는 평지라는 것들이 우둘투둘한 보도블록으로 그의 바퀴에 전해질 때 저의 팔도 요동치고 있었고, 그 평지가 배수를 위해 약간만 기울어져 있어도 그의 한쪽 바퀴로 쏠리는 무게가 저의 팔에 여과 없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지나다니는 인도 사이를 빡빡하게 채워 주차된 차들을 마주할 때면, 휠체어가 빠져나갈 수 없어 돌아가야만 하는 불편이 저의 신체에 직접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런가 하면, 평소 무관심하게 지나치곤 했던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떤지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 느껴집니다. 어떤 이는 기도하면 낫는다고 열심히 기도하라는 충고를 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자신이 한의사라며 잘 주무르면 낫는다고 무작정 이용자의 몸을 주무를 때가 있었습니다. 어떤 보호의무도 함께 갖고 있는 활동보조인은 그런 일상적인 외부의 폭력을 매일 마주하게 됩니다. 어떤 할머니는 멀찍이 서 있다가 노골적으로 다가오며 이용자를 훑어보더군요. 무슨 일이냐는 물음에 너무 안 돼 보여 쳐다보고 있었답니다. 이런 반응들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저는 공격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쯤 되니 저를 보며 좋은 일 하고 있다는 주변의 시선도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이 좋은 평가는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폭력적 시선의 반쪽이기도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하는 일이 좋은 일이라는 판단은 휠체어를 밀어주는 사람들이 하는 일은 시혜적 요소를 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비장애인들의 관점이 녹아있습니다. 종종 아이교육을 걱정하는 주부들이 이런 자원봉사는 어디가면 할 수 있냐는 질문을 하기도 합니다.

저의 이용자는 센터에서 주관하는 자립생활 교육을 받곤 합니다. 제가 활동보조인이기에 함께 그 교육을 듣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많은 장애인 분들은 활동보조인 바우처 시간이 더욱 많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밝히곤 합니다. 그리고 뜻밖에도 활동보조인의 노동권보호와 관련된 희망들을 밝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활동보조인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어야 활동보조인의 공급이 원활할 것이며, 그것이 이용자분들의 복지와도 직접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길들이 조금 더 평평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장애인 분들이 보다 편했으면 좋겠다는 선의의 감정에 발로가 아니라, 활동보조인으로서 느끼는 어떤 직접적인 불편함이 조금 더 감소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입니다. 저는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에게 어떤 이상한 시선을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활동보조인으로서 느껴지는 시선의 불편함이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좀 더 편하게 일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나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가 조금 더 편하다는 것은 그만큼 장애인들이 편안한 세상이기도 한 것이니까요. 거창한 선의와 배품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보다는 폭력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가끔 이런 일 왜 하냐고 물어 오시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그냥 돈 벌려고 이 일을 할 뿐입니다.

—————————————————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노들바람〉에 원고청탁받아 쓴 글. 2011년 9월 글.

2011/09/26 21:16 2011/09/26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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