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장애인활동지원사 성폭력 피해와 대책
http://www.newspoole.kr/news/articleView.html?idxno=10338
활동지원사 성폭력 피해가 드러나기 어려운 이유
활동지원서비스를 받는 장애인이용자는 남성이 60.51% 여성이 39.49%로[1] 남성이 더 많다.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활동지원사의 경우 여성이 87.85%로 대다수를 차지한다.[2] 그래서 남성 장애인이 여성 비장애인에게 서비스받는 일이 많다.
우리 사회는 아직 장애인을 성적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나아가 장애인은 무성애자일 것이 강요된다. 장애인 당사자들도 이런 사정이 괴롭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성적 주체로 인정되지 않다 보니, 소극적 차원에서의 (성적) 사생활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우스갯소리로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라는 말이 있지만, 장애인에게는 그런 종류의 조롱마저 허락되지 않는다.
한편, 성적 주체성에 대한 불인정은 성적 주체로서 행할 폭력의 가능성에 대한 불인정이기도 하다. 장애인활동지원사 성폭력 피해에 대책을 요구하는 자리에서 복지부 담당 공무원이 "아니 장애인이 어떻게 성폭력을 해요?"라고 물었다는 사실은 우리끼리는 반복해서 곱씹는 술자리 안줏거리다. 이런식의 인식이 만연하다 보니, 성폭력 피해 활동지원사들은 자신의 피해사실을 말하기가 두렵다.
장애인을 무성애자로 간주하는 사회일반의 잘못된 인식이 꼭 작동하지 않더라도, 장애는 중요한 요소로 고려될 수밖에 없다. 활동지원사 당사자가 장애인이 성폭력을 저지른 것 아니냐는 질문, 고충토로, 상담요청을 하면 당장 나부터도 장애특성으로 인한 것인지 아닌지를 먼저 따지게 된다. 피해자 중심주의나, 당사자의 불쾌감보다 장애인의 장애 특성으로 인한 불가피성이 우선 검토된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주관적 불쾌감이 있어도, 성폭력을 정당화하는 여러 요소 중에 '장애'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이다.
성폭력 문제를 다루는 데에는 전문성이 필요하고, 장애인 관련 사안을 다루는 데에도 전문성이 필요하다. 양자를 두루 함께 고민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조합원은 우리 노동조합에 오기 전, 다수의 여성단체에 자신의 피해에 대한 상담을 받았는데, 상담자가 장애에 대한 이해가 낮아 곤란했던 경험을 말하기도 했다. 한 단체에서는 부정수급이나 장애인 인권 의식 수준에 대한 지적을 받았다고 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이것도 2차 가해의 일종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피해자에게 순결성과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것도 2차 가해의 범주에 해당하니 말이다.
여성 활동지원사는 87.85%고 40대 이상 여성 활동지원사는 84.13%, 50대 이상 여성 활동지원사는 68.20%이다. 성비 불균형 문제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이 고령이기도 하다. 활동지원사 중에는 기혼자들도 많다. 성폭력 피해 고통을 호소하는 활동지원사 중에는 남편이 이성에게 서비스 들어가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다며, 그러한 사실이 알려져서는 안 된다며 사건을 묻어버리기도 했다. 지원하는 자, 신고받는 자, 주변의 사람, 누구 하나 쉽게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성폭력 피해를 당한 활동지원사들은 그냥 입을 다무는 것을 선택하는 경우들이 많다. 서비스를 계속 들어갈 수는 없고, 수입이 끊긴 채 방치되고 현장을 떠나는 경우가 일반적인 수순이다.
활동지원사 성폭력 피해 산재승인 소식
그런 와중에 성폭력 피해를 당한 활동지원사가 산재승인을 받았다는 기적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우리노조는 피해자를 사건발생 몇 달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당시 피해자는 경찰에 신고했고 조사까지 받았다고 했다.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냐는 질문에, 피해자는 이렇게 말했다.
"센터에 가장 먼저 전화했는데요. 기다리라고 하고는 1시간이 지나도록 별 소식이 없더라고요. 센터에서 꼼짝 말고 기다리라고 해서, 그 집 다른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너무 무서워 더는 견딜 수가 없어 경찰에 전화했어요. 열쇠로 문 열고 들어올 것만 같았어요."
어쩌면 전담인력이 조금만 빨리 왔더라도 경찰신고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당연히 판결도 없었을 것이고, 산재승인이라는 결과도 없었을지 모른다. 근로복지공단은 판결이 나오고 나서야 피해사실에 대한 인과관계를 인정하며 산재승인 결정을 내렸다. 피해자도 2차가해는 두렵다. 주변에서 말이 돌까봐 공무원에게조차 자신의 집을 선뜻 밝히지 못했다. 그러한 두려움을 감수하고 경찰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을만큼 피해자는 기관의 방치에 내몰렸다.
피해자더러 범죄장소에 머물라는 이상한 지시. 결국 사건발생 2시간이나 지나서야 등장한 전담관리인력은 왜 경찰에 신고했냐 다그치며 피해자에게 가해자와의 3자 면담을 요구했다. 결제를 못해서 수익이 줄게 생겼다는 걱정섞인 말을 건내는 것은 덤이다.
피해자는 사건 이후 정신과 치료를 장기간 받았지만, 사업주는 고용노동부에 산업재해 발생을 보고하지도 않았고, 피해자에게 산재 신청 절차도 알리지 않았다. 피해자는 일거리가 끊겨 수입이 없는 상태로 어렵게 병원을 다녔다.
노조를 알게 된 피해자가 긴 시간이 흘러서야 산재를 신청했다. 사업주는 노조와 면담을 하고서야 사건을 관할 지자체에 보고했다. 피해자는 노조의 지원을 받아 유급휴가를 부여하지 않은 점에 대해 노동청에 진정을 넣었다. 그러자 사업주는 계약종료를 통보했다.
가해자의 유죄판결과 피해자의 산재승인은 기뻐할 일이지만, 사건 과정에서 보인 활동지원기관의 태도는 '비영리 단체' 혹은 '사회적 기업'[3]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끔찍한 수준이었다. 낮은 성 인지 감수성은 물론이거니와 최대한 노동자에게 지출되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자본가의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노조가 정부에 요구하는 대책
우리노조는 장애인이용자의 성폭력 가해 사건에 대한 대책을 정부에 요구해왔다. 요구한 내용은 △사건 전담인력이 숙지해야 할 매뉴얼 마련 △피해자 유급병가ㆍ상담치료 예산 책정 △지자체에 신고ㆍ상담센터 설치 △사건접수 시 보고의무 강화 △가해(이용)자 교육을 정부가 담당 △가해자에게 동성 활동지원사 파견 등이다.
해당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전담인력의 대응이 전문적이지 않다. 전담인력이 전문성을 가질 수 있도록 매뉴얼을 만들고 보급할 필요가 있다.
또 피해자들이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한 채 현장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 분리 조치만 취해진 채, 수입이 없어 불안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서 유급병가와 상담치료 예산을 정부가 책정해야 한다.
활동지원사들은 가해자가 기관을 옮겨 다니면서 서비스 받고 또 다른 가해를 저지르는 경우들이 있다고 말한다. 정부에 보고의무를 강화해 정부가 사례를 수집하고 접수된 가해이용자에 대해서 정부가 직접 교육을 시행해야 한다.
충격적인 것은 활동지원기관이 가해자로 지목된 장애인이용자에게 또다시 이성 활동지원사를 파견한다는 점이다. 해당사건에서 가해자는 실형을 선고받기 직전까지 이성으로부터 서비스를 받았다. 노조가 개입한 다른 사건에서 한 활동지원기관의 장은 또다시 이성을 매칭시킨 것을 항의하는 노조에게 '이성에게 서비스를 받는것도 장애인의 선택권' 이라고 항변했다. 장애인의 선택권은 무한한가. 가해자에게는 동성활동지원사를 파견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피해자가 호소해도 변함없는 정부
사건 피해자는 작년 "나와 같은 피해자가 없기를 바란다"며 복지부를 직접 방문해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하지만 2023년 새로운 지침이 발간되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어떻게 정부가 이렇게 무책임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 원인을 민간위탁과 바우처 제도를 꼽는다. 민간에 사업을 위탁하고 모든 책임을 전가한 채, 정부는 방치할 뿐이다.
우리는 다시 공공성 확보를 요구할 수 밖에 없다. 노동자가 성폭력을 당해도 방치되는 일터는 공공성이 결여된 사회서비스 전달체계의 필연적 결과다. 정부가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면 이런 상태로 남아있을수가 없다. 성폭력은 권력과 위계의 문제다.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에서 직장내 성폭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노동자가 천시받는 상태로 내버려두는 정부가, 성폭력이 만연한 사회서비스를 만든다. 정부가 책임지고 직접 서비스 제공하라.
최근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