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newspoole.kr/news/articleView.html?idxno=10154
[칼럼] 활동지원사 수급 문제, 왜 활동지원사에게는 묻지 않을까?
장애인활동지원제도의 문제점으로 반복적으로 지적되는 것 중의 하나가, 활동지원인력의 수급 불안정이다. 장애인 부모와 장애인이용자들은 활동지원사를 구할 수 없어 괴롭다고 말한다. 이 정도 주장에 그치면 고충을 느끼는 당사자로서 느끼는 바를 말하고 정부에 해결을 촉구하는 활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다른 제도적 주장을 하기도 한다. 장애인 가족에게도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는 내용이거나, 용처를 제한한 바우처 대신에 현금으로 달라는 개인예산제와 관련된 주장이 이어진다.
가족 활동지원 허용을 주장하는 사람이나, 개인예산제를 도입하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나, 결론적으로 이를 주장하는 사람에게 ‘현금’을 달라는 주장으로 내용을 정리할 수 있다. 매칭이 되지 않는 장애인을 둔 가족은, 내가 장애인을 돌보니 활동지원사와 동일하게 임금을 받도록 해달라거나 자신만이 장애인 자녀를 돌볼 수 있으니 나에게 임금을 달라고 주장한다. 매칭이 안 되는 장애인 당사자는 바우처를 현금화하여 자신에게 주면 필요한 곳에 더 지혜롭게 쓸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이러한 주제에 있어서는 그 주장이 오래된 만큼이나 비판도 오래되었다. 그래서 여기서 중언부언 말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다만 그러한 논의와 별개로 해당 장애인이 활동지원사를 구하지 못하는 문제를 왜 장애인에게서 답을 구하는지는 항상 의문스럽다. 최근 MZ[1]가 퇴사를 해서 기업들이 속이 탄다는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이런 문제의 해법을 사장님께 여쭈면 나오는 답은 뻔하다. 그러니까 나에게 ‘가족 활동지원 허용’과 ‘개인예산제’같은 해법은 사장님들이 말하는 ‘요즘 젊은것들의 근성을 키우기 위한 획기적인 방안’과 꼭 같은 느낌이다. MZ가 퇴사하는 이유는 MZ에게 물어봐야 한다. 활동지원사를 못 구하는 이유는? 활동지원사들이 왜 안 가는지를 물어야 한다.
현장에서 활동지원사를 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매칭이 되지 않는다고 소문난 장애인 이용자들을 몇 알고 있다. 실제로 긴급하게 투입이 되어 본 적도 있고, 아는 사람이 문제의 장애인이용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고통스러움을 토로한 적도 있다. 좀 죄송한 말씀이지만, 사람들이 안 가는 데에는 안 갈만한 이유가 있다. 장애인 개인의 행동이 문제인 경우도 있고, 그의 물적 인적 환경이 문제인 경우도 있고, 안타깝게도 제도의 한계 때문인 경우도 있다. 어쨌거나 해법은 활동지원사 입장에서 기피되는 원인에 대한 제거가 있어야 매칭이 원활히 이루어진다.
일부 관계자들은 활동지원사들이 중증장애인을 기피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또는 주변의 활동지원사를 보아도, 바우처 시간이 넉넉한 장애인이용자를 활동지원사들이 선호한다. 시간을 많이 받는다는 것은 국가가 시행하는 종합조사 검사표에서 높은 점수를 획득했다는 뜻이고 달리 말하면 시간이 많은 장애인이용자는 국가가 공인한 중증장애인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누구는 중증장애인을 기피한다고 말하고, 누구는 중증장애인일수록 좋다고 말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나는 이러한 괴리가 장애를 보는 관점의 충돌로 읽힌다. 장애인인권운동은 오랜 시간 장애의 의료적 모델에 저항해왔다. 그리고 여전히 국가가 설계한 종합조사 검사표 질문에는 능력과 기능을 집중적으로 묻는 질문들이 즐비하다. 활동지원사들이 중증장애인을 기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장애관은 의료적 모델인 경우도 있고 사회적 모델인 경우도 있다. 그리고 노동자 입장에서는 장애에 대한 급부적 모델이라고 할만한 시각이 존재한다. 이 시각에서는 국가가 정한 15개의 장애유형 따위는 상관없고, 장애가 사회적으로 어떤 차별을 받는지도 무관심하며, 그저 노동자 자신이 어떤 급부를 얼마나 많이 제공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노동자 입장에서 최고의 직장은 일은 쉬우면서 임금을 많이 주고 사회적 인정도 받는 직장이다. 활동지원사들은 중증장애인을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너무 안되거나 돈에 비해서 힘든 장애인이용자를 기피한다. 기피되는 중증장애인이란 국가가 충분히 인정한 중증장애인은 아니며, 한편으로는 노동자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서비스하기 힘든 어떤 업무가 있는 장애인이용자이다. 그리고 그 극단적 대척점에는 국가는 너무나도 인정해서 많은 시간은 부여되었지만, 노동자 입장에서는 별일을 시키지 않는 소위 좋은 이용자들이 있다.
나는 각 관점들의 의견에 대한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반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장애인이용자 개개인의 욕구를 반영하고, 사회적 의미에서 그러한 욕구가 권리로 인정되어야 할지 판단 후 보장하며, 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노동이 필요한지에 대한 고려가 되어야 한다. 의료적 모델은 장애인들을 줄 세워 선별하여 예산을 아끼기 쉽기에 정부에 의해 선호될 뿐이고, 사회적 모델은 장애인의 욕구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다 판단되어 장애인권운동에서 선호될 뿐이다. 하지만 장애인의 욕구가 충분히 반영되고 과도한 예산이 투입된다고 할지라도 누군가는 선호되고 누군가는 기피되는 현상을 피할 수는 없다. 결국은 노동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만 한다. 노동강도를 평등화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 여러 시도들이 고민되어야만 한다.
- ↑ MZ 세대(MZ Generation).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아우르는 용어이다.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사람에 해당한다.
최근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