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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역시 서정성이 그중 으뜸이라고 인정받는~/박경원

시는 역시 서정성이 그중 으뜸이라고 인정받는

이른바 서정시들에 대하여

 

 

힘깨나 쓸 만한 남정네들이

힘깨나 써도 시원찮을

한창때의 십수년, 이십수년을

나물이나 무쳐 먹고

염소 우는 소리로 신세타령하는 것

듣기 싫구나, 에이 귀라도 먹었다면 앵벌이 같은 그 소리

아니 들을 것을, 귀는 왜 뚫려가지고

애깨나 낳을 만한 젊은 처자들이

애깨나 낳을 만한 일 만들어도 시원찮을

한창때의 십수년 이십수년을

가녀린 피리 소리로 호궁소리로

온갖 악기 울리면서 몸 배배 꼬는 것

보기 싫구나, 눈 감아라 눈 감았다

그래도 보이는구나, 에이 눈은 왜 뚫려가지고

 

이제 시대는 세련된 것을 좋아하느니

세련을 위해서라면 자식이

부모라도 팔아먹어 마땅할 일이로되

슬픈 정서를 보존하려거든

거짓 애원성이라도 애원성이 좋구나

에라 만수, 어허라 대신이야

복에 겨워 슬픔이 애호되는 시절이로다

 

박경원, 아직은 나도 모른다/창비/2005

 

 

.............

 

긴 제목의 이 시를 읽고서 참 많이 웃었다.

시라고 하면 우울하고, 슬프며 비장해야지 맛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서정시를 이렇게 비꼬놓으니 시가

참 재미가 있다. 박경원씨가 등단한지 30년만에 내놓은

첫 시집이라는데 참 할말이 많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가끔 시를 쉽고도 밝게, 재미있게 쓰는 사람을 만나면

삶의 연륜이 느껴진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옮겨놓은 것도 재미가 있지만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느낀 것만큼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는

못할 것이다.

서정시에 대해 브레히트도 가슴따뜻한 시, 서정시 못지않은

시를 남겼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라는 시가 바로 그것인데

마당의 구부러진 나무와 어부들의 찢어진 어망,

허리를 구부리며 걸어가는 소작인의 처를

바라보는 브레히트의 시심과 그를 시쓰게 만드는

원동력이 아름답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나도 안다. 행복한 자만이
사랑받고 있음을 그의 음성은
듣기 좋고, 그의 얼굴은 잘생겼다.

 

마당의 구부러진 나무가
토질 나쁜 땅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으레 나무를
못생겼다 욕한다.

 

해협의 산뜻한 보트와 즐거운 돛단배들이
내게는 보이지 않는다. 내게는 무엇보다도
어부들의 찢어진 어망이 눈에 띌 뿐이다.
왜 나는 자꾸
40대의 소작인 처가 허리를 꾸부리고 걸어가는 것만 이야기하는가?
처녀들의 젖가슴은
예나 이제나 따스한데.

 

나의 시에 운을 맞춘다면 그것은
내게 거의 오만처럼 생각된다.
꽃피는 사고나무에 대한 감동과
*엉터리 화가에 대한 경악이
나의 가슴 속에서 다투고 있다.
그러나 바로 두 번째 것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다.

 

 * 엉터리 화가 - 청소년 시절에 화가를 지망했던 히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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