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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과 식민 문제에 관한 테제

말레이시아로 오면서, 동남아시아 역사에 관한 책을 몇 권 가져왔더랬습니다.
동남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원래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곳 친구들을 만나는 데 다소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말이지요.

생각해보면 동남아시아 역사는 한 번도 배워본 적도 없이 없습니다.
학교에서 가르치지도 않았고, 하다못해 누가 관심을 가져보라고 한 적도 없었죠.
그런데... 의외로 재밌습니다.
동남아시아의 여러나라들은... 서구에 의한 식민 지배, 독립 투쟁, 공산주의 운동, 냉전, 내전... 여러가지 면에서 한국과 닮아있습니다.
여기에 민족, 종족 구획, 이슬람, 불교, 크리스트교 등의 종교 구획, 중국 문화권과 인도문화권의 구획이 다층적으로 겹쳐져 각 나라마다 아주 독특하고 복잡한 역사를 갖고 있더군요.

클라이브 크리스티 편저, 노영순 옮김의 [20세기 동남아시아의 역사]는 저자의 글도 볼 만할 뿐더러...
함께 실려 있는 1차 참고 문헌들이 무척 생생하고 흥미 진진해서,
혹시라도 이쪽의 근현대사에 관심이 있다면 꼭 권하고 싶습니다.

예를들면 베트남사와 관련해서는 이런 글들이 참고 자료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레닌, 1947, [민족과 식민 문제에 관한 테제]
호치민, 1962, [나를 레닌주의로 인도한 길]

레닌이나 호치민에 대해서 공부해 본 적이 거의 없어서, 정확한 맥락까지 파악할 능력은 안되니 몇 가지 눈에 띄는 문장만 옮겨 볼랍니다.

레닌, [민족과 식민 문제에 관한 테제] 중

부르주아의 속박을 벗어나기 위한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선봉인 공산당은 민족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원칙으로서의 민족이라는 개념에 기반해서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특정한 역사적인 국면, 그리고 특히 경제 상황에 대한 정확한 평가에 기반하여 민족 문제에 관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두번째로 억압받고 있는 계급, 고통받고 있는 자와 착취당하고 있는 이들의 이익과, 사실상 통치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전체로서의 민족 이익이라는 일반적인 개념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에 대한 명백한 인식에 기반해야 한다. 세번째로 이와 마찬가지로 억압받고, 종속되고, 지배받고 있는 민족과 억압하고, 착취하며 최고권을 휘두르고 있는 민족간에 존재하는 명백한 차이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만 극소수의 부유하고 발전된 자본주의국가가 세계 인구의 절대 다수를 식민화하고 경제적으로 노예화하는 상황-금융 자본과 제국주의 시대의 특징-을 모호하게 흐리고 있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속임수에 대항할 수 있다.

앞에서 밝힌 본질적인 전제로부터 민족과 식민 문제에 대한 코민테른의 모든 정책은 지주와 부르주아를 타도하기 위한 혁명적인 투쟁의 연대를 위해, 모든 국가 및 민족의 프롤레타리아와 노동 대중의 밀접한 연합에 초석을 두어야 한다. 이것만이 자본주의에 대한 승리를 보장하며, 이것 없이 국가 간의 억압과 불평등을 제거하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는 여러 국가의 노동 대중 간의 좀 더 밀접한 연합이 필요함을 단지 인정하거나 선언하는데 그쳐서는 안된다. 모든 민족과 식민지 해방운동이 소련과 더 이상 긴밀할 수 없을 정도의 연합을 형성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

첫째, 모든 공산당은 그들 나라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해방운동을 도와야 한다. 가장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할 의무는 기본적으로 후진 민족을 식민화하였거나 그들에게 재정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나라의 노동자에게 있다.
둘째, 후진 국가들의 성직자들 그리고 다른 영향력 있는 반동적이고 중세적인 요인들에 대한 투쟁을 감행할 필요가 있다.
셋째, 유럽과 미국의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을 칸(Khans), 지주, 이슬람율법학자(mullahs) 등의 지위를 강화시키려는 의도와 접목시키려 노력하고 있는 범이슬람운동이나 이와 유사한 움직임에 대항할 필요가 있다.
넷째, 후진국가에서 벌어지는 지주, 대지주 제도, 그리고 봉건주의적 잔재에 저항하는 농민운동을 특별히 지원해 주어야할 필요가 있다. ...
다섯째, 후진 국가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해방운동의 추세를 공산주의 색채로 채색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도 결연하게 투쟁해야 한다. 코민테른은 식민지와 후진 국가에서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민족운동을 지원해야 한다. 다만 유일한 조건은 모든 후진 국가에서 앞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정당, 즉 명실상부한 공산주의자가 조직되고 그들의 특별한 임무, 즉 그들 자신의 국가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운동에 맞서는 임무가 있음을 알도록 교육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 그리고 세계의 모든 민족과 국가의 고통당하고 있는 대중이 연대와 연합에 자발적으로 힘쓰지 않는다면 자본주의에 대한 승리는 성공적으로 완수될 수 없다.

레닌주의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구요...
다만, 지금 보기에는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과감, 단순, 거대, 선명한 언술들이 주는 어질함에 잠시 이런저런 생각에 빠졌더랬습니다.
전세계를 상대로 한 전술의 수립, 긴급하고 직접적인 국제적 협력에의 호소, '후진 민족에 재정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나라의 노동자'의 의무에 대한 강조... 이런 부분들은 레닌과 소련의 모든 오류를 감안한다 치더라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호치민, [나를 레닌주의로 인도한 길] 중

한동지가 나에게 루마니테에 실려 있는 레닌의 [민족과 식민 문제에 관한 테제]를 읽어 보라고 주었다. 이 테제에는 이해하기 힘든 정치 용어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여러번 반복해서 읽은 결과 테제의 주요 부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로부터 감동, 열정, 명쾌함 그리고 자신감이 서서히 나에게 스며들었다. 나는 너무 기뻐 눈물이 났다. 내방에 혼자 앉아 있었찌만 대중 앞에서 연설이나 하는 것처럼 크게 소리 질렀다. '순교자여, 동포여,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해방으로 가는 길이다.' 그 후 나는 레닌과 제3인터네셔널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이전 당 지부 모임에서 나는 토론을 듣기만 했었다.... (레닌을 읽고 난 후부터는) 프랑스어가 유창하지 않았지만 레닌과 제3인터내셔널을 공격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누구 못지 않게 열렬히 이를 박살냈다. 내가 한 유일한 주장은 '만약 당신이 식민주의를 비난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식민지 인민의 편에 서지 않는다면 당신이 하고 있는 혁명은 도대체 어떤 것인가?'였다.
레닌주의는 기적을 가져다주는 '지혜의 책'이며 우리 베트남 혁명가들과 인민에게 나침반이다. 이는 또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마지막 승리로 가는 우리의 길을 밝혀주는 빛나는 태양이다.

호치민이 파리에서 상점 점원 일을 하면서 프랑스 사회당 토론 모임에 기웃거리던 시절 얘기입니다.
호치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대표적인 혁명가의 신출내기 시절... 귀엽지 않습니까?
프랑스어도 잘 모르고, 혁명이론도 잘 몰라서, 계속 듣기만 하다가... 선배가 툭 던져준 찌라시를 어렵게 어렵게 독해하고 나서는... 감동받아 기뻐 날뛰는 모습... 못하는 프랑스어로 딱 하나의 핵심적 주장만을 강하게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모습... 어디서 많이 본 듯하기도 하구요.
암튼. 누구든 저렇게 덤비는 사람를 상대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지금 저도 그렇구요.

식민주의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여기서는 한달에 불과 50만원 정도면 두 사람이 여유롭게 살 수 있구요...
한국에서 왠만한 기업에서 받는 연봉 정도의 수입만 있으면...
청담동 같은 동네에 고층 아파트에 살면서...
인도네시아 출신의 이주노동자들에게 집안 일과 운전을 떠넘기고...
외국인학교와 코엑스몰 같은 곳만 다니면서 살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후진 민족에게 재정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식민지 인민의 편'에 선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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