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에 마샬 버만이 쓴 <맑스주의의 향연>을 다시 뒤적거렸다. 이 책에서 패리 앤더슨에게 쓴 '거리의 신호등'이라는 글을 읽다가 보들레르의 시 '후광의 상실' 인용을 발견했는데, 몹시 인상적이었다. 이 산문은 데이비드 하비의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에서도 언급된다.
후광의 상실
“아이고! 저런! 당신이 여기 있다니? 당신. 정수만을 마시는 당신이 몹쓸 곳에 있다니! 신들의 양식만을 먹는 당신이! 정말 놀라운데.”
“여보게. 말과 마차를 내가 무서워한다는 걸 당신도 알지 않소. 방금 내가 보도를 급히 가로질러 죽음이 사방에서 전속력으로 달려드는 이 불안정한 혼돈 사이로 흙탕물을 뛰어넘는데. 급히 몸을 움직이는 바람에 그만 나의 후광이 머리에서 보도의 흙탕 속으로 떨어져 버렸소. 나는 그것을 주울 용기가 없었소. 뼈를 부러뜨리는 것보다 나의 표적을 잃는 편이 낫다고 판단을 내린 거요. 그러고는 속으로 불행이 어떤 때에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소. 이제 나는 아무도 모르게 산책도 할 수 있고. 저속한 짓도 할 수 있고. 평범한 사람들처럼 방탕에 빠질 수도 있소. 그래서 보다시피 나는 당신들과 똑같이 여기에 온 거요!”
“당신은 적어도 후광을 잃었다고 게시하거나. 경찰에 찾아달라고 부탁해야죠.”
“천만에! 아니 나는 여기서 편하오. 당신뿐이오. 나를 알아보는 건. 더구나 위엄을 부리는 게 내게는 지긋지긋하오. 그리고 어떤 엉터리 시인이 후광을 주워 뻔뻔스럽게 자기 머리 위에 쓸 것이라고 상상하며 기뻐하고 있소.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그리고 특히 나를 웃기는 행복한 인간을! 이를테면 X나 Z 같은 친구를 생각해 보시오. 그렇지 않겠소! 얼마나 우스꽝스럽겠소!”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파리의 우울> 윤영애 역. 민음사. 2008. 253~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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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위치에 있건 우리는 세계적 대도시 서울에서 부대끼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