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저녁 7시 충정로역 인근 벙커에서 있었던 서경식 선생 강의 후기를 남겨 본다. 두서없이 쭉 메모한 것이라 글로 정리하려니 뒤죽박죽이다. 참고용으로 작성해 둔다.
강연은 교양서 출판에 대해서 서경식 선생이 생각하는 바를 간략하게 소개하면서 시작했다. 교양은 인간을 단편화시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저항해 나갈 것인지 고민하며 과거 인간들의 고민과 고뇌에서 그런 것들을 어떻게 배우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교양이 쇠퇴하는 몇 가지 압력이 존재하는데, 첫째로 자본의 압력, 두번째로 효율/업적주의, 세번째로 시간의 압력, 마지막으로 SNS나 컴퓨터 등의 영향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요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현 세태가 교양의 쇠퇴로 나타나고 있다.
선생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을 최근 펴낸 책들을 통해 간략하게 소개했다. 우선 가져야 할 인식은 동아시아근대사를 볼 때 일본과 동아시아(조선)이 잘못 만났다는 것이다. 러일전쟁을 통해 아시아의 구원자처럼 행세했지만, 일본은 침략으로 인해 주변국들과 잘못된, 엇갈린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루쉰의 유명한 '환등사건'를 소개했다. 이는 <시의 힘> 3장 시의 힘 가운데 1부 '루쉰과 나카노 시게하루'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책을 읽어 보면 자세하게 관련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강연에서 내가 이해한 핵심은 일본 '리버럴'이 무엇인지에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별히 일본의 대표적 진보적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와다 하루키 교수 이야기가 나왔다. 와다 하루키 교수는 1970~80년대 한국 민주화운동을 열심히 지원한 일본의 진보적 지성이다. 그런 와다 하루키 교수가 최근 역사 문제에 관해서 '일본과 독일은 다르다. 이유는 전후 단절이 되지 않았다. (천황제) 그렇기에 국가 배상은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박유하 교수의 주장과 통하고 있다. 여기에 서경식 선생은 근대사에서 잘못 만난 것이 반복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비판한다. 이 내용을 담은 글은 '와다 하루키 교수에게'라는 제목으로 몇 주 후 신문에 나온다고 한다. 좀 더 비판적인 일본 지성 요시미 교수의 경우 협정을 철회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이런 식의 목소리는 아직 소수이다. 이렇게 일본 주류의 시각을 소개했다. 이런 이야기를 끝으로 권혁태 선생과 함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주로 <언어의 감옥에서>라는 책에서 다룬 주제를 이야기했다. 권혁태 선생은 서경식 선생의 아름답고 간결한 문장과 힘있고 칼날같은 문장을 이야기했고, 자신은 후자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언어의 감옥에서 다루는 핵심 주제가 일본의 리버럴 세력 비판이다. 일본 리버럴의 스펙트럼은 시장주의자에서 시작해서 사민주의자와 마르크스주의자까지 다양하다. 일본 리버럴들은 1920년대 '소일본주의' 주장을 했다. 식민지 유지에 비용이 더 들기에 식민지 정책을 철회하자는 주장이다. 이런 흐름에서 식민지 정책을 비판한 사람들이 리버럴들이다. 이는 나중에 미일안보조약 반대 활동한 사람들까지 이어진다. 일본 리버럴의 문제는 책임의 문제에서 천황을 건드리지 못했다는 것에 있다. 리버럴한 주장을 할 때 그것을 호소할 대상이 천황이었다. 천황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리버럴들은 앞뒤가 맞지 않게 된다. 그렇기에 어찌 보면 천황제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범재판 문제나 식민지 문제에 대한 법적 보상 문제도 다 여기에 이어져 있다. 군국주의 시절 치안법으로 탄압받고 죽임당한 많은 사람들, 식민지인들뿐 아니라 일본의 공산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들(고바야시 다키지 등)에 대해서 여전히 법적으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다. 이런 점에서 리버럴은 명확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책임 문제를 어물쩡 넘어가는 것이 리버럴이고 박유하 교수의 주장이 여기에 복무하고 있는 것이다.
권혁태 선생은 박유하 지지 성명 관련해서 이것이 유사 파시즘 경향에 비판적이고 한국의 지긋지긋한 민족주의 경향을 비판하는 지식인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헌데 이 점은 Pre-modern과 Post-modern이 결부되어 있다. 전자가 군국주의/제국주의라면 후자는 상대주의적 경향을 가진다. 전근대적 사고방식으로 회귀하는데 포스트모던적 상대주의가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망상적인 독해이다. 보편주의도 이러한 책임에서 벗어난 채 선진국 보편주의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 역시 리버럴이 가진 태도이다. 그렇기에 리버럴들은 법적인 책임은 없다고 주장하고 도의적 책임에 관해서만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사과와 아시아여성기금으로 문제를 덮으려 하는 것이다. 여기서 윌러스틴이 말한 '보편주의'에 대한 설명이 덧붙여졌다. 박유하는 식민지 문제를 볼 때 핵심인 민족 문제를 부정하기 위해 성 차별 문제를 이용한다. 실제로 위안부 문제에서 주체가 국가라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국가 범죄이며, 식민지 문제는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 유고 내전에서 이러한 성범죄는 전쟁범죄로 국가의 책임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민족주의에서 벗어난다고 하면서 이를 계급이나 젠더 문제와 동떨어진 것으로 보는 것은 해결을 더욱 힘들게 한다. 우선 국가의 책임, 즉 법적인 책임을 명확히 해결해야 다른 문제들로 나아갈 수 있다.
이렇게 강연은 끝났고 나는 코스모폴리타니즘에 대해 질문했다. 서경식 선생은 디아스포라 문제를 계속 이야기한 분이고 이러한 민족 문제가 중요하다고 하는 분인데, 교양에서 이야기하는 '세계 시민'과 어떻게 결부시킬 수 있을지 궁금했기에 질문을 했다. 또한 최근 읽고 있는 강남순 선생의 <코즈모폴리터니즘과 종교>라는 책을 보며 이러한 보편주의적 개념이 어떤 의미인지 의견을 듣고 싶었다. 긴 강연이라 짧은 답변을 들었지만, 납득할만한 답변이었다. 선생의 답변은 이렇다. 코스모폴리탄을 실제화하는 것은 멀고 어렵다. 이유는 구체적 맥락 안에 들어가지 않은 채 코스모폴리탄이라 주장하는 것은 실제 그런 것이 아닌 게 되기 때문이다. 정의 역시 마찬가지다. 대문자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맥락 안에서 '정의'가 주장되어야 한다. 이는 모든 식민지 문제에 대해서 사고할 때 필요할 것이다. 애국주의도 이런 맥락에서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단순히 민족주의니깐 잘못되었다 식의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것이 구체화되어 있는 것이 <시의 힘> 7장 '패트리어티즘을 다시 생각한다'에 나온 내용인 듯하다. 오늘 이 책을 읽어 보니 국가의 틀에 벗어난 패트리어티즘을 말하는 것인데 이는 따로 책의 내용을 정리해야 될 것이다. 민족국가와 계급 젠더는 얽혀 있다. 이를 따로 떨어진 것으로 여기면 국가 책임의 문제를 덮는 리버럴식의 사고방식에 빠질 수 있다.
대중 강연이었지만 많은 쟁점들을 생각할 수 있었다. 일본 리버럴들에 대해서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사실 강연 내용 정도로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우에노 치즈코나 와다 하루키의 주장들도 좀 더 차분이 들여다봐야겠다. <코즈모폴리터니즘과 종교>는 읽고 있는데 다 읽고 주장을 정리할 필요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