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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본론 모임 후기 (6) 2013/02/25
  2. 후광의 상실 2011/12/06

자본론 모임 후기

from 잡기장 2013/02/25 23:44

지난주 토요일 자본론을 읽는 모임에서 주최한 모임에 다녀왔다.

 

외국에서 오신 H님을 환영하는 자리였고, 올초부터 다시 함께하게 된 자본론 읽는 모임 사람들이 함께했다.

 

모임을 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분들이 많은데 세상에 참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년에도 계속 진행되었던 자본론 강독 모임을 참석하지 않은 것은 자신이 없어서였다.

성실함이 많이 부족했고, 일에 치이는 상황에서 참석할 마음을 먹는 게 쉽지 않았다.

올초 김공회 선생님이 다시 참석하라는 권유를 해서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모임에 다시 참석하고 있다. 모임에 지각도 하고 그러지만 빠지지 않고 계속 참여하려고 한다.

 

모임에서 자본론을 왜 읽는지 간증(?) 시간이 있었다. 나도 왜 자본론을 읽는지 자세히 생각해 보게 된다.

 

이론 서적들에 관심은 있었지만 제대로 읽지 못하고 겉핥기 식으로 살아오다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좀 더 진지하게 책을 읽게 되었다. 계기는 2007년도 초에 해방신학 세미나를 참석하기 시작한 후였던 것 같다.

대학교 4학년 때 마르크스철학 강의를 들으면서 이전에 공산당 선언이나 경제학 철학 수고를 읽었었지만 자본론은 여전히 언감생심이었다. 해방신학 세미나를 하면서 해방신학 책을 읽었고, 이전에 읽었던 안병무 선생 책들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세미나를 계속하면서 책을 깊이 읽는다는 것을 좀 더 느낄 수 있었고, 그런 점에서 자본론도 언젠가는 읽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해방신학 세미나는 새움이라는 곳에서 하였고, 그래서 당시 신촌에 있는 조그마한 집이었던 새움을 알게 되었다. 세미나를 이끄는 분은 내가 다니던 교회 전도사님이었는데 레비나스 관련 책을 번역하신 레비나스 전문가 김성호 선생님이었다. 그분과의 인연으로 세미나를 하면서 해방신학 세미나는 점점 레비나스 공부로 넘어가게 되었다. 레비나스는 상당히 어려운 사상가지만 좀 더 기독교적 관점에서 레비나스 윤리를 공부할 수 있었다. 레비나스는 지금도 여전히 많이 공부하고 싶다. 최근 1년 정도는 선생님이 많이 바쁘게 되어서 세미나를 못하고 있어 아쉽다.

 

이후 새움에서 진행하는 이데올로기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다. 진태원 선생님이 진행하는 세미나였는데, 알튀세르와 발리바르 책을 중심으로 진행하는 세미나였다. 이때 알튀세르의 저작 대부분과 발리바르, 지젝의 책을 읽었다. 이데올로기 공부는 흥미로웠지만 계속해서 공부를 하지 않으니 이것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점점 잊어먹게 되었다. 더군다나 평일 저녁에 하는 세미나인데 나는 항상 졸았던 것 같다. 왜이리 잠이 쏟아지는지...

 

이후 블로그에서 우연히 본 자본론 강독 공지를 통해서 김공회 선생님이 진행하는 자본론 강독에 참여하게 되었다. 드디어 제대로 자본론을 읽어 보게 된 것이다. 자유인문캠프에서 하는 강의도 찾아가 듣고 열심히 참여했다. 김공회 선생님은 좋은 분이다. 자본론을 아무 대가 없이 이렇게 잘 알려 주다니. 자본론도 그렇지만 그렇게 공부하시는 분들의 매력에 빠져서 자본론에 더 애정이 생긴 듯하다.

 

이후 일이 매우 바빠지면서 쉬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에 공부를 거의 하지 않고 1년을 보내게 되었다. 블로그 글들을 항상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지만 모임에 참여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번에 권유를 받고서야 다시 먼지를 털고 자본론을 꺼내서 보게 되었다.

 

H님이 모임에서 여러 이야기를 했는데, 특히 디트리히 본회퍼 이야기를 했다.

집에 돌아와 가지고 있던 본회퍼 평전과 옥중서신을 다시 꺼내서 읽어 보고 있다.

예전에 읽었던 구절들에 줄이 쳐 있다.

 

H님이 이야기한 부분은 옥중서신에 실려 있다. 1944년 7월 21일자 편지다.

 

"나는 믿는 것을 배우고 싶다."

본회퍼는 믿는 것이 생의 충분한 현세성에 있어서 가능했다고 진지하고 단호하게 말한다.

H님에게서도 그런 진지함과 단호함이 보였다.

 

모두에게 참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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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5 23:44 2013/02/25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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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광의 상실

from 잡기장 2011/12/06 13:28

어제 밤에 마샬 버만이 쓴 <맑스주의의 향연>을 다시 뒤적거렸다. 이 책에서 패리 앤더슨에게 쓴 '거리의 신호등'이라는 글을 읽다가 보들레르의 시 '후광의 상실' 인용을 발견했는데, 몹시 인상적이었다. 이 산문은 데이비드 하비의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에서도 언급된다.
 

 

후광의 상실

 

“아이고! 저런! 당신이 여기 있다니? 당신. 정수만을 마시는 당신이 몹쓸 곳에 있다니! 신들의 양식만을 먹는 당신이! 정말 놀라운데.”

“여보게. 말과 마차를 내가 무서워한다는 걸 당신도 알지 않소. 방금 내가 보도를 급히 가로질러 죽음이 사방에서 전속력으로 달려드는 이 불안정한 혼돈 사이로 흙탕물을 뛰어넘는데. 급히 몸을 움직이는 바람에 그만 나의 후광이 머리에서 보도의 흙탕 속으로 떨어져 버렸소. 나는 그것을 주울 용기가 없었소. 뼈를 부러뜨리는 것보다 나의 표적을 잃는 편이 낫다고 판단을 내린 거요. 그러고는 속으로 불행이 어떤 때에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소. 이제 나는 아무도 모르게 산책도 할 수 있고. 저속한 짓도 할 수 있고. 평범한 사람들처럼 방탕에 빠질 수도 있소. 그래서 보다시피 나는 당신들과 똑같이 여기에 온 거요!”

“당신은 적어도 후광을 잃었다고 게시하거나. 경찰에 찾아달라고 부탁해야죠.”

“천만에! 아니 나는 여기서 편하오. 당신뿐이오. 나를 알아보는 건. 더구나 위엄을 부리는 게 내게는 지긋지긋하오. 그리고 어떤 엉터리 시인이 후광을 주워 뻔뻔스럽게 자기 머리 위에 쓸 것이라고 상상하며 기뻐하고 있소.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그리고 특히 나를 웃기는 행복한 인간을! 이를테면 X나 Z 같은 친구를 생각해 보시오. 그렇지 않겠소! 얼마나 우스꽝스럽겠소!”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파리의 우울> 윤영애 역. 민음사. 2008. 253~254쪽.

 

 

 

...

 

어떤 위치에 있건 우리는 세계적 대도시 서울에서 부대끼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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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6 13:28 2011/12/06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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