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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놀이

 

저번 학기 내내 '자연 과학'의 완벽함에 푸욱 빠져 있었다.

논리학을 공부하면서('공부'한다니까 웃기구나) 자연과학의 정밀함을 느낄 수 있었고

공대 친구로부터 양자역학, 상대성 이론에 대한 흥미로운 설명을 들으면서 가속도가 빨라지면 시간이 느려진다는 원론 수준의 지식 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내 수준에 한탄했다.

 

증명할 수 있는 공식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공식을 응용할 수 있다는 건 상당한 매력이다.

 

요즘이야 수능 때문에 별 생각 없이 살았고

사랑하는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해주는 인체의 구조, 전투기의 세계,

미라 복원 따위의 다큐를 가끔 볼 뿐이었다. 그나마 번역이 제대로

안 돼서 자막도 제대로 안 나와 듣기에 집중하느라 화면은 거의 못 쳐다본다.

 



엄마가 '생로병사의 비밀'이라는 티비 프로그램을 보고 잔뜩 쫄아서 어느날 갑자기 내과로 끌려간 건데, 뭐 결과야 아무 이상 없었고 b형 간염보균자이니까 술먹지 말고 담배 피지 마라.. 이런 상식적인 말만 들었다. 그거야 나도 알지. 그 후에 의사가 초음파 검사를 하라고 했고 그건 '간의 형태'를 보기 위한거란다. 균도 비활성인데다 수치도 정상인데 간의 형태는 왜 보냐고 했더니 아무튼 그냥 보잔다.

 

간의 '형태'라. 대체 인간 간의 '이상적인 간의 모양' 이 존재 한단 말인가? 의학은 인간을 '발명'하고 발명한 것을 다시 '발견'한다. 그리고 그 발견은 여러 단어를 이어 붙이는 호명의 과정을 거친 후에 '진리'로 탈바꿈한다. 그것의 가장 자명한 예로는 정신과, 성형외과의 진료, 치료의 방식을 들 수 있겠는데 임상 의사들은 환자의 얼굴과 몸의 형태를 의학적 진리에 따라 진단하고 몸 위에 선을 그으며 인체를 다시 의학적 진리에 맞추어 재단한다.

 

"당신의 키에 맞는 몸무게와 다리 길이는 ~ 정도입니다."

"코의 각도가 '정상'각도보다 오른쪽으로 5도 비뚤어져 있군요"

"당신은 리셋 증후군입니다."

 

이상적인 몸의 형태, 이상적인 인간 장기를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적용하는 현대의학은 치료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신체에 대한 선고를 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의학은 병을 발명한다. 그리고 다시 병을 환자에게 선물한다.

 

 

여전히 물리학, 수학에 관한 신봉은 열렬하지만

최소한 임상의학 분야의 지식 체계에 대해서는 환상이 깨지고 있는 것 같다.

근데 수능..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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