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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반미감정

 

이화 : 그럼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 볼까요? 2002년 “오, 필승 코리아”라는 함성과 함께, 공놀이 하나가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감정의 홍수를 쏟아 부을 때, 사랑하는 미선씨와 효순씨는 미군 장갑차에 참혹하게 죽어가고 있었죠. 기억하나요?

허자 : 물론이죠! 제가 그 때 얼마나 열 받아 했는데요. 제 한 살 아래 동생뻘인데 억울하게….

이화 : 그런데 미선씨․효순씨를 추모하는 촛불 시위에서 사람들이 꽤 흥분을 하더군요. 성조기를 불태우고 대형 성조기를 만들어서 여럿이 함께 찢는 행위를 했죠.

허자 : 그게 바로 군중심리라니까요. 추모를 하기로 했으면 추모만 해야지 왜 남의 나라 국기를 찢어요? 미국인들이 태극기에 불을 지르면 저희라고 기분 좋겠어요? 반미감정이 사람들의 이성을 잃게 한 게 자명해요.

이화 : 반미감정이라구요? 허자님께서 말한 반미감정이라는 낱말이야말로 현대사회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경험의 복제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예가 아닐까요?

허자 : 네? 반미감정이 경험의 복제라구요? 누가 제 피 끓는 감정을 복제할 수 있겠어요?

이화 : 반미감정을 부추기는 조선일보라는 신문도 이제는 반미감정이라는 말 대신에 조심스럽게 ‘반미’ 또는 ‘반미정서’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이런 매체는 반미감정이라는 새 낱말을 만들어 사람들의 경험을 복제시켜 왔죠.

허자 : 저는 조선일보가 친미성향의 언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이화 : 조선일보를 대표하는 기자가 쓴 칼럼을 한 번 읽어볼까요?

 

반미(反美)에는 대체로 두 개의 범주가 있다. 하나는 반미정서 또는 반미감정(anti-American sentiment)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반미주의(反美主義․anti-Americanism)다. 반미정서는 미국의 어떤 부분을 마땅치 않게 여기거나 싫어하는 소극적인 감정이고 반미주의는 미국을 적극적으로 배척하고 공격적으로 반대하는 신념이라고 볼 수 있다.

……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의 ‘햇볕’을 가리려는 부시와 미국의 ‘구름’을 싫어하는 나머지, 한국 내의 ‘반미’에 어쩌면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반미에 대해 별로 언급하지도 않고 주변의 권고로 마지못한 듯 몇 마디 해도 어쩐지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

김대중 칼럼 : 「반미정서와 반미주의」 2002. 10.22. 조선일보

 

허자 : 그렇군요. 반미감정과 반미주의라…. 나름대로 친절하게 구분을 해주고 있네요.

이화 : 혹시 허자님도 학교교육을 통해 이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갖지는 않았나요? ‘사람에게는 이성과 감정이 있는데, 본능에 가까운 거친 감정은 사람을 동물과 다를 바 없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본능에 가까운 감정을 억제할 수 있는 이성이 중요하다’1)고 하는 생각 말이에요.

허자 :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는 한데 정확히는 잘 기억하지는 못하겠구요. 하여튼 그게 반미감정이라는 말과 무슨 상관인가요?

이화 : 학교 교육은 극단적인 이분법을 써서 감정보다는 이성이 우월하다는 생각을 자라나는 청소년의 머릿속에 심어놓고, 매체는 그 교육을 밑그림으로 써서 반미라는 낱말에 감정이라는 낱말을 살짝 덧붙이죠. 반미를 외치는 것은 이성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감정에 얽매인 결과다! 저는 실제로 촛불시위에 나가서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함께 성조기도 찢어 보았지만, 거기에 참가한 사람들이 모두 감정에만 들떠서 행동했다고는 보지 않아요.

허자 : 헉? 교수님이 직접 성조기를 찢으셨다구요? 국기를 찢는 건 법을 위반하는 행위라구요!

이화 : 우리나라에서는 위법이지만, 미국에서는 표현의 자유의 영역으로 헌법을 통해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예요.2) 이런 경우는 어떨까요?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의 에드워드 사이드 교수는 레바논을 처음으로 들렀을 때,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을 표현하기 위해 이스라엘 경비 초소에 돌을 던졌어요. 이스라엘 쪽은 CCTV 촬영 화면을 내세우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폭력성이 증명된 짓이라고 입에 거품을 물었죠. 그러나 사이드 교수는 오히려 당당하게 “지난 35년 간 정의와 평화에 거슬러 행해진 이스라엘의 만행은 내가 던진 돌의 무게에 비하면 너무 무겁다. 기회가 생긴다면 다시 돌을 던지겠다….”고 말했어요. 게다가 컬럼비아 대학은 온갖 압력에도 불구하고 그를 징계하기는커녕 “그 돌은 특정 대상을 향한 것이 아니었기에 아무런 위법행위가 아니며, 당연히 학문적 발언의 하나로 보호되어야 한다.”고 밝혔죠. 어때요? 허자님이 컬럼비아 대학 총장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허자 : 그, 그래요? 우리나라 고등법원은 “우리가 미국인의 태극기 소각에 대해 미국 법원이 처벌해주길 바라듯 어떤 경우에도 상대방 국가의 국기는 존중돼야 하며 공공장소에서 기물을 태우는 행위는 공공의 안전을 위해 규제돼야 한다.”고 하면서 유죄를 선고했는데요.

이화 : 아무리 미국인이 태극기를 소각한다고 하더라도 미국 법으로는 처벌할 수 없죠. 하여튼 김대중 칼럼은 같은 이름을 지닌 한국 대통령의 햇볕 정책이 ‘반미감정’에서 나온 것으로 몰아세우고 있죠. 그 정책은 이성적인 게 아니라 미국을 싫어하는 감정에서 나왔다. 이제 좀 이성을 지니고 사고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셈이죠.

허자 : 에이, 아무리 ‘대충대충’하는 사람이라고 그래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 내세운 정책이 미국이 싫다는 반미감정에서 나왔겠어요? 대통령 혼자 다 해먹는 게 아니라 입법부와 행정부도 있는데…. 말도 안 돼. 미국에는 저런 멋진 교수가 있고 대학도 있는데…. 쪼금 창피해요.

이화 : 이제껏 ‘반미감정’이라는 낱말로 미국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몰아치다가 결국은 반미의 논리에 논리로써 대응하지 못하니까, 현재는 반미주의라는 무시무시한 느낌의 말을 들이밀며 미국의 힘에 복종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겁니다. 반미감정이든 반미주의든 극단적인 이분법의 사고죠. 이성과 감정은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거든요.

허자 : 그러니까 교수님 말씀은 교육과 언론매체가 짝짜꿍이 돼서 촛불시위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반미감정’이라는 경험을 복제한다는 말씀이군요. 그들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에 치우쳐 있다! 실제로 우리 엄마도 매체를 통해 성조기를 태우는 장면을 보시고는 “너도 대학가서 저딴 짓 할 거야? 그럴 거면 아예 대학가지 마라”고 말씀하셨어요. SKY 보내기 위해서 지금까지 저를 키우셨으면서….

이화 : 그게 바로 경험의 반복과 확대라고 할 수 있어요. 자신이 직접 경험하거나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서….

허자 : 야, 이거 정말 미치겠네. 제가 늘 쓰는 “허잇짜”라는 말도 사실은 개그 프로그램에서 따온 말이거든요. 정말로 현대사회는 경험의 복제가 아주 폭넓게 이뤄지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아무리 똑같은 정보가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제각각 다르게 해석하고 다양하게 받아들이잖아요?

1) 중1 도덕교과서 61-62쪽

2) 미국 대법원은 지난 1989년 ‘국기보호에 대한 연방법과 48개 주법’이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에 위배된다며 위헌 판결을 내린다. 즉, 국기의 가치보다는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가 미국 사회에서 훨씬 더 중요함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9.11 테러를 겪으면서 우경화된 미국 의회는 ‘의회는 미국 국기에 대한 물리적 모독을 막을 권한을 갖는다’는 문구를 새로 담은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과거 6번이나 부결되었던 이 개정안이 2005년에 상원의회를 통과하게 된다면 미국에 남아있던 마지막 자유마저도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국기 방화는 자유를 보호하려는 국가에 대한 도전인가? 아니면 진정으로 애국하는 길은 자유와 이견을 표현할 권리를 보호하는 것인가?

3)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으로 동서양을 가르는 서구인의 폭력적 시각을 다룬 『오리엔탈리즘』과 더욱 교묘해진 서구 자본주의 침탈을 그린 『문화와 제국주의』로 잘 알려진 사이드는 1935년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팔레스타인 출신이지만 미국을 대표하는 지성인으로 꼽혀 왔다. 2003년 백혈병으로 타계.

“학자로서 편안하고 쾌적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지 않았던가, 왜 실천적인 정치영역에 발을 들여놓고 말았는가?”

“내게 정말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1967년 이후 어느 시점에 나는 자신이 소집당했다고 느꼈다. 팔레스타인 투쟁이 정의가 무엇인지 묻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거의 승산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진실을 설파해가려는 의지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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