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세계경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미국과 유로존 국가들의 재정적자가 쌓이고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향후 세계 경제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한편 소득분배 악화로 중산층 비중이 줄면서 경제 양극화도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항의로 ‘월가를 점령하자’는 시위가 자본주의 중심지에서 시작되어 여러 나라로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시장자유주의를 선도한 선진국 경제의 부진은 시장 만능주의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한편, 시장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미래를 암울하게 전망하는 ‘자본주의의 위기’가 이 시대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시장과 정부 사이의 조화,성장과 복지의 균형, 궁극적으로 ‘더불어 사는 사회’를 지향하는 공생발전에서 대안을 찾고자 합니다. 새로운 대안의 모색에서는 시장과 정부는 물론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시민사회의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 개개인은 사회적 기업가 정신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적 기업가 정신은 사회 구석구석에서 발견되는 작고 큰 문제를 정감(empathy)을 통해 발견하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해결책으로 끈기 있게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오늘의 시대야말로 ‘탐욕경영’에서 ‘윤리경영’으로 ‘자본의 자유’에서 ‘자본의 책임’으로 ‘부익부 빈익빈’에서 ‘상생 번영’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러한 가치를 실현하는 위기 이후의 자본주의 체제가 ‘따뜻한 자본주의’입니다. 따뜻한 자본주의, 공생발전 체제를 실현함으로써 더불어 사는 사회, 창조적 혁신이 흘러넘치는 사회, 책임을 공유하는 사회를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 "자본주의의 위기",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경종", "더불어 사는 사회", "사회적 기업가 정신" "윤리 경영" "자본의 책임", "상생 번영"... 친숙한 어구들이 울려퍼지는 이 연설문은, 우리의 이명박 대통령님께서 지난 2월 "글로벌 코리아 2012" 행사에서 행한 기조연설. "윤리적 자본주의" 혹은 "따뜻한 자본주의" 선언을 단순히 유행하는 레토릭으로 폄하할 수도 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결정하는 이데올로기는 오히려 이러한 상투적 어구의 반복을 통해 등장한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이 연설문에서 느껴지는 자신감은 단순히 레토릭 차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실제 사회적 기업과 사회적 경제, 그리고 이를 둘러싼 담론들은 이명박 정권의 지원하에서 -그 지원과 발전의 질은 제쳐두더라도- 폭발적으로 성장해왔다.)

 

대선을 둘러싸고 여러가지 논의들이 오가고 있지만, 대선 결과를 떠나 지배층의 핵심 고민은 장기화될 경제위기 시대에 어떻게 윤리와 자본주의의 행복한 조우를 통해 체제를 유지, 보수, 통치해나갈 수 있을지의 문제일테고, 그것이 영미식 자유주의에 기반한 안철수의 "박애 자본주의" 모델이 될지, 발전주의 국가의 향수에 기반한 박근혜의 "온정주의 모델"이 될지 정도가 선거에 걸려있는 판돈이 아닐까 싶다. 딱히 안철수 모델이 박근혜 모델보다 나은지도 모르겠는 현실.. 박근혜의 지지세력 중 파시즘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현실적 위협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안철수를 지지할 이유가 될 수는 없는 상황.. 어차피 미국에 있는 몸인데다 지난 대통령 선거들에서도 투표한 기억이 없기에, 이번 선거에서 진보 세력이 독자 후보를 내야하는가의 여부는 내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물론 이런 논의가 벌어지는 것 자체를 안타깝게 바라보고는 있지만.) 오히려 내게 더 심각한 문제로 느껴지는 것은, 한국의 좌파 담론들 중 저 연설문에 등장하는 가치 이상을 주장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비판적 논의를 발전시키려는 시도들을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경제위기 이후 각 국가 지배층이 "빅 소사이어티", "신-사회적 시장경제", "따뜻한 자본주의" 등을 내세우며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과 자본주의와 윤리의 접합을 통치적 기획의 일부로 끌어들이고 있는 때에, 한가로이 "사회적인 것의 위기"를 걱정하고 시장만능주의를 질타하며 자본주의에 대한 도덕적 비판의 경계 내에서 머무는 것이 어떤 정치적 효과를 가질 수 있을까? 시민사회의 정치성에 대한 판타지들이 넘쳐나던 때 "민중사회론"을 제기했던 김세균 선생님이나 IMF 이후 재등장한 사회 페티쉬에 "사회적 시장경제론 비판"을 내세웠던 김성구 선생님같은 패기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90년대 후반 제기됐던 "발전주의 비판에서 신자유주의 비판으로"같은 발빠른 의제설정들조차 학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은 내가 외국에 있어 과문한 탓인가? (진짜 질문이니, 혹시 이 글을 읽는 누군가 유의미한 논의들을 알고 있다면 좀 알려주시길....) 이번 선거를 바라보면서,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한국 사회의 좌파담론은 현실정치에서든 학계에서든 결국 자유주의에 통합, 흡수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 변광배 선생님의 "나눔은 어떻게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가"를 읽다가, 데리다의 "순수선물(pure gift)" 개념을 익명 기부와 연결시키는 것을 보고 잠시 멘붕 중.. 후기 데리다에서 "순수선물"의 아포리아에 대한 탐구는, "선물-교환"을 "도덕적 사회"의 탄생과 연결시키려는 모스식 사유에서 벗어나기 위한 개념적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메시아주의나 신적 폭력의 아포리아에 대한 탐구와 마찬가지로 기존 사회 혹은 공동체에 포박되지 않는 "윤리-정치"의 공간을 탐구하려는 시도로 이해되어야 하고 (결국 이러한 순수한 공간은 불가능하기에 아포리아로 연결되지만), 이는 여전히 도덕적 공동체를 대안으로 내세우는 모스주의 인류학자들(예컨대, 그레이버)이 데리다의 모스 비판에 적대적으로 반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리 대중서라고는 해도 도덕성과 사회성을 벗어나는 공간을 탐구하기 위한 개념을 통해 기부 문화를 장려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정작 이 결론을 끌어내기까지의 과정에서 그가 읽어내는 데리다는 정확한 편이다. 그러나 이 결론으로 데리다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이 맺고 있는 아포리아적 관계는 폭력적으로 해소된다), 해석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교환관계의 단절"과 "절대적 희생"에 대한 상상력이 겨우 "익명 기부"의 실천에 머무는 빈약한 정치적 상상력을 가진 사회는 얼마나 불행한가라는 생각에 착잡한 마음이 든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가라타니 고진이 보편적 호혜성이라는 개념까지 끌어들여 결국 소비자운동과 대안화폐운동을 옹호하는 걸 보면서 일본 사회의 정치적 빈곤이 심각한 상황이란 걸 감지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

 

 

- 윤리적 자본주의의 문제를 들춰볼수록 계속해서 "금융화'의 문제에 마주치게 된다. 지난 여름 필드에서 만났던 몇몇 사람들에게서 내가 받았던 느낌은, 이들이 스스로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마치 자산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듯이 윤리적 실천의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활동을 시간의 "투자"라는 단어를 써 설명한 필리핀으로 여름 봉사활동 떠나던 대학생, 수익성 높은 투자처를 찾듯이 좀 더 특이한 형태의 윤리적 의제들을 궁리하던 "소셜 벤처" 동아리 회원들, 마치 친절한 펀드매니저처럼 대중에게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윤리 상품'들을 권해주는 것으로 자신의 실천을 묘사했던 NGO 활동가.. 아마 오늘날 '파이낸스'가 어떻게 단순히 경제적 삶을 지배하는 것을 넘어 윤리와 정치를 사고하는 일반적인 '담론틀'을 제공해주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들일 것이다.

 

금융화된 자본주의 시대에 윤리가 자본주의와 접붙는다는 것은, 시장적 합리성에 도덕적 규범을 추가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 윤리 자체의 성격이 변한다는 것, 즉 윤리 자체가 금융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일상생활의 금융화"를 넘어 이 "윤리의 금융화" 혹은 "정치의 금융화" 문제를 직접 다루지 않고서는, 윤리적 자본주의에 대한 논의는 '비판'이라기보다는 "내가 생각하는 윤리는 이런데 사람들은 왜 다른 실천을 하냐"며 떼쓰는 -최근 접한 문화비평들에서 종종 느꼈던- 수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지도 교수가 지적한 "리스크"를 감수하며, 약간의 프로젝트의 수정을 모색 중..

 

 

- 스트레스를 요리로 푸는 룸메이트를 둔 덕분에 요즘은 매끼 성대한 식사 중이다. 집에서 간단히 만드는 것들이니 고급 요리라 할 수는 없겠지만, 녀석의 터키 요리들은 현미밥과 궁합이 꽤 잘 맞는다. 종종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푸는 나로서는 최고의 룸메이트라고 할 수 밖에..

 

먹는 건 그 어느 때보다 만족스럽지만,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던 이번 학기의 스케쥴은, 지난 2년 간의 코스웤보다 더 바쁜 걸로 밝혀졌다. 도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란 궁금증과 함께, 지난 번 언급한 레드불과 오메가-3 조합에 이어 정관장 홍삼엑기스와 블랙 커피라는 퐌타스틱한 조합을 새롭게 발견.. 역시 (야오이물을 좋아하던 누군가의 말대로) 세상은 넒고 조합은 많구나..  유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
2012/10/07 11:24 2012/10/07 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