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앤은 왜 정치적 요구투쟁만 정치투쟁인가? 

-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차이에 대한 사고의 정립을 위하여. 

일반적으로 경제적제 요구 투쟁은 경제투쟁이라고 하고, 정치적 요구 투쟁은 정치투쟁이라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가? 정치투쟁은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등등의 국가 권력기관에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운동의 일환이며, 이들 기관은 부르주아들의 전체적인 이익을 대변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특히 입법부에 대한 청원운동과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박근혜대통령퇴진운동은 정치운동이 가져다주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표현되는 최고의 운동의 형태다.

 

일부 정치조직에선 대중투쟁을 경제투쟁에서 정치투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주장을 하지만 그 대안은 제시하지 못한다. 그나마 현재 부정선거로 박정권의 퇴진운동이 정의구현사제단을 중심으로 해서 벌어지고 있음은 진보진영의 또 다른 희망으로 다가선다. 희망이 절망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행동과 이론에 대한 바른 선택을 강요당한다. 촛불은 바람 앞에서 쉽게 꺼지기 때문이다.

 

대중들의 정치투쟁은 투쟁방향의 새로운 활력소가 되며, 거기서 나오는 열려지는 틈새는 투쟁을 활성화 시키는 매개로서의 자기역할을 충실히 한다. 정치투쟁은 경제투쟁을 활성화 시키고, 경제투쟁은 정치투쟁을 활성화시켜 대중의 투쟁의 방향성을 권력으로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다. 두 개의 투쟁을 하나의 효과로 보아서는 안 되며, 그렇다고 두 개의 투쟁을 서로 다른 의미로서 파악을 해야 하는데 그것의 차이가 무엇인지, 검토를 해보자.

 

일반적으로 경제투쟁은 생존적인 문제로 단사적인 차원, 한명의 자본가와의 투쟁을 중점으로 이루어진다. 조금 더 크게 생각한다면 개별 노동자들이 개별자본가와 개별적인 정부관리들에 대항하여 투쟁을 전개하는 것, 그것의 의미는 개별노동자들의 투쟁의 형태가 자신의 생존에 직접적인 내용으로 지엽적인 문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노동자간의 연대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개벌적인 사안으로 개별자본가와의 투쟁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정치투쟁은 이보다 조금 더 복잡하다. 정치투쟁은 일반적인 정치적인 요구에 의한 투쟁이라고 하기보단 개별적인 노동자에 의한 투쟁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와 전체 부르주아들 그리고 그들을 대변하는 정부기관 및 관료들과의 투쟁이다. 그 형태가 정치적인 내용으로 많이 나타나고 있지만 핵심은 전체 노동자가 노동자임을 인식을 하고 전체자본가와의 투쟁을 해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 형태의 발전의 최고의 모습은 전국적인 총파업이다. 전국적인 총파업을 우리는 경험을 했다. 당시의 총파업은 87년 6월 항쟁으로 열려진 틈을 노동자들의 경제적인 열망을 표출하여 전체 자본가와의 투쟁으로 전개되었다. 개별적인 사업장에서 개별적인 움직임이고 단위 사업장에서의 투쟁이지만, 전체 자본가계급간의 투쟁으로 전국적인 노동자의 봉기의 수준으로 발전되어 간 것이다.

 

노동자대투쟁의 시기였던 7 8월의 상황은 정치적인 내용으로 점철되어진 것은 아니다. 그동안 노동자 자신이 대우받지 못하던 모습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몸부림이며, 그것의 보답을 행동으로 옮긴 것뿐이다. 생존의 욕구 우렁찬 함성으로 그리고 그 대오가 한 공장이 아닌 전국적인 모습에서 터져 나온 것이다. 제 각각의 사안으로 시작되어, 제 각각의 사안으로 투쟁의 한 물결이 지나갔다. 이 모습에서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고리는 분명하게 보여 준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부르주아공화국이다. 부르주아들의 전체와의 투쟁은 언제나 정치투쟁이다. 노동운동은 필연적으로 자본주의를 전복시킨다. 자본주의 사회가 뒤 엎어진다는 의미는 국가권력이 새로운 계급으로 넘어가는 것을 말한다.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을 단계적으로 보거나, 이원화시켜서는 안 된다. 경제적인 제 요구는 상황에 따라서 정치투쟁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정치투쟁으로 바뀐다. 정치적 제 요구 투쟁도 그 흐름에서 경제투쟁의 형태로 진화한다. 하나를 고차적으로 보거나, 어떠한 요구라는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경제투쟁이나 정치투쟁이라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혁명적 시기에서 경제적 요구투쟁이 정치투쟁의 모습으로 변한 것은 하나의 사업장에서 조차도 전체 부르주아와의 이익에 반하여 그들의 권력에 위협을 가하기 때문에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이 자연스럽게 결합이 되는 것이다.

 

사회주의를 외치면서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결합의 변증법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것은 겉만 보고 속을 보지 못하는 사고방식 때문이며, 내용보단 형식에 기울어진 생각이다. 요구의 형식에서, 경제투쟁을 해야 정치투쟁을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던지, 지금은 정치투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는 것 자체는 경제주의적 오류로 빠져 들어가는 경계에서 한발 더 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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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9 18:28 2013/12/09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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