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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사노위 : 14호><공동지방정부는 허구다!> 변화를 만드는 것은 진보정치인이 아니라 노동자계급 자신!

<공동지방정부는 허구다!>

 

변화를 만드는 것은

진보정치인이 아니라 노동자계급 자신!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2년 총선과 대선이 다가오며 ‘진보정치’라고 자칭하는 이들이 민주당과 공공연하게 행보를 같이하고, 노동절집회에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단상에 올라 발언하기도 한다. 민주당이 좌클릭하고 있기에 정책연합이 가능하다고 하는 이들이 힘을 얻고 있다. 그들은 지방자치단체 선거 이후 만들어진 ‘공동지방정부’와 같은 승리를 계속 만들자고 주문한다. 그런데 선거연합-후보단일화로 소위 ‘공동정부’가 구성되었다고 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의 1년은 과연 장밋빛이었는가?
 

지방공동정부의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지역은 중립적 공간이 아니다. 토착자본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정권이 사람을 동원하는 공간이다. 민주당이 도와 시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전북지역의 경우 버스노동자들이 파업을 시작하자 시의회가 이를 불법파업으로 매도했고, 시청은 전세버스를 대체차량으로 투입했다. 막강한 지역 토호세력으로서 2010년에만 150억 원이 넘는 운행보조금을 받은 버스자본가들에게 시의 권한인 ‘면허취소권과 과징금 부과’로 압박을 가할 수도 있었으나 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계급투쟁이 벌어지고 나서야 우리는 지자체가 얼마나 친자본적인지, 그리고 ‘진보’라는 이들도 자본에게 얼마나 무력한지를 적나라하게 보고 있다.
 
2010년 국회예산정책처는 지자체에 대한 정부보조금이 7년 만에 168%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중앙정부가 예산으로 지자체를 통제하고 지자체는 재정능력이 현저히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자체들은 기업유치로 재정을 확보하려고, 법인세와 재산세 감면, 인프라 특별지원 등 기업에 대한 혜택을 앞다퉈 내놓는다. 안성시가 KCC를 유치하려고 160억 원의 시비를 보조하면서, 그 외 보조금 지원규모는 비공개로 한다고 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강원도 역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의 공동공약인 ‘골프장 건설 전면 중단을 위한 도정협의체 구성’에 진전이 없다. 환경보다는 시 재정확보가 더 중요한 것이다. 노동자들의 투쟁 없이 지자체장이 친노동정책을 만들지는 않는다.
그러다보니 공동정부가 구성되었다는 곳마다, 약속했던 공동운영은 삐걱대고 있다. 강원도에서 민주노동당이 공동지방정부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공식창구인 도정협의체 구성도 지지부진하고, 경기 고양시도 ‘고용시정공동운영위원회’가 구성되었으나 시청은 ‘자문기구’라고 하고 시민단체는 정책추진기구라고 맞선다. 공동정부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경상남도의 ‘민주도정협의회’도 그 성격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어 결국 의결을 할 수 없는 자문기구로 결정되었다.
 

노동자들의 분노를 조직하기보다 공동정부에 기대는 노동운동

 
노동자들의 삶의 파탄을 막기 위해 더 많은 노동자를 조직하고 투쟁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지방공동정부에 기대는 흐름이 생겨난다. 최근 공동정부의 모범이라는 경상남도에 비정규직노동자 지원센터가 만들어졌다. 지자체가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이 기구가 강제력을 가지려면 조례로 권한이 인정되고 직접 운영되어야 한다. 그런데 경남 비정규지원센터는 도가 재정만 지원하는 민간위탁으로 운영된다. 민주노총 경남본부가 수탁을 받았다. 자신의 역할과 임무인 비정규노동자들의 조직화를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아서 하겠다는 발상이 참으로 놀랍다. 그런데 민주노총의 지역본부 중 많은 곳에서 공동정부의 재정을 지원받을 구상을 한다고 한다.
 
지자체는 많은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사용자이며, 최저임금을 많이 위반하는 곳 중 하나이다. 오랫동안 자본과 밀월관계를 유지해왔고, 설령 지자체장이 바뀐다 하더라도 정부와 자본의 권력이 뿌리 깊게 행사되는 곳이 지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계급투쟁의 공간인 지역에서 노동운동의 자주성이 더욱 요구되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운동이 ‘공동정부’라는 이유로 재정지원을 받기 시작하면 지역 노동자들이 토호세력 및 자본가들의 이해관계에 맞서는 투쟁을 할 때 오히려 중재하고 타협하도록 동원된다. 전북 버스파업이나 현대자동차 사내하청노동자들의 점거파업 때 ‘공동정부 구성’에 매달려 있던 진보정당이나 민주노총의 상층지도부가 보여준 모습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노동운동이 노동자들의 분노를 조직하고 투쟁하지 않는다면, 설령 야당이 정권을 잡거나 의석수가 늘어나도, 조직되어 있는 노동자들의 기득권 유지로 타협하는 것 이상을 넘어설 수 없다. 예를 들어 타임오프와 교섭창구단일화의 경우 민주노조운동의 혁신과 자본가들과의 격렬한 계급투쟁이 없다면 의회에서는 타협안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 타협안이 한나라당을 동원하여 복수노조 금지를 유지하고 노조전임자 임금도 지급하게 하겠다는 한국노총의 안과 다를까? 투쟁하지 않은 채 정치에 기대는 운동, 우리가 그토록 비판해왔던 한국노총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진짜 힘을 키우자

 
지난 1년 지방공동정부의 실상이,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한나라당을 무너뜨리고 야권 공동정부가 되더라도 노동자·민중의 삶이 변화되지 못함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민주당이야 애초에 자본가정당이니 노동자들의 삶을 변화시키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없다. 그러나 진보정당이 권력을 잡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그들의 약속이 단지 골프장 안 짓고, 비정규센터 하나 더 만들고, 지역의 복지수준을 약간 올리는 정도라면 어느 정도 지켜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삶 구석구석을 파고들어온 경쟁과 효율성 이데올로기, 실업과 불안정한 노동을 끝장내고 세상을 변화시켜서 제대로 된 미래를 만들자는 약속’은 결코 지켜질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애초부터 대통령이나 지자체장, 혹은 국회의원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구석구석을 지배하고 있는 자본의 힘을 몰아내려면 지역과 전국에서 계급투쟁을 만들어야 한다. 법률이나 조례를 바꿈으로써가 아니라, 노동자 민중들의 분노와 의지를 모아 직접적인 정치행동으로써 변화는 가능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은, 선거에서 표를 몰아보자는 정치 이데올로기가 의회정치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고 노동자·민중의 직접 행동의 의지와 가능성을 주저앉힌다. 최선을 다해서 노동자들의 분노를 조직하고 투쟁하려는 시도를 무의미한 것으로 폄하함으로써 결국 진짜 세상을 바꾸는 힘을 무너뜨린다.
 
대신해주겠다는 모든 정치를 의심해야 한다. 설령 그것이 ‘진보정치’라는 이름이더라도. 자본의 전횡과 지배를 보완해주는 지금의 정치질서가 유지되는 이상, 어떤 이들도 우리의 삶과 미래를 대신할 수 없다. 우리가 스스로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권력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지역과 현장에서 계급투쟁을 만들어내면서 우리 노동자와 민중이 지역과 현장의 권력 주체가 되겠다는 의지를 세우고, 그 힘에 바탕하여 세상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기획에 동참하자. 완전히 새로운 노동자의 직접정치를 만들고자 하는 이들이 지금 사회주의노동자정당을 건설하려는 이들이다.
 
김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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