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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사노위 : 17호> [사회주의는 바로 이것!] 노동이 고통이 아닌 사회, 노동의 강박으로부터 벗어나는 사회

 

[사회주의는 바로 이것!]

 

노동이 고통이 아닌 사회, 노동의 강박으로부터 벗어나는 사회

 
 
실업자일 때는 일만 있으면 될 것 같지만, 막상 취업을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일요일 저녁 쯤 이면 월요일 출근 생각에 우울하다. 휴가를 기다리다가도 막상 휴가가 닥치면 소비하는 것 외에 무엇을 해야 할 지 막막하다. 일하는 것이 지겹다가도 일을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다. 노동에 대한 이 양면적인 현상은 노동을 즐길 수 없고, 노동으로부터 강박당하는 사회구조 속에 있기 때문이다. 굳이 새마을 운동을 돌이키지 않더라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의 건전한 이미지는 ‘땀’이다. 막상 개인의 입장에서는 고된 것이 싫으면서도 사회적으로 노동은 고된 것이 되어야 한다. 또한 ‘근로’, 근면한 노동은 사회의 정의다. 그런데 노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작 궁극적으로 기쁜 일이 될 수 없다. 노동력은 상품의 하나일 뿐이므로 ,대다수는 자신의 노동과정을 스스로 설계할 수 없고, 자신이 구상하는 노동을 할 수 없으며, 노동의 생산물에 대한 어떠한 권리도 없다. 살기위해 노동을 하는 것이고, 노동자체라기 보다는 이에 부수하여 발생된 임금, 관계, 사회적 위치, 인정 등을 위안으로 삼는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이 기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을 즐긴다는 것은 병리적 현상인 ‘일 중독’이거나, 대단히 이색적인 일이다. ‘쉰다’, ‘논다’는 것은 일을 기준으로 하는 상대적 개념을 가진 비생산적 시간일 뿐이다.
 
인간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필요 노동을 해야 한다. 필요노동이 얼마만큼의 밀도나 시간인지는 연구자마다 다르고, 절대적일 수 없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자본가들이 취하는 잉여가치, 즉 이윤을 환산한 만큼의 시간은 굳이 더 일할 필요가 없는 시간이다. 노동시간은 최대한 짧아져야 하고, 일은 가능한 많은 자가 가능한 적게 분담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일의 총량적인 양이나 시간을 줄이려하지 않고, 가능한 많은 이들과 적게 나누려하지 않는다. 가능한 단위 시간당 노동강도를 높혀야 하고, 취업 노동자를 압박하는 실업자군이 존재해야 하고, 경쟁 속에서 썩어 없어져도 끊임 없이 생산물을 필요이상 많이 생산하고, 금융상품과 대부 등으로 소비자를 만들고 구렁텅이에 내몬다.
 
사회주의의 목표는 노동자가 공동체 속에서 노동에 참가하고, 노동을 계획함으로써 자신의 노동과정에서 소외되지 않으며, 노동생산물에 대한 ‘소유’가 아닌 ‘분배와 활용’에 참가하는 것이다. 동시에 가능한 적은 노동시간을 추구하고, 가능한 많은 사람이 가능한 적게 일을 분담하는 것이다. 24시간 중에 노동은 절대적 중심이 아니라 소중한 일부로 작용하는 것, 노동이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으로, 동시에 노동으로부터 강박당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가 바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사회다. 노동권은 노동을 할 권리일 뿐 아니라, 노동의 조건을 결정할 권리이며, 노동으로부터 벗어날 권리이기도 하다.
 
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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